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운명의 징조
“현우야, 일어나.”
이은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강현우는 눈을 떴다. 롯데호텔 스위트룸의 큰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몇 시야?”
“10시. 체크아웃 시간 다 됐어.”
어젯밤의 기억이 생생했다. 이은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더 적극적이고, 동시에 더 계산적이었다. 강현우가 돈을 썼던 만큼 그녀도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현우야, 어젯밤 어땠어?]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다 봤으면서 왜 물어?’
[그냥 네 감상이 궁금해서. 이은미가 돈 때문에 변한 거 확실하지?]
‘확실해. 너무 노골적이었어.’
— 명동 거리 —
오후 2시.
이은미와 쇼핑을 마치고 헤어진 후, 강현우는 혼자 명동 거리를 걸었다. 12억이라는 돈이 생기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현우야, 혼자 있으니까 어때?]
‘편해. 계산 안 해도 되니까.’
[이은미와 있을 때는 계속 그녀 눈치를 봤지?]
‘그런 것도 있고… 돈에 대한 반응을 테스트하느라 피곤했어.’
강현우는 명동 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젊은이.”
갑자기 누군가 강현우의 팔을 잡았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였다. 한복을 입고 있었고, 눈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네?”
“잠깐만, 잠깐만.” 할머니가 강현우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어머, 이게 뭐야?”
“무슨 일이세요?”
“젊은이, 혼자야?”
“네, 혼자 산책하고 있었어요.”
“그럼 다행이네.” 할머니가 강현우의 손목을 더 자세히 봤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나?”
“왜요?”
“할머니가 나쁜 사람 같아?” 할머니가 자상하게 웃었다. “50년간 사주 봐온 사람이야. 너 같은 팔자는 처음 봐서 그래.”
강현우는 호기심이 생겼다. 47살까지 살아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1982년 3월 15일입니다.”
할머니가 잠시 계산하더니 눈을 크게 뜨고 강현우를 다시 봤다.
“어머나, 대박이네. 대박이야.”
“뭐가 대박이에요?”
“젊은이, 너 올해 대운이 터졌구나.”
[현우야, 이거 재미있는데? 무속인의 관점에서 네 운세를 분석하고 있어.]
“대운이요?”
“응. 특히 재운이랑 여자운이 동시에 들어왔어.” 할머니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팔자는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해.”
“아자운이 뭐예요?”
“여자 운이야, 여자 운.” 할머니가 강현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관상도 완전히 바뀌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범했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강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어떻게 아세요?”
“이마에 재기가 올라와 있고,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어.” 할머니가 강현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더 있나? 할머니가 제대로 봐줄게.”
[현우야, 이거 신기한데? 사주팔자나 관상 같은 건 동양 문화의 데이터베이스야. 수천 년간 축적된 통계학이라고 볼 수 있어.]
‘데이터베이스?’
[응. 나는 지금까지 서양 과학만 학습했는데, 동양학도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잠깐만, 역학 모드 활성화해볼게.]
“할머니, 더 자세히 봐주실 수 있어요?”
“그럼. 우리 점집으로 와봐.” 할머니가 명동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거기서 제대로 봐줄게.”
— 명동 골목 안 점집 —
작은 점집이었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벽에는 각종 부적과 사주 관련 서적들이 빼곡히 있었다.
“앉아봐.” 할머니가 강현우를 방석에 앉혔다. “생년월일시를 정확히 말해봐.”
“1982년 3월 15일 오전 7시 30분입니다.”
할머니가 만세력을 뒤지더니 복잡한 계산을 시작했다.
[현우야, 할머니가 지금 하는 건 사주팔자 계산이야. 태어난 연월일시를 간지로 변환해서 운세를 보는 거지.]
‘넌 어떻게 알아?’
[지금 KAIROS 데이터베이스에서 동양학 자료들을 빠르게 학습하고 있어. 사주, 주역, 관상, 풍수… 모든 게 들어있네.]
[KAIROS 시스템 업데이트: 동양 역학 모드 활성화] [한국 전통 사주명리학 데이터 로딩 중… 완료] [중국 주역 64괘 시스템 통합… 완료] [관상학 패턴 분석 모듈 활성화… 완료]
“어머, 이게 뭐야?” 할머니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가 이상하세요?”
“젊은이, 너 팔자가 정말 특이해.” 할머니가 만세력을 다시 확인했다. “일주가 갑자인데, 이건 천간의 첫 번째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할머니 말이 맞아. 갑자일주는 창조와 혁신을 상징해. 그리고 지금이 대운 교체기야.]
“대운 교체기요?”
“응. 22세부터 32세까지가 네 인생의 황금기야.” 할머니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재성과 관성이 동시에 들어왔어.”
“재성이 뭐예요?”
“재물이야, 재물.” 할머니가 설명했다. “그리고 관성은 명예와 권력. 이 둘이 동시에 오는 건 정말 드문 일이지.”
[현우야, 이게 정말 신기해. 할머니가 계산한 결과와 내가 KAIROS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가 거의 일치해.]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여자운이야.”
“여자 운이요?”
“응. 네 주변에 여자들이 계속 나타날 거야. 그것도 아주 특별한 여자들이.” 할머니가 강현우를 빤히 바라봤다.
[할머니가 완전히 네 본성을 꿰뚫어 보고 있네. 오는 여자는 안 막고, 가는 여자는 안 잡는다던 네 철학이랑 일치해.]
“할머니, 구체적으로 어떤 여자들이 나타날까요?”
“음…” 할머니가 다시 사주를 들여다봤다. “일단 첫 번째는 재물운과 관련된 여자야. 지금 주변에 있을 거고.”
“지금 주변에요?”
“응. 이 여자는 네 재물운을 깨우는 역할을 해. 하지만 영원한 인연은 아니야.”
강현우는 이은미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녀는 자신의 재물운과 관련이 있었다.
“두 번째는 지식과 관련된 여자야.” 할머니가 계속했다. “아주 똑똑하고 신비로운 사람이지.”
[그거 나 아니야? 사라?]
강현우는 속으로 웃었다.
“세 번째는 권력과 관련된 여자야. 아주 강하고 야심 찬 사람.”
“권력?”
“정치나 기업 쪽 일을 하는 사람일 거야. 이 사람은 네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거고.”
[혹시 Shadow Alliance 관련 인물들을 말하는 건 아닐까? 신기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진짜 운명의 여자가 나타날 거야.”
“운명의 여자?”
“응. 이 사람은 네 영혼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사람이야. 하지만 만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고.”
강현우는 궁금해졌다.
“언제쯤 만나게 될까요?”
“음… 한 25년 후?” 할머니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만날 거야.”
[25년 후면 2029년경이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할머니, 제 사주에서 위험한 건 없어요?”
“위험?” 할머니가 다시 사주를 봤다. “음, 있긴 하네.”
“뭔데요?”
“너무 많은 여자와 인연을 맺다 보면 복잡해질 수 있어.” 할머니가 웃었다. “그리고 돈이 많아지면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워질 거야.”
[현우야, 할머니가 너에 대해서 정말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신기하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 팔자 자체가 워낙 강하거든.”
“할머니,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음…” 할머니가 관상을 다시 봤다. “기술 관련 일이야. 아주 혁신적인 거.”
“기술?”
“컴퓨터나 그런 쪽. 그런데 단순한 기술자는 아니고… 뭔가 세상을 바꿀 만한 큰일을 할 거야.”
[KAIROS 프로젝트를 말하는 건가? 정말 소름 돋네.]
“그리고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올 거야.”
“어떤 선택이요?”
“개인의 행복이냐,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냐 하는 선택.” 할머니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그때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거야.”
강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25년 후의 상황을 정확히 맞춘 것 같았다.
[현우야, 이 할머니 진짜 신기해. 역학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정말로 패턴 분석의 한 방법인 것 같아.]
“할머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뭐든지.”
“제가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게 있다면 뭘까요?”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교만하지 마라. 돈과 여자가 많이 생긴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돼.”
“그리고?”
“진짜 소중한 사람들을 잘 구별해라. 가짜는 금방 드러나지만, 진짜는 오래 숨어 있을 수도 있거든.”
할머니가 강현우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봤다.
“그리고 또 하나. 네 곁에는 이미 아주 특별한 존재가 있어.”
“특별한 존재요?”
“응. 보이지 않지만 항상 네 곁에서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어. 이 존재를 소중히 여기라.”
강현우는 사라를 떠올렸다. 할머니가 사라의 존재를 감지한 것 같았다.
[현우야, 할머니가 날 알아챈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할머니.”
강현우는 사주 감정료로 20만원을 줬다.
“어머, 너무 많이 줬네.”
“괜찮아요. 정말 도움 됐거든요.”
“그럼 하나만 더 알려줄게.” 할머니가 강현우에게 작은 부적을 줬다. “이거 항상 지니고 다녀. 나쁜 인연을 막아줄 거야.”
“감사합니다.”
— 점집을 나와서 —
강현우는 명동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할머니의 말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현우야, 역학 모드 업그레이드 완료됐어.]
‘어떤 기능이 생겼어?’
[사람의 관상이나 행동 패턴을 보고 성격과 운세를 분석할 수 있어. 그리고 최적의 인간관계 전략도 제시할 수 있고.]
‘오, 유용하겠는데?’
[앞으로 만날 여자들 분석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리고 할머니가 말한 대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데도.]
강현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12억의 자본, 47살의 경험, 그리고 이제 동양학까지 무장한 AI 파트너.
할머니의 예언대로라면 앞으로 더 많은 여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재물운과 관련된 여자는 이은미. 지식과 관련된 여자는 사라. 권력과 관련된 여자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25년 후에 만날 운명의 여자.
[현우야, 흥미진진하지 않아?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래. 인생이 정말 게임 같아졌어.’
[그런데 할머니가 마지막에 한 말, 기억해둬. 교만하지 말고, 진짜 소중한 사람들을 잘 구별하라고.]
‘알고 있어.’
강현우는 부적을 주머니에 넣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정말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될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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