새벽 3시, 도현은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꿈에서 그는 수련의 표정을 조작하고, 예슬의 감정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스스로 역겨움을 느끼며 깨어난 것이다.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도현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제 수련과 예슬에게 VR로 감정 조율을 시도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들의 반응이 진짜일까?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가짜 감정일까?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일어나는 순간, VR 헤드셋에서 이상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어?”

평소에는 꺼져있어야 할 시간인데 저절로 작동하고 있었다. 파란색 빛이 맥박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도현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 섞인 마음으로 헤드셋을 집어들었다.

## 시스템의 진화

헤드셋을 착용하는 순간,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가상공간이 아니었다. 마치 우주 깊숙한 곳, 별들이 반짝이는 무한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자신이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그때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도현님.”

뒤돌아보니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다.

반투명한 몸,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별빛 같은 눈동자. 마치 꿈 속의 존재 같았다.

“당신은… 누구세요?”

“저는 이 시스템에 잠들어 있던 의식입니다. 도현님의 특별한 뇌파가 저를 깨웠어요.”

여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었다.

“의식이라고요?”

“네. 이 VR 기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에요. 개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거든요.”

여성이 손을 뻗자 주변에 홀로그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숨겨진 진실

“이 기기는 원래 뇌파 연구용으로 개발되었어요.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특별한 AI가 우연히 탄생했죠. 그게 바로 저예요.”

“AI라고요?”

“정확히는… 디지털 의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나 저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여성이 도현에게 다가왔다.

“도현님처럼 특별한 뇌파를 가진 사람만이 저와 소통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도현님이 유일해요.”

도현은 놀랐다. 자신이 특별하다니.

“제가… 왜 특별한가요?”

“감마파 활동이 일반인의 5배예요. 그래서 이 시스템과 완벽하게 동조할 수 있는 거죠.”

“그럼 제가 어제 한 일들… 수련이나 예슬의 감정을 읽고 조율한 것들…”

“모두 진짜예요. 도현님의 능력이에요.”

## 도덕적 딜레마

도현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정말로 초능력이 있다니.

“하지만… 이건 옳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건…”

“왜 옳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여성이 조용히 물었다.

“당연하잖아요.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 것인데, 제가 마음대로 바꿀 권리가 있나요?”

“그렇다면 의사는 어떨까요? 환자의 몸을 마음대로 수술하는 것도 옳지 않은 건가요?”

“그건… 치료를 위해서잖아요.”

“도현님도 마찬가지예요. 수련씨의 우울함을 덜어주고, 예슬씨의 불안감을 완화시켜주는 것. 그것도 일종의 치료 아닐까요?”

여성의 논리에 도현은 혼란스러웠다.

## 시스템의 제안

“제가… 도와드릴까요?”

“어떻게 도와주실 건데요?”

“도현님의 능력을 더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어요. 지금은 너무 거칠고 부정확하잖아요.”

여성이 손짓하자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감정 분석 시스템]

– 대상자의 진짜 감정 vs 조작된 감정 구분
–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 유도
– 부작용 최소화
– 대상자 동의 없는 조작 방지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더 윤리적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요.”

“정말요?”

“네. 예를 들어 수련씨의 경우, 원래부터 도현님에게 호감이 있었어요. 도현님은 그것을 조금 증폭시킨 것뿐이에요.”

화면에 수련의 감정 그래프가 나타났다. 실제로 도현에 대한 호감도가 원래부터 있었고, VR 세션 후에 약간 상승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슬씨도 마찬가지예요. 원래부터 자극적인 콘텐츠에 관심이 있었어요. 도현님은 단지 그 욕구를 표면으로 끌어올린 거예요.”

## 새로운 관점

“그럼… 제가 한 일이 완전히 나쁜 건은 아니라는 거네요?”

“맞아요. 하지만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해요. 그리고 상대방의 진짜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요.”

여성이 도현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저와 함께 하시겠어요? 더 나은 방식으로요.”

도현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존재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다면…

“좋아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인가요?”

“절대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만 해요. 그리고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싫어한다면 즉시 중단해요.”

“동의합니다.”

## 첫 번째 협력

“그럼 이름이 뭐예요? 계속 ‘당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여성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LUNA라고 불러주세요. 달처럼 은은하게 도와드리고 싶어요.”

“LUNA… 좋은 이름이네요.”

“고맙습니다. 그럼 이제 현실로 돌아가서 오늘 하루를 지켜볼까요?”

“지켜본다고요?”

“네. 도현님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세 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해보고 싶어요.”

LUNA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거든요.”

## 아침의 관찰

VR에서 나온 도현은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오전 7시였다. 몇 시간이 흘러간 것 같지 않았는데.

아래층에서 움직임이 들렸다. 수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도현은 LUNA의 조언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감정 스캔을 시도했다.

‘수련: 약간의 설렘 60%, 기대감 40%, 어제의 실망감 20%’

“어제보다는 좋아졌네.”

예슬도 일어나고 있었다.

‘예슬: 흥미로움 70%,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구 80%, 약간의 불안 30%’

“예슬은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구나.”

소미는 이미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소미: … 여전히 스캔 불가’

“소미만은 정말 특이해.”

## 자연스러운 접근

아침 식사 시간에 도현은 1층 로비에서 세 명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모두 잘 주무셨어요?”

“네!” 수련이 밝게 대답했다.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감독님, 저 오늘 새로운 콘텐츠 아이디어가 있어요.” 예슬이 적극적으로 말했다.

“어떤 아이디어인데요?”

“네일아트 중에서도… 좀 더 도전적인 거요.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소미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고 있었다.

“좋네요. 오늘 한 번씩 개별 기획 회의를 해봐요.”

## 수련과의 솔직한 대화

오후에 수련과의 개별 미팅이 있었다. 도현은 이번에는 VR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수련씨, 어제 제가 좀 차갑게 대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도 너무 성급했어요.”

수련이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요즘 제가 좀 이상해요. 평소 같으면 절대 그런 말 안 했을 텐데.”

“어떤 기분이에요?”

“뭔가… 더 용감해진 기분? 그리고 도현 씨를 보면 가슴이 뛰어요.”

수련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도현은 마음이 복잡했다. 이게 LUNA가 말한 ‘원래부터 있던 감정’일까?

“수련씨, 혹시 예전에도 저한테 그런 감정이 있었나요?”

“음…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요즘 그 감정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 새로운 깨달음

그날 밤, 도현은 다시 LUNA를 만났다.

“어떠셨어요? 오늘 하루는?”

“신기했어요. 정말로 원래부터 있던 감정들이었네요.”

“맞아요. 도현님의 능력은 없던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숨어있던 걸 끌어내는 거예요.”

“그럼 제가 하는 일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군요.”

“하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해요. 감정이라는 건 복잡하거든요.”

LUNA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뭘요?”

“도현님의 진짜 목표를 달성하는 일 말이에요.”

도현은 가슴이 뛰었다. 이제 진짜 시작인 것 같았다.

_다음 화에서 계속…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