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protective door”
차폐문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터널 출구가 견고한 철제 셔터로 봉쇄돼 있었다. 앞서 당도한 엘리시움 보안요원들이 차폐문을 부수기 위해 총을 쏘고 몸으로 부딪쳤지만 차폐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동필이 무선 교신기로 구원을 요청했다.
“중앙통제실! 나 보안부국장 손동필이다! 어서 4호선 차폐문을 열어, 어서!”
그러나 이내 교신이 끊기면서 그의 외침은 공허한 절규가 되어 버렸다.
잠시 후 당도한 하대수와 김석현이 차폐문을 올려보았다.
“백인호, 어떻게든 열어 봐!”
백인호가 침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차폐문은 중앙통제실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소.”
“승강장에 자네 부하들도 있을 거 아닌가? 당장 차폐문을 열라고 해!”
“윤서경이 이미 외부와의 무선 교신을 막아버렸소.”
“젠장!
하대수는 차폐문을 살피고 있는 김석현에게 물었다.
“뚫을 수 있겠나?”
“개인화기로는 불가능하오. 강력한 폭약이 필요한데 그것으로도 가능할지 모르겠소.”
김석현이 강철민을 돌아보았다.
“C4를 얼마나 지니고 있나?”
“전투배낭 하나 정도일세.”
“그 정도로는 턱도 없어.”
곧이어 앙드레와 헬돔 전사들이 진입하며 보안요원들과 합류했다. 지금은 적이 아니라 동료가 되었지만 보안요원들은 여전히 헬돔을 경계했다.
앙드레가 차폐문을 두드리며 파괴가 가능한지 살피자 하대수가 고개를 저었다.
“꼼짝없이 갇혔네. 죽은 건 두렵지 않지만 윤서경 그 개새끼의 계략에 당했다는 것이 너무 분해!”
하대수가 절망적으로 말하자 보안요원들은 절망감에 빠져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그중 몇 명은 공포에 질려 울기까지 했다.
이를 본 요아가 보안요원들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새끼들아. 당장 울음 그치지 못해? 여기 헬돔의 어린 전사도 당당한데 너희 새끼들은 왜 이렇게 계집애 같아? 니미, 창피하지도 않냐?”
요아의 혹독한 질책에 보안요원들은 겨우 울음을 그쳤다.
백인호가 보안요원들을 한 명씩 다독이며 결연한 의지를 주지시켰다.
“모두들 마음을 굳게 먹어라. 우리의 임무는 좀비들로부터 엘리시움을 사수하는 거다. 상황이 조금 바뀌었지만 우리들의 임무는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운다. 각자 무기를 점검하라.”
보안요원들은 겨우 기운을 차렸지만 지독한 절망감 때문인지 표정이 어두웠다.
“씨발, 기분 더럽군. 하필 이런 막장 같은 곳에서 좀비 새끼들의 한 끼 식사가 되어야 하다니.”
요아는 한숨을 내쉬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다 유빈의 옷에 묻은 피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유빈, 너 다친 거냐?”
“아니야. 부상당한 보안대원들을 부축해 오느라 피가 조금 묻은 것뿐이야.”
“다행이군.”
“누나… 이제 우리 죽는 거야?”
유빈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묻자 요아가 그의 볼을 다독여주었다.
“죽기는 왜 죽어? 우리한테는 좀비 슬레이어가 있잖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절대 죽은 게 아니야.”
“정말이지?”
유빈은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 앙드레를 바라보았다.
앙드레는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살펴보았다. 서울역 승강장과 인접해서인지 미약하지만 통신신호가 잡혔다. 그는 차폐문에 바싹 몸을 붙이며 무선 통신기를 귀에 꼈다.
“테네시 연결.”
통화 신호가 안 좋은지 지글거리는 잡신호가 고막을 긁었다. 잠시 후 테네시의 음성이 들려왔다. 통화 신호가 불량해서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앙드레, 무사했군요.”
“아직은. 지금 메트로레인 4호선과 연결된 서울역 승강장 밖이야. 한데 차폐문이 워낙 강력해 파괴할 수가 없구나. 네가 좀 열어주어야겠다.”
“무리한 요구입니다. 메트로레인의 차폐문은 엘리시움의 중앙통제실에서만 작동시킬 수 있어요. 더군다나 지금은 통제실과의 연결마저 차단돼 있어 상황조차 파악할 수 없어요.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해요.”
“안 돼. 네가 반드시 열어주어야 돼.”
“앙드레,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저는 앙드레를 지원할 수 있지만 엘리시움을 공격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어요.”
이때 강철민이 터널 안쪽에서 달려왔다.
“사령관, 잠시 후 좀비들이 당도하오!”
“벌써?”
하대수가 헬돔 전사들을 이끌고 회현역 방향으로 이동했다.
“앙드레, 최대한 막아볼 테니 어떻게든 문을 열게!”
백인호도 보안요원들을 대동해 하대수의 뒤를 따랐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앙드레는 보다 강하게 테네시를 압박했다.
“테네시, 네게 있어 최우선 임무가 뭐냐?”
“좀비들로부터 인류를 지키고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임무입니다. 또한 앙드레를 생존을 최대한 지원해야 하죠.”
“좋아, 그렇다면 잘 들어. 네가 당장 차폐문을 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잠시 후 좀비들이 뛰어들어 나를 뜯어 먹을 거다. 내가 죽으면 네 임무는 실패하는 거야.”
“…….”
“명령하겠다, 테네시. 나를 구해라.”
“…….”
“어서 문을 열란 말이다! 테네시, 문을 열어!”
앙드레의 계속된 요구에 침묵을 지키던 테네시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기다리세요, 앙드레. 엘리시움 시스템을 해킹 중입니다.”
“오, 그래!”
앙드레는 비로소 한 가닥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 순간 회현쪽 방향 터널에서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투투투–!
헬돔의 전사들과 엘리시움의 보안요원들이 두 개의 선로를 각기 막아선 채 좀비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있었다. 아직 좀비들이 산발적으로 덤벼들기에 겨우 버틸 수 있지만 대규모로 몰려들면 전멸은 기정사실이다.
터널 안쪽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앙드레가 다시 데네시를 재촉했다.
“테네시, 일 분도 버티기 어렵다. 서둘러.”
곧바로 테네시의 음성이 들려왔다.
“앙드레,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차폐문을 열어도 엘리시움에서 곧바로 연결회선을 차단시킬 겁니다. 제 권한으로 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십초 정도에요.”
“고작 십초라고? 잠깐 기다려.”
앙드레가 무선 교신기를 통해 하대수에게 통보했다.
“사령관, 곧 차폐문이 열릴 거요! 퇴각을 준비하시오?”
“오, 정말 다행이군.”
“한데 십초만 정도만 열리는 상황이라 안전한 퇴각이 어려울 것 같소.”
“후우, 알겠네. 잠시 대기하게.”
무전을 끊은 하대수가 모두에게 외쳤다.
“조금만 더 버텨라! 문이 열린다!”
백인호가 탄창을 갈아 끼우며 소리쳐 물었다.
“정말이오, 사령관?”
“그래, 앙드레가 수를 낸 것 같아. 문제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거네. 십초 안에 모두를 대피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겨우 십초라고?”
백인호는 3열 횡대로 늘어서서 좀비들과 맞서는 보안요원들을 쓸어보았다. 집중사격으로 겨우 좀비들의 진입을 막아내고 있기에 단계적인 철수는 무리였다. 차폐문까지 퇴각하기도 전에 좀비들에게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깊이 고심한 백인호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는 지그시 이를 깨물었다.
‘누군가 좀비들을 저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내 몫이다!’
그는 한쪽에 놓여 있는 장비 중에서 화염방사기를 찾아냈다. 화염을 서너 번 방사할 분량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화염방사기를 짊어진 그는 주머니마다 C4를 가득 채우고는 하대수에게 다가섰다.
“사령관, 내가 최대한 저지할 테니 부하들을 대동해 속히 서울역으로 대피하시오.”
“백인호! 자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몰살을 면치 못하오.”
“백인호……!”
“윤서경… 그 악마를 꼭 죽여주시오.”
하대수는 백인호의 손을 굳게 쥐었다.
“약속하지. 꼭 약속하겠네!”
격한 감정으로 인해 하대수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백인호를 만류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백인호가 보안요원들 쪽으로 향하자 폭탄조끼를 걸쳐 입은 강철민이 하대수 앞에 섰다. 그는 하대수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사령관, 그동안 즐거웠소.”
“글라스타! 자네까지 왜 이래?”
“강철민 혼자서 좀비들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사령관도 잘 알 거요.”
“안 돼! 자네를 잃을 순 없어!”
“난 좀비들과 싸우다 죽는 게 소원이었소. 오늘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은 것 같소.”
“철민……!”
“우리 헬돔의 전사들이 엘리시움 따위의 지원을 받아 퇴각하는 건 내 자존심 상 용납할 수 없소.”
강철민은 양손에 자동소총을 쥐고 헬돔 전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건만 그의 발걸음은 주저함이 없었다.
“좀비 새끼들아, 헬돔의 전사 강철민이 간다!”
하대수는 또 한번 가슴 쓰라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강철민과는 삼 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사이였기에 비통함이 더 깊었다. 그가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눈물이라고 쏟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감상에 젖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하대수는 무전 교신기를 통해 앙드레에게 지시를 내렸다.
“앙드레, 삼십 초 후에 문을 개방하게!”
투투투–!
엘리시움 보안요원들과 헬돔의 전사들은 쉴 새 없이 탄창을 갈아 끼우며 수류탄을 던졌지만 좀비들의 돌격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수백 구의 좀비들이 널브러졌지만 부서진 사체를 짓밟고 달려드는 좀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양측의 연합부대가 조금씩 뒤로 물러서면서 아무리 갈겨대도 좀비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급기야 하반신이 부서진 좀비 한 구가 바닥을 기어 금발 보안요원의 종아리를 깨물었다.
“아악!”
동료가 좀비들에게 뜯기는 참혹한 광경에 보안요원들은 바싹 얼어붙었다. 그들의 공격이 주춤하는 사이 좀비들이 봇물처럼 달려들었다.
이때 연합부대를 헤치며 두 사람이 뛰어들었다.
“모두 퇴각해라! 우리가 맡겠다!”
강철민이 양쪽 옆구리에 두 자루 자동소총을 낀 채 마구 쏟아댔다. 이어 백인호의 화염방사기가 불길을 뿜어내자 터널 내부가 불바다로 화했다.
화르르륵!
불길에 휩싸인 좀비들의 비명소리가 귀곡성처럼 섬뜩했다.
손동필이 보안요원들을 대동해 먼저 달아났다.
“퇴각하라!”
요아가 강철민 옆에서 함께 총격을 가하며 외쳤다.
“대체 무슨 짓이야, 글라스타?”
“나와 백인호가 저지할 테니 어서 피신해.”
“오, 맙소사!”
“서둘러! 네가 가야 앙드레도 움직일 거야.”
요아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 철민! 정말 미안해!”
그녀는 유빈의 손을 잡고 차폐문 쪽으로 달려갔다.
김석현도 나단과 백세훈과 함께 퇴각했다. 강철민을 돌아보는 그의 눈에 깊은 아픔이 피어올랐다.
‘자네를 잊지 않겠네, 강철민!’
헬돔과 엘리시움의 연합부대가 모두 퇴각하자 백인호와 강철민은 서로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강철민, 함께 가니 저승길이 외롭지 않구나!”
“오냐, 백인호! 신나게 싸워보자!”
강철민은 탄창이 빌 때까지 자동소총을 쏘아댔고 백인호도 방사통의 화염을 모두 방출했다.
“카우우우!”
좀비들은 몸이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탕, 탕, 탕!
화염방사기와 자동소총을 내던진 백인호와 강철민이 권총으로 응수하면서 천천히 물러섰다.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기에 좀비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침내 권총의 탄창마저 비자 좀비들이 달라붙어 무자비하게 두 사람을 물어뜯었다.
백인호와 강철민은 손을 맞잡았다.
“함께 있어 줘서 고맙다, 철민.”
“내가 할 소리다, 인호.”
강철민이 폭탄조끼의 기폭장치를 눌렀다.
순간 엄청난 폭음이 터널 전체를 진동시켰다.
쾅–콰콰쾅!
강철민의 폭탄조끼가 폭발하면서 백인호가 지니고 있던 C4가 동시에 터진 것이다. 엄청난 폭발력에 터널 일부가 붕괴되었고 수백 구의 좀비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강철민와 백인호.
그들의 죽음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한 장렬한 희생이라기보다 좀비들을 향한 인간의 분노였던 것이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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