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Kamikaze Tokyo Headquarters”
가미카제 도쿄 본부.
1
앙드레 일행이 구마다니에서 만난 적이 있던 가미카제는 좀비와 맞서 싸우기 위해 창설된 일본인들의 전국적인 조직이다. 통신망의 어려움으로 정보 소통과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일본 재건을 향한 의지는 굳건했다.
도쿄 본부장은 마츠이였다.
그는 자위대 장교 출신답게 국가관이 투철하고 조직 관리에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제1조장인 유키나가는 마츠이의 아들이었다.
마츠이는 하메시를 제외한 앙드레 일행이 한국에서 왔다는 보고를 받고는 직접 회의실로 찾아왔다. 눈매가 날카로웠지만 눈빛이 밝아 적개심은 없어 보였다.
“유키나가, 귀한 손님들이 방문했으니 음식을 내와라.”
“예, 본부장님.”
유키나가는 마츠이가 사적으로 부친이지만 조장의 신분이기에 공개석상에서는 본부장으로 호칭했다.
유키나가의 지시에 여자 대원들이 푸짐한 음식을 내왔다. 콩을 갈아 만든 두유와 옥수수 빵, 그리고 고구마 잼이 나오자 요아와 왕첸이 감탄했다.
“세상에나. 요즘 세상에 이런 음식이 다 있어?”
“그러게. 두유가 정말 고소해.”
앙드레 역시 갓 구운 옥수수 빵에서 모처럼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되었다.
“캡틴 앙드레, 하메시의 말로는 구마다니의 가미카제를 좀비들로부터 구원해 주었다고 하더군.”
“도움을 조금 주었을 뿐이오.”
“이곳의 가미카제는 그곳의 조직과 달라. 여자들도 능력에 따라 대원이 될 수 있으며 동등하게 보호받고 있지. 그 점은 안심해도 되네. 참, 자네들이 이곳에 이르는 동안 일본의 여러 가족들을 구했다고도 하더군. 그들 가족을 대신해 사례를 표하네.”
“우리는 인류의 적인 좀비와 싸웠을 뿐입니다.”
“맞는 말일세. 지금 세상에서 국적은 의미가 없지.”
마츠이는 고구마 잼을 옥수수 빵에 발라 맛있게 먹고 있는 요와와 왕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먹을 만한가, 요아 여전사?”
“예, 본부장. 아주 맛있어요. 가공식품이 아니라 이런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이곳 본부 대원들은 정말 행복하군요.”
“그런 행복을 지키기 위해 많은 대원들이 희생되었네.”
“뭐, 어쩔 수 없는 희생이지요.”
마츠이는 옥수수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앙드레를 향해 물었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군. 한국의 상황부터 들어야 하나?”
“간단히 얘기하면 우리는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를 살포한 악마집단을 상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거요.”
“무슨 소린가? 좀비 바이러스가 자연적으로 발생된 게 아니란 말인가?”
“그렇소. 좀비 바이러스는 애니그마 연구소에 의해 의도적으로 개발돼 세상에 퍼졌소.”
“애니그마? 도쿄 첨단기업단지에 있는 영국의 다국적기업을 말하는 건가?”
“그러하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애니그마의 지시를 받은 자들에 의해 하나씩 지배되고 있소. 서울도 엘리시움이란 이름으로 애니그마의 지배도시가 될 뻔했소. 엘리시움의 시장이었던 자는 조직이 와해되자 일본의 연구소로 도주했소. 우리는 놈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으로 온 거요.”
“…….”
마츠이는 이마를 짚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인류에 대참사를 가져온 좀비 바이러스가 하나의 기업에 의해 개발돼 살포되었다는 얘기를 인정하기 힘들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수십 억 인류를 말살시킨 애니그마는 악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유키나가가 침중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본부장님, 캡틴 앙드레의 얘기가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도쿄의 야쿠자 보스들이 애니그마 아시아 지부장이란 자와 회담했다고 하더군요. 그자는 한국인으로 이름이 윤서경이라고 했습니다.”
요아가 입으로 가져가려던 옥수수차를 내려놓았다.
“윤서경? 맞아, 윤서경 그 새끼가 바로 애니그마의 하수인이에요.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죠!”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마츠이가 입을 열었다.
“캡틴 앙드레, 애니그마 일본연구소를 격파하면 좀비 바이러스를 박멸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가?”
“윤서경은 애니그마의 하수인일 뿐이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런던에 있는 애니그마 본사요. 그곳에서도 바이러스 치료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악마들을 색출해 반드시 죽여야 하오.”
“런던? 아니,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든 가야 하오. 내 딸이 그곳에 있소.”
마츠이는 잠시 앙드레를 주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라면 갈 수 있을 것도 같군. 좋아, 우리도 협조하지. 자네 일행이 애니그마 일본 연구소를 공격하는데 우리 본부의 대원들도 지원하겠네.”
뜻밖의 지원부대를 확보하게 되자 요아와 왕첸의 표정이 환해졌다.
“와아! 고마와요, 본부장. 가미카제 대원들이라면 큰 힘이 될 거예요.”
“헤헤. 이만한 조직의 지원을 받으면 일본 연구소 놈들과 싸울 만하겠어.”
앙드레는 2층 창문을 통해 보이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비스트 좀비에 대해 묻고 싶소. 다른 좀비한테 물린 흔적도 없는 것 같은데 저들은 어떻게 좀비로 변한 거요?”
“그 내력에 대해서는 우리도 확실치 알지 못하네. 죽은 좀비들의 사체를 먹었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물 때문에 좀비로 변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지.”
“한 가지 더… 놈들이 초지에서는 야수처럼 날랬지만 아스팔트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더군. 그 이유가 뭐요?”
“그 연유도 잘 모르겠네. 다만 좀비들이 야성을 지니면서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극도로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싶군.”
마츠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를 다했으면 캡틴은 잠시 나 좀 볼까?”
앙드레가 마츠이와 함께 2층 테라스로 나섰다. 주변이 평지이기에 멀리 콩밭과 옥수수밭이 바라다보였다. 대규모 농장 외곽으로는 일본의 전통 가옥들이 둘러져 있고 그 너머로는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마츠이가 옥수수밭을 가리켰다.
“본래 저곳은 도쿄 시민들을 위한 주말농장이었네. 물론 좀비 세상이 되면서 농장은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지. 이 건물은 본래 주말농장과 주차장 관리 시설이었네. 그것을 우리가 접수해서 가미카제 본부로 삼은 것일세. 주변의 옥수수밭, 콩밭과 고구마밭은 식량 확보를 위해 우리가 경작한 거지. 한데 수년 전부터 비스트 좀비들이 나타나 우리를 공격했네. 자네도 겪었듯이 놈들은 야수처럼 빠르고 강한 발톱을 지녀 많은 대원들이 희생되었지.”
“비스트 좀비가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소?”
“물론 알고 있네. 정말 끔찍한 일이지. 더욱 놀라운 사실은 비스트 좀비들의 성장 속도일세. 새끼 좀비들은 일 년만 자라면 뛰기 시작하고 삼 년이면 성체가 되는 것 같네. 그래서 비스트 좀비들의 숫자가 수년 사이에 이렇듯 불어날 거네.”
새끼를 낳는 것 외에 경이로운 성장 속도는 앙드레에게 또 다른 부담이었다.
앙드레는 지평선 저편으로 보이는 야산을 바라보았다.
“비스트 좀비들이 짐승들처럼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면 세상은 저들의 것이 될 거요. 당분간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이 깔린 도심으로 진입하지는 못하겠지만 수년 이내에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은 자연 분해되어 사라지겠지. 그리 되면 비스트 좀비들은 기존 좀비보다 인류 재건에 백 배는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거요.”
“우리도 고민이 많네. 하지만 우리로서는 비스트 좀비들을 제거할 방법이 없네. 아스팔트를 벗어나면 오히려 우리가 사냥감이 되기에 놈들의 서식지를 탐색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
이때 식사를 마친 요아와 왕첸이 테라스로 나섰다. 그들은 테라스 난간에 걸터앉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와아, 전망 좋네.”
“그러게. 앞쪽은 농장인데 뒤쪽은 주택단지야. 비스트 좀비만 없다면 농장에서 쌀도 재배할 수 있으니 굳이 도심에서 살 이유가 없겠어.”
앙드레는 마츠이를 향해 돌아섰다.
“본부장께서 애니그마 공격에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비스트 좀비들을 박멸하는데 적극 협조하겠소.”
마츠이가 우려의 표정을 띠었다.
“캡틴, 고맙기는 한데 워낙 위험한 놈들이라 가능하겠는가?”
“일단 놈들의 서식지부터 탐색해 보겠소. 공격 방법은 연후 생각해 봅시다.”
앙드레와 요아가 탐색 장비를 갖추고는 지프에 올랐다. 배웅을 하기 위해 왕첸과 하메시도 동승했다.
부아앙!
유키나가가 운전하는 짚차는 지부의 초소를 나서 농장 쪽으로 달려갔다. 지프는 초지 입구에서 멈춰 섰다.
앙드레와 요아가 내려서자 왕첸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캡틴, 나도 같이 가야 하는데……”
요아가 심드렁하게 응수했다.
“왕 서방은 이곳에 남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하여간 말본새하고는! 난 걱정해서 하는 소리인데.”
“알아.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마.”
“이거 받아.”
“뭔데?”
“신호탄이야. 무슨 일 있으면 발사해. 내가 곧바로 달려갈 테니까.”
“훗,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고마워, 왕첸.”
요아가 앞서 초지로 들어섰다.
“가, 앙드레.”
하메시가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괜찮은 거지, 캡틴?”
“물론. 곧 돌아올 거야.”
앙드레는 하메시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해 주고는 초지로 나섰다. 그와 요아는 고구마밭을 가로질러 제방 위로 올라섰다. 두 사람이 놀라운 점프력으로 개천을 건너뛰자 유키나가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믿을 수 없군. 초인이라도 되는 건가?”
앙드레와 요아가 옥수수밭 속으로 사라지자 왕첸과 하메시는 지프로 올라탔다.
2
부아아앙!
지프는 초소를 통과해 지부 내로 들어섰다.
왕첸이 지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캡틴이 돌아올 때까지 망루는 내가 맡을게.”
“같이 가.”
하메시가 뛰어내리려 하자 유키나가가 그를 제지했다.
“하메시는 잠깐 있어.”
“왜?”
왕첸이 건물 내로 사라지자 유키나가가 하메시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메시, 굳이 국적을 따지고 싶지 않지만 왜 저들과 행동을 함께 하는 거냐? 너라면 우리 본부에서도 전사로 활동할 수 있어. 가미카제에 입단해.”
“싫어.”
“잘 생각해 봐. 저들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런던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해. 설사 런던에 당도한다고 해도 애니그마 연구소와 그곳은 놈들의 본거지인데 어떻게 싸우겠어? 좀비 바이러스까지 개발해 살포한 악마 같은 놈들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냐고?”
“상관없어.”
“왜 상관없어. 네 목숨이 걸린 일인데?”
하메시는 서쪽 하늘을 올려보았다.
“캡틴이 아니었다면 난 아직도 외딴 동굴에서 홀로 지냈을 거야. 캡틴 일행을 만나 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어. 난 우리 가족의 복수를 할 거야. 끔찍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려 가족과 헤어지게 만든 악마들과 싸우고 싶어.”
“의지는 대단하군. 하지만 개죽음이 될 거다.”
“난 캡틴을 믿어. 그는 최강의 전사이며 리더야.”
유키나가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근육질 팔뚝을 드러냈다.
“그래, 어디 한번 보겠다. 누가 최강의 전사인지 말이야!”
사사삭……!
앙드레와 요아는 옥수수밭을 헤치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이동 도중 비스트 좀비들이 옥수수밭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은 서식지 탐색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옥수수밭을 벗어나자 잡초가 무성한 초지가 보였고 그 뒤로 일본 전통의 2층 목조 가옥들이 미니어처처럼 늘어서 있었다.
요아가 목조 가옥들을 가리켰다.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쯤 되는 것 같아.”
앙드레는 좌측의 저층 아파트단지로 눈길을 돌렸다.
“저리고 가 보자. 아파트 옥상에 오르면 비스트 좀비들의 서식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
“아파트 단지까지는 은폐물이 전혀 없잖아?”
“싸움은 최대한 피해.”
“오케이.”
요아는 UMP기관단총 대신 권총만 쥐고는 앙드레의 뒤를 따랐다.
초지를 나선 그들은 저층 아파트 단지를 향해 달려갔다. 예전에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어서 그런지 풀이 무성하지 않아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십여 구의 비스트 좀비들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쫓아왔다.
“카우우우!”
“크르릉!”
네 발로 내달리는 그들의 속도로 치타처럼 빨랐다. 동료의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수십 구의 비스트 좀비들이 목조 가옥 곳곳에서 튀어나와 합류했다.
앙드레와 요아는 2미터 담장을 간단히 뛰어넘었다. 일부 비스트 좀비들도 담장을 뛰어넘었고, 다른 무리들은 담장을 따라 이동했다.
저층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앙드레와 요아는 바닥을 박찼다.
팟, 팟, 팟!
그들은 테라스를 밟고 도약하면서 아파트 옥상 위로 올라섰다.
“카우우우!”
단지 아래에 이른 비스트 좀비들은 그들을 잡아먹지 못해 팔짝팔짝 뛰었다. 일부 좀비들은 깨진 현관문을 통해 진입하기도 했다.
옥상으로 올라선 앙드레와 요아는 한쪽 구석에 뭉쳐있는 수북한 시체더미를 보고는 숙연해졌다. 시체더미는 이미 살은 모두 문드러져 해골만 남은 상태였다.
아이를 안고 있는 가족, 부부로 보이는 남녀, 혼자 웅크린 백발의 노인…….
상황으로 미루어 옥상으로 피신했다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은 시신들이었다.
“바보같이… 왜 탈출도 못해?”
“탈출하다 좀비들한테 물려 좀비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굶어죽기를 바랐을 거야.”
“하긴… 이렇게 죽는 게 나아. 죽어서 다시 좀비로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옥상으로 연결된 철문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을 타고 올라온 비스트 좀비들이 발톱을 철문을 긁고 몸으로 부딪쳤다.
아래로는 아파트 단지를 가득 메운 비스트 좀비들이 그들을 올려보며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
“카우우우!”
앙드레와 요아는 좀비들을 무시한 채 쌍원경과 망원렌즈 카메라로 주변을 관찰했다.
“새끼들, 졸라 짖어대는군. 우리 둘을 뜯어먹어봤자 한 입 거리도 안 될 텐데.”
앙드레는 목조 가옥을 살피다가 그 뒤편으로 보이는 완만한 야산으로 초점을 옮겼다.
야산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다. 수풀은 듬성듬성 보였고 나무들은 쓰러져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흙이 흘러내린 곳곳으로 수많은 토굴이 개미굴처럼 뚫려 있었다.
“옴마, 저곳인가 봐!”
요아가 망원렌즈의 거리를 조정했다. 초점이 당겨지면서 비스트 좀비들의 생태가 확인되었다. 그녀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한쪽에서는 막 먹이를 사냥해 온 비스트 좀비들이 사냥감을 뜯어먹고 있었다. 비스트 좀비들의 사냥물은 일반 좀비였다. 아직 머리가 온전한 좀비는 팔다리가 뜯긴 상태에서도 꿈틀거렸다.
“역시 좀비들을 뜯어먹고 비스트 좀비로 되었군.”
앙드레의 얘기에 요아가 몸을 떨었다.
“좀비를 먹는 좀비라… 정말 끔찍해.”
다른 곳에서는 어미 좀비가 새끼 좀비 둘을 안고서 젖을 먹이고 있었다. 조금 자란 새끼 좀비들은 짐승들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놀고 있었고 어른 좀비들은 손등을 핥으며 한가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습만 인간의 형상을 했을 뿐 여느 야생 동물과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새끼 좀비들의 숫자만 어림잡아 삼백이 넘었다. 토굴 안에 더 많은 숫자가 있을 것을 감안하면 일천 구도 넘는 좀비들이 서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아가 망원렌즈에서 눈을 떼며 투덜거렸다.
“좀비들이 인류의 적인 것 확실하지만 어린 새끼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이지?”
앙드레가 냉담하게 말을 받았다.
“좀비로 태어난 게 죄야.”
“니미, 좀비들이 왜 새끼까지 낳고 지랄이야? 그나저나 저 많은 무리들을 어떻게 제거하지?”
“쉽지는 않겠어. 공습으로 야산 전체를 폭격하면 모를까 저들을 일반적인 전투로는 어려워.”
“그렇겠지? 저것들도 제 새끼와 서식지를 지키려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 거잖아?”
“서식지와 생태 환경을 확인했으니 일단 돌아가자.”
“응, 그래야지. 이 정도면 자료로 충분해.”
요아는 아파트 단지 아래에서 아가리를 벌리며 발톱을 휘젓고 있는 비스트 좀비들을 내려다보았다.
“새끼들, 우리를 잡아먹고 싶어 환장하는군. 달리 줄 게 없으니 총알이나 듬뿍 먹여줄까?”
요아가 UMP기관단총을 어깨에서 내리려 하자 앙드레가 제지했다.
“그만 둬. 가자.”
두 사람은 옥상을 따라 달리면서 다른 동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몇 개 동을 이동하자 따라붙던 비스트 좀비들도 지쳤는지 포기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테라스를 밟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순간 현관에 숨어 있던 비스트 좀비 두 구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카우우우!”
요아의 권총보다 앙드레의 정글도가 빨랐다.
퍽, 퍽!
비스트 좀비의 대가리가 대번에 날아갔다.
“치이, 내가 죽이려고 했다고!”
“앞으로 싸울 일은 얼마든지 있어.”
철책 담장을 뛰어넘은 그들은 비스트 좀비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 옥수수밭을 향해 달려갔다.
3
가미카제 도쿄 본부
2층 회의실.
앙드레 일행과 마츠이 본부장, 제1조장 유키나가를 조장들이 둘러앉아 요아가 찍은 사진을 보고 있었다. 기존 좀비를 뜯어먹고 새끼를 키우는 비스트 좀비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확인되자 모두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왕첸이 하메시를 힐끗 보며 흰소리를 해댔다.
“이 사진은 19금인데…….”
요아가 실소를 흘리며 한 마디 던졌다.
“하메시의 칼에 잘린 좀비들의 수십 구도 넘는데 웬 19금 타령이야?”
앙드레로부터 상세한 정황을 듣고 사진을 확인한 마츠이 본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조장들을 둘러보았다.
“비스트 좀비들의 번식이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이런 추세면 애써 일군 농장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머지않아 우리 본부는 비스트 좀비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유키나가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농장은 우리 조직의 생명줄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농장을 잃게 되면 도심의 서브시티로 들어가야 하는데 죽어도 야쿠자의 일원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2조장인 긴타로가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시했다.
“지부장님, 차라리 서브시티로 진입해 야쿠자 조직과 맞서 싸우는 건 어떻습니까? 비스트 좀비들에게 포위당하기 전에 서브시티로 이주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마츠이가 긴타로의 제안을 일축했다.
“야쿠자들의 전투는 진흙탕 싸움이다. 우리가 농장을 사수하지 못하면 서브시티 또한 유지될 수 없다. 도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농장을 보존해야 한다.”
그는 앙드레에게 시선을 돌렸다.
“캡틴 앙드레, 하메시와 왕첸을 통해 자네의 활약은 익히 들었네. 비스트 좀비들을 제거할 방법이 없겠는가?”
“비트스 좀비들이 야수처럼 빠르고 강하기에 기존 좀비들을 격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소. 더군다나 놈들의 서식지를 완전히 파괴해야 하는데 규모가 워낙 방대해 공중폭격을 생각해야 할 정도요.”
“공중폭격이라…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군.”
“그러하오. 결국 지상 교전을 통해 서식지를 파괴해야 하는데 강력한 방호차량과 폭탄을 갖춰야만 비스트 좀비들을 쓸어버릴 수 있소.”
“으음, 장비가 있다면 가능하다는 얘긴가?”
“그렇소. 비스트 좀비들의 저지선을 돌파하는 게 어렵지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방호차량과 강력한 소이탄이 있어야 하오,”
“방호차량과 소이탄을 구할 수는 있네. 뭐, 쉽지는 않겠지만…….”
마츠이는 유키나가에게 지시를 내렸다.
“넌 캡틴 일행과 함께 신쥬쿠로 가서 방호차량과 무기를 구입해라.”
“본부장님, 야마구치 놈들도 그만한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을 겁니다.”
“신쥬쿠의 무기 밀매조직 모리상사를 찾아가면 우리가 원하는 장비와 무기를 구할 수 있을 거다.”
“모리상사요? 놈들의 요구가 엄청날 텐데요?”
“두유와 옥수수빵, 고구마잼 세 트럭이면 모리도 흡족하게 생각하겠지.”
유키나가가 난색을 표명했다.
“예에? 지난해 수확이 좋지 않아 식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세 트럭이나 빼내면 조직원들은 한 달도 버티기 힘듭니다.”
“비스트 좀비들만 제거하면 식량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전투에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비스트 좀비들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부친의 결연한 모습에 유키나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무기를 확보하겠습니다.”
앙드레 일행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요아가 손가락 관절을 우둑우둑 꺾었다.
“뭐가 걱정이야? 모리가 어떤 놈인지 몰라도 주리를 틀어서라도 무기를 내놓게 만들 테니까 걱정 마.”
물론 농담이었지만 유키나가는 전혀 웃지 않았다.
“협상은 내가 할 테니 요아는 나서지 마. 공연히 저들만 자극할 수 있으니까.”
유키나가가 방을 나가자 요아가 마츠이에게 물었다.
“본부장, 모리가 대체 어떤 놈인데 그래요?”
“이런 세상에서 무기상을 운영할 정도면 보통 녀석은 아니지. 그래도 요아의 뛰어난 미모라면 협상이 통할 것도 같네.”
마츠이가 담담히 미소를 띠자 요아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관능적인 태도를 보였다.
“호호, 역시 본부장께서는 보는 눈이 있다니까.”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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