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Sub-City of Tokyo”*
도쿄의 서브시티.
1
땅값이 비싼 도쿄는 수많은 쇼핑몰과 상점들이 메트로레인을 통해 지하로 연결돼 있어 지구에서 지하세상이 가장 발달된 도시이다.
만일 도쿄의 지하도시가 단일 체계로 통제되었다면 서울의 엘리시움보다 더 안정된 메트로도쿄가 되었을 것이다.
좀비 세상이 된 이후 정부가 무너지면서 도쿄의 서브시티를 점거한 집단은 뜻밖에도 야쿠자였다.
야쿠자는 마피아, 삼합회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범죄조직이다. 이들은 일본의 자위대보다 더 철저한 위계질서로 조직돼 있었기에 좀비 바이러스가 지상을 휩쓸자 신속하게 지하를 점거해 서브시티를 조성했다.
도쿄의 서브시티가 서울의 엘리시움과 다른 것은 야쿠자 조직들이 파벌을 형성해 구역을 분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터널과 철로가 구역별로 봉쇄돼 각 서브시티를 오가는 메트로레인은 셔틀처럼 몇 개 역만을 오갈 뿐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구역을 양보할 수 없는 조직 전쟁이 서브시티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야쿠자 5대 조직의 보스들이 서브시티 창설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이 회동을 주관한 쪽은 애니그마의 일본 연구소였다.
천장의 전등이 어두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송전시설이 노후되면서 도쿄의 서브시티로 공급되는 전력도 제한 송전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나마 야쿠자 보스들의 회동이기에 회의실의 전등이 절반 정도는 밝혀진 상태였다.
육각형 회의용 탁자의 다섯 좌석에는 이미 보스들이 자리해 있었다.
일본 야쿠자의 최대 조직은 야마구찌.
야마구찌 파는 무전성기 때 조직원이 100만 명에 달했기에 웬만한 국가조직과 맞먹는다. 워낙 거대한 조직이다 보니 좀비 세상에서도 도쿄의 서브시티 절반을 차지할 만큼 세력이 막강했다.
야먀구찌의 현 총수는 나카지마였다.
일본 전통 무사 복장에 짧은 콧수염을 기른 그는 눈매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 게다가 가슴에 일본도를 품고 있어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나머지 4대 조직의 보스들은 나카지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 역시 한 구역을 관장한 보스였지만 나카지마를 오야붕으로 여길 정도였다.
회의실 벽 쪽에는 각 보스들이 대동한 경호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총기 휴대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었기에 대부분 일본도로 무장했다.
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들어섰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인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향수를 뿌렸는지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바로 애니그마 연구소의 동아시아 지부장인 윤서경이었다.
그를 수행한 여인은 비서 나오미였다. 근래에는 보기 드문 일본 전통의 기모노 차림이 돋보였다.
“늦었소.”
윤서경 사장는 간단히 사과하고는 빈자리에 앉았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지각을 했으면서도 기다린 사람들에게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카지마가 쉰 듯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당신이 이번 회동을 주도한 윤서경 총장이오?”
“그렇소.”
“보아하니 한국인 같은데 일본에는 왜 왔소?”
“지구상에서 모든 나라가 멸망된 지 삼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국적을 따지는 거요?”
“나라는 다시 세우면 돼. 중요한 것은 혈족이지.”
“나카지마 보스, 나는 일본인들이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찾아온 것이니 국적 문제는 논하지 맙시다.”
초반부터 언쟁이 벌어지자 야쿠자 서열 2위 조직인 스미요시가이의 보스 오자키가 중재에 나섰다.
“나카지마 오야붕, 잠시 진정하시고 윤 총장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허튼소리를 하면 그때 응징해도 늦지 않소.”
다른 보스들도 오자키를 지원했다.
“오사키 보스의 말씀이 맞소.”
“우리한테 아주 귀한 선물을 준다고 했으니 일단 얘기할 시간을 줍시다, 오야붕.”
나카지마는 윤서경을 쏘아보다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당신이 주겠다는 선물이 뭐요?”
“좀비 바이러스의 치료제.”
일순 실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싸늘한 정적이 아니라 폭풍이 불기 전의 적막이었다.
치료제!
한 마디로 기선을 제압한 윤서경은 느긋하게 보스들을 둘러보았다.
“이 정도 선물이면 잠시 늦은 것을 용서해 주겠소?”
나카지마가 허리를 바로 세우며 물었다.
“정말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단 말이오?”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발작을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소. 운이 따른다면 완치될 수도 있고.”
오자키가 호의적인 미소를 띠었다.
“하하,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라니.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요, 윤 총장?”
“메트로도쿄의 건설이오.”
“메트로도쿄……?”
“도쿄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서브시티가 세워져 있고 그 서브시티를 연결할 메트로레인도 갖춰져 있소. 만일 도쿄 지하의 모든 서브시티를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면 백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을 거요. 그 정도면 현재 일본에 생존해 있는 인구의 이십 프로에 해당되니 능히 정부로서의 기능까지 대신할 수 있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셈이오.”
4명의 보스들은 고무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나카지마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윤서경 사장를 직시했다.
“메트로도쿄를 창설해 당신이 얻는 건 뭐요?”
“인류의 영원한 존속과 평화.”
“왠지 미덥지 않군.”
“나를 의심하는 거요?”
“당연하지. 지금 세상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약을 보유했다면 이는 신의 능력이오. 치료제를 내세워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는데 왜 선심을 쓰려는 거요?”
“하하, 세상을 지배하려고 해도 인류가 멸망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아, 이 말은 농담이오.”
윤서경이 담배파이프를 물자 나오미가 지퍼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윤서경은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는 얘기를 계속했다.
“지금 인류의 적은 좀비요. 만일 메트로도쿄가 창설된다면 세계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막강한 도시국가로 성장할 수 있소. 한데 여러 보스들은 단지 약간의 구역을 차지하고자 자유로운 통행을 저지해 서브시티의 번영을 저지하고 있소. 난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오.”
나카지마가 일본도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의 말투가 사납게 바뀌었다.
“흥, 이제야 네놈의 속셈을 알겠다. 우리 야쿠자 조직을 와해시키고 네놈이 서브시티를 장악하려는 거였어. 내 말일 틀렸냐?”
과연 야마구찌의 총수답게 예리한 지적이었다. 다른 보스들도 의심의 눈빛을 보내자 윤서경은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나카지마 보스, 보다 넓게 보시오. 좀비들은 나날이 많아지고 이제는 지능까지 갖추고 있소. 좀비들이 서브시티로 난입하면 과연 야쿠자 조직들이 관장하는 구역이 온전할 수 있겠소? 서브시티의 방어벽이 한번 무너지면 도쿄는 온통 좀비들의 세상으로 바뀌게 될 거요. 도쿄가 무너지면 일본의 재건은 꿈도 꿀 수가 없지.”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선 나카지마가 칼을 뽑아들었다.
슈욱!
칼 끝이 윤서경의 목에 닿았다. 워낙 예리한 칼이었기에 반 치 거리를 두고서도 한기가 뿜어졌다.
한데 윤서경은 지극한 위험 속에서도 여유 있게 담배파이프 피웠다.
“나카지마 보스, 만일 당신이 좀비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소?”
“그딴 소리 마라. 날 절대 좀비 따위는 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내 스스로 목을 칠 테니까.”
“정말 그럴 수 있는지 한번 봅시다.”
윤서경이 손짓을 보내자 나오미가 품속에서 유리 막대를 꺼내 쥐었다. 투명한 유리 막대 속에는 초록 액체가 절반쯤 채워져 있었다.
“저 유리관 속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들어 있소.”
순간 보스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젠장!”
“함정이다!”
“저 새끼부터 죽여!”
보스들을 수행해 온 경호원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그들도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달려들지는 못했다.
윤서경은 나오미에게서 유리 막대를 넘겨받았다.
“안심하시오. 이 좀비 바이러스는 진공으로 밀봉돼 있어 파괴하지 않는 한 절대 살포되지 않소.”
오자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윤 총장, 좀비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감염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하지만 이 좀비 바이러스는 우리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배양한 바이러스요. 흡입하는 것만으로 구십 오프로의 감염을 일으킬 수 있소.”
“당신 역시 감염될 거 아니오?”
“그렇게 되겠지. 나 역시 변형 바이러스를 살포하고 싶지 않소. 그저 호신용으로 가져왔을 뿐이오.”
이에 오자키가 나카지마를 설득했다.
“오야붕, 윤 총장의 얘기를 마저 들어봅시다. 이곳의 보스들이 공멸하면 야쿠자 조직도 와해되고 마오.”
“협박이 두려워 구역을 내줄 수는 없네.”
“그건 다른 보스들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오. 하지만 윤 총장이 우리 구역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얘기일 수 있으니 들어보고 결정합시다.”
다른 보스들도 나카지마의 과격함을 우려했다.
“앉으시지요, 오야붕.”
“윤 총장을 죽여야 할 상황이면 내가 책임지고 죽이겠소.”
보스들 모두가 자제를 요구하자 나카지마가 칼을 칼집에 거두었다. 그러자 경호원들도 칼을 꽂고는 본래대로 벽에 도열해 섰다.
나카지마가 윤서경을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윤 총장, 난 좀비들 세상이 지속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때까지 야마구찌 구역을 고수할 것이며 구역을 확대하거나 축소하지도 않을 생각이다. 분명히 경고하건대 야마구찌 구역을 넘보면 누구든 내 칼에 죽을 것이다.”
나카지마는 엄중한 경고를 남기고는 경호원들을 대동해 회의실을 나갔다. 그가 퇴장하자 나머지 보스들도 보복이 두려워 차례로 회의실을 떠났다.
“이것 참……”
회동을 주선한 오자키가 난처한 기색으로 일어섰다.
“윤 총장,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만나야겠소.”
“그럽시다. 역시 좋은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윤서경은 오자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나직하게 말을 전했다.
“오카지 보스한테만 치료제를 제공할 수 있으니 깊이 생각해 보시오.”
움찔한 오자키가 짐짓 냉담하게 대꾸했다.
“어서 떠나시오. 애니그마 연구소와 연결된 메트로레인은 지부장을 태운 후 차단될 거요.”
야쿠자 보스들이 모두 나간 회의실에는 윤서경과 나오미 둘만이 남았다.
나오미는 유리 막대를 조심스럽게 품속에 넣었다.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지부장님. 야쿠자들은 정말 다루기 힘든 자들입니다.”
“훗, 손쉬운 작업이었다면 영악한 사카다가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본사로 소환되지 않았겠지.”
윤서경은 담배파이프의 재를 재떨이에 털었다.
“어쨌거나 야쿠자 보스들의 성향을 확실하게 파악했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야.”
“그럼 예정대로 실행하실 계획이십니까?”
“물론. 도적을 잡으려면 수괴부터 잡으라고 했는데 이제 표적이 정해졌어.”
자리에서 일어선 윤서경은 흐릿한 전등을 올려보았다.
“메트로도쿄의 창설을 위해서는 전력부터 확보해야겠군.”
2
부다다당!
동쪽 하늘에서 쏟아지는 선연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2대의 바이크가 고속도로를 따라 야마나시현을 황단하고 있었다.
앙드레 일행은 지난밤을 고속도로의 트럭 안에서 보낸 후 아침 일찍부터 도쿄 행을 서두르는 중이었다. 아무리 고속도로라도 야간에는 좀비들의 활동이 잦기에 야간 운행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왕첸 뒤에 타고 있는 하메시도 이제는 편안하게 왕첸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성적인 호감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믿을 만한 동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구릉 너머로 하얀 봉우리가 보이자 하메시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 후지산이야!”
그러했다. 일본인들이 영산으로 여기는 후지산이 야마나시현 남쪽으로 보였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3776m에 달하는 고봉이기에 그 형상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요아가 흥미로운 눈빛을 발했다.
“오, 저게 후지산이로군. 여름인데도 봉우리가 희네?”
왕첸이 장난스럽게 떠들어댔다.
“우리 중국에도 높은 산 많다 해. 옥룡설산만 해도 오천 미터를 넘는다 해.”
“어디 산만 높겠어? 인간도 엄청 많잖아? 대체 중국에서는 좀비들이 얼마나 있을까? 너무 많다 보니 서로 밟혀 죽는 것은 아닌지 몰라.”
“요아, 어째 듣는 사람의 기분이 묘하다.”
“신경 쓰지 마. 정말 궁금해서 해본 소리이니까.”
이때 앙드레의 갤럭시 텐이 울렸다. 앙드레 보다 요아가 먼저 환호했다.
“와우, 도쿄 근처에 오니까 위성통화가 되나 봐.”
요아는 무선 통신기를 자신의 귀에 끼었다.
“테네시, 우리 어디게?”
“요아 언니, 용케 도쿄 가까이 왔네요. 별일 없었죠?”
“별일 없기는? 왕 서방이 헬기를 제대로 손보지 않는 바람에 하마터면 바다에 빠져 수장될 뻔했어.”
“일본 좀비들은 어때요?”
“이곳에서도 좀비장군처럼 좀비들을 조종하는 놈이 있더라고. 우리가 사무라이 좀비라고 이름 지었어.”
“아마 그런 좀비는 도쿄에 도착하면 더 많이 만나게 될 겁니다.”
“그래? 흥분되는군. 잠깐, 앙드레를 연결해 줄게.”
요아는 앙드레의 귀에 통신기를 꽂아 주었다.
“꼬마 애인이 바꿔 달래.”
앙드레는 바이크의 속도를 다소 낮추며 물었다.
“테네시, 애니그마 일본 연구소에 대한 정보는 알아냈어?”
“조금은요. 런던 본사에 자료를 전송하면서 새로운 과제를 받았는데 그게 일본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같아요.”
“새로운 과제?”
“예, 좀비 바이러스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치료제를 투여해서 변형 과정을 관찰하라는 과제에요. 그로 인한 부작용과 생체에 미치는 영향, 생명력과 지능의 변화 등등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죠.”
앙드레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한국 연구소에서 좀비와는 다른 괴생물체가 있었는데 놈들이 그런 부류의 괴생물체를 만들려는 걸까?”
“앙드레, 인류에게 있어 좀비가 위험한 존재이기는 해도 어쩌면 인류 재건의 자원이 될 수 있어요. 감염자들을 온전하게 인간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섭생 방법을 채식으로 바꾸고 광포함만 진정시키면 훌륭한 일꾼으로 부릴 수 있지요. 순화된 좀비들은 파업을 하지 않을 테고 체력도 월등하니 인류 재건을 위해 밤낮없이 일할 겁니다.”
분명 타당성 있는 얘기였지만 앙드레는 부정적으로 반박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들은 본래 인간이었어. 인성을 상실했다고 해도 노예로 부린다는 것은 비윤리적이야.”
“그렇군요. 어쨌든 저는 본사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니 분석이 나오는 대로 자료를 전송해 드릴게요.”
“참, 메트로서울 건설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어? 애니그마 연구소에서 훼방을 놓지는 않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요. 메트로서울은 도시국가 건설의 모델이라 애니그마 연구소도 이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어요.”
“악마가 지켜보는 모델이라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군. 어쨌든 파괴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럼 다음에 또 통화하자고.”
“예, 앙드레. 행운을 빌어요.”
통화가 끊기자 앙드레는 악셀을 높였다.
부다다당!
어느 새 두 대의 바이크는 도쿄도로 들어서고 있었다.
후지미가오카초등학교.
고속도로 4호선과 인접한 초등학교 내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교정은 높은 담장과 철책으로 둘러져 있어 외부와 차단되었기에 좀비들은 담장 밖에서만 우글거렸다. 하지만 운동장을 사이에 둔 교내 건물에서 총격전이 전개되었고, 양측의 전투원이 엄폐물을 이용해 운동장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탕, 탕, 탕!
멀리까지 들려온 총성에 고속4호선을 따라 달려가던 앙드레 일행이 바이크를 멈춰 세웠다. 그들은 가드레일로 다가서서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후지미가오카초등학교는 고속 4호선과 인접했기에 그들은 교전 상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요아가 쌍원경으로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것들 왜 싸우는 거야? 담장 밖에서는 좀비들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왜 저희들끼리 싸워?”
그러다 초등학교 본관 건물 국기게양대에서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를 본 요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옴마, 저거 태극기잖아?”
“이그, 그것도 눈이라고? 여기는 일본 땅이야.”
왕첸이 요아를 일축하며 쌍원경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게양대에서 나부끼는 깃발은 분명 태극기였다.
“얼싸, 진짜네?”
그는 별관 건물 쪽으로 쌍원경을 돌렸다.
별관 건물의 게양대에는 커다란 욱일승천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본관 건물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사람들은 이마와 몸에 욱일승천기를 둘렀다.
왕첸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캡틴, 이게 뭔 일이야? 도쿄에서 웬 미니 한일전이 벌어지는 거지? 그것도 축구가 아니라 총격전을 말이야.”
앙드레는 말없이 초등학교 안팎을 살피다가 하메시에게 쌍원경을 건네주었다.
“저들이 왜 싸우는지 알겠어?”
하메시는 한참동안 쌍원경을 들여다보다가 눈을 뗐다.
“일본 극우파들과 재일한국인들이 전투를 벌이는 것 같아. 후쿠이현에서도 간혹 이런 싸움이 있다고 들었어.”
“좀비 세상에서도 극우파가 있단 말이야?”
“오래 전 관동대지진 때 극우파들이 선동해서 조선인들을 학살한 적이 있었지. 극우파들의 반한 감정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하메시의 얘기에 요아가 발끈했다.
“이런 썅! 그럼 저 새끼들은 좀비 바이러스도 한국인들이 퍼뜨렸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래서 재일한국인들을 공격하는 거냐고?”
하메시의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왕첸이 혀를 찼다.
“쯧쯧, 아마 한일전은 저승에 가서도 벌어질 거야.”
“야, 왕 서방. 재일한국인만 매도당했겠어? 재일중국인들 역시 극우파 새끼들한테 공격을 당했을 거라고!”
요아는 무기를 챙겨 바이크에 올라탔다.
“하메시는 일본인이니 나서지 마. 왕 서방도 끼어들 필요 없어. 가, 앙드레!”
한데 하메시가 요아가 모는 바이크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나도 갈게.”
“하메시?”
“극우파들이 멍청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저들이 서로 싸우면 종래에는 모두 좀비들한테 먹일 거야. 그런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앙드레가 바이크에 올라타며 시동을 켰다.
“모두 함께 간다. 대신 가급적 살상은 삼가. 인류의 적은 좀비이지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아니다. 이런 싸움은 인류의 멸종만 초래할 뿐이야.”
왕첸이 앙드레가 모는 바이크 뒷좌석에 올라탔다.
“학교를 에워싸고 있는 좀비 새끼들이 상당히 많은데 돌파할 수 있겠어?”
요아가 왕첸을 쏘아보며 이죽거렸다.
“그렇게 쫄리면 여기 남던가?”
“누가 쫀다는 거야? 하여간 나만 못 잡아먹어서 난리라니까! 고우!”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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