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Revealed Truth, and the Shock”
밝혀진 진실, 그리고 충격
메트로레인 15호선 제 10 구간의 안전이 확보되자 엘리시움의 방역팀과 수거팀이 진입했다. 한데 이번에는 보안과장이 직접 수십 명의 보안요원들을 대동했다.
11번 게이트 앞에 이른 보안과장이 웃음 띤 표정으로 말했다.
“고생 많았소. 하지만 이번 전투에 많은 전사들이 희생돼 더는 여러분한테 임무를 맡길 수 없게 되었소. 이제부터 우리 보안팀이 맡겠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술수에 요아가 보안과장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닥쳐! 헬돔 전사들 여덟 명이 전사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너희가 날로 먹겠다는 거냐?”
“오해 마시오, 요아 대장.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조치일 뿐이니까. 역장님께서 약속대로 헬돔의 메트로레인 통행을 보장할 거요.”
“헛소리 마. 내가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갈 것 같아? 최초의 계약대로 우리가 마지막 구간까지 확보하겠다. 그래야 더는 딴소리를 못할 테니까.”
보안과장이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고작 셋이서… 아니, 마이클은 우리 보안팀으로 복귀하게 될 테니 둘뿐이군. 당신들 둘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는 마이클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턱짓을 보냈다.
“마이클, 가이드는 여기까지로 충분해. 복귀하게.”
마이클은 회전식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면서 시큰둥하게 응수했다.
“보안과장, 아직 내 임무가 끝나지 않았어.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남의 공을 가로채려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감히 상관의 명에 거역하겠다는 건가?”
“어, 당신이 내 상관이었나?”
마이클은 주머니에서 신분카드를 꺼내 보안과장에게 던져 주었다.
“이제 됐지? 난 더 이상 엘리시움 소속이 아니야. 그러니 당신의 명령을 받을 이유가 없어.”
“으으, 네가 감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상부의 승인도 받지 않은 것 같아. 13호선 통행 재개를 자신이 이루었다고 거짓 보고를 하려는 거잖아? 뭐, 이런 게 엘리시움의 방식이니까.”
잠자코 있던 앙드레가 분명하게 말했다.
“보안과장, 난 엘리시움의 운영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면 그때 모든 공을 차지해도 좋아. 그전까지는 나대지 마.”
앙드레는 정글 칼을 뽑아 보안과장의 목에 들이댔다.
“너 같은 쥐새끼의 목을 당장 날려버리기 전에.”
싸늘한 칼날에 목덜미에 닿자 보안과장은 하얗게 질렸다.
마이클이 지적한대로 그는 역장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보안팀을 인솔해 달려온 것이다. 이미 위험한 고비를 넘겼기에 나머지 구간 정도는 소속 보안요원만으로 접수할 수 있다고 지레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판단했다.
보안과장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데… 앙드레. 날 죽이면 당신이 아무리 레벨 블랙의 신분이라도 무사할 수 없소.”
“내 인내를 시험하지 마. 한번 주둥이를 나불대면 진짜로 목을 날려 버릴 테니까.”
앙드레는 엄중하게 이르고는 보안요원들을 향해 지시했다.
“너희들의 지원은 필요 없다. 만일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면 그때는 너희가 나서도 좋다. 그전까지는 끼어들지 마라.”
보안요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서로를 보았다.
족히 수천 구의 좀비들을 제거한 앙드레 일행이기에 감히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적으로 그들이 우세할지는 몰라도 단지 공명심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앙드레가 정글 칼을 내리자 보안과장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좋아, 당신들의 최후를 즐겁게 지켜보지. 더 이상의 보급도 없으니 마음대로 해.”
“보급은 필요 없디. 방해만 마라.”
앙드레는 요아와 함께 게이트 앞으로 다가섰다.
“마이클, 게이트 열어.”
“옛, 써!”
마이클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고는 레버를 당겼다.
그그긍……!
게이트가 열리면서 눈이 부실 만큼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천장의 LED전등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통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좀비들의 침입을 전혀 받지 않은 광경이었다.
세 사람이 통로로 들어서자 게이트가 닫혔다.
보안과장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제기, 마지막 구간은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세 연놈마저 이번 구간에서 모두 죽었다면 내가 메트로레인 통행을 재개시킨 영웅이 되는 거였어.”
그는 보안요원 몇을 게이트 앞에 배치시켰다.
“놈들에게 별다른 소식이 없으면 너희가 십일 구간으로 진입해. 연후 내게 보고해라.”
환기시설까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연결통로 내부는 아주 쾌적했다. 바닥의 먼지도 그다지 두텁지 않았다.
요아는 밝은 조명에 눈이 부신 듯 예전에 앙드레에게서 빼앗은 선글라스를 썼다.
“이렇게 밝은 실내는 처음이야. 불칸에너지를 통해 무제한의 전력을 공급받나 보군.”
마이클이 주변을 쓸어보면서 말을 받았다.
“애니그마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발전시설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어.”
“내부에 발전시설이 있단 말이야?”
“초소형 원자력 발전소가 지하에 설치돼 있다고 하더군. 좀비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시기에 긴급하게 들여왔다는 얘기를 들었어.”
“도심 한복판에 원자력 발전소가 설치돼?”
“발전 용량이 십 메가와트 이하 급이면 설비가 크지 않겠지. 뭐, 좀비들 세상이 되면서 이를 통제하는 정부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겠어?”
“내가 방사능은 질색이야. 내 고운 피부가 훼손될 우려가 있거든.”
요아는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슬렀는지 본래의 활달한 기질을 드러냈다.
긴 직선 통로 어디에도 좀비의 흔적은 없었다. 외부와 연결되는 문도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매끄럽게 마감질이 돼 있는 게이트 앞에 이르렀다.
ENIGMA GLOBAL RESEARCH (EGR).
게이트에 새겨진 글자가 선명했다.
요아가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번 구간은 그냥 통과했군. 하기는 이럴 때도 있어야지.”
이때 앙드레의 스마트 워치가 진동했다.
앙드레는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래, 테네시. 애니그마 연구소 지하 연결통로에 당도했다.”
“알고 있어요, 앙드레. 늠름한 모습을 보고 있어요. 여전사 분과 카우보이 분이 동행했군요.”
요아는 게이트 상단에 설치돼 있는 두 대의 감시 카메라를 찾아냈다.
“호오, 감시 카메라까지 제대도 작동되나 보네?”
앙드레가 카메라를 올려보며 물었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야?”
“아직 처리해야 할 적이 있어요. 일단 지하연구동으로 들어오세요.”
기이잉……!
부드러운 소음과 함께 게이트가 좌우로 열렸다.
통로 좌우로 사무실 문이 늘어서 있는 복도가 보였다. 한데 연결통로와 달리 다소 어두웠고 복도 바닥이 잡동사니로 인해 어수선했다.
게이트가 닫히자 요아와 마이클은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앙드레 역시 전면을 주시한 채 통화했다.
“테네시, 넌 어디 있는 거냐?”
“전 지하통제실에 있어요. 지하 백 미터 깊이인데 오로지 엘리베이터로만 출입이 가능하죠.”
“이곳 지하연구동은 왜 이래? 혹시 좀비들의 침입을 당한 거야?”
“외부와는 차단된 상태이지만 돌연변이 괴물들이 있기는 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희 연구소에서 동물을 이용해 좀비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겨 연구원들이 모두 죽었어요.”
“뭐야?”
데니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럼 제니는? 제니는 무사한 거야?”
“예, 제니는 무사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테네시, 설마 지하통제실에 너 혼자만 있는 거야?”
“맞아요. 저 혼자입니다.”
“맙소사!”
앙드레는 테네시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음성으로만 판단한다면 테네시의 나이는 절대 많지 않다. 어린 소녀가 혼자 지하 백 미터 깊이에서 외부와 단절돼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만 생각되었다.
“내가 곧 찾아갈게. 여기 세 사람이 있으니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야. 게다가 메트로레인도 머지않아 통행이 재개될 테니 연구소도 활기를 되찾을 테고.”
“앙드레.,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지하연구동의 상황이 위태롭습니다. 돌연변이 짐승들은 아주 빠르고 강해요. 좀비들보다 무서운 존재들이니 조심하셔야 해요.”
요아가 앙드레의 이어폰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이봐, 꼬마. 돌연변이들이 있는 곳이나 말해. 어떤 괴물이든 모조리 처치할 테니까.”
“돌연변이들은 제가 원격으로 유인해 중앙연구실에 가둬 놓았어요. 지하통제실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앙연구실의 돌연변이들을 제거해야 해요.”
“오케이. 꼬마는 이 언니를 위해 진한 에스프레소나 준비해 놓고 있어.”
“아, 에스프레소? 가능해요. 커피머신에 에스프레소를 프로그래밍해 놓겠어요.”
앙드레는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중앙연구실은 어디에 있지?”
“복도를 따라 좌측 세 번째 문이에요.”
“알았어.”
앙드레는 통화를 끊고는 세 번째 문 앞에 이르렀다.
투명한 강화 유리문을 통해 내부의 실험기자재와 설비들이 보였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테네시가 보고 있는지 강화 유리문이 저절로 열렸다.
세 사람이 들어서자 곧바로 문이 닫혔다.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바닥으로 깨진 유리조각이 널브러져 있었고 부서진 설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중앙연구실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몇 개의 칸막이로 구분이 돼 있었으며 유리 기둥형 수조에서 보글보글 물거품 소리가 들려왔다.
수조 안에는 하나 같이 기형적인 괴물들이 들어 있었다.
인간의 몸을 지녔지만 눈이 여러 개 달린 괴물, 삼쌍둥이처럼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두 개 기형아, 버러지와 짐승의 혼합체, 문어처럼 팔과 다리가 여덟 개는 괴는 돌연변이 등등 보기만 해도 역겹고 끔찍했다.
어지간히 비위가 좋은 요아도 구토를 느껴야 했다.
“제기, 애니그마 연구소 놈들은 대체 왜 이런 괴물들을 만든 거지?”
“좀비 바이러스의 변형체들인가 보군.”
일순 짐승의 거친 숨소리를 감지한 앙드레가 연구실 내부를 향해 시그를 겨누었다.
숨을 헐떡이며 여러 마리의 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가죽에 피고름이 줄줄 흐르는 돌연변이 개들이었다. 몇 마리는 일전에 앙드레가 자신의 집을 찾아가면서 처치한 적이 있는 머리 셋 달린 좀비개보다 훨씬 컸다.
“크르르!”
허연 이빨을 드러낸 개들은 붉은 눈을 번들거리다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돌연변이는 개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돌연변이 고양이들이 천장과 벽을 타고 나는 듯이 접근해 왔다.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일제히 총을 쏘아댔다.
투투투, 탕탕!
소총과 권총이 연이어 불을 뿜었다. 한데 돌연변이들은 털가죽이 얼마나 질긴지 총알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 같은 개가 세 개의 아가리로 동시에 마이클을 공격했다.
“새끼, 끔찍하군.”
마이클은 세 개의 아가리를 조준해 속사로 발사했다.
퍼퍼퍽!
대가리가 터진 케르베로스 개가 마이클 앞에서 풀썩 쓰러졌다.
요아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돌연변이 고양이들을 향해 마구 쏘아댔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다보니 대응이 쉽지 않았다.
“앙드레, 도와 줘!”
요아의 요청에 앙드레는 돌연변이 개들을 향해 시그를 발사하고는 훌쩍 뛰어올랐다. 그는 허공에 뜬 상태에서 정글 칼을 뽑아 휘둘렀다.
퍼퍼퍽!
동강난 고양이들의 사체가 사방으로 널브러졌다.
고양이들은 천장과 벽을 자유롭게 타고 달리면서 재차 요아를 노렸다. 집중적인 공세에 요아는 결국 팔과 다리가 물리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아악!”
“요아!”
앙드레는 요아의 몸에 달라붙은 고양이들을 떼어내고는 정글 칼로 토막 냈다.
요아는 유리 수조에 등을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았다. 상처의 고통보다 감염된 고양이에게 물렸다는 심리적인 허탈감이 더 심했다.
그녀는 팔과 다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절망 어린 웃음을 흘렸다.
“큿, 이번은 내 차례였어.”
돌연변이 고양이들을 모두 해치운 앙드레가 급히 다가섰다.
“요아!”
요아의 한쪽 눈을 타고 가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앙드레, 먼저 간 녀석들이 내가 보고 싶은가 봐. 이글, 후퍼, 하이치, 토니…….”
“희망을 가져, 요아! 연구소에서 돌연변이를 키워냈다면 치료제가 있을 거야.”
“됐어… 저런 돌연변이로 사느니 차라리 죽을래.”
요아는 자신의 정수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즐거웠어, 앙드레. 꼭 제니를 만나.”
“멍청한 짓 마!”
앙드레는 요아의 권총 쥔 손을 후려쳤다.
“그만두라고 했지!”
그는 요아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반드시 치료해 줄게. 만일 불가하다면… 그때 내 손으로 죽여줄 거야.”
요아는 심한 한기를 느낀 듯 덜덜 떨었다. 얼굴빛이 급속도로 탈색되면서 백짓장처럼 변했고 눈알이 빨개졌다.
“그냥 죽여… 제발… 죽여 줘.”
앙드레는 요아의 뒷목을 쳐서 혼절시켰다.
좀비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기에 요아를 구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앙드레는 그녀의 죽음을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다.
일순 그는 과거 아프리카 부락에서 벌였던 좀비들과의 전투를 망각 저편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단편적이지만 좀비들과 싸웠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맞아. 당시 나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코요테한테 다리를 물렸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다리를 잘랐지. 이후 난 애니그마 연구소로 후송되었고 살아났다. 그렇다면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도 가능한 거야.”
그는 자신의 의족을 매만져 보았다.
“분명 철족이었는데… 지금은 온전한 의족으로 바뀌었어. 애니그마 연구소에서 개조한 준 걸까?”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요아의 볼을 어루만졌다.
“요아, 내가 치료됐듯이 너도 치료될 수 있을 거야. 이곳 애니그마 연구소 안에서는 말이야.”
이 순간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깜짝 놀란 앙드레가 몸을 일으켰다.
예리한 촉수가 마이클의 가슴을 관통한 채 등까지 비집고 나왔다. 마이클은 그런 상태에서도 자신의 몸을 꿰뚫은 돌연변이를 향해 쌍권총을 발사했다.
탕, 탕, 탕!
총알은 뱀의 몸뚱이에 여인의 얼굴을 지닌 매두사 형상의 괴물 상반신에 박혔다. 하지만 얼마나 재생능력이 빠른지 이내 상처가 아물면서 총알을 뱉어냈다.
메두사는 뱀 꼬리를 휘둘러 마이클을 내동댕이쳤다.
‘마이클!“
앙드레가 마이클을 부축해 안았다.
가슴뼈가 으스러진 마이클은 붉은 피를 뭉클뭉클 토해냈다.
“캡틴… 잠시나마…. 함께 해서… 영광…….”
마이클은 세찬 진저리를 치고는 그대로 목을 꺾었다.
앙드레는 깊은 한숨을 토하며 마이클을 눕혀 주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호감이 깊었기에 헬돔의 전사들을 잃었을 때보다 훨씬 가슴이 아팠다.
몸을 일으킨 앙드레는 메두사와 마주 섰다.
상반신은 뱀의 비늘로 덮여 있지만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반신은 뱀의 몸통이었는데 꼬리 끝이 독침처럼 날카로웠다.
여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작은 실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앙드레는 내심 의혹에 젖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메두사의 형상이 아주 낯설지 않은 것이다.
‘분명 예전에 본 얼굴인데……..’
문득 기억 한 조각이 또 떠올랐다.
오래 전 애니그마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자신을 빌란트 소장에게 안내해 준 여자 연구원의 모습임을 기억해낸 것이다.
‘아, 그 연구원이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메두사는 날카로운 괴성을 발하며 앙드레를 향해 긴 손을 할퀴었다.
츄리릭!
손끝에서 긴 촉수가 뻗어 나와 앙드레를 휘감아왔다.
앙드레는 급히 몸을 틀며 정글 칼을 휘둘렀다.
파파팟!
다섯 개의 촉수가 동강났다. 끊어진 촉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메두사는 양손으로 연거푸 촉수를 발출했다. 뛰어난 재생능력을 지녔기에 촉수가 끊겨도 이내 재생이 가능한 것 같았다.
‘마이클이 총으로도 죽이지 못했어. 이런 괴물을 어떻게 죽인다 말인가?’
앙드레는 높이 점프해 촉수를 피해냈다. 그러자 메두사는 빠르게 꼬리를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에 메두사의 꼬리가 앙드레의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욱!”
바닥으로 추락한 앙드레는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며 애써 정신을 차렸다.
‘제니… 제니를 만나야 돼!’
딸을 만나기 위한 집념이 그의 정신력을 일깨웠다.
앙드레는 자신의 허벅지를 관통한 메두사의 꼬리를 향해 힘껏 정글 칼을 내리쳤다.
“카우우우!”
꼬리가 잘려나간 메두사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다. 상대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치명적인 부상을 의미했다.
몸을 일으켜 앉은 앙드레는 왼발로 바닥을 차며 앞으로 날아갔다. 비행을 하듯 몸을 쭉 편 그는 울부짖고 있는 메두사의 입을 향해 정글 칼을 찔렀다.
퍼억!
정글 칼은 메두사의 입을 관통해 머리까지 꿰뚫었다.
“커어억!”
메두사는 눈을 까뒤집은 채 엎어졌다. 머리카락 대신 우글거리던 실뱀들도 잡초처럼 축 늘어졌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쉰 앙드레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요아에게 다가갔다. 요아를 안아든 그는 중앙연구실 안쪽으로 이동했다.
“요아, 나도 감염됐어. 이제 우리가 살든 죽든 함께 하게 될 거야.”
엘리베이터 입구는 티타늄 셔터로 막혀 있었다.
앙드레가 다가서자 셔터가 올라갔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앙드레가 들어서자 문이 닫히면서 엘리베이터가 하강했다.
엘리베이터 내에는 보튼이 전혀 없었다. 모든 작동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기이잉…….!
엘리베이터는 깊고 깊은 지하통제실을 향해 하강했다.
앙드레는 안겨 있는 요아를 보며 나직이 뇌까렸다.
“요아… 그리고 보니 네가 지나를 닮았어. 기질은 전혀 다르지만…….”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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