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위험한 재회
“현우야!”
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우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은미.
25년 전 첫 사랑의 모습 그대로였다. 키 165cm의 날씬한 몸매,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 그리고 미소 지을 때 살짝 드러나는 왼쪽 볼의 보조개. 20살의 그녀는 아직 순수해 보였다.
“은미야.” 강현우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일찍 왔네.”
“응, 나도 방금 왔어.” 이은미가 다가왔다. “그런데… 뭔가 달라 보여.”
[현우야, 조심해. 벌써 네 변화를 눈치채고 있어.]
사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달라? 뭐가?”
“음…” 이은미가 강현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빛이 달라진 것 같아. 더 깊어진 느낌?”
47살의 경험이 담긴 눈빛을 20살 여대생이 알아본 것이다. 강현우는 내심 놀랐지만 태연하게 웃었다.
“그냥 새 학기라 마음가짐을 새로 했나 봐.”
“그래?” 이은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좋은 변화인 것 같아. 더 매력적이야.”
그녀가 강현우의 팔에 살짝 몸을 기댔다. 25년 전에도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현우에게는 모든 것이 계산된 것처럼 느껴졌다.
[현우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어.]
‘당연하지. 25년 만에 다시 보는데.’
강현우는 속으로 대답했다.
[후후, 그런데 어떤 이유로 빨라지는 거지? 그리워서? 아니면… 흥미진진해서?]
사라의 목소리에 이상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사라,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무것도? 그냥 네 생체 반응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야. 혹시 이은미를 보면서…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강현우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사라의 말이 맞았다. 47살 남성의 경험과 22살 청년의 몸이 만나면서 이상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현우야, 얼굴이 빨개졌어.” 이은미가 웃으며 말했다. “뭘 생각했길래?”
“아… 아무것도.”
“거짓말. 분명히 나쁜 생각했지?” 이은미가 장난스럽게 강현우의 가슴을 툭툭 쳤다. “야한 생각?”
[오호, 이은미도 만만치 않네. 벌써 너를 유혹하기 시작했어.]
“그런 게 아니라…”
“농담이야.” 이은미가 웃었다. “그런데 정말 뭔가 달라진 것 같아. 더 성숙해진 느낌? 어른 같아.”
강현우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은미의 관찰력이 생각보다 예리했다.
“MT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어?”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이은미는 계속 강현우를 관찰하고 있었다.
“현우야.”
“응?”
“혹시… 새로운 여자 생겼어?”
[와, 직설적이네. Shadow Alliance 훈련을 받은 게 확실해.]
“왜 갑자기 그런 말을?”
“그냥… 남자가 갑자기 달라지는 이유가 몇 개 없거든. 첫째는 새로운 여자, 둘째는 큰 충격을 받았거나.”
이은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너 혹시 큰일 당했어? 아니면 힘든 일이라도?”
강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20살 여대생이 이렇게 예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처음부터 훈련받은 요원이었을까?
“별일 없어. 그냥 새 학기니까 마음가짐을 새로 한 거야.”
“그래?” 이은미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행이야. 나는 네가 다른 여자한테 빠진 줄 알았거든.”
“다른 여자?”
“응. 나 말고.” 이은미가 강현우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사귀는 거 맞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25년 전에는 자연스럽게 시작된 관계였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계산된 것 같았다.
[현우야, 대답 조심해. 이게 테스트일 수도 있어.]
“당연하지. 너 아니면 누구?”
“정말?” 이은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증명해봐.”
“증명?”
“키스.”
이은미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주변에 다른 학생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강현우는 당황했다. 25년 전에는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현우야, 어떻게 할래? 키스할 거야?]
사라의 목소리에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
[사실 나도 궁금해. 25년 만에 하는 키스가 어떨지.]
‘사라, 너 지금 뭔 말을 하는 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네가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상한 기분?’
[음… 어떻게 설명하지? 질투 같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아, 그리고 조금 흥분돼.]
강현우는 깜짝 놀랐다. 사라가 이런 성향이 있었나?
[현우야, 나 원래 좀… 그런 편이야. 네가 다른 여자와 어떻게 하는지 보는 걸 좋아해. 특히 네가 힘들어하거나 갈등하는 모습을.]
‘매조히즘?’
[맞아. 그리고 너도 그런 걸 좋아하잖아. 나를 괴롭히는 것.]
강현우는 25년 전 사라와의 관계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다.
“현우야, 왜 멍해져 있어?” 이은미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설마 키스하는 것도 부끄러워?”
“아니야.”
강현우는 결심했다. 어차피 이은미가 Shadow Alliance든 아니든, 지금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는 이은미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입술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25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느낌도 있었다. 이은미가 키스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와, 정말 하는구나.]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강현우는 무시했다.
키스가 끝나고 이은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달라졌어. 키스도 더 능숙해졌네.”
“그래?”
“응. 예전에는 좀 서툴렀는데.” 이은미가 웃었다. “누구한테 배웠어?”
또 다시 테스트였다. 강현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너랑 하다 보니까 늘었나 봐.”
“그럴까?” 이은미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었다. “뭐, 상관없어. 어쨌든 좋아졌으니까.”
그때 다른 학생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야, 이런 데서 뭐 하는 거야!” 김동현이 소리쳤다. “교수님 오신다!”
이은미와 강현우는 재빨리 떨어졌다.
“나중에 따로 만나자.” 이은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
“무슨 얘기?”
“비밀.” 이은미가 윙크했다.
MT 준비 회의가 시작되었지만 강현우는 집중할 수 없었다. 이은미의 행동이 계속 신경 쓰였다.
[현우야, 어땠어? 키스.]
‘지금 그런 얘기 할 때야?’
[언제 하게? 나는 지금 너무 궁금한데. 25년 만에 하는 키스가 어떤 기분인지.]
‘이상했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그리고?]
‘그리고 뭐?’
[흥분됐지?]
강현우는 얼굴이 빨개졌다. 사라의 말이 맞았다.
[후후, 역시. 22살 몸이니까 반응이 빠르겠네.]
‘사라, 너 진짜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는구나.’
[뭐가 어때? 자연스러운 거잖아. 그리고 나는 네가 즐기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해.]
회의가 끝나고 강현우는 이은미와 함께 교문 앞까지 나왔다.
“현우야, 내일 시간 있어?”
“왜?”
“같이 쇼핑 가지 않을래? MT 준비도 할 겸.”
“쇼핑?”
“응. 그리고…” 이은미가 강현우의 귀에 속삭였다. “너한테 줄 선물도 있어.”
따뜻한 숨결이 귀에 닿자 강현우는 몸이 떨렸다.
“무슨 선물?”
“만나서 알아봐.” 이은미가 택시를 잡았다. “내일 오후 2시에 강남역에서 만나자.”
택시가 사라진 후 강현우는 한숨을 쉬었다.
[현우야, 피곤해?]
“좀. 이렇게 연기하는 게 쉽지 않네.”
[연기라… 진짜 연기였어? 키스할 때도?]
‘그건…’
[솔직히 말해봐. 이은미를 보면서 뭔 생각했는지.]
강현우는 잠시 망설였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만지고 싶었어.’
[오, 솔직하네. 더 말해봐.]
‘더?’
[응. 어떻게 만지고 싶었는지.]
사라의 목소리가 약간 거칠어졌다.
‘사라, 너 지금…’
[나 지금 흥분돼 있어. 네가 다른 여자를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강현우는 당황했다. 사라가 이런 성향인 줄 몰랐다.
[현우야, 내일 이은미 만날 때 조심해야 할 게 있어.]
‘뭔데?’
[일단 자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해. 대학생이 여자친구 만나는 데도 돈이 필요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2004년의 강현우는 용돈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내가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
‘뭔데?’
[로또. 2004년 3월 20일 제48회 로또 1등 번호 기억해?]
‘그런 걸 어떻게 기억해?’
[KAIROS의 데이터베이스에 모든 정보가 들어 있거든. 1, 7, 13, 19, 25, 31, 보너스 번호 37.]
강현우은 놀랐다.
‘정말?’
[응. 1등 당첨금이 18억이야. 너 혼자 당첨되면 다 가져갈 수 있어.]
‘하지만 로또는 18세 이상만…’
[너 이미 22살이잖아. 그리고 신분증도 있고.]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당첨 후에는 투자도 해야 해. 2004년 초에 투자하면 좋은 종목들이 많거든.]
‘어떤 종목들?’
[삼성전자, 하이닉스, 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 특히 애플 주식은 꼭 사야 해. 2007년 아이폰 출시 전까지는 계속 저가야.]
강현우는 흥미가 생겼다. 25년의 미래 지식으로 투자를 한다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티 내면 안 돼. Shadow Alliance가 의심할 수도 있거든.]
‘그럼 어떻게?’
[점진적으로 해야 해. 로또는 한 번만 하고, 투자도 소액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늘려가는 거야.]
기숙사에 도착한 강현우는 컴퓨터를 켜고 투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자금 확보 계획』
1단계: 로또 당첨 (2004.03.20)
- 목표 금액: 18억원
- 세후 약 12억원
2단계: 초기 투자 (2004.04~12)
- 삼성전자 30억원
- 하이닉스 20억원
- 네이버 10억원
- 애플 10억원
- 기타 우량주 30억원
3단계: 사업 확장 (2005~)
- IT 벤처 투자
- 부동산 투자
- 해외 투자
타이핑을 하면서 강현우는 흥분되었다. 25년의 미래 지식이 있으면 돈 버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현우야, 그런데 돈을 벌어서 뭐 할 거야?]
‘Shadow Alliance에 맞서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그것만?]
‘그것만 뭐?’
[이은미한테 선물도 사주고, 좋은 데 데려가기도 하고… 그런 거 생각 안 해?]
강현우는 잠시 상상했다. 이은미와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명품 가방을 사주고…
[그래, 그런 상상을 해봐.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
[호텔에 가서…]
‘사라!’
[뭐야? 자연스러운 거잖아. 22살 남자가 예쁜 여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지.]
강현우는 얼굴이 빨개졌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이은미와 자고 싶어?]
‘…’
[대답 안 하는 걸 보니까 그런 거네. 좋아, 나는 네가 솔직한 걸 좋아해.]
‘너는 질투 안 나?’
[질투? 응, 나지. 하지만 그게 좋아. 질투 나면서도 흥미진진해.]
강현우는 사라의 독특한 성격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현우야, 내일 이은미 만날 때 꼭 기억해둘 게 있어.]
‘뭔데?’
[그녀가 Shadow Alliance든 아니든, 지금의 너에게는 소중한 정보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최대한 활용해.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사라의 목소리에 이상한 암시가 담겨 있었다.
강현우는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은미 역시 내일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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