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Great Battle of Tokyo Metro”
도쿄 메트로의 대결전
1
신주쿠 역 가미카제 본부.
새롭게 꾸며진 전략실에서는 앙드레 일행과 모리, 히마츠이, 가미카제 조장들까지 모여 앉아 대책을 숙의하고 있었다.
가미카제 조장들은 요아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서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군단급 좀비들의 숫자에 압도된 것이다.
마츠이 본부장이 조장들을 둘러보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좀비들의 숫자에 연연하지 마라. 지난번 전투에서 보았듯이 좀비들의 대가리만 쓰러뜨리면 좀비 군단은 와해된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사무라이 좀비 수십 구에 불과할 뿐이다.”
모리가 괄괄한 어조로 떠버렸다.
“고노야로(제기랄)! 왜들 와사비 씹은 표정들이냐? 본부장 말대로 사무라이 좀비들을 집중적으로 제거한다. 그러면 쇼군 좀비가 기어 나오겠지. 쇼군 좀비는 우리의 영웅 하메시가 날려버릴 거다. 이번에는 팔뚝이 아니라 모가지를 날려줄 거라고!”
이때 문이 열리며 전령이 들어섰다.
“본부장님, 급보입니다.”
“뭔가?”
“시노부라와 요시모토 보스가 죽었습니다.“
“뭐야? 어떻게?”
“하세가와가 협상을 제의하기에 아카사카 역에서 회동했는데 좀비들이 역내로 진입하는 바람에 대다수 경호원들과 함께 몰살했다고 합니다.”
야쿠자 두 계파의 와해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우 회복되려던 좌중의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앙드레가 전령에게 물었다.
“하세가와가 직접 좀비부대를 조종한 것인가?”
“예, 사무라이 좀비들이 하세가와의 명령에 움직였다고 했습니다.”
“하세가와가 좀비 부대를 이끌고 역내로 진입했다면 단지 야쿠자 조직을 격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텐데?”
“맞습니다. 좀비부대를 앞세운 하세가와가 이나가와카이의 조직원 이백여 명을 총동원해서 신오쿠보 역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마츠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신오쿠보 역이 돌파당하면 신주쿠의 서브시티를 지킬 수 없다. 당장 거주민들을 이주시켜야 돼.”
유키나가가 침울하게 말을 받았다.
“본부장님, 거주민들은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 이주하면 생활물자까지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런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습니다.”
“대원들은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일 수 있지만 거주민들은 그저 개죽음일 뿐이다. 어떻게든 우리들의 가족을 지켜야 돼.”
이때 또 다른 전령이 전략실로 들어섰다.
“본부장님, 수색대원의 보고에 의하면 연대급 좀비부대가 도심으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뭐야? 애니그마 놈들도 움직였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애니그마 연구소의 경비대원들도 동반해서 출동했습니다.”
“윤서경이란 놈은?”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알겠다. 변동 상황을 오분 단위로 보고해라.”
마츠이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윤서경의 양동작전!
메트로레인과 지상으로 동시에 좀비들을 진군시켰으니 퇴각도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고 수천 구에 달하는 좀비부대와 맞서 싸우자니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워낙 절박한 상황이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조차 안쓰러웠다.
모리가 시가 연기를 길게 뿜으며 앙드레를 돌아보았다.
“캡틴, 어찌하면 좋겠는가?”
모두의 눈길이 앙드레에게 집중되었다.
앙드레는 메트로레인과 도쿄의 지도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본래 우리가 양동작전으로 애니그마 연구소를 공격하려 했는데 놈이 선수를 쳤소. 지금 상황에서 퇴각하면 잠시 목숨을 연명할 뿐이오. 강력한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최대한 버텨야만 하오.”
유키나가가 실망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캡틴, 그것은 현명한 대안이 못 되오. 화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수천에 달하는 좀비부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소? 모든 화력을 퍼부어도 반나절을 버티지 못할 거요.”
“그 정도면 충분해.”
“그게… 무슨 말이오?”
“나와 동료들이 애니그마 연구소로 침투해서 윤서경을 죽이고 쇼군 좀비를 파괴하겠네.”
앙드레의 파격적인 전략에 조장들은 경악에 젖어 입을 딱 벌렸다.
짝, 짝, 짝!
모리가 박수를 치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과연 캡틴이로군. 도적을 물리치려면 수괴를 쓰러뜨려야 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지. 감탄했네, 캡틴!”
마츠이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침투가 가능하겠는가, 캡틴? 자네들이 실패하면 도쿄의 서브시티는 붕괴되고 말아.”
“지금으로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소.”
“그래, 달리 대안이 없지.”
마츠이가 몸을 일으키자 모두가 따라 일어섰다. 앙드레 앞으로 다가온 마츠이가 악수를 청했다.
“고맙네, 캡틴. 그리고 미안하네. 너무 큰 짐을 지웠군.”
유키나가가 마츠이 옆으로 다가섰다.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본부장님.”
“네가?”
“도쿄, 아니 일본의 운명을 어떻게 외부인에게만 맡길 수 있겠습니까? 허락해 주십시오, 본부장님.”
“…….”
마츠이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오냐, 네 말대로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유키나가.”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왱–왱–왱–!
비상경보가 발동되면서 가미카제 전 대원들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전투에 돌입하면 퇴로가 없기에 모두가 옥쇄를 각오해야 했다.
마츠이는 각 조장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우리는 신주쿠 역의 서브시티를 최대한 오래 사수하는데 주력한다. 각 조장은 맡은 바 임무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조는 터널을 사수한다. 삼조는 오쿠보 역으로 진입해 이나가와카이의 배후를 급습해라. 하세가와는 겁이 많은 놈이니 진군을 늦출 수 있다. 어서 출동해라.”
“예, 본부장님!”
이조와 삼조의 조장은 경례를 붙이고 상황실 나갔다.
마츠이의 지시는 계속되었다.
“사조와 오조는 지상으로 출동해서 좀비부대의 역내 진입을 최대한 저지하라. 사조는 사무라이 좀비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사무라이 한 구가 쓰러질 때마다 좀비부대가 분열될 것이다. 오조는 애니그마 경비대의 진군을 저지하라. 놈들이 출입구를 파괴하지 못하면 좀비들의 역내 진입을 지연시킬 수 있다. 출동!”
“예, 본부장님!”
사조와 오조의 조장들까지 상황실을 나가자 마츠이는 메트로레인 운행실장에게 물었다.
“사부키, 터널로 진입시킬 메트로레인을 준비됐나?”
“예, 곧바로 운행시킬 수 있습니다.”
“좋아. 이조의 대원들이 터널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하면 곧바로 투입해.”
“알겠습니다.”
“일조는 역내의 진입 통로에 C4를 매설해. 방어선이 뚫릴 때마다 폭파해서 놈들의 진군을 저지한다. 어서 출동해!”
전투 지시를 하달한 마츠이는 상황실에 마련된 멀티비전 앞에 앉았다. 수십 개로 분할된 화면 중 절반은 이미 폐쇄회로가 훼손돼 먹통이었다. 그래도 플랫홈과 역 외곽의 cctv가 가동되고 있기에 어느 정도 전황은 파악할 수 있었다.
마츠이는 더 이상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결과에 이르든 이제는 초연하게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었다.
‘유키나가… 부디 조심하거라.’
2
“크어어어!”
“크르르……!”
엄청난 숫자의 좀비부대가 어두운 터널을 따라 진군해오고 있었다. 일천 구에 달하는 좀비부대를 앞세운 하세가와는 조직원들을 대동해 천천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계략으로 시노부라와 요시모토를 죽인 그는 야쿠자 세계의 오야붕이 된 듯 뿌듯했다.
‘후훗, 최후까지 살아남는 자가 진짜 승자이지. 오야붕으로 날뛰던 나카지마와 오자키에 이어 시노부라와 요시모토까지 죽었으니 내가 유일한 보스다. 내가 메트로도쿄의 지배자가 되는 거다.’
그는 윤서경이 내준 무선 마이크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진군! 진군을 서둘러!”
명령을 받은 사무라이 좀비들은 일본도를 휘둘러 주변의 좀비들을 마구 벴다.
“카우우우!”
그들의 광포함에 놀라 좀비부대는 살기 위해서라도 진군을 서둘렀다.
한데 터널 저편으로 길게 뻗은 두 가닥 선로가 진동했다.
덜컹…덜컹……!
터널을 울리는 진동은 메트로레인의 바퀴소리였다.
빠아아앙!
엄청난 기적소리와 함께 어두운 터널 저편에서 4개의 불빛이 환하게 비추었다. 강렬한 전조등은 마치 4개의 눈을 지닌 괴수처럼 보였다.
빠아아앙!
왕복 선로에서 동시에 객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10량의 객차를 매단 메트로레인은 괴수와 같은 기적소리를 발하며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진군하던 좀비들은 본능적인 위기를 감지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반사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급히 몸을 돌려 도주하거나 터널 벽에 바싹 몸을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들은 그만한 임기응변이 없기에 달려드는 2개의 메트로레인을 바라보며 괴성만 질러댔다.
2대의 메트로레인은 그대로 좀비부대와 충돌했다.
콰과과곽–!
메트로레인과 충돌한 좀비들이 갈가리 찢기면서 널브러졌다. 선로 사이에 낀 좀비들은 좌우로 부딪치면서 박살났고 바퀴로 말려든 좀비들은 팔다리가 동강났다.
하지만 좀비부대가 워낙 촘촘하게 밀집돼 있다 보니 폭주하던 메트로레인이 차례로 옆으로 쓰러지면서 선로를 따라 미끄러졌다.
콰–콰쾅–!
2대의 메트로레인에 딸린 객차들이 제각기 튕기면서 터널 전체를 휩쓸었다. 이로 인해 좀비부대 절반이 파괴됐으니 엄청난 참사가 아닐 수 없었다.
“허억!”
보고를 받고 참사 현장으로 달려온 하세가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객차에 인화물질이 실려 있었는지 폭발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좀비들은 화염에 휩싸여 괴성을 질러댔고 객차에 늘려 빠져나오지 못한 좀비들이 처절하게 바동거렸다.
“이런, 젠장!”
하세가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공격에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좀비부대를 절반이나 잃었으니 이만저만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만 좀비부대만 피해를 입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만일 객기에 젖어 그가 앞장섰다면 자신과 조직원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세가와는 터널 내부에서 타오르는 화염을 직시하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마츠이! 네놈을 붙잡으면 산 채로 태워 죽이겠다!”
그는 무선 마이크를 쥐고 악을 쓰듯 외쳤다.
“진군! 계속 진군하라!”
명령을 받은 사무라이 좀비들이 칼을 휘두르며 좀비부대를 몰아세웠다. 좀비부대는 사무라이 좀비들의 재촉에 못 이겨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화르륵!
화염에 휩싸여 나뒹구는 좀비들은 꾸역꾸역 밀려드는 좀비부대에게 밟혀 짓이겨졌다. 인해전술로 화염을 가라앉히고 불길을 통과했으니 끔찍한 진군이 아닐 수 없었다.
하세가와는 좀비의 사체가 타는 고약한 악취에 코를 감싸 쥐었다.
“니미, 정말 지독하군.”
완만하게 휘어진 터널을 지나자 멀리 터널 입구가 보였다. 신주쿠 역의 플랫홈이었다.
“모조리 죽여라!”
하세가와의 지시에 사무라이 좀비들이 좀비부대를 대동해 돌격했다.
“크어어어!”
터널 입구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놓고 대기해 있던 가미카제 대원들은 조장의 공격 신호를 기다렸다.
조장은 좀비들의 돌격에 내심 두려움을 느꼈다.
‘2대의 메트로레인을 투입했는데도 좀비부대를 몰살시키지 못했단 말인가?’
좀비부대가 100m 앞까지 근접하자 조장은 발포를 명했다.
“쏴라!”
가미카제 대원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투투투–탕탕–!
“죽여라, 괴물들!”
“모조리 박살내자!”
돌격하던 좀비들의 사체가 삽시간에 2m 넘게 쌓였다. 하건만 좀비부대는 죽은 좀비들의 사체를 밟고 넘으면서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하세가와는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있는 총탄을 모조리 쏟아 부어라. 네놈들의 화력이 바닥나면 사냥에 나서주겠다.’
한데 터널 뒤편에서 요란스런 총성이 들려왔다.
하세가와는 급히 무전기로 교신했다.
“무슨 일이냐, 쓰가루?”
“가미카제 놈들입니다, 보스! 배후로 급습해 왔습니다!”
“이런, 썅!”
하세가와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할 수 없군. 일단 배후부터 안정시키는 수밖에.’
마츠이가 예상한 대로 그는 자신의 안위를 중시하는 자였다.
“부대를 돌려라! 배후의 쥐새끼들부터 제거한다!”
메트로레인 지하에 이어 지상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투투투–탕탕–!
신주쿠 광장으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서 총성이 난무했다.
2천 구에 달하는 좀비부대는 대로와 골목을 가득 채우며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좀비부대를 이끄는 존재는 칼을 휘둘러대는 사무라이 좀비들이었다.
가미카제 대원들은 도로 변의 건물 상층 창문을 통해 산발적으로 총탄을 뿜어냈다. 그들의 표적은 사무라이 좀비들과 애니그마의 경비대원들이었다. 하지만 사무라이 좀비들은 방탄 헬멧을 착용했기에 여간해서는 쓰러지지 않았고, 총탄에 다리뼈가 부러져도 절뚝거리며 이동했다.
공격 부대의 지휘관은 미야모도 경비국장이었다.
그는 방호차량에서 교전 상황을 지켜보며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훗훗, 발악이로군. 고작 그 정도 화력으로 맞서려 하다니.”
무선 마이크를 집어든 그가 명령을 내렸다.
“엄호하라! 사무라이 좀비들을 엄호해!”
사무라이 좀비들이 괴성을 발하자 좀비부대는 사무라이 좀비들을 에워쌌다. 좀비들의 육탄 방어로 인해 사무라이 좀비들은 별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미야모도는 다시 작전을 지시했다.
“경비대원들은 빌딩으로 진입해 적들을 섬멸하라!”
이에 차량에 탑승해 있던 경비대원들이 하차하며 도로 변의 빌딩으로 뛰어들었다. 빌딩 내부 곳곳에서 교전 총성이 들려왔다.
가미카제 대원들의 게릴라 식 전투로 인해 진군이 다소 지체되었지만 미야모도는 별반 서두르지 않았다.
‘마츠이는 서브시티를 지키기 위해 하세가와와 맞서고 있을 것이다. 마츠이 본대의 화력이 소진된 후 진입해도 늦지 않다. 일단 지상의 버러지들부터 제거하는 게 안전해.’
3
부다다당!
3대의 바이크가 도심의 이면도로를 따라 질주하고 있었다.
좀비부대가 대거 출동한 틈을 타서 애니그마 일본연구소를 기습하기 위해 출동한 특공대는 앙드레 일행이었다.
모리와 유키나가까지 합쳐 6명.
앙드레는 요아가 운전하는 바이크 뒤에 탔고, 왕첸의 뒷좌석에는 모리가 앉았으며, 하시메는 유키나가의 뒷좌석에 탑승해 있었다.
앙드레는 다행히 연결된 위성을 통해 테네시와 통화할 수 있었다.
“애니그마 일본연구소의 동향을 정찰할 수 있겠어?”
“죄송해요, 앙드레. 지금 도쿄 상공에는 정찰 가능한 위성이 없습니다.”
“괜찮아. 아,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말씀하세요.”
“서울에서 좀비왕의 존재가 확인됐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좀비왕의 뇌양자파를 통해 좀비를 통제하는 것도 사실이고?”
“예, 아직 추정이지만 거의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쇼군 좀비라는 괴물이 있다. 사무라이 좀비들을 통해 일반 좀비들까지 조종할 수 있지. 좀비왕은 자각 능력이 있고, 쇼군 좀비는 윤서경에 의해 조종된다는 게 다르지만 좀비들을 움직이는 능력은 동일해. 잠시 후 애니그마 연구소에 당도하는데 좀비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기에 돌파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테네시의 도움이 필요해.”
“잠깐만이요. 상황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대기하겠다.”
앙드레는 통화 상태를 유지한 채로 잠시 기다렸다.
이때 골목에서 몇 구의 좀비들이 튀어나오며 이면도로를 막았다.
“크어어어!”
좀비들은 괴성을 토하며 바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모리가 등에 메고 있던 M60기관총을 풀어 손에 쥐었다.
“캡틴, 내가 맡겠네!”
한데 유키나가의 바이크가 옆을 지나치며 앞서 나갔다. 하메시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저씨, 제게 맡겨요. 지금은 조용히 빠져나가야 하니 총소리를 내지 않아야 해요.”
“요시! 하메시라면 기꺼이 양보하지.”
모리는 다시 M60을 등에 메고는 왕첸의 어깨를 다독였다.
“속도 유지해.”
왕첸은 자신을 지나쳐 가는 유키나가를 보며 투덜거렸다.
“제기, 저 자식은 본부나 지킬 것이지 왜 특공대를 자청한 거야?”
“하핫! 지금 질투하는 거냐, 왕 서방?”
“질투는요. 하메시는 너무 어려요. 제 취향이 아닙니다.”
“나이가 문제라면 이삼 년 기다리면 되겠군. 아, 그때는 왕 서방이 팍삭 늙는 건가?”
“모리 상, 그런 말씀 마시죠. 전 아직 청춘이라고요.”
부다다당!
유키나가의 바이크는 요아마저 지나쳤다. 하메시가 단월도를 뽑아들었다.
“속도를 조금만 늦춰, 언니.”
“알았어.”
요아는 핸들의 악셀을 조금 풀었다.
유키나가는 좀비들을 향해 질주하다가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끼이익!
바이크는 타이어 탄내를 발하며 미끄러졌다. 그 여세를 타고 뛰어오른 하메시가 좀비들 사이를 파고들며 단월도를 휘둘렀다.
퍼퍼퍽!
예리한 단월도는 거침이 없었다. 좀비들은 목이 잘리고 상체가 동강나고 머리가 쪼개지며 연이어 자빠졌다. 하메시는 발을 땅에 대기도 전에 여섯 구의 좀비를 간단히 해치웠고, 어느새 달려온 유키나가의 바이크가 그녀를 다시 태웠다.
요아가 밝은 표정으로 환호를 보냈다.
“와우, 브라보! 멋져, 하메시.”
모리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왕첸의 허리를 바싹 끌어안았다.
“흐흐, 왕 서방은 내가 위로해 줘야겠군.”
그의 손이 사타구니 사이로 파고들자 왕첸이 질겁했다.
“뭐, 뭐하는 겁니까, 모리 상?”
“상처 받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더군.”
모리의 짓궂은 농과 손장난에 왕첸은 울상이 되었다.
“모리 상, 그냥 상처 받고 살겠습니다. 치료는 필요 없으니 제발 그 흉측한 손만 치우세요.”
“하하핫!”
유쾌하게 웃는 모리를 태운 바이크가 요아의 바이크를 지나쳤다.
요아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훗, 모리 상 저치는 완전 우리 과야. 런던 행에 동행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모리 상을 태우려면 10인승 제트기가 필요하겠어.”
심드렁하게 말을 받은 앙드레는 통화가 재개되자 이어폰을 고쳐 꽂았다.
“전송해 주신 쇼군 좀비와 사무라이 좀비의 사진을 분석해보니 수신기가 부착돼 있군요. 쇼군 좀비는 입 가리개에 스피커까지 장착돼 있어 멀리까지 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뇌양자파에 의해 조종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윤서경의 음파에 맞춰 훈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음파라고?”
“예, 도쿄연구소에서는 콘트로슘이라는 물질로 좀비의 광포성을 조절하는 연구가 진행되었지요. 좀비에게 콘트로슘을 투약하고 윤서경의 고유 음파를 반복해서 주입시키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합니다.”
앙드레는 비로소 쇼군 좀비의 탄생이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쇼군 좀비라는 것도 상징적이로군. 사무라이 좀비 중에서 하나를 골라 투구와 갑옷을 입혔을 거다.”
“단순히 복장만으로 쇼군이 되었다면 사무라이 좀비들을 통솔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좀비의 뇌세포에 오다 노부나가라는 존재를 주입시켰을 겁니다.”
“아니, 그게 가능해?”
“콘트로슘이 안정화됐다면 가능합니다.”
“음, 그건 그렇다 치고… 연구소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냈어?”
“시뮬레이션으로 시험해 보았는데 사무라이 좀비들은 헬멧에 부착된 수신기를 통해 윤서경이나 쇼군 좀비의 지시를 받는 것 같습니다. 만일 사무라이 좀비들이 착용하고 있는 헬멧을 벗겨내면 음파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겠지요. 통제에서 벗어난 사무라이 좀비들이 어떤 사단을 낼 지는 자료 부족으로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테네시의 분석을 들은 앙드레는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땡큐, 테네시! 굳이 추정하지도 않아도 돼. 내 머릿속에서는 충분히 상상이 되니까.”
“앙드레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물론이지.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
예, 그럼. 승전보를 기다리겠습니다, 캡틴.“
통화를 마친 앙드레는 요아의 허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희망이 생겼어, 요아.”
“오, 정말?”
요아는 고개를 돌려 앙드레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어서 윤서경 그 새끼를 끝장내고 싶어!”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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