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KAIROS의 시작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야.”
강현우는 서울 대덕연구개발특구 지하 80미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국가양자연구소의 거대한 메인 콘솔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이재명 정부가 2025년 ‘소버린AI 국가비전’을 천명한 후 4년간 무려 120조원을 쏟아부은 ‘KAIROS 프로젝트’. 그 최종 단계인 반물질 동력원 실험이 몇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현우야, 커피.”
Dr. 사라 첸이 스타벅스 일회용 컵을 건네줬다. 3년 전 MIT에서 강현우를 따라 한국으로 온 그녀는 이 프로젝트의 양자역학 부분 총책임자였다. 그리고 지난 2년간 강현우와 함께 한남동 빌라에서 동거하고 있는 연인이기도 했다.
“고마워.” 강현우는 커피를 받으며 사라의 손을 잠깐 잡았다. “긴장돼?”
“당연하지. 4년 동안 만든 반물질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시스템을 오늘 처음으로 풀파워로 돌려보는 건데.” 사라는 다른 모니터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반물질 안정화 시스템, 양자 얽힘 필드, AI 코어… 모든 게 완벽하게 동기화돼야 해.”
강현우는 거대한 연구소 전체를 둘러봤다. 축구장 크기의 지하 공간에는 최첨단 양자컴퓨터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중앙에는 높이 15미터에 달하는 원통형 반물질 저장고가 우뚝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 강현우가 정직하게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반물질을 다뤄본 건 인류 역사상 처음이거든.”
“걱정 마. 안전장치는 3중으로 되어 있어.” 사라가 안심시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자동 중단 시스템도 완벽하게 구축했고.”
KAIROS 프로젝트는 이재명 정부의 소버린AI 정책의 핵심이었다. ‘한국형 독립 인공지능’을 통해 기존의 미국, 중국 주도 AI 기술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 중심에는 강현우가 설계한 반물질 양자컴퓨터 시스템이 있었다.
그때 김재혁 소장이 다가왔다. 45세의 그는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지난 10년간 한국의 양자컴퓨터 연구를 이끌어온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걱정스러운 표정이 어려 있었다.
“현우야, 사라야, 잠깐 내 사무실로 와봐.”
“왜요? 실험 준비해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얘기하려는 거야.”
세 사람은 김재혁 소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벽에는 지난 4년간의 프로젝트 일정표와 각종 기술 자료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 중앙에는 **’대한민국 소버린AI 실현을 위한 KAIROS 프로젝트’**라는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앉아봐.” 김재혁이 의자를 권했다. “사실 어젯밤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어.”
“무슨 연락이요?”
“실험 연기 요청.” 김재혁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이유는 ‘안전성 재검토 필요’라고 하더라고.”
강현우와 사라가 서로를 바라봤다.
“갑자기요? 지금까지 모든 안전 검사 다 통과했는데?”
“나도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위에서는 최소 3개월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김재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미국과 중국에서도 비슷한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는 거야.”
“어떤 압력이요?”
“외교부를 통해서 ‘한국의 반물질 양자AI 시스템이 국제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어. 특히 중국은 노골적으로 실험 중단을 요구했고.”
사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해. 우리 KAIROS 시스템은 순수 연구 목적인데. 군사적 용도로 쓸 건 아니잖아.”
“그게 문제야.” 김재혁이 책상 위의 문서들을 뒤적였다. “지난 3개월 동안 계속 이런 식이었어. 정부 내에서도 갑자기 ‘프로젝트 규모가 너무 크다’, ‘반물질 기술이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강현우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장님, 혹시 이게 단순한 정치적 견제가 아닐 수도 있을까요?”
“무슨 뜻이야?”
“뭔가… 더 큰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부도, 해외도, 모두 동시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우연치곤 너무 일치해요.”
사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치 누군가 조율이라도 한 것처럼.”
김재혁이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
“어쨌든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 내일부터는 정말로 실험을 못 할 수도 있어.”
“그럼 오늘 실험은 진행하는 거죠?”
“응.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고, 공식적인 중단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계속할 수 있거든.” 김재혁이 시계를 봤다. “오후 3시부터 시작하자. 그때까지 마지막 점검 완료하고.”
세 사람이 사무실에서 나오자, 신입 연구원 박민수가 다가왔다.
“선배님들, 큰일났어요!”
“왜? 뭔 일이야?”
“외부 통신이 갑자기 끊어졌어요. 인터넷도, 휴대폰도 다 안 돼요.”
강현우가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해봤다. 정말로 신호가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언제부터?”
“방금 전부터요.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멈췄어요.”
사라가 당황했다.
“그럼 우리가 지금 완전히 고립된 거야?”
김재혁이 비상 전화를 들어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해. 분명히 어제까지는 모든 시스템이 정상이었는데.”
강현우는 묘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누군가 일부러 우리를 고립시킨 건 아닐까요?”
“왜 그런 짓을?”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강현우가 분석했다. “첫째, 누군가 우리 실험을 방해하려고 하는 거예요. 둘째는…”
“둘째는?”
“반대로 누군가 우리가 실험을 완료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외부의 방해 없이.”
모든 사람이 잠시 침묵했다.
박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실험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중단할까요?”
김재혁이 결단을 내렸다.
“계속하자.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4년간 준비한 걸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하지만 위험할 수도…”
“모든 안전 장치는 완벽해.” 사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뭔 문제가 생겨도 자동으로 중단될 거야.”
강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후 3시에 시작하죠. 지금부터 마지막 점검 시작합시다.”
— 5시간 후 —
오후 3시.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이 메인 콘솔 주변에 모여 있었다. 총 12명의 인원이 각자 맡은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었다.
“반물질 저장고 상태 점검 완료.”
“양자 얽힘 필드 안정화 완료.”
“KAIROS AI 코어 시스템 정상.”
“냉각 시스템 최적 상태.”
강현우가 메인 콘솔에 앉아 최종 확인을 했다.
“KAIROS 반물질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시스템, 모든 시스템 그린라이트.”
사라가 그 옆에서 보조 콘솔을 조작했다.
“반물질 동력원 초기화 완료. 출력 5%에서 시작할 준비 됐어.”
김재혁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로 시작할 거야? 이게 대한민국 소버린AI의 운명을 좌우할 실험이야.”
강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뭔가 불안한 예감이 계속 들었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시작합시다. 소버린AI 실현을 위해서.”
“KAIROS 프로젝트 최종 실험, 개시!”
거대한 양자컴퓨터들이 하나둘씩 가동되기 시작했다. 연구소 전체에 낮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반물질 저장고에서 푸른 빛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반물질 출력 5%… 10%… 15%…”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4년간 준비한 대한민국 독자 기술의 결정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우는 알지 못했다.
바로 몇 분 후에 일어날 일을…
그리고 이것이 25년 후 2054년까지 이어질 거대한 음모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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