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M13 – G7.”
M13 – G7.
육중한 철문에는 흰색 페인트로 덧칠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메트로 13호선 7번 게이트.”
모두 다섯 개 구간을 차지하고 있는 좀비들을 소탕해야 하는데 7번 게이트가 첫 번째 차단 문이었다.
마이클은 허리춤에 두 줄의 탄띠를 둘렀고, 상반신에도 X자로 교차된 탄띠가 그의 몸을 둘러쌌다. 무거운 장비가 그의 몸을 압박했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7번 게이트 앞에 선 마이클이 특유의 연설을 시작했다. 마치 전투의 긴장감을 무력화시키려는 듯 입담을 늘어놓으며, 싸늘한 분위기를 웃음으로 바꾸려는 모습이었다.
“지옥문 앞에 오신 특공대원을 환영합니다. 굶주린 좀비들이 여러분들의 신선한 피와 살에 환장할 겁니다. 좀비 바이러스의 무서운 감염 속도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 드리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가볍게 물리기만 해도 여러분이 좀비로 변한다는 점이지요. 그동안 엘리시움에서도 메트로레인 통행을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보안요원들이 좀비들의 만찬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지요.”
헬돔 전사들이 키득거렸다.
“큭큭, 마이클. 당신 말이야 엘리시움보다 우리 헬돔에 어울리는 것 같아.”
“그래, 어차피 함께 지옥문으로 들어가는데 친구처럼 지내자고.”
마이클이 대번에 말투를 바꾸었다.
“좋아, 친구들.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내가 시원한 맥주를 쏘겠다. 아, 그리고 재수 없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내가 지체 없이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그게 친구의 도리이니까.”
하이치가 활달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당연하지. 좀비로 산다는 것은 우리 헬돔 전사들에게는 치욕이니까. 물론 마이클 당신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내가 가장 먼저 천국으로 보내주겠어.”
“그리고 순조로운 통행 재개를 위해서라도 좀비들만 정확히 조준해. 사실 엘리시움에서 고성능 화염탄으로 터널내의 좀비들을 모조리 태우려 했지만, 그랬다가는 천장의 배선과 레일이 모두 녹아버려 메트로레인 통행재개가 불가하기에 시도하지 못했거든.”
앙드레가 요아와 헬돔 전사들을 둘러보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내키지 않는다면 억지로 작전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이글이 화염방사기의 노즐을 점검하며 툴툴거렸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난 간담이 작아서 좀비들만 보면 아랫도리가 오그라들어.”
요아가 이글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새끼, 뭐 오그라들 거시기라도 있어?”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좀비들과의 싸움에 이력이 난 그들이지만 퇴로가 막힌 상태에서의 전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부담을 웃음과 함께 날려버렸다.
하이치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게이트를 탕탕 쳤다.
“기다리기 지루하다. 어서 문 열어!”
마이클이 개폐 장치의 레버를 힘껏 잡아당겼다.
“기대하시라! 좀비 사냥, 개봉박두!”
레버가 움직이자 육중한 철문이 빠르게 상승했다.
그그긍…!
모든 전사들이 동시에 전방을 향해 소총, 화염방사기, SF 발칸 기관총을 겨누었다. 그들의 눈빛은 긴장으로 날카로워졌고, 방금 전까지 서렸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앞에 펼쳐진 어두운 터널은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길고 깊게 뻗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좀비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앙드레를 포함한 11명의 특공대가 조심스럽게 터널 안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뒤에서 철문이 닫혔다.
쿠우웅…
문이 닫히자 터널 내부는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마이클은 귀에 꽂힌 무전기를 통해 교신했다.
“보안통제실, 칠 구역 진입 완료. 비상등을 점등해.”
잠시 후, 보안과장의 딱딱한 음성이 무전기 너머로 들려왔다.
“건투를 빈다. 점등 실시!”
터널을 따라 간격을 두고 설치된 비상등이 하나둘씩 켜졌다. LED 전등이 터널을 밝혀가며, 점차 가시거리가 확보되었다. 차갑고 긴 터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앙드레가 전사들을 둘로 나누며 지시했다.
“요아, 넌 1조를 지휘해. 난 마이클, 후퍼, 이글, 토니와 함께 2조를 이끈다.”
“오케이.”
요아는 다섯 명의 전사들과 함께 왼쪽 철로를 따라 전진했다.
“가자, 아가들아. 좀비 형님들이 우릴 기다리고 계셔.”
앙드레는 오른쪽 철로를 따라 이동하며 마이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좀비들이 이동한 건가?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지?”
마이클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메트로레인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해. 좀비들은 환승역을 점거하고 여러 노선으로 흩어져 있을 거야. 놈들의 후각이 개보다 예민하니까, 지금쯤 우리 신선한 살 냄새를 맡고 있을 거다.”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을까?”
“글쎄… 게이트 하나당 수백 마리는 기본이지. 외부에서 좀비들이 계속 밀려들어오면 수천 마리도 넘을 거야.”
앙드레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모두 죽이는 건 불가능하겠군. 일단 놈들을 유인해서 터널 밖으로 끌어내는 작전을 세워야 해.”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좀비들도 아주 멍청하진 않아. 그들 중에는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어. ‘좀비장군’이라고 불리는 놈들인데,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칠 수도 있어.”
앙드레는 멀리서 터널을 타고 울려오는 미세한 진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좀비장군이라… 나도 예전에 애니그마 연구소 옥상에서 소총을 쥐고 있는 좀비를 본 적 있어. 탄창은 비어 있었겠지만, 만약 그놈이 탄창을 장착하는 법까지 알게 된다면? 사태는 심각해져. 좀비들이 무장하면 인류의 종말은 더 빨리 올 거야.”
마이클이 양손에 쌍권총을 들어 올리며 코를 찡그렸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 근데, 슬슬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걸 보니 곧 나타날 거다.”
왼쪽 철로 위에서 진군을 멈춘 요아가 소총을 단단히 움켜쥐며 소리쳤다.
“전투 준비!”
오언은 화염방사기를, 하이치는 발칸 기관총을 단단히 쥐고 자세를 낮췄다. 요아와 나머지 세 명의 전사들은 소총을 겨누고 긴장 속에서 대기했다. 오른쪽 철로를 지키는 앙드레 팀도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이글과 토니가 화염방사기와 발칸 기관총을 들고 앞에 섰고, 그 뒤로 앙드레, 후퍼, 마이클이 차례로 포진했다.
두두두…!
진동이 철로를 타고 전해졌다. 마치 거대한 누 떼가 몰려오는 것처럼 땅이 떨렸다. 이어, 괴성이 울려 퍼지며 마침내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질주는 끔찍할 만큼 사나웠고, 찢겨진 군복과 경찰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생전 군인이나 경찰이었음을 암시했다.
“카우우!”
건장한 체구의 좀비들이 터널을 가득 메우며 물밀듯 몰려들었다.
“아직 기다려!”
요아는 좀비들이 30미터 앞까지 다가와도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이치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초조하게 속삭였다.
“지금이야, 대장!”
“기다려, 하이치!”
요아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사격 명령을 내린 것은 좀비들이 10미터 앞까지 바싹 다가왔을 때였다.
“발사!”
투투투!
두 대의 화염방사기와 발칸 기관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고, 여섯 자루의 자동소총도 그 뒤를 따랐다. 마이클은 쌍권총을 든 채 좀비들에게 연달아 총알을 퍼부었다.
화르륵!
화염이 좀비들을 덮쳤고, 그들은 서로 뒤엉키며 쓰러졌다. 전열에 있던 좀비들이 몰살당하자, 그 뒤를 따르던 좀비들이 불붙은 동료들의 몸을 밟고 넘었다. 고통도, 두려움도 모르는 그들은 몸에 불이 붙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앙드레는 좀비들의 머리를 정확히 겨냥해 차분하게 단발 사격을 가하며 외쳤다.
“조준 사격해!”
탄환은 정확하게 날아가 좀비들의 머리를 꿰뚫었고, 그들은 쓰러지며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뒤따르는 좀비들은 끊임없이 터널 속을 채워나갔다.
좀비들의 달려드는 속도가 다소 느려지자 헬돔 전사들은 화염방사기와 발칸 기관총을 뒤로 돌렸다.
탕, 탕, 탕!
머리통이 터진 좀비들이 속속 나자빠졌다.
건장한 좀비들이 앞서 쓰러진 후부터는 아이좀비, 여자좀비, 늙은이좀비 등이 뒤를 이었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고 역겨운 악취와 비린내가 터널을 가득 채웠다.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제거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11명의 특공대원이 각기 4, 50구 이상을 제거했으니 족히 5백 구는 넘은 것 같았다.
몰려드는 좀비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대원들은 번갈아가면서 사격했다. 총열이 너무 뜨거워져 식힐 필요가 있었다.
마침내 좀비들이 보이지 않자 사격이 중단되었다.
앙드레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사격 중지를 지시했다.
“나와 요아가 보초를 선다. 잠시 휴식해!”
대원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 벌써 끝난 거야!”
“생각보다 시시하군.”
“그래도 첫 전투치고는 화끈했어. 이렇게 쏘아대기도 오랜만이야.”
대원들은 철로에 걸터앉거나 터널 벽에 기대앉아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었다. 시커멓게 타버리거나 널브러진 좀비들의 사체가 터널 바닥을 덮고 있었지만 대원들은 전혀 꺼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좀비들은 인간 형상을 한 괴물이며 짐승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보고했다.
“첫 전투 종료. 아군 피해 전무. 상황을 알려 줘.”
보안과장의 다소 들뜬 음성이 들려왔다.
“대단하군. 터널 교차 지점까지 좀비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원들에게 방역과 수거를 지시할 테니 팔번 게이트로 이동해.”
“잠시 숨 좀 쉬고.”
마이클이 교신을 마쳤다.
요아는 담배 두 개비를 한꺼번에 물고 불을 불이고는 한 개비를 앙드레의 입에 물려주었다.
“이런 전투를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거지?”
“모르지. 좀비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도 없으니까.”
“우리가 지닌 화력이 좋아서 그런가? 좀비 새끼들이 삼 미터 앞까지 다가오지도 못했어.”
앙드레가 신중한 표정으로 일러 주었다.
“방심하지 마. 좀비들이 모두 물러간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려.”
“왜?”
“좀비들에게 오로지 식육과 공격 본능만 남아 있다면 계속 덤벼들었어야 돼. 한데 놈들이 스스로 물러갔잖아? 그것은 자신들의 피해를 인식했다는 거야.”
“짐승들도 최소한 그 정도는 알아.”
“좀비가 짐승 정도의 지각 능력이 있다면 기습도 펼칠 수 있어. 수색 때 경계를 확실하게 해야 돼.”
그그긍……!
앙드레는 7번 게이트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게이트가 올라가자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과 마스크를 쓴 수거원들이 대거 들어섰다.
앙드레는 대원들에게 진군을 지시했다.
“팔 번 게이트까지 진입한다!”
방역요원들이 연막과 뿌리고 중화제를 살포하자 수거원들은 궤도차량에 좀비들의 사체를 실었다. 수거된 좀비들의 사체는 불칸에너지에 보내지는 게 일반적이다.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사체가 소각되어야 하는데, 불칸에너지는 화력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 좀비들의 사체를 땔감으로 쓰고 있었다. 불칸에너지로서는 연료를 절약할 수 있고 엘리시움으로서는 도시를 정화할 수 있으니 양쪽 모두에게 득이었다.
터널 내부는 LED 전등 상당수가 파손돼 견착등을 밝힌 채 수색에 나서야 했다.
좀비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사고를 당했는지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좀비 몇 구가 발견돼 바동거리다가 마저 제거되었을 뿐이다.
마이클은 터널과 연결돼 있는 환기창을 찾아내 보안과장과 교신했다.
“칠 번 구간은 깨끗하다. 좀비들은 세 곳의 환기구를 통해 침입한 것 같다. 환기구만 봉쇄하면 될 것 같다.”
“접수, 즉시 봉쇄하겠다.”
11명의 특공대원은 8번 게이트 앞에 이르렀다.
양재 환승역에서의 진짜 전투
마이클이 게이트 밖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제군들, 게이트 밖은 양재 환승역이다. 첫 번째 전투는 간단한 몸 풀기에 불과했을 테고, 이제부터가 진짜 전투의 시작이다. 환승역인 만큼 수색할 곳이 많고, 놈들이 숨어서 기습을 노릴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이곳만 점거하면 나머지 구간은 단일 노선이니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자, 환승역을 정리한 후 점심을 먹자고. 아니면 기꺼이 좀비들의 식사가 되거나.”
앙드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마이클에게 물었다.
“환승역이라면 연결통로가 무척 많겠군.”
마이클이 답했다.
“맞아. 15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니까 적어도 3개 층을 수색해야 해.”
앙드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기에는 인원이 너무 부족해. 우리는 좀비들의 집단 공격을 격퇴하고, 외부 진입만 차단하면 돼. 나머지 좀비들은 보안요원들에게 맡기자.”
요아가 탄창을 점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쓰레기 청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런 하찮은 일은 엘리시움이 알아서 잘 처리할 거야.”
그러다 마이클이 엘리시움 소속임을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마이클 네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마이클은 별다른 감정 없이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요아 말이 맞아. 엘리시움이 가장 잘하는 게 청소지. 자잘한 쓰레기 수거는 보안대에 맡기면 돼. 그 녀석들도 월급 받는 데, 하는 일은 있어야 하잖아?”
앙드레는 속으로 마이클의 소탈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마이클을 구한 게 정말 다행이군. 덕분에 작전을 편하게 전개할 수 있겠어.’
마이클은 게이트의 개폐 레버를 단단히 잡고 말했다.
“제군들, 이제 두 번째 막이다. 기대하시라.”
그그긍…!
육중한 게이트가 올라가자마자, 역내 좀비들이 대거 달려들었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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