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A New Conspiracy”

새로운 음모

일본 도쿄.

활동이 정지된 도심의 고층빌딩들이 유령도시처럼 을씨년스럽다. 녹슨 자동차들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고 보도블럭에는 잡초가 수북했다.

과거 사람들로 북적이던 긴좌 역시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고 어기적거리는 좀비들만 무리를 지어 지나칠 뿐이었다. 도쿄 역시 3년 전 시작된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95% 이상의 사람들이 몰살했으며 이제는 고작 5% 정도의 인간만 생존해 있었다.

도쿄 외곽의 애니그마 일본 연구소.

연구소 상단의 반구형 지붕이 열리면서 소형헬기 제비스가 천천히 하강했다.

투타타……!

제비스는 실내의 착륙장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곧바로 헬기 문이 열리며 말쑥한 용모의 중년 신사가 내려섰다. 중년 신사는 다름 아닌 윤서경이었다.

엘리시움에서 탈출한 그는 곧바로 일본까지 날아와 규슈에서 중간 급유를 마친 후 도쿄에 이를 수 있었다. 규슈의 중간 급유지는 그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 이용하는 무인 급유시설이었다.

착륙장 한쪽에 대기해 있던 애니그마 연구소의 경비국장 미야모도와 경비 요원들이 다가섰다.

“오셨습니까, 지부장님.”

“음, 오랜만일세.”

윤서경은 마중 나온 사람들을 쓸어보며 물었다.

“부지부장이 보이지 않는군.”

그가 언급한 부지부장은 애니그마 일본 연구소의 소장이자 동아시아 부지부장 사카다를 말함이다.

미야모도가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보고했다.

“사카다 부지부장은 한 달 전 런던의 본사로 소환되셨습니다.”

윤서경 사장의 심정이 착잡해졌다.

‘사카다가 본사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나 보군.’

애니그마는 세계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는데 지부장의 권한은 지역 내에서 절대적이라 본사로 소환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좀비 세상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따라서 본사로 소환되었다는 것은 이미 축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서경 역시 서울에서 애써 창설한 엘리시움을 잃고 쫓겨 왔으니 언제든 소환 명령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윤서경은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지부장실로 향했다.

먼지 한 톨 없이 매끄러운 복도에는 10미터 간격을 두고 요원들이 서 있었다.

윤서경은 미야모도만 대동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대기해 있던 여비서가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일본 여인치고는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오셨습니까, 지부장님.”

“그래. 잘 있었나, 나오미.”

“커피를 드릴까요, 아니면 차를…….”

“옥로차로 하겠다.”

“예, 지부장님.”

나오미가 집무실에 딸린 간이 주방으로 물러가자 미야모도가 나직이 말했다.

“부회장님께서 지부장님이 당도하시는 대로 영상통화를 연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래.”

윤서경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회장이 통화를 지시했다면 이미 본사에 서울의 상황이 보고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서울에 성공적으로 엘리시움을 창설한 공으로 동아시아 지부장에 올랐음을 감안한다면 이제 그에게도 소환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컸다.

그는 소환의 두려움 때문에 도주라도 하고 싶었지만 바깥은 온통 좀비들 세상이기에 피신할 곳도 없었다. 그의 유일한 바람은 본사의 자비였다.

“지부장님, 차 드세요.”

나오미가 옥로차를 내려놓고 방을 나가자 윤서경 사장는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옥로차의 은은한 향이 그의 불안한 심정을 다소 가라앉혀 주었다.

윤서경은 작심을 하고는 미야모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회장을 연결해.”

“예, 지부장님.”

미야모도는 유리탁자의 투명자판을 두드렸다.

잠시 후 한쪽 벽의 멀티비전을 통해 반대머리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군 병사처럼 잔뜩 경직된 표정과 꾹 다문 입에서 고집스런 성격이 느껴졌다.

부회장은 과거 애니그마 한국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빌란트였다. 한국연구소에서 런던으로 전출된 후 본사의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임원에 오른 그는 본사에서는 세트라는 신의 이름으로 불린다.

자리에서 일어선 윤서경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부회장님.”

“윤 총장, 정말 실망이군. 한국 연구소의 테네시를 통해 보고를 받았는데 고작 헬돔의 무법자들한테 엘리시움을 빼앗겼다고 하더군.” 빌란트는 예전에 부르던 애칭으로 윤서경을 윤총장이라 불렀다.

“송구합니다, 부회장님. 하지만 일본 연구소의 요원들을 대동해……..”

“아니야. 테네시는 엘리시움이 메트로서울로 개명됐을 뿐 오히려 더 확장될 거라고 하더군. 엘리시움보다 더 이상적인 도시국가로 발전된다면 우리로서도 나쁠 게 없지. 좀비들 세상에서 적응해가는 모범적인 사례로 지켜볼 가치가 있어.”

윤서경이 표정으로 반박했다.

“부회장님, 테네시가 놈들을 지원한 바람에 엘리시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테네시의 보고를 너무 믿지 마십시오.”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테네시가 설마 본사에 거짓 보고를 올렸다는 건가?”

“테네시는 앙드레란 자와 협력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테네시는 지금도 본사에 자료들을 전송하고 있네. 그 자료를 토대로 본사에서도 다양한 치료제를 개발 중에 있지. 앙드레는 본사에서도 예의주시하는 자로 테네시가 그에게 협력하는 건 당연해. 제대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걸세.”

윤서경은 자신의 말보다 한갓 기계를 믿는 빌란트가 야속했다.

“테네시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지능형 슈퍼컴퓨터입니다. 배신을 숨길 수도 있지요.”

“그래봤자 기계일 뿐일세. 또한 AN3000 기종은 이미 구형이라 능동형 지능에도 한계가 있어.”

빌란트는 윤서경의 반박을 일축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윤 총장, 자네도 부지부장 사카다가 소환됐다는 얘기는 들었을 거네.”

“예, 부회장님.”

“사카다는 형편없었네. 도쿄에서도 서울의 엘리시움과 같은 서브시티를 기대했는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어. 그래서 자네에게 특명을 하달하겠네. 현재 서브시티를 장악하고 있는 야쿠자 집단을 몰아내고 서울과 같은 메트로도쿄를 건설하게. 자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하네. 알겠나?”

“예, 부회장님.”

“좋아, 그럼 기대하지.”

영상통화가 끊기면서 빌란트의 모습이 사라졌다.

윤서경은 일단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위기가 곧 기회로군. 도쿄에 성공적인 서브시티를 건설하면 다시 본사의 신임을 받을 수 있다.’

의자에 앉은 그는 차갑게 식은 옥로차를 마셨다. 차는 비록 식었지만 기분 때문인지 향기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지시를 내렸다.

“미야모도, 도쿄의 메트로레인 상황을 상세하게 조사해서 보고하게. 그리고 사카다가 서브시티 건설에 실패한 이유도 알아야겠어.”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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