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Deadly Threat”
치명적인 위협
1
애니그마 일본연구소.
수술실 천장에서 LED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수술용 병상에 눕혀져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 뼈에 검푸른 피부만 붙어 있는 깡마른 체구의 좀비는 사무라이 좀비들을 통제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쇼군 좀비였다.
고대 쇼군처럼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했을 때는 당당하게 보였지만 장비가 제거된 상태에서는 그저 하나의 좀비일 뿐이었다.
안전을 위해 쇼군 좀비의 두 발과 왼팔은 강철 고리로 제압돼 있었다.
간호사들이 수술 준비를 마치자 후지쿠 박사가 수술실로 들어섰다.
“세크메, 컨트로슘 삼십미니엄을 투약해.”
“예, 박사님.”
수술실 천장 한쪽에 설치돼 있는 화면에서는 세크메의 영상이 수술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쇼군 좀비의 머리는 여러 개의 전극선과 튜브가 연결돼 있었다. 튜브를 통해 30미니엄의 컨트로슘이 주입되었다.
후지쿠는 뇌파 측정기에 나타나고 있는 쇼군 좀비의 뇌파를 확인하고는 수술을 시작했다.
하메시의 아오조라에 잘린 쇼군 좀비의 팔뚝이 잘린 부위 옆에 놓였다. 워낙 말끔하게 잘렸기에 추가적인 처치 없이 접합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좀비의 접합 수술은 수혈이 필요 없기에 비교적 간단했다.
“깨끗하게 잘렸군. 피부 손상은 거의 없으니 뼈만 단단하게 접합하면 되겠어.”
후지쿠는 수술용 전동드릴로 쇼군 좀비의 뼈에 구멍을 뚫고는 티타늄 막대를 덧씌웠다. 연후 접합용 큔처 못을 박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달린 부위가 연골 쪽이 아니기에 팔을 움직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피부 접합은 실로 봉합하는 대신 레이저로 피부를 태워 붙였다. 상처 자국이 심하게 남지만 어차피 갑옷으로 가려지는 부위이기에 외관적인 미는 후지쿠의 관심 밖이었다.
후지쿠는 접합된 쇼군 좀비의 팔을 쥐고 흔들어보았다. 확실하게 접합되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잘된 것 같군.”
한데 뇌파 측정기의 신호가 터무니없이 높아지면서 경보가 울렸다.
삐… 삐… 삐익……!
흠칫 놀란 후지쿠가 한 걸음 물러섰다.
“뭐야?”
수술대 위에 누워 있던 쇼군 좀비가 번쩍 눈을 떴다. 인광이 번득이는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뿜어졌다.
“카우우!”
접합된 오른팔을 마구 휘두른 쇼군 좀비의 손에 간호사가 잡혔다.
“아아악!”
기겁을 한 간호사가 쇼군 좀비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강철 고리에 채워진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쇼군 좀비는 끌어들인 간호사의 목을 깨물었다.
으적!
공포에 질린 후지쿠 박사와 간호사들이 문으로 도주했다. 자동문 밖으로 뛰쳐나간 후지쿠는 폐쇄 버튼을 누르고 회전 핸들을 돌려 이중으로 차단했다.
도주 중에 미끄러져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간호보조사가 뒤늦게 문에 이르러 투명 유리창을 두드렸다.
“살려 주세요, 박사님!”
하지만 후지쿠는 간호사를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다. 간호보조사를 구하기 위해 공연히 문을 열었다가 쇼군 좀비가 탈출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연구동이 폐쇄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를 물어뜯은 쇼군 좀비는 놀라운 괴력으로 왼팔과 다리를 옥죄고 있는 고리를 뜯어냈다.
철겅철겅!
몸이 자유롭게 풀린 쇼군 좀비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간호보조사를 향해 다가섰다.
“아아악! 문 좀 열어 주세요!”
간호보조사의 절규에 이어 투명 유리창을 통해 핏물이 튀었다. 간호보조사마저 물어뜯은 쇼군 좀비가 투명 유리창을 후려쳤다. 하지만 총알도 튕겨내는 방탄유리이기에 쇼군 좀비도 유리창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크어어어!”
쇼군 좀비는 수술실의 집기와 도구를 마구 부수는 광란을 일으켰다.
“컨트로슘이 아직 불안정해.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겠어.”
그는 수술실을 때려 부수는 쇼군 좀비의 광기를 살피며 세크메와 교신했다.
“보고 있나, 세크메.”
“예, 박사님.”
“뭐가 문제인가?”
“쇼군 좀비의 뇌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기억이 잠재돼 있습니다. 그런 기억에 의해 절대적인 자부심과 통솔력이 발휘될 수 있었지요. 한데 지난번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충격으로 기억 회로에 충격이 가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컨트로슘의 과다 투약도 원인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일단 진정시켜. 안정화 단계를 거친 후 지부장님께 보고하겠다.”
“지부장님께는 이미 보고됐다. 지금 오시는 중입니다.”
후지쿠는 기분이 씁쓸했다.
‘제기, 사고가 발생했으니 호된 문책을 면치 못하겠군.’
잠시 후 윤서경이 미야모도와 나오미를 대동해 빠른 걸음으로 수술실 통로에 이르렀다.
“어찌 된 건가, 후지쿠 박사?”
“소, 송구합니다, 지부장님, 쇼군 좀비의 팔을 접합하는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쇼군 좀비가 갑자기 깨어나 난동을 부렸습니다.”
윤서경은 아직도 새파랗게 질려 있는 의료진을 쓸어보았다.
“피해 상황은 어떠하오?”
“간호사 둘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쇼군 좀비에게 물렸습니다.”
“그만하길 다행이군. 신속하게 쇼군 좀비의 탈출을 저지했으니 박사의 공이오.”
윤서경이 의외로 문책 대신 위로를 건네자 후지쿠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윤서경은 유리를 통해 수술실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크어어!”
쇼군 좀비는 여전히 수술실 내부를 때려 부수고 있었다. 웬만한 집기는 모두 박살났고 수술도구들이 폐기물처럼 어지럽게 흩어졌다.
윤서경은 쇼군 좀비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세크메와 교신했다.
“세크메, 쇼군 좀비의 상태를 체크했나?”
“베타파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노가 파괴를 통해 해소돼나 보군. 이제 내가 통제하겠다.”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가능해.”
윤서경은 무선마이크를 통해 지시를 내렸다.
“오다 쇼군, 정지!”
지시를 받은 쇼군 좀비가 수술대를 뒤덮으려다가 주춤했다. 쇼군 좀비의 귀에서 무선통신기가 삽입돼 있어 최대 2km내에서도 통제가 가능했다.
“오다 쇼군, 정지!”
윤서경이 다시 지시를 내리자 쇼군 좀비는 거친 숨소리를 발하면서 들어올린 수술대를 다시 내렸다.
윤서경은 미야모도를 돌아보았다.
“쇼군의 투구와 갑옷을 가져오게. 아무래도 맨몸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군. 당장 입혀줘야겠어.”
깜짝 놀란 미야모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부장님……?”
“어서!”
윤서경은 준엄한 지시에 미야모도는 의료진들을 대동해 장비 보관실로 이동했다.
윤서경은 쇼군 좀비의 상태를 살피다가 후지쿠에게 지시했다.
“문을 열게. 내가 쇼군에게 직접 갑옷을 입혀주겠네.”
“안 됩니다, 지부장님. 쇼군 좀비는 외부의 접촉에 대해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쇼군 좀비의 흉포성을 지부장님도 경험하시지 않았습니까?”
“박사, 우리가 쇼군 좀비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미래도 없네.”
“하지만……”
“열게. 박사한테 입히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후지쿠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수술실 문의 핸들을 돌렸다. 그러자 세크메도 우려를 표명했다.
“지부장님, 수술실 문을 개방하는 것은 절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쇼군 좀비가 탈출하면 연구동의 사무라이 좀비들까지 준동할 수 있습니다.”
“판단은 내가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델타파 테이저건만 준비해.”
“그건 준비돼 있습니다.”
“그럼 됐어. 내가 어떻게 쇼군 좀비를 다루는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내부 화면에 띄워.”
잠시 후 미야모도와 의료진들이 쇼군의 투구와 갑옷, 새로 제작한 티타늄 칼을 가져왔다.
“수술실 내로 들여. 내가 진입하면 문을 폐쇄하고.”
워낙 강경한 태도에 누구도 만류할 수가 없었다.
기이잉……!
자동문이 열리자 윤서경이 들어섰다. 미야모도와 의료진은 얼른 장비를 반입하고는 서둘러 문을 닫았다.
윤서경이 수술실 내로 들어서자 쇼군 좀비가 낮은 괴성을 발했다.
“크어어……!”
윤서경도 내심 두려웠지만 애써 태연함을 과시했다.
“진정하게, 오다 쇼군.”
윤서경은 쇼군 좀비의 몸에 갑옷을 둘러주었다.
“크어어!”
쇼군 좀비가 발작하려 하자 윤서경이 단호하게 지시했다.
“오다 쇼군, 정지!
지시를 받은 쇼군 좀비는 거친 숨만 내쉴 뿐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윤서경은 천천히 갑옷을 입혀주고는 투구를 씌어주었다.
수술실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나오미와 미야모도, 후지쿠를 비롯한 의료진들은 긴장과 두려움에 젖어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내부 영상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는 연구소 요원들과 경비대원들 역시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쇼군 좀비는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자 한결 안정된 반응을 보였다.
윤서경은 쇼군 좀비를 향해 칼을 내밀었다.
“쇼군의 칼이네.”
“크어어……!”
쇼군 좀비가 칼을 쥐자 윤서경이 준엄한 표정을 지었다.
“꿇게나, 쇼군!”
“크어……!”
“어서!”
믿을 수 없게도 쇼군 좀비는 윤서경의 지시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칼을 받았다. 마치 고대의 천황에게서 장군도를 하사받는 쇼군의 모습이었다.
칼을 받은 쇼군 좀비가 허리춤에 차자 윤서경은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됐어! 이제 쇼군 좀비를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사실 그가 무모할 만큼 위험을 감수한 데에는 지난번 전투에서 퇴각한 패배감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일반 좀비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쇼군 좀비를, 자신이 지휘하고 있음을 부하들에게 각인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쇼군 좀비는 좀비들뿐만 아니라 야쿠자들도 두려워하는 존재다. 이런 쇼군 좀비를 내가 통제하는 한 누구도 나를 거역할 수 없다.’
연구소 내의 요원들과 경비대원이 자신의 대담한 조치를 지켜봤을 것이기에 그의 권위를 견고히 할 수 있었다.
윤서경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수술실을 나섰다.
모두가 그 앞에 허리를 숙였다.
“존경스럽습니다, 지부장님!”
“간호사들의 시신은 수습해서 장례를 치러주게. 우리 연구소 직원이 좀비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집무의자에 앉은 윤서경은 담배파이프를 깊이 빨았다. 고도의 긴장이 풀리면서 절로 손을 떨렸다. 위엄과 용기를 과시하기 위함이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도박이었다.
윤서경은 겨우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세크메와 교신했다.
“세크메, 가미카제의 동향은 어때?”
“드론으로 확인한 결과 대규모 이주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규모 이주라면… 도심으로 진입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가미카제 본부가 일반 좀비들의 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니 더는 머물지 못하겠지요.”
“그렇다면 야쿠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서브시티를 점거하려 고 하겠군.”
“그렇습니다. 저들이 서브시티를 차지하면 메트로레인을 통해 연구소를 공격하려 할 겁니다.”
윤서경은 담배파이프를 빨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앙드레……!’
그를 떠올리는 복수심에 피가 끓었다.
‘네놈한테 다시 패하는 일은 없다. 네놈을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
문득 그는 새로운 발상에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아니, 놈을 죽이는 것은 지나친 자비다. 놈을 좀비로 만들자. 놈을 좀비로 만들면 최강의 좀비왕이 되어 세상의 모든 좀비들을 통제할 수 있다. 나는 놈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거지.’
새롭게 상상의 그림을 그린 그는 기분 좋게 담배파이프를 피웠다.
‘좋아, 앙드레! 네놈은 절대적인 충성으로 내게 지은 죄를 씻어야 할 것이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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