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Deadly Threat”
2
서울 구암연구소.
한 대의 방호차량이 석양에 물드는 연구소를 배경으로 나서고 있었다. 방호차량이 연구소를 나서자 2개의 견고한 철문이 차례로 닫혔다.
방호차량에는 메트로서울의 보안총국 기동대원들이 탑승해 있었다. 기동조장 최재성을 비롯해서 여섯 명이 한 조를 이루었다.
“최 조장, 출동 중이라고?”
차량 내의 스피커를 통해 보안총국장 하대수의 무전 음성을 들려왔다.
총기를 점거하던 최재성이 얼른 교신에 응했다.
“예, 총국장님.”
“테네시의 보고에 의하면 좀비 놈들이 집단으로 훈련 중이라고 했다. 좀비들을 통제하는 좀비왕이나 좀비장군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만일 좀비들이 군대를 편성하면 그나마 살아 있는 인류는 전멸을 면치 못한다. 반드시 놈들의 존재를 확인하라. 사살하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총국장님.”
“지원 병력이 대기해 있으니 대가리 좀비들의 소재가 확인하면 즉시 보고해라. 당장 출동할 테니까.”
“예, 총국장님.”
교신을 마친 최재성은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대원들을 쓸어보았다. 운전병과 관측병을 제외한 4명이 그와 함께 수색에 나설 대원들이었다.
낮에는 좀비들이 대부분 모습을 감추기에 좀비왕이나 좀비장군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야간 수색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수색이지만 상황이 허락되면 좀비장군이든 좀비왕이든 제거한다. 일전에 캡틴 앙드레가 불칸에너지에서 좀비장군을 저격으로 쓰러뜨렸다는 기록은 모두 보았을 것이다. 대가리만 정확히 조준하면 죽일 수 있으니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다. 알겠나?”
“예, 써!”
대원들은 힘차게 복명했다.
그들은 과거 헬돔 출신답게 좀비 사냥에는 이력이 난 전사들이었다. 지금은 보안총국에 소속돼 제복을 입고 있지만 자유분방한 습성은 여전했다.
신동욱이 껌을 질겅거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조장님, 좀비왕이 있다면 좀비여왕도 있는 겁니까?”
다른 대원들도 키득거리며 한 마디씩 던졌다.
“큿, 좀비왕과 좀비여왕이 있다면 좀비왕자도 있는 건가?”
“나는 좀비공주가 있다는 데 한 표.”
“오우, 공주라면 어떤 공주라도 좋아.”
최재성은 한심하다는 듯 대원들을 하나씩 쏘아보았다.
“이것들이 막중한 임무를 앞두고 웬 장난질이야?”
신동욱이 껌으로 풍선을 불며 능청스레 말을 받았다.
“좀비왕이든 좀비장군이든 그래봤자 좀비 새끼 아닙니까? 대가리 터지면 죽는 것은 확실하니 제가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쫄 것은 없지만 너무 방심은 마라. 어쨌든 수색이 우선이니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최재성은 관측병을 향해 돌아앉았다.
“테네시를 통해 정찰위성 지원이 가능한가?”
“잠시 전 확인했는데 지금은 서울 상공을 지나는 위성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그동안의 자료를 분석해서 연구소를 관찰하는 좀비들의 소재를 몇 곳 확인했습니다. 좌표는 이삼공칠부터 이일오사까지 네 곳입니다.”
“좋아. 이삼공칠부터 수색한다.”
부우웅!
헤드라이트를 밝힌 방호차량은 좁은 도로를 따라 천계산 구릉을 넘어갔다.
근래 들어 연구소 주변 1km 이내로는 좀비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기에 순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연구소 방벽의 경비는 강화됐지만 순찰조들은 전투가 전혀 없기에 조금은 나태해진 상태였다.
좌표 E307 부근에 도착하자 최재성은 대원 셋을 대동해 차량 밖으로 나섰고, 고삼득은 방호차량 지붕으로 올라 K12기관총의 사수를 맡았다.
최재성과 대원들은 헬멧에 장착된 야간투시경을 내려 한쪽 눈에 갖다 댔다. 적외선으로 감지되는 야간투시경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생체를 모두 감지할 수 있기에 어둠 속에서도 좀비들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다.
5미터 간격으로 흩어진 대원들은 나무 사이를 헤치고 E307좌표를 향해 진군했다.
“보고해.”
최재성의 지시에 신동욱과 서정원, 김태섭이 각기 보고했다.
“깨끗합니다.”
“이상 없습니다.”
“쥐새끼들 몇 마리만 포착됐습니다.”
좌표 E307 능선에 오른 최재성은 야간투시경을 걷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묻혀 있는 서울의 강남 도심이 멀리 내려다보였다. 빌딩 몇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렸지만 과거 번화했던 서울은 유령도시처럼 침침하기만 했다.
나무 사이로 구암연구소의 불빛이 보였지만 나뭇잎에 가려져 있어 연구소 일부만 보일 뿐이었다.
최재성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차량으로 퇴각해서 다음 좌표로 이동한다.”
부아아앙!
방호차량은 가파른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좌표 E307에 이어 E359를 수색했지만 좀비들의 흔적은 찾아내지 못했다.
최재성은 수색한 구역을 지표에 표시했다.
“다음은 E286인가?”
관측병이 모니터를 통해 좌표를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곧 당도합니다.”
잠시 후 방호차량이 멈춰 서자 최재성과 대원 셋이 내려섰다.
서정원이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투덜거렸다.
“새끼들이 죄다 밤참을 먹으러 갔나? 왜 전혀 보이지 않는 거지?”
신동욱이 껌을 질겅거리며 말을 받았다.
“헤헤, 좀비 새끼들도 야밤에 떡을 치는 거 아닌지 몰라.”
“큿, 그럴까? 캡틴 앙드레가 일본에서 비스트 좀비들 찾아냈는데 새끼를 낳는다고 했어. 아직 한국에서는 새끼 낳는 좀비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군.”
최재성이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주둥이 닥치고 수색에 집중해.”
“예, 써!”
대원들은 장난스럽게 복명하고는 나무 사이로 흩어졌다. 경사가 다소 가파르지만 대원들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좌표 E286에서도 별다른 이상 징후를 찾아내지 못했다.
김태섭은 어둠 저편의 구암연구소를 바라보았다.
“전망이 좋군. 다소 멀리는 해도 우리 연구소가 한 눈에 보여. 좀비들이 우리 연구소를 보며 침 흘리기가 딱 좋은 곳이야.”
최재성은 야간투시경을 통해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하고는 퇴각을 명했다.
“방호 차량으로 돌아가자. 마지막 좌표만 수색한 후 연구소 귀환한다.”
신동욱이 가볍게 하품을 했다.
“제기, 대가리 좀비들이 있기나 한 겁니까? 공연히 헛고생만 했습니다.”
“헛고생은 아니다. 위험요소가 줄어든 것이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우리는 임무를 완수한 거다.”
“그럼 전투가 없어도 특별수당은 받는 겁니까?”
“동욱, 네가 하도 떠들어대서 좀비들이 모두 달아났으니 특별수당은 바라지 마라.”
“큿! 조장님도 참.”
신동욱은 K3소총을 어깨에 걸머메고는 앞서 내려갔다.
“제군들, 나를 따르라.”
그는 나뭇가지를 헤치며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한데 이때였다.
퍼억!
수북한 낙엽 속에서 튀어나온 뾰족한 쇠파이프가 신동욱의 가슴을 관통했다.
“커어억!”
피를 뿜어내는 신동욱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 낙엽이 풀풀 날리면서 그 아래 잠복해 있는 좀비들이 대거 뛰쳐나왔다.
“크어어어!”
“크르르!”
최재성과 대원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태 숱하게 좀비들과 전투를 치러왔기에 좀비들의 기습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간혹 잠복해 있던 좀비들의 공격을 받는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좀비들이 낙엽으로 위장하고 있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원들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것은 좀비가 쥐고 있는 쇠파이프였다. 이는 좀비들이 이제 도구까지 사용할 수 있는 지능을 지녔음을 의미했다.
신동욱이 쓰러지자 최재성과 대원들은 일제히 K3소총을 난사했다.
투투투–!
세 명의 수색대는 포위망을 뚫기 위해 한쪽 방향으로 집중사격을 가했다.
“괴물 새끼들! 모조리 죽여!”
“쏴라!”
“이런 씨발 괴물들!”
달려들던 좀비들이 대가리가 뚫리며 널브러지자 대원들은 좀비들의 사체를 밟고 뛰었다. 한데 좀비 하나가 김태섭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억!”
김태섭이 쓰러지자 주변의 좀비들이 굶주린 승냥이들 떼처럼 달려들었다. 김태섭의 시신은 무참하게 찢겨 버렸다.
순식간에 2명의 대원을 잃은 최재성은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뒈져라, 괴물 새끼들아!”
안전핀 튕기면서 날아간 수류탄이 달려들던 좀비의 아가리에 처박혔다.
퍼엉!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좀비는 상반신이 박살났고 파편이 사위로 비산되면서 좀비들의 육신이 동강났다.
능선 쪽에서 좀비들이 대거 몰려들자 최재성과 서정원은 비탈을 따라 몸을 굴렸다. 산사면 중턱까지 굴러 내린 최재성이 급히 무전을 보냈다.
“지금 공격 받고 있다! 계곡 입구 쪽으로 차량을 대!”
“알겠습니다, 조장님!”
좀비들이 나뭇가지를 헤치며 빠르게 추격해왔다. 이제 사냥감은 좀비들이 아니라 수색대원들이었다.
투투투–!
최재성과 서정원은 번갈아가며 소총을 쏘면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한데 사방에서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엇?”
놀란 최재성과 서정원이 급히 몸을 피해 돌덩이를 피했다.
“크어어어!”
벼랑 위에서 십여 구의 좀비들이 바위덩이를 던지고 있었다. 이미 돌덩이를 준비해 놓았는지 좀비들 주변으로 돌덩이가 수북했다.
“이런 썅! 좀비 새끼들이 돌까지 준비해 놓았단 말인가?”
최재성과 서정원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덩이를 이리저리 피하며 계곡 입구로 달려갔다.
한데 벼랑 우측에서 쇠를 긁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크워워워!”
밤하늘을 진동시키는 뇌성에 최재성과 서정원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우측 벼랑 위로 건장한 좀비들을 대동한 남루한 의사가운 차림의 좀비가 보였다. 건장한 좀비들 절반은 너덜너덜한 군복 차림이었다.
좀비왕.
의사가운 차림의 좀비가 지능을 지닌 좀비왕이었지만 최재성은 아직 몰랐다. 그러다 좀비왕이 쥐고 있는 소총을 보고는 주춤했다.
“저 새끼는 뭐야? 총까지 지녔어.”
“저놈이 혹시 좀비왕이 아닐까요?”
“좀비왕 아니면 좀비장군이겠지. 저 새끼가 좀비들을 조종하는 게 분명해!”
“제가 죽이겠습니다!”
서정원은 벼랑 위의 좀비왕을 향해 소총을 겨누었다. 한데 주변의 좀비들이 경호를 하듯 좀비왕을 가로막았다.
투투투!
좀비들의 밀집대형으로 방어벽을 형성하는 바람에 좀비왕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그러다 좀비 하나가 머리가 뚫려 주저앉자 틈이 보였다.
“넌 죽었다, 괴물!”
서정원은 좀비왕을 향해 소총을 조준했다.
그러자 좀비왕이 경호좀비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인광 이 이글거리는 눈에서 강렬한 눈빛이 뿜어졌다.
“크워워워!”
엄청난 괴성이 울려 퍼지며 서정원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아악!”
돌덩이를 던지는 좀비들을 향해 사격하고 있던 최재성은 서정원을 돌아보았다.
“왜 그래, 정원?”
서정원은 눈을 까뒤집은 채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크으윽,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아악!”
울컥 피를 토한 서정원은 고개를 뒤로 꺾었다. 하연 눈자위를 드러낸 눈과 코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정원, 정원아!”
최재성은 서정원의 경동맥을 손끝으로 짚었다. 이미 죽었는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런, 제기!”
동료를 데려가고 싶었지만 경사면을 따라 좀비들이 대거 몰려들자 최재성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미안하다, 정원!”
탄창을 갈아 끼운 최재성은 계곡 입구를 향해 뛰면서 마구 소총을 쏘아댔다. 또 한번의 충격과 혼란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좀비왕을 조준한 서정원이 왜 갑자기 죽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니미,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설사 좀비의 소행이란 말인가?’
계곡 입구 쪽에서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투투투–!
총성으로 미루어 K12기관총의 발포음이었다. 그를 실어갈 방호차량이 계곡 입구까지 진입한 것이다.
고삼득은 방호 차량으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K12기관총을 갈겨댔다
“와라, 괴물들! 모조리 죽여주겠다!”
투투투–!
K12기관총의 강력한 화력에 좀비들은 박살이 나서 널브러졌다.
관측병인 이성주는 방호차량 밖에서 화염방사기로 방사하며 좀비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최 조장님, 어서요!”
최재성은 방호차량을 향해 달리면서 지니고 있던 수류탄을 모두 뒤로 던졌다.
“어서 출발해!”
최재성이 몸을 던져 탑승하자 이성주가 물었다.
“다른 대원들은요?”
“모두 죽었어! 어서 타!”
이성주가 차에 오르자 문을 채 닫기도 전에 방호차량이 출발했다.
부아아앙–!
헤드라이트를 통해 전면에서 달려드는 한 무리의 좀비들이 보였다.
고삼득이 기관총의 총구를 정면으로 돌렸다.
“꺼져라, 괴물들!”
투투투–!
기관총의 탄적이 지표를 타고 길게 뻗어나가면서 좀비들이 좌우로 나가동그라졌다. 방호차량이 좀비들의 사체를 타넘느라 심하게 출렁거렸다.
이 순간 뒤편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투투투–!
고삼득은 행여 동료가 살아 있다 싶어 몸을 틀었다.
“누구야? 동욱이냐?”
한데 소총을 발포하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 좀비왕이 한손으로 K3소총을 쥔 채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마… 맙소사!”
총을 쏘는 좀비!
고삼득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차량 안에서 이를 보고 있는 최재성과 이성주 또한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투투투–!
바닥을 겨누고 있던 총구가 진동으로 점점 상승하면서 방호차량을 맞추었다. 급기야 한 발의 총탄이 고삼득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악!”
고삼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방호차량 내부로 고꾸라졌다.
“고삼득!”
최재성이 급히 고삼득을 부축해 안았다.
고삼득은 눈을 부릅뜬 채 턱을 덜덜 떨었다.
“조… 조장… 어떻게……!
“성주, 어서 지혈포 가져와!”
이성주는 의료함에 지혈포를 꺼내 가져왔다. 하지만 고삼득은 이미 숨이 끊어졌다.
부아아앙!
좀비 사체들을 모두 타넘은 방호차량은 좁은 길을 따라 질주했다. 그 뒤로 좀비왕이 쏘아대는 총성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투투투–!
좀비왕은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그러다 탄창이 비자 괴성을 질렀다.
“크워워워!”
자신들을 말살하려던 존재를 쫓아냈다는 통쾌한 환호성이었다. 좀비왕의 환호를 들은 좀비들도 모두 괴성을 질러댔다.
“크어어어!”
“카우우우!”
만일 좀비들에게 역사가 존재한다면 기록에 남겨질 승리일 것이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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