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Wrath of the Zombie King”

3

도쿄 가미카제 본부.

모리는 스스로 독방 행을 택했다. 좀비에게 물린 후 투약된 치료제 덕분으로 좀비로 변하지 않았지만 후유증을 느껴 독방 행을 자청한 것이다.

앙드레는 이틀 정도 경과를 지켜보다가 하메시와 함께 독방을 찾아갔다.

철그렁!

빗장이 옆으로 밀리면서 철문이 열렸다.

모리는 침상을 짚은 채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었다.

“왔는가, 캡틴.”

“기분은 좀 어떻소?”

“나쁘지 않네. 가끔씩 갈증이 느껴지기는 한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군.”

“어떤 갈증을 말하는 거요?”

몸을 일으켜 세운 모리가 하메시를 힐끗 보며 혀로 입가를 핥았다.

“흐흐, 신선한 피와 살코기가 먹고 싶군.”

움찔 놀란 하메시가 한 걸음 물러서자 모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농담이야, 하메시. 아무렴 내가 너를 잡아먹으려 하겠냐? 차라리 내 머리에 총알을 박고 말지. 아, 그거 저녁 식가인가?”

“예, 보스.”

하메시는 쟁반에 받쳐 든 두유와 옥수수빵을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참, 앞으로 보스라고 부르지 마. 캡틴 자네도. 그 동안은 야쿠자 보스들과 대등하게 상대하기 위해 보스를 자처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겠어.”

“그럼 뭐로 호칭하죠?”

“으음, 오빠로 호칭하면 어때?”

“예에?”

하메시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자 모리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그냥 모리라고 불러.”

“그럴 수는 없어요. 모리 상으로 호칭하겠습니다.”

“너무 건방지잖아? 차라리 아저씨가 낫겠다.”

모리는 고구마잼이 발라진 빵을 먹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노릇노릇 구운 햄 좀 없어?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는데.”

앙드레가 의자를 끌어 탁자 옆에 앉았다.

“모리 상의 반응을 보니 아직까지는 정상인 것 같소. 하지만 사람의 냄새가 향긋해지면 즉시 알려야 하오.”

“향긋한 사람 냄새라… 자네는 마치 좀비였던 것처럼 말하는군.”

“사실 나도 오래 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었소.”

“뭐라고?”

모리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두유 잔을 내렸다.

“자네도 감염됐었단 말인가?”

“좀비에게 직접 물린 게 아니라 감염된 코요테에게 물려 내 다리를 절단했었소.”

모리의 시선이 앙드레의 왼쪽 다리로 꽂혔다.

“멀쩡하잖아?”

앙드레는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걷어 자신의 왼쪽 다리를 보여주었다.

“사실 다리는 의족이오.”

“호오, 아주 정교하군. 진짜 다리라고 해도 믿겠소.”

“단순한 의족이 아니라 첨단 바이오닉 기술로 제작된 의족이라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위력을 지녔소. 이 의족을 제작해 준 곳이 애니그마 연구소요. 사실 난 그곳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소.”

모리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애니그마 연구소에서 자네를 치료해주고 의족까지 제작해 주었는데 왜 놈들과 맞서는 건가? 그건 배신이잖아?”

“나는 놈들의 실험도구였소. 놈들은 나를 이용하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고 내 딸까지 유괴했소.”

“으음, 복잡한 사연을 지녔군. 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그러 새끼들이라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복수를 해야겠지.”

식사를 마친 모리는 시가를 빼물었다.

“결국 우리가 공통의 적을 둔 동료가 되었군. 애니그마 연구소는 언제 접수하러 갈 생각인가?”

“저들 연구소 외곽 수천 구의 좀비들이 에워싸고 있어 접근이 불가하오. 결국 메트로레인을 통해 지하통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내가 도쿄의 메트로레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소. 마츠이 본부장한테 들으니 도쿄의 메트로레인은 야쿠자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단 제압하는 게 관건이오.”

모리는 시가 연기를 길게 뿜었다.

“야쿠자 오대보스 중 나카지마와 오자키가 죽어 지금 야쿠자 조직은 큰 혼란에 빠져 있네. 나머지 삼대조직의 보스는 대단치 않지. 자네 일행과 가미카제의 전력이라면 능히 메트로레인을 장악할 수 있을 거네. 연후 애니그마를 공격하자고. 그게 최선의 전략이야.”

“마츠이 본부장은 야쿠자와의 전투보다 설득을 원하고 있소.”

“풋, 마츠이가 통솔력은 뛰어나도 좀 물러. 내가 가미카제 본부장이었다면 야쿠자 새끼들을 깡그리 쓸어버렸을 거네.”

그러다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 그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런, 내가 한심하군. 본거지를 잃고 쫓겨난 주제에 아직도 큰 소리나 치고 있으니 말이야.”

하메시가 부드럽게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모리 상… 아니, 아저씨는 이렇게 건재하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모리상사는 다시 세우면 되니까요.”

“하핫! 고마워, 하메시. 네 위로를 들으니 부썩 기운이 돋는구나.”

앙드레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야쿠자와의 싸우려면 가미카제가 전격적으로 나서야 하니 일단 마츠이 본부장의 의견을 존중합시다. 만일 설득에 실패한다면 그때 싸우기로 하겠소. 어떠시오?”

모리는 다소 마뜩찮은 표정을 띠었다.

“뭐, 그러자고. 하지만 기대는 말게. 야쿠자 놈들은 자네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반감이 심할 테니까.”

“윤서경 역시 한국인이오.”

“하지만 놈은 쇼군을 보유하고 있네.”

하메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에? 쇼군이오? 고대의 사무라이 장군인 그 쇼군 말이에요?”

“그래. 사무라이 중의 사무라이로 불리는 그 쇼군 말이다. 놈이 만일 쇼군을 내세운다면 야쿠자들은 애니그마에 복속될 거네. 야쿠자의 습성이 사무라이와 다를 바 없으니까.”

모리는 단호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난 아무도 안 믿네. 오직 나만을 믿을 뿐이지.”

4

애니그마 일본연구소.

무기상인 모리상사를 격파하고 그 와중에 오자키까지 제거한 윤서경은 한껏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앙드레와 헬돔에 의해 엘리시움을 빼앗기고 일본으로 도피해야 했던 치욕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었기에 너무도 통쾌했다.

‘후훗, 비록 모리를 죽이지 못했지만 상이라도 주고 싶군. 덕분에 오자키와 스미요시가이를 한방에 날려버렸지. 이제 도쿄의 메트로레인을 장악하는 건 시간문제야.’

윤서경은 전망유리창을 통해 연구소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좀비들을 내려다보았다.

“저들 모두가 이제 내 군대가 되었다. 쇼군이 지휘하는 좀비 군단!”

세계 인류의 95%가 좀비로 변한 상황에서 좀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물론 쇼군 좀비로는 일본의 좀비만을 지휘할 수 있기에 다른 나라의 좀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개선된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윤서경은 즐거운 공상에 잠겼다.

‘한국의 좀비들은 누구를 부활시켜 통제하는 게 좋을까? 충무공 이순신……? 아니, 세종대왕이나 광개토태왕이 더 낫겠어.’

이때 책상 위의 비디오폰이 울렸다.

삐익!

윤서경은 책상 모퉁이에 걸터앉았다.

“음, 그래. 나오미.”

“이나가와카이의 하세가와 보스가 지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장소는?”

“이케부쿠로 환승역입니다. 양측의 경호 병력은 최소로 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좋아. 호위들은 열 명만 대동하자고 해.”

“그리고 이번 회동은 다른 보스들이 알지 못하게 은밀하게 추진되기를 바라더군요.”

윤서경은 하세가와의 의도를 대번에 간파했다.

“좋아. 알아서 기겠다는 의도이니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지. 당장 만날 테니 연락해. 그리고 경비국장에게 쇼군과 호위대를 준비시키라고 해.”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덜컹덜컹!

메트로레인을 따라 달린 객차가 이케부쿠로 역에 멈춰 섰다. 앞서 내린 미야모도와 경비대원들의 승강장의 상황을 살폈다. 이어 윤서경과 나오미,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쇼군 좀비가 내려섰다.

쇼군 좀비를 대하는 미야모도와 경비대원들의 태도가 숙연했다.

이를 본 윤서경은 다소 심기가 틀어졌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이것들이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군.’

그들 일행이 계단을 올라서자 환승통로 저편으로 하세가와와 10명 정도의 야쿠자 호위들이 늘어서 있었다.

먼저 다가선 하세가와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면담에 응해주셔서 고맙소, 지부장.”

일전에 야쿠자 오대보스와 회동할 때와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야쿠자 최대 계파인 야마구치의 나카지마와 두 번째 서열인 오자키가 죽으면서 도쿄 메트로레인의 관할 구역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좀비들을 통제할 수 있는 애니그마의 역량은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윤서경은 하세가와와 악수하면서 거만스레 말했다.

“다시 만나 반갑소, 하세가와 보스. 이제 이나가와카이가 메트로레인의 최대 조직이 된 셈인가?”

“하하, 무슨 말씀을. 야마구치의 구역장들 상당수가 아직 건재하오.”

“후훗, 대가리를 잃은 잔당들이 무슨 힘이 있겠소? 어느 조직이든 보스가 건재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지.”

“한데 쇼군을 대동하셨다고 들었는데…….”

하세가와가 경비대원들 쪽을 힐끗 살피자 윤서경이 무선 마이크를 꺼냈다.

“한번 만나 보시겠소?”

“전설의 쇼군이 부활했다는 소식에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소. 꼭 뵙고 싶소.”

“그럼 만나 보시오.”

윤서경은 마이크에 대고 나직이 지시했다.

“쇼군, 나오시게!”

경비대원들이 좌우로 갈라서면서 뒤쪽에 서 있던 쇼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걱철걱……!

투구와 갑옷을 갖춰 입은 쇼군 좀비가 쇳소리를 내면서 당당하게 다가섰다. 티타늄 투구와 미늘이 번들거렸다.

쇼군 좀비가 멈춰 서자 하세가와와 조직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 진짜 쇼군이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전설의 쇼군이 부활하다니!”

윤서경은 자신의 위대한 창조물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일본의 쇼군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오다 노부나가 쇼군이오.”

하세가와는 입을 딱 벌렸다.

“하아! 오다 노부나가 쇼군이라니!”

쇼군 좀비 앞으로 다가선 이나가와카이 조직원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사무라이를 숭배하는 그들에게 있어 쇼군은 가히 신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쇼군을 뵈어 영광입니다!”

쇼군 좀비는 무심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데 이나가와카이의 조직원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쇼군 좀비의 견갑과 갑옷을 매만졌다.

“이게 쇼군의 갑옷이야.”

순간 쇼군 좀비의 입 가리개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카우우우!”

쇼군 좀비는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휘둘렀다.

퍽, 퍽, 퍽!

“아악!

“크억!”

조직원들 2명이 대번에 목이 잘렸고 한 명은 상반신이 비스듬히 쪼개졌다.

“카우우우!”

쇼군 좀비는 달아나는 조직원들을 마저 죽이기 위해 쫓아갔다.

“오다 쇼군, 정지! 정지!”

윤서경이 무선 마이크로 지시를 내리자 그제야 쇼군 좀비가 행동을 멈추었다.

하세가와는 하얗게 질렸다.

“지… 지부장.”

“존엄한 쇼군 좀비에게 함부로 손을 댔으니 죽어 마땅했소. 쇼군에게는 아무 잘못 없소.”

하세가와는 조직원들의 과오를 인정했다.

“맞는 말씀이오. 감히 쇼군의 존체를 건드렸으니 죽음으로 속죄했어야 했소.”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시체를 치우고 더는 쇼군 좀비에게 접근하지 마라.”

“예, 보스.”

조직원들은 동료들의 시신을 챙겨 이송했다.

윤서경은 하세가와와 단 둘이서 환승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하세가와 보스, 날 보자고 한 용건이 뭐요.”

“지부장께서 우리 이나가와카이를 신임해준다면 메트로레인을 통합해서 바치겠소.”

“흐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하세가와 보스가 원하는 것은 뭐요?”

“나는 메트로레인을 관리하는 본부장으로 만족하겠소.”

“하하, 하세가와 보스는 정말 겸손하군.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주제를 안다고나 할까?”

윤서경은 담배파이프를 물며 이미 상전이 된 것처럼 말투를 바꾸었다.

“하세가와 보스, 난 도쿄 하나에 만족할 사람이 아닐세. 메트로도쿄가 성공적으로 창설되면 하세가와 보스를 도쿄 시장으로 임명할 생각이네.”

“내… 내가 메트로도쿄를 맡기겠다는 말씀이오?”

“그러하네. 약속하지.”

“그럼 지부장을 믿겠소.”

하세가와는 주변을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은밀하게 지부장과 만나려는 이유는 가미카제 본부장과의 비밀회합 때문이오.”

“가미자케에서 회합을 제의해 왔다고?”

“그러하오. 마츠이 본부장이 나를 포함한 삼대보스들과 중대한 제안을 위해 회동하고 싶다고 하였소.”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소. 내일 오전에 출발하면서 정확한 장소를 시간을 정하겠다고 했소. 마츠이는 모리와 한국에서 온 앙드레란 자를 대동한다고……..”

윤서경이 얼른 말허리를 잘랐다.

“앙드레? 정말 앙드레 그자를 대동한다고 했는가?”

“확실하오.”

“하세가와 보스! 어쩌면 자네 덕분에 내가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네. 나와의 면담은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네.”

윤서경은 하세가와의 손을 쥐며 호의적인 미소를 띠었다.

“내일 회동 장소와 시간이 결정되면 내게 즉시 보고하게나. 아, 감사의 뜻으로 내가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하겠네.”

그는 품속에서 납작한 알루미늄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자 붉은 액체가 담긴 앰플들이 보였다.

“하세가와 보스만 알고 있게나. 이건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일세.”

앰플 하나를 건네받은 하세가와는 흥분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정말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란 말이오?”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도 치료제는 될 거네. 아직 개발 단계에 있으니 당분간 비밀을 유지해야 하네.”

“알겠소, 지부장.”

앰플을 품속에 챙겨 넣은 하세가와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이만 가보겠소.”

군혁은 하세가와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직이 말했다.

“하세가와 보스, 이제 우리는 공동의 운명일세.”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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