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Rise of Metro Seoul”
메트로 서울의 탄생
윤서경의 집무실
멀티비전에 비친 차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메트로4호선 터널을 봉쇄한 차폐문은 그 안에 갇힌 헬돔의 전사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사신의 문처럼 음산하게 보였다.
윤서경 사장는 담배파이프를 피우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터널 안을 볼 수 없는 게 아쉽군. 하대수를 비롯해 앙드레와 헬돔의 버러지들이 좀비들에게 잡혀 먹히는 광경을 정말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윤서경의 잔혹한 취향은 황해마저 두렵게 만들 정도였다.
“사장님, 저 안에는 엘리시움의 보안요원들도 있습니다.”
“아, 그런가? 그들에게는 훈장이 주어질 거네. 엘리시움을 지키기 위한 명예로운 전사자로 기록되겠지.”
이때 전원이 깜빡이면서 멀티비전 화면이 흔들거렸다.
흠칫 놀란 윤서경이 중앙통제실로 직결되는 인터폰을 눌렀다.
“무슨 일이냐?”
“해킹을 당한 것 같습니다, 사장님. 전력시스템 제대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해킹?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윤서경은 문득 어떤 대상을 떠올렸다.
‘젠장, 테네시야. 지금 세상에서 엘리시움의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는 건 테네시뿐이다!’
그는 멀티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폐문이 개방되면서 보안요원들과 헬돔의 전사들이 서울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윤서경은 이를 부득 갈며 인터폰에 대고 외쳤다.
“애니그마 연구소와의 연결회선을 모두 차단해! 일급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모든 보안요원들을 출동시켜!”
엘리시움의 보안요원들이 메트로4호선 승강장에서 대합실까지 이어지는 계단 좌우에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었다. 보안요원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전투적인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점령군을 영접하는 듯한 태도였다.
부국장 손동필은 앙드레와 하대수 일행을 1층 대합실까지 안내했다.
대합실 한쪽에서는 수백 명의 서브시티 거주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헬돔의 전사들을 바라보는 그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젖어 나직이 속삭였다.
“어머나, 저들이 얘기로만 듣던 헬돔 사람들이야?”
“맞아. 저기 덩치 좋은 사람이 헬돔의 사령관 하대수이지.”
“세상에나. 저렇게 어린 청년도 헬돔의 전사인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헬돔의 전사들이 엘리시움 본사까지 진입하다니.”
2층 계단 앞에 이르자 손동필이 하대수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저는 여기까지만 모시겠습니다, 사령관.”
“수고했네. 덕분에 무의미한 전투를 피할 수 있었어.”
“백 국장님의 복수를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지. 우리 헬돔 역시 백인호 보안국장의 영웅적인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네.”
하대수은 대합실의 서브시티 거주민들을 쓸어보고는 2층 계단으로 향했다.
“가자. 이제 윤서경과 경호국 놈들만 남았다.”
“내가 길을 열겠소.”
김석현이 세 명의 전사를 대동해 앞서 계단을 오르자 앙드레와 요아가 뒤를 따랐다.
요아는 강철민의 죽음이 눈에 밟혀서인지 눈알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글라스타가 그렇게 가다니…….”
앙드레는 요아의 어깨를 감쌌다.
“마음으로만 간직해. 우린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요아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물론이야. 윤서경 그 새끼를 꼭 내 손으로 죽이겠어.”
두 사람은 계단을 돌아 2층으로 올라섰다.
멀티비전을 통해 역내 상황을 지켜보는 윤서경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헬돔… 역시 무서운 놈들이야.”
전투 상황은 지극히 비관적이었다.
사태의 불리함을 판단한 경호국 요원들 대부분이 도주했기에 남은 병력은 3층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호요원 몇 명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엘리시움의 전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안국 요원들이 돌아선 게 결정적이었다.
손동필이 보안요원들에게 좀비들을 역내로 끌어들인 윤서경 의 악행을 알리자 그들은 중립을 선언했다. 그 바람에 전투의 양상은 헬돔 대 윤서경으로 축소된 것이다.
황해가 가라앉은 어조로 피신을 권했다.
“사장님, 더 이상 엘리시움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속히 피하십시오.”
“황 국장은 왜 나를 떠나지 않은 건가?”
“사장님께서는 저를 믿고 경호국장에 임명하셨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황해의 절대적인 충성심에 윤서경은 다소 기분이 풀어졌다.
“그래, 황해. 자네가 존재하는 한 엘리시움은 지켜질 거네. 내 걱정은 말고 나가서 헬돔의 버러지들을 쓸어버리게.”
3층의 경호국 요원들이 항복하면서 엘리시움 본사는 거의 점거되었다. 남은 곳은 윤서경 사장의 집무실뿐이었다.
하대수는 전사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나단과 백세훈이 부상을 당했지만 거동은 가능했다. 유빈은 다리에 총상을 당해 요아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 관통상이었기에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요아가 유빈의 허벅지에 붕대를 감아주면서 나무랐다.
“인마, 그래서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괜찮아, 누나. 영광의 상처잖아?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너무 멀쩡하면 오히려 의심을 받는다고.”
앙드레가 유빈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잘 싸워주었다, 유빈. 넌 이미 훌륭한 전사가 됐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넌 이곳에 남아 계단을 지켜라.”
“옛, 써!”
유빈은 입고 있던 방탄조끼를 벗어 요아에게 건넸다.
“누나가 입어.”
“난 괜찮아. 방탄조끼는 볼썽사나워서 싫어.”
“이거 입어도 누나 몸매는 여전히 예뻐.”
“욘석이 말하는 것 보게?”
“누나가 다치는 것이 싫어서 그래.”
“다치기는 누가 다쳐? 총알도 나는 빗겨 가.”
“옆구리 상처는 뭔데?”
“뭐라고? 어디……?”
요아가 옆구리를 살펴보니 언제 총알이 스쳤는지 옷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기, 언제 스친 거야?”
요아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방탄조끼를 걸쳐 입었다.
이때 3층 계단 위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앙드레와 요아가 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김석현과 나단이 복도 옆에 쓰러져 있는 백세훈을 응급처치하고 있었다. 백세훈은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팔과 다리에 총탄을 맞아 부상이 심했다.
탕, 탕, 탕!
하대수는 모퉁이에 몸을 붙인 채 복도를 향해 아나콘다 권총을 쏘고 있었다. 그러자 복도 안쪽에서 무수한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투투투!
앙드레가 하대수 옆으로 다가섰다.
“어떻게 된 거요?”
“전사들이 복도로 진입하려다가 다쳤어. 황해 새끼가 복도를 지키고 있는데 강력한 발칸총을 지녀 제거하기가 쉽지 않군.”
“내가 맡겠소.”
앙드레는 시그556을 등 뒤로 돌리고 매그넘 권총을 뽑아들었다.
요아가 모퉁이에 바싹 몸을 붙였다.
“내가 엄호할게.”
“발칸 기관총은 강력하니 조심해.”
“앙드레도.”
요아는 복도 쪽으로 손을 내밀어 자동소총을 발포했다. 동시에 앙드레가 복도로 뛰어들었다.
투투투!
황해는 복도를 막아선 채 핸들을 돌려 발칸 기관총을 갈겨댔다. 수십 발의 총탄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면서 바닥으로 탄피가 수북하게 쌓였다.
복도로 뛰어든 앙드레가 벽을 타고 달리면서 매그넘을 발포했다.
탕, 탕, 탕!
황해는 앙드레를 겨냥해 최대 연사로 발칸총을 퍼부었다.
“죽어, 새끼야! 죽어!”
복도 벽면을 타고 총탄 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앙드레는 천장을 타고 반대편 벽으로 이동하면서 발칸총을 피해냈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왼발 덕분에 가능한 몸놀림이었다.
“씨발, 뭐가 이렇게 빨라!”
황해가 앙드레를 겨냥해 총구를 이동시키는 사이 앙드레가 복도 바닥을 타고 길게 미끄러졌다. 그의 손에서 매그넘이 발포되었다.
탕, 탕!
이마와 가슴에 적중된 황해가 뒤로 쓰러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발사 핸들이 회전하면서 천장으로 총탄을 퍼부었다. 죽으면서까지 발칸총을 움켜쥔 그의 집요함을 끔찍할 정도였다.
투투투!
바닥으로 탄피가 수북하게 쌓이면서 이내 총성이 멈추었다.
황해가 쓰러지자 요아와 가장 먼저 달려왔다. 뒤이어 하대수와 김석현, 나단이 복도로 들어섰다.
요아가 앙드레의 몸을 살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깨끗해.”
하대수가 문 앞에 서자 김석현이 제지했다.
“사령관, 함정이 있을 수 있으니 내가 문을 열겠소.”
“아니야. 엘리시움을 점령하는 순간이니 내가 깃발을 꽂아야지.”
하대수는 두 손으로 힘껏 문을 밀쳤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9번이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윤서경은 자신의 집무의자에 앉아 와인을 마시면서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하대수 뒤에 늘어선 앙드레와 헬돔 전사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윤서경은 지휘를 하듯 손짓을 해댔다. 자신의 방에 들어선 침입자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태도였다.
그의 오만한 작태에 요아가 씨근거리며 대검을 뽑아들었다.
“개새끼, 뭘 믿고 이렇게 거들먹거리는 거야? 눈알부터 뽑아주랴?”
한데 그녀는 윤서경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이마를 감싸 쥐어야 했다.
“아얏!”
요아는 손을 내밀어 허공으로 더듬어 보았다.
매끄러운 유리벽이 손가락에 느껴졌다. 방탄유리가 실내 절반을 통째로 가로막고 있었다. 워낙 투명한 재질이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윤서경은 느긋하게 담배파이프를 빨면서 일어섰다.
“훗, 어리석은 것들. 너희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대수가 방탄유리벽을 향해 아나콘다 권총을 겨누었다.
“발포!”
김석현과 요아, 나단이 자동소총을 마구 쏘아댔다.
티티팅……!
한데 총알은 방탄유리에 막혀 모두 튕겨졌다. 방탄유리가 얼마나 견고한지 무수한 총격에도 희미한 탄적만 새겨졌을 뿐이었다.
“하하핫!”
천장의 스피커를 통해 윤서경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서경은 방탄유리 앞으로 다가섰다.
“쓸데없는 짓 마라. 총으로 뚫릴 방탄유리가 아니니까.”
하대수는 방탄유리 너머의 윤서경은 향해 계속 아나콘다 권총을 쏘았다. 권총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분노를 쏟아내야 했다.
총알이 떨어지자 하대수가 비로소 권총을 내렸다.
“윤서경, 이 비열한 새끼! 곱게 죽을 생각은 마라.”
“하하, 너희는 나를 죽일 수 없어. 왜냐고?”
윤서경은 앙드레가 서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앙드레, 너에 대한 파일을 읽어보니 흥미롭군. 넌 엘리시움과 맞서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네 신체의 소유권이 애니그마 연구소에 있음을 잊은 것이냐?”
하대수 일행이 흠칫 놀라며 앙드레에게 눈길을 돌렸다.
앙드레가 침묵을 지키자 윤서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네가 이미 테네시와 접촉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네가 언급한 대로 이곳 엘리시움이 애니그마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음을 인정하지.”
윤서경이 솔직하게 털어놓자 하대수이 거칠게 물었다.
“더러운 새끼, 애니그마 연구소에서는 대체 왜 악마 같은 좀비 바이러스를 개발한 거냐?”
“하대수, 지금은 앙드레와 얘기중이다.”
윤서경은 하대수을 일축하고는 말을 계속했다.
“앙드레. 애니그마 연구소에서는 너를 해부하지 않고 첨단 의족까지 달아서 전사로 되살려 주었다. 따라서 너는 당연히 엘리시움의 소유물이다. 네게 복귀를 명령하겠다, 앙드레. 당장 헬돔의 쓰레기들을 제거해라!”
애니그마 연구소의 소유물.
전혀 예상치 못한 진실이 밝혀지자 김석현과 나단이 앙드레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자 요아가 앙드레를 막아서며 강하게 반발했다.
“무슨 짓이야? 당장 총 치우지 못해? 아무렴 앙드레가 저 악마 같은 새끼한테 협력하겠어?”
앙드레는 방탄유리를 사이에 두고 윤서경 앞으로 다가섰다.
“내 딸 제니는 무사한 것이냐?”
“아, 네 딸 이름이 제니였던가? 당연히 잘 있지. 본사의 최고 의료진들이 동원돼 치료제를 개발 중에 있다.”
“네놈을 믿을 수 없으니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좋아. 헬돔의 쓰레기들을 제거하면 너를 런던 본사로 보내주겠다.”
앙드레가 하대수 쪽을 돌아보자 김석현과 나단이 노리쇠를 후퇴시켰다.
철컥철컥!
금세라도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
요아는 급반전된 분위기에 크게 당황했다. 죽여야 할 표적을 목전에 두고 내분을 일으켜 자칫 서로가 몰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요아는 김석현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누구든 앙드레를 쏘기만 해!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윤서경은 방탄유리 저편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후훗! 뭐하는 거냐, 앙드레? 네 능력이라면 혼자서도 헬돔의 버러지들을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
이에 하대수가 손을 뻗어 김석현과 나단이 겨누고 있는 총구를 내렸다.
“그만 둬. 윤서경 같은 놈에게 회유될 친구가 아니니까.”
앙드레는 방탄유리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누구도 내 딸의 목숨으로 나를 위협할 수 없다. 네놈도 마찬가지다.”
“앙드레, 네 스스로 서명한 신체포기각서의 약조를 어기겠다는 거냐?”
“네놈들이 내 아내 지나를 죽였어. 나를 실험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내 아내를 살해한 것이다. 그런 네놈들한테 약조를 지키란 말이냐?”
앙드레는 방탄유리를 향해 왼발을 뻗었다.
퍼억!
둔탁한 폭음과 함께 방탄유리에 미세하나마 실금이 새겨졌다. 앙드레가 재차 왼발을 뻗자 방탄유리에 거미줄처럼 균열이 생겼다.
쩌어엉……!
윤서경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큿, 멍청한 놈. 역시 군인은 어쩔 수 없다니까.”
그는 탁자 위에서 게임용 조이스틱 같은 장치를 집어 들었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순간 천장의 판넬이 열리면서 두 정의 발칸 기관총이 내려왔다.
하대수가 급히 뒤로 물러섰다.
“피해!”
윤서경은 싸늘한 미소를 띠며 발사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게 가능할까?”
투투투–!
두 자루 발칸 기관총이 회전하면서 어마어마한 총탄을 퍼부었다. 하대수과 김석현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고 방탄조끼를 입고 있던 요아와 나단도 나가동그라졌다.
“멈춰!”
바닥을 박차고 떠오른 앙드레가 좌측의 발칸 기관총을 왼발로 걷어차 박살냈다. 이어 우측의 발칸 기관총마저 부수고는 요아에게 달려갔다.
“요아, 괜찮아?”
요아는 앙드레의 팔에 안겨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그… 그런 것 같아.”
앙드레가 살펴보니 요아가 입고 있는 방탄조끼 몇 곳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 충격으로 나가동그라졌지만 다행히 부상은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요아는 방탄조끼에 박힌 총알을 더듬었다.
“유빈이 날 살렸군.”
“요아는 사령관과 김석현을 살펴 봐. 윤서경은 내가 맡겠다.”
“부탁이야, 앙드레. 윤서경 저 새끼를 꼭 죽여 줘.”
“약속하지.”
앙드레는 다시 방탄유리벽 앞으로 다가섰다.
윤서경은 쥐고 있던 발사 장치를 뒤로 던졌다.
“마지막 기회다, 앙드레. 계집을 죽여. 네 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네놈은 그럴 권한도 없다!”
앙드레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방탄유리를 힘껏 걷어찼다.
쩌저정!
방탄유리벽 전체로 선명한 균열이 퍼져나갔다.
윤서경 사장는 싸늘한 눈빛으로 앙드레를 직시했다.
“앙드레, 네놈의 어리석은 결정을 후회하게 될 거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탁자 뒤쪽의 벽으로 다가섰다.
기이잉……!
자동문이 열리며 윤서경은 사라졌고 이내 문이 닫혔다.
“윤서경–!”
앙드레는 고함을 외치며 방탄유리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와장창!
방탄유리가 깨지면서 앙드레가 내부로 진입했다. 급히 자동문 앞으로 다가섰지만 암호장치가 돼 있는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이때 요아가 깨진 방탄유리벽 안으로 들어섰다.
“물러서. C4로 박살낼 테니까.”
요아는 자동문에 C4 폭약을 붙이고는 기폭장치를 꽂았다.
뒤로 물러선 두 사람은 벽에 바싹 붙어 섰다.
앙드레가 방탄유리벽 저편을 살피며 물었다.
“사령관과 김석현은 어때?”
“부상이 심하지는 않아. 다행히 모두들 치명상은 피했어.”
“다행이군. 이제 윤서경만 잡으면 되겠어.”
콰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C4가 폭발하면서 자동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서둘러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투타타타……!
프로펠러 소리가 머리 위쪽에서 들렸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실내 헬기이착륙장이었다. 반구형 천장이 좌우로 열려 있었고 한 대의 헬기가 천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한국형 소형헬기 제비스였다. 제비스는 수리온의 후속작으로 2020년 대에 개발된 신제품이다.
요아가 떠오르는 헬기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
“거기 서, 개새끼야!”
하지만 제비스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기에 부질없는 총질이었다.
요아가 손에 쥔 총을 바닥에 내려던지며 분통을 터뜨렸다.
“젠장, 놈을 놓쳤어!”
“아직 아니야!”
앙드레는 바닥을 박차고 높이 점프했다. 무려 10미터나 점프한 그는 반구형 천장 위로 올라섰다.
윤서경 사장가 직접 조정하는 제비스 헬기가 하늘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앙드레는 제비스를 향해 시그를 쏘아댔다.
투투투–!
탄창이 비자 앙드레는 다시 탄창을 갈아 끼워 재차 발포했다. 그러는 사이 제비스는 빌딩숲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허탈했다.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을 죽이지 못했기에 전신의 피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익, 윤서경……!”
분노에 차서 이를 갈던 앙드레는 문득 테네시를 떠올렸다.
“테네시 연결!”
귀에 꽂은 무선 통신기에서 테네시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앙드레. 축하드려요. CCTV를 통해 확인……”
“윤서경이 헬기로 도주했어! 추격해 봐!”
“예, 연결 가능한 위성을 찾아보겠습니다.”
“반드시 놈을 찾아야 돼!”
“위성 하나가 연결됐습니다. 수신 상태가 좋지 않군요. 아, 이동 신호가 잡혔어요.”
“어디야?”
“잠시 전 서울 중심가를 벗어났어요. 윤서경 사장이 헬기로 도주했다면 아마 도쿄로 향했을 겁니다.”
앙드레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도쿄라고?”
“예. 윤서경 사장은 애니그마 연구소의 동아시아 지부장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도쿄지부에서 전력을 재정비해 서울의 엘리시움을 탈환한 계획을 세울 것 같습니다.”
“알았어.”
앙드레는 스마트 워치의 액정을 눌러 통화를 끊었다.
윤서경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분노했지만 행선지를 간파했기에 조금은 허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윤서경… 네놈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
엘리시움이란 이름은 지워졌다.
이는 윤서경이 서브시티 거주민들이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호도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기에 사라져야 마땅했다. 엘리시움이 사라지면서 이에 반발해 만들어진 헬돔이란 이름도 사용이 금지 되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비현실적인 용어 대신 현실적인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메트로서울!
끔찍한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정부가 무너져 한민국이라는 이름조차 껍데기만 남았지만 이를 재건하기 위해 메트로서울이 탄생한 것이다.
메트로서울이 온전하게 유지되면 향후 메트로인천, 메트로부산, 메트로대전 등등 지하철과 도시철도로 연결되는 또 다른 메트로시티의 탄생이 가능하다.
이는 마치 고대의 도시국가처럼 자생적인 도시들이 형성되면, 좀비 세상이 끝나는 날 대한민국이 다시 재건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헬돔의 사령관에서 물러난 하대수는 메트로서울 내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부상이 심해 상당 기간 요양이 필요했다.
하대수 대신 김석현이 메트로서울의 임시 시장이 되어 서브시티의 안정을 꾀했다.
김석현은 보안국 요원들을 받아들여 예전처럼 구역별로 근무하게 하였고, 헬돔의 전사들은 메트로서울의 기동국 요원으로 임명했다.
기동국은 외부 순찰과 거주민들의 구조를 담당한다. 비록 소속이 바뀌었어도 예전처럼 좀비 사냥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메트로서울의 탄생은 암담한 절망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희망이 되었다.
누가 보아도 호감이 가는 소녀의 영상은 테네시였다.
앙드레와 요아는 메트로서울 임시 시장 김석현과 함께 시장실에서 멀티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석현은 한쪽 팔에 삼각건을 둘렀고 몸에도 붕대를 둘렀지만 안색은 비교적 좋아 보였다.
테네시는 메트로서울이 향후 지향해야 할 청사진을 CG를 곁들여 설명해 주었다.
“메트로서울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구시가지의 거주민들을 적극 영입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우선적으로 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인류의 미래이니까요.”
요아가 신선한 과일을 아삭거리며 물었다.
“메트로서울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서브시티 내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게다가 물자를 배급해주는 것은 쉽지 않고.”
“메트로서울을 정상적인 도시국가로 키우려면 도시농장부터 건설해야 합니다.”
“도시농장이라고?”
“예, 요아 언니. 지상의 고층건물들 이용해 농작물을 재배하는 거죠. 건물 바닥에 흙을 깔고 물만 제공되면 도시농장을 건설할 수 있어요. 또한 농장에서 대규모로 곤충을 생산하면 질 좋은 단백질 음식을 개발할 수 있지요. 일단 식량문제만 해결되면 메트로서울은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뭐야, 곤충을 먹고 살란 말이야?”
“도시농장에서는 축산업이 어려워요. 게다가 축산업은 환경이나 에너지 순환 측면에서 비효율적이죠. 곤충은 저비용 고효율인 최상의 먹거리입니다.”
“치이, 네가 먹을 거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기분 상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려요.”
테네시가 도시농장에서 재배되는 양곡과 과일, 곤충 생산물을 CG로 보여주자 세 사람은 절로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김석현이 호의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공지능 컴퓨터답게 총명하군. 사실 헬돔에서도 가장 큰 고민이 먹는 문제였어. 이전 세상에 남아 있던 가공식품도 바닥을 드러내기에 식량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었지. 한데 도시농장에서 식량을 자급할 수 있다면 메트로서울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겠군.”
“물론 도시농장을 개발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외부로부터 물을 끌어들이고 빛을 밝혀야 하기에 막대한 에너지가 요구되죠.”
앙드레가 맥주 캔을 내리며 물었다.
“연료와 전력 공급은 불칸에너지가 총괄하고 있는데 일단 그들의 협력이 필요하겠군.”
“맞아요. 불칸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는 당인리 발전소를 메트로서울에서 직접 관리해야 합니다. 전력 공급은 메트로서울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이죠.”
김석현이 삼각건을 두른 팔을 매만졌다.
“오진명이 과연 순순히 불칸에너지를 내줄까? 탐욕스런 늙은이라 교섭이 쉽지 않을 텐데?”
“그동안 불칸에너지는 엘리시움을 통해 식량과 보급품을 제공받았어요. 오진명 사장은 헬돔과 엘리시움을 동시에 견제하면서 불칸에너지를 침공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메트로서울만 존재하니 교섭이 가능할 겁니다.”
“알겠다. 다음에 또 연결하지.”
“옛, 써!”
멀티비전 영상을 통해 테네시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요아가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녀석, 갈수록 인간이 돼 가는 것 같아.”
앙드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요아와 함께 가서 오진명을 만나보겠소. 메트로서울은 물론이고 훗날 대한민국을 재건하기 위한 과정이니 오진명도 협력할 거요.”
“오 사장이 워낙 까다로운 성격이라 자네와 싸움을 벌일까 걱정이군. 불칸에너지에서 전력을 끊으면 메트로서울은 순식간에 마비되고 말 거네.”
요아가 머리카락을 뒤로 쓸며 짐짓 예쁜 모습을 지어 보였다.
“뭐, 정 대화가 안 되면 내 매력적인 미모로 녹여볼게.”
“글쎄, 네 미모 정도로 통할지……..”
“뭐야?”
요아가 눈을 치켜뜨자 김석현은 이를 무시하고는 앙드레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진명을 만난 후 곧바로 떠날 생각인가?”
“아마 그걸 거요.”
“고마웠네. 자네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어.”
“사례는 나중에 윤서경을 죽인 후 받겠소.”
“행운을 빌겠네.”
두 사람이 악수를 마치자 요아가 김석현을 가볍게 포옹했다.
“그럼 다녀올게.”
“오랫동안 못 보겠군.”
“어쩌면 빨리 돌아올 지도 몰라. 훌륭한 시장이 돼, 김석현.”
요아와 앙드레가 방을 나가자 김석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인터폰을 눌렀다.
“불칸에너지 오 사장을 연결해.”
“예, 시장님.”
오래지 않아 멀티비전을 통해 한쪽 눈에 안대를 댄 장발노인이 보였다. 불칸에너지의 사장 오진명이었다.
“그래, 김석현 교관. 아니, 메트로서울의 임시 시장이 됐다고 들었네. 크흣, 자네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빈정거리는 말투가 역력했지만 김석현은 이를 무시했다.
“오 사장, 메트로서울의 안정을 위해 불칸에너지의 협력을 기대하겠소. 교섭 팀을 보냈으니 만나 보시오.”
“당연히 만나야지. 에너지 단가를 두 배로 올려야 하니까.”
“가치도 없는 크레딧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요?”
“그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일세. 자네는 약속대로 크레딧을 납부하기만 하면 되네.”
“헬돔과 엘리시움도 정리됐으니 이제 우물 속 개구리 임금 노릇은 그만합시다.”
그러자 오진명의 음성이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김석현, 꼴 같지 않게 감히 누구한테 훈계를 하는 건가? 어둠의 쓴맛을 봐야 나를 두려워할 겐가?”
“우리가 보급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불칸에너지는 열흘도 버티지 못할 거요. 경비대원들이 모두 도주하면 당신 혼자서 불칸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겠소?”
“크흣, 보급을 중단하겠다고?”
오진명의 외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들거렸다.
“어디 암흑의 맛을 한번 보여주지.”
곧바로 멀티비전은 물론이고 실내의 모든 전등이 꺼졌다. 그러자 인터폰을 통해 다급한 보고들이 접수되었다.
“시장님, 시스템이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운행 중이던 메트로레인이 터널에 갇혔습니다!”
“공기 순환 장치가 정지돼 위험 수준입니다!”
김석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기!’
30초 후 다시 전력이 공급되었는지 다시 전등이 켜졌고 멀티비전도 연결되었다.
오진명이 오만한 어조로 내뱉었다.
“김석현, 누가 지배자인지 똑똑히 봤겠지? 불칸의 에너지를 제공받고 싶으면 메트로서울의 시장 직을 내게 바치게.”
“정식 시장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되는 거지 당신이 하고 싶다고 시장이 되는 게 아니오.”
“그럼 나를 시장으로 선출하라고 지시하게. 그렇지 않으면 제한송전의 고통을 맛보게 될 테니까. 카하핫!”
거만한 웃음소리와 함께 영상통화가 끊겼다.
김석현은 오진명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격분했지만 애써 감정을 자제했다. 지금 그는 좀비들이나 상대하던 헬돔의 훈련교관 카론이 아니었다. 수만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메트로서울의 임시 시장인 것이다.
김석현은 깊이 숨을 들이켰다.
“앙드레, 자네의 협상력을 기대하겠네.”
서울역 1층 대합실로 내려가던 앙드레와 요아는 갑자기 역내의 전등이 모두 소등되자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야? 좀비들의 습격인가?”
“설마 불칸에너지가 공격당한 것은 아니겠지?”
잠시 후 역내의 전등이 켜지면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메트로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불칸에너지에서 잠시 전력을 끊었지만 곧바로 복구되었습니다. 메트로레인도 정상으로 운행됩니다.”
요아가 대번에 상황을 간파했다.
“치이, 오진명 그 늙은이가 심술을 부린 거야.”
“전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횡포를 부린 거로군. 협상이 쉽지 않겠어.”
“협상이 안 되면 우리 방식대로 해야지, 뭐.”
요아는 허리춤에 찬 권총을 감싸 쥐었다.
이때 기동요원 복장 차림의 유빈이 다리를 절며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요아 누나, 아저씨!”
“오, 유빈.”
요아는 유빈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헝클어 놓았다.
“조만간 학교가 다시 열릴 거야. 공부 열심히 해.”
“학교에는 왜 가? 나도 이제는 어엿한 기동요원이야.”
“인마, 넌 전사 타입이 못 돼.”
요아는 유빈의 양 어깨를 감싸 쥐었다.
“나랑 약속해. 학교에 다니겠다고.”
“누나, 난…….”
“나와 앙드레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은근한 압박에 유빈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학교에 다닐게. 한데… 어디로 출동하는 거야?”
“응, 불칸에너지에 잠깐 들렀다가 도쿄로 갈 거야.”
“도쿄?”
유빈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바다를 건너겠다는 거야?”
“부산까지 가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나도 갈래.”
“허튼소리 마. 우리끼리 신혼여행 가는데 웬 훼방꾼이 끼어들려는 거야?”
“신혼여행…….?”
“큭큭, 말이 그렇다는 거야.”
요아는 유빈의 볼을 어루만져 주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나와 앙드레가 돌아오면 너를 진정한 전사로 만들어줄 테니까.”
“정말……?”
유빈은 앙드레에게 눈길을 돌렸다.
“정말이죠, 아저씨?”
앙드레는 유빈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래, 약속하겠다.”
“알았어요. 그동안 공부 열심히 하겠어요.”
요아는 엄지로 대합실 안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지금 사령관의 병문안을 가는 중인데 함께 갈래?”
유빈이 어색한 표정을 띠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난 됐어.”
“왜 그래, 유빈?”
“헤, 사실 어제도 병문안을 갔는데 갑갑해 죽겠다며 나한테 얼마나 욕설을 퍼부었는지 몰라.”
“풋! 병상에 누워 있어야만 하니 사령관 성격에 미치겠지. 알았다. 그럼, 우리끼리 병문안을 갈게.”
요아는 앙드레와 함께 대합실 안쪽으로 향했다.
유빈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누나, 신혼여행 잘 다녀와!”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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