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owards Tokyo”

동경을 향해

1

투투투–!

로빈스R44 헬기가 동해를 따라 비행하고 있었다.

로빈스R44헬기는 2인승인 R22 기종을 4인승으로 개조한 헬기라 내부 좌석은 다소 비좁은 편이었다. 또한 1990년 대에 개발된 노후 기종이지만 고장이 적고 조작이 간편해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제품이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고, 하늘빛보다 더 짙푸른 동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내륙은 산골짜기까지 좀비 바이러스로 감염돼 있지만 바다는 아직 신선하고 평화로웠다.

조종석에는 왕첸이 앉아 헬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옆 좌석에 앉은 요아가 왕첸을 쓸어보면서 한 마디 던졌다.

“훗, 왕 서방 주제에 제법인데? 헬기 조종은 어디서 배웠어?”

“삼합회 시절 소형 헬기로 마약을 운반할 때 조금 배웠어.”

“새끼, 누가 양아치 아니랄까 봐 온갖 나쁜 짓은 죄다 섭렵했구나?”

“그래도 너만 하겠어? 사내라면 이놈 저놈 마다않고…….”

“닥치지 못해!”

요아는 왕첸의 입을 막으며 뒷좌석에서 잠들어 있는 앙드레를 힐끗 보았다.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죽고 싶어?”

왕첸은 항복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앙드레 앞에서 다시는 그런 소리 마. 알겠어?”

왕첸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아가 비로소 틀어먹은 입을 풀어 주었다.

왕첸은 혀로 입가를 핥으며 투덜거렸다.

“아이, 짜.”

요아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계기판을 들여다보았다.

“왕 서방, 옆에서 보니까 헬기 조종이 별 거 아닌 것 같아. 조종간만 쥐고 있으면 되는 건가?”

“왜, 배우고 싶어?”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럼 한번 해 봐.”

“정말?”

“자, 이렇게 조종간을 쥐는 거야.”

왕첸은 요아의 손을 쥐고는 조종간을 앞뒤로 움직였다.

“이렇게 앞으로 밀면 내려가고 뒤로 당기면 상승. 쉽지?”

“호호, 그러네?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왕첸은 요아의 목덜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흐음, 향기 좋은데? 여전사도 향수를 쓰는 거야?”

“이런 변태 새끼!”

요아가 왕첸의 목을 움켜쥐었다.

“왕 서방 주제에 감히 어디서 껄떡대!”

“커억, 놔… 놔 줘. 기체가 하강… 한다고.”

엄살이 아니었다. 갑자가 프로펠러 소음이 불규칙해지면서 헬기의 고도가 급속도로 하강했다.

그러자 잠에서 깬 앙드레가 요아의 팔을 밀쳤다.

“조종 중인데 웬 장난이야?”

“그게 아니고……”

앙드레가 계기판을 살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왕첸?”

“연료 계통에 문제가 있나 봐, 캡틴. 알피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어.”

요아가 높은 톤으로 닦달했다.

“완벽하게 정비했다면서? 이제 어쩔 거야? 이대로 바다에 추락하면 물고기 밥이 된다고!”

“뭐, 좀비 밥보다는 낫잖아?”

“이그, 그만 나불대고 어서 조치를 취해!”

“차오(제기)! 고철은 어쩔 수 없다니까!”

왕첸이 각종 스위치를 조작해도 헬기의 고도가 빠르게 하강하자 요아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 추락하겠어!”

왕첸은 진땀을 흘리다가 계기판에 머리를 박았다.

터엉!

“제발!”

그러자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면서 프로펠러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투타타타……!

헬기 고도가 다시 상승하자 세 사람은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요아는 왕첸의 볼을 토닥이며 칭찬해 주었다.

“잘했어, 왕첸. 널 중국 맥가이버로 인정해 줄게.”

“뽀뽀해 주면 안 될까?”

“이걸, 콱!”

“하하핫!”

왕첸과 요아는 시종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왕첸이 다소 수다스러운 면도 있지만 요아도 왕첸의 활달한 입심에 기꺼이 동조했다.

2

투타타타–!

헬기가 동경 130도를 넘어서자 망망대해 저편의 수평선상에 희미한 물체가 보였다.

요아가 눈썹 위로 손을 갖다 댔다.

“뭔가 보이네? 설마 배……?”

앙드레가 갤럭시 텐에 나타난 지도를 보며 말해 주었다.

“독도야.”

“와아, 독도? 정말 우리가 독도에 온 거야?”

“그래. 독도에서 연료를 급유해야 일본까지 곧바로 날아갈 수 있어.”

요아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왕첸을 닦달했다.

“더 밟아! 어서 독도를 보고 싶다고!”

왕첸이 키득대며 이죽거렸다.

“큭큭, 밟기는 뭘 밟아? 이게 뭐 자동차인 줄 알아?”

잠시 후 헬기가 독도 상공에 이르렀다.

바다 한 복판에 당당히 솟아 있는 독도는 외로운 섬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두 개의 큰 섬과 작은 바위 무수한 암초로 이루어져 있었다. 헬기가 섬으로 접근하자 프로펠러 소리에 놀란 수천 마리의 물새들이 날아오르면서 장관을 이루었다.

헬기는 동도와 서도 사이를 천천히 비행했다. 동도의 바위에 ‘韓國領’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요아가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앙드레에게 물었다.

“저거 한국령이라고 쓰인 거 맞지?”

“맞아. 한국의 영토라는 의미로군.”

“하아, 이렇게 독도를 직접 보니 왠지 가슴이 짠해.”

왕첸이 선착장 쪽으로 헬기를 하강시켰다.

“캡틴, 이 섬에 보급할 연료가 있는 건 확실해? 만일 없으면 남은 연료로는 오도 가도 못해.”

“좀비 세상이 된 이후 보급이 끊기면서 주민과 독도수비대가 울릉도로 퇴각했지. 하지만 긴급 상황에 대비해 비상식량과 연료를 남겨 놓았으니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와아, 그런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어?”

“테네시가 제공한 정보이니 확실할 거다.”

“테네시? 그건 또 어떤 꾸냥(아가씨)인가? 예뻐?”

요아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놀려주었다.

“호홋, 예쁜 건 보장해. 뭐, 런던에서 귀환하면 내가 소개해 줄 수도 있어.”

“정말?”

“한데 덩치는 좀 큰 편이야.”

“괜찮아. 난 말라깽이보다 글래머가 취향이니까.”

요아가 깔깔거리며 왕첸에게 알밤을 먹였다.

“멍청아! 테네시는 인공지능 컴퓨터야. 쇳덩이에다 네 아랫도리를 비벼댈래?”

“우씨, 우리 사람 화난다 해.”

왕첸은 잔뜩 우거지상을 지으면서 선착장에 헬기를 착륙시켰다.

수 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기에 선착장 바닥에는 조개와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도 평평하게 유지돼 있어 헬기가 내려앉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엔진이 멈추면서 세 사람이 헬기에서 내렸다.

“기다려. 나와 왕첸은 연료를 구해올 테니까.”

“알았어. 그런 일은 당연히 사내들이 해야지.”

“예미, 꼭 이럴 때만…….”

요아는 구시렁거리는 왕첸의 등을 떠밀었다.

“주둥이 다물고 어서 다녀 와.”

두 사람이 선착장에서 연결된 길을 따라 건물로 향하자 요아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독도를 감상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삼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요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선착장 한쪽에서 세워져 있는 국기 게양대를 올려보았다. 태극기가 걸려 있어야 할 게양대 상단에는 찢어진 천 조각만 펄럭이고 있었다.

“이런 태극기가 완전히 찢어졌네.”

요아는 헬기의 뒷좌석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비상식량과 식수, 총기와 탄약만 실려 있을 뿐 태극기는 보이지 않았다.

“치이, 모처럼 애국 한번 해보려고 해도 기회가 따르지 않는군.”

그러다 기체보수용 페인트 통을 찾아내자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없으면 그리면 돼.”

그녀는 좌석의 시트를 잘라 깃발로 삼았다.

“가만, 태극기를 어떻게 그리지?”

과거의 기억만으로 태극기를 그리기는 쉽지 않다. 가운데 태극은 대충 그릴 수 있지만 네 귀퉁이의 사괘를 정확히 맞추기가 어려웠다.

“건이감곤이야 건곤감리야? 건은 작대기 세 개가 맞는 것 같은데……..”

그러다 헬기의 동체에 새겨져 있는 태극마크를 보고는 환호를 질렀다.

“오, 여기 모델이 있었잖아?”

요아는 세 가지 색깔의 페인트를 사용해 나름대로 태극기를 그리고는 국기봉에 매달았다.

태극기가 국기봉을 따라 상단까지 올라갔다.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요아는 왠지 가슴이 울컥했다. 좀비 세상 이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태극기를 대하면서 자신의 조국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요아는 태극기를 올려보며 애국가를 뇌까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녀는 자신이 마치 독도를 되찾은 것처럼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저 태극기 하나를 달았을 뿐인데 자신이 딛고 선 독도가 고향의 땅처럼 생각되었다.

요아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제기, 나답지 않게 왜 이래? 내가 무슨 애국자라고?”

이때 앙드레와 왕첸이 양 손에 연료통을 들고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앙드레는 국기봉 위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고는 요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요아는 공연히 부끄러운 마음에 둘러댔다.

“그냥 심심해서 그려봤어.”

“잘 했어. 보기가 좋군.”

왕첸이 연료를 주입하는 동안 앙드레는 갤럭시 텐을 통해 테네시와 통화했다.

“다행히 항공유가 몇 드럼 정도 있더군. 일본까지 비행하기에는 넉넉해.”

“제 말이 맞죠? 정보가 확실했기에 독도를 경유하는 최단거리 비행경로를 알려드린 겁니다. 도쿄까지는 제법 거리가 머니 도중에 한번 더 급유가 필요할 거예요.”

“그래서 두 통 정도 챙겨갈 거야.”

“앙드레, 일본에 도착하면 이리듐 통신위성의 한계 때문에 통화 연결이 쉽지 않아요. 스마트 워치에 필요한 자료를 계속 전송시켜 놓을 테니 참고하세요.”

“알았어. 한데 윤서경이 애니그마 일본 연구소로 도주한 것은 확실한 거야?”

“확실해요. 센티넬이 메트로서울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계속 요구하고 있어요. 메트로서울을 모델 삼은 메트로도쿄를 창설할 계획인 것 같아요.”

“센티넬이 누구지?”

“애니그마 본사에 있는 중앙컴퓨터에요. 능동형 슈퍼컴퓨터인 센티넬에 비하면 저는 정보처리와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구형이죠.”

단순히 기계이지만 왠지 테네시의 음성에서 자괴감이 느껴졌다.

앙드레는 담담한 미소를 띠며 위로해 주었다.

“테네시, 머리가 크다고 모두 똑똑한 것은 아니야. 넌 누구보다 현명해. 그리고… 착해.”

테네시의 음성이 다시 활기차게 들려왔다.

“고마워요, 앙드레. 우리는 좋은 친구에요.”

“그래. 도쿄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지.”

통화를 끊은 앙드레가 헬기 조정석에 앉았다.

“수고했어, 왕첸. 여기서부터는 내가 조종하지.”

“그러셔. 난 한잠 때릴 테니까.”

왕첸은 뒷좌석에 자리를 뻗고 누웠다.

투투투–!

헬기가 선착장에서 천천히 상승했다.

앙드레는 독도 전체를 한 바퀴 선회하고는 동쪽으로 기수를 고정시켰다.

요아가 기지개를 펴며 물었다.

“얼마나 걸릴까?”

“일본 본토 해안까지 세 시간 정도. 도쿄까지는 두 시간 이상을 더 가야 돼.”

“제기, 되게 머네. 이렇게 먼데 무슨 가까운 이웃나라라는 거야?”

“잠시 눈을 붙여. 저녁은 일본에 도착해서 먹자고.”

앙드레는 고도를 높여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태양은 서쪽 바다를 향해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고 독도가 수평선 저편으로 묻혀 버렸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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