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Power of the Blue Heaven Blade”
창천도의 위력
1
부아앙–!
2대의 바이크와 한 대의 방호차량이 도로를 따라 질주하고 있었다. 교외로 뻗은 도로는 그나마 좀비들의 사체와 폐기된 차량들이 많지 않아 주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많지 않았다.
왕첸이 방호차량을 운전했고 마츠이가 조수석에 앉아 본부와 교신했다.
“유키나가, 상황은 어떠하냐?”
유키나가의 다급한 음성에서 상황의 심각함이 느껴졌다.
“좀비들의 숫자가 엄청납니다! 게다가 사방에서 계속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십 분 이내에 당도한다. 최대한 버텨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버텨! 여자와 아이들에게도 무기를 지급해서 방어선을 사수해!”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무전기를 내려놓은 마츠이가 뒷좌석의 앙드레와 모리를 돌아보았다.
“캡틴, 어찌하면 되겠는가?”
“대규모 좀비들이 동원되었다면 애니그마의 계획된 공격이오. 현장 상황을 파악한 후 최대한 구조하겠소. 그때까지만 방어선을 사수토록 독려해 주시오.”
“후우, 본부 내에는 아이와 노인들도 많은데…….”
모리가 내부 계단을 통해 방호차량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니미, 죽기 살기로 싸워야지 어쩌겠소?”
도로와 초지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가미카제 본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좀비들은 마치 집회의 참가자들처럼 전 지역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부아아앙!
바이크를 앞서 달리던 요아는 신경질적으로 UMP기관단총을 갈겨댔다.
“비켜, 새끼들아!”
머리가 으스러진 좀비들은 도로 변으로 널브러졌고 몸뚱이가 뚫린 좀비들은 다시 일어나 이동했다. 좀비들은 공격을 받았지만 전혀 대항하지 않았다. 집결 장소에 당도해야 하는 것이 사명인지 차량의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며 걸어갔다.
하메시가 단월도를 휘둘러 좀비들의 목을 베면서 물었다.
“언니, 이것들 왜 이러는 거야?”
“그러게.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
“맞아, 이들은 쇼군 좀비의 집합 명령을 받는 거야.”
“말도 안 돼. 본부까지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이것들을 조종할 수 있겠어?”
“그건 나도 몰라. 그래도 쇼군이라면 그럴 수 있어. 고대 의 사무라이들은 쇼군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고 배웠어.”
요아는 기관단총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이것들은 사무라이 좀비들도 아니라고!”
“쇼군이 사무라이를 지배하고, 사무라이가 농노들을 지배하는 게 고대의 통솔 체계였어.”
“그래? 그럼 이것들을 몰고 가는 사무라이 좀비가 있다는 얘기인데…….?”
요아는 무전기를 통해 앙드레와 교신했다.
“앙드레, 부근에 사무라이 좀비가 있는지 찾아 봐.”
앙드레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호차량 지붕으로 올라와 있었다.
“사무라이 좀비는 왜?”
“하메시 말로는 사무라이 좀비가 여기 좀비들을 지휘하는 것 같대.”
“알았어.”
앙드레는 방호차량 지붕에 M60을 장착하는 모리에게 물었다.
“모리 상, 지난번 좀비들이 모리상사를 공격했을 때 사무라이 좀비들이 주도했소?”
“놈들이 주도한 것은 맞지만 초반에는 일반 좀비들을 앞세웠네. 연후 사무라이 좀비들이 본격적으로 투입되었지.”
“이전에도 그런 행동을 보였소?”
“아니야. 사무라이 좀비들은 다른 좀비들을 보면 닥치는 대로 죽일 만큼 잔혹했지. 그래서 좀비를 죽이는 좀비로 불리기는 했어도 지휘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네.”
“그렇다면 쇼군 좀비의 능력이로군. 쇼군 좀비가 사무라이 좀비들을 지휘하고 사무라이 좀비들이 일반 좀비들을 부리는 건 같소.”
“흐음, 그리고 보니 자네 말대로 쇼군 좀비가 출동한 이후 좀비 새끼들이 인해전수로 밀고 들어왔네. 내 부하들이 거의 쓰러진 상황에서 사무라이 좀비들과 쇼군 좀비가 진입했지.”
“그런 전술까지 펼칠 수 있다면 윤서경은 쇼군 좀비를 통해 세상의 모든 좀비들을 지배할 수 있소. 정말 끔찍한 좀비를 제작한 거요.”
앙드레는 빠르게 달려가는 방호차량 위에서 쌍원경으로 주변을 찬찬히 쓸어보았다.
“카우우……!”
제방 위에서 칼을 쳐들고 괴성을 발하는 사무라이 좀비가 멀리 보였다. 제방에서 내려선 사무라이 좀비는 이동이 느린 일반 좀비들을 마구 베면서 사나운 괴성을 토했다. 일반 좀비들은 채찍질에 당한 노예들처럼 걸음을 서둘렀다.
쌍원경을 내린 앙드레가 내리며 모리에게 물었다.
“모리 상은 엠육공으로 조준 사격을 해봤소?”
“어느 정도는 가능하네.”
“저기 제방 쪽에 일반 좀비들을 재촉하는 사무라이 좀비가 보일 거요. 놈을 박살내시오.”
“요시!”
모리는 M60총구를 제방 쪽으로 돌렸다.
투투투–!
요란한 총성이 작렬하면서 제방 주변이 폭발해 올랐다. 좀비들이 연이어 박살나면서 그 와중에 사무라이 좀비의 머리가 으스러졌다.
일순 이동하던 좀비들 수백 구가 일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사무라이 좀비의 지휘에서 벗어난 좀비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본능을 되찾은 좀비들은 바이크와 방호 차량을 향해 달려들기도 했다.
요아가 달려드는 좀비들을 쓰러뜨리면서 환호를 올렸다.
“야호! 하메시의 말이 맞았어!”
하메시의 표정은 여전히 우울했다.
“그래도 좀비들이 너무 많아. 군단급에서 겨우 일개 부대 정도만 흩어뜨린 거야.”
“그게 어딘데? 본부에 당도할 때까지 사무라이 좀비들 몇 놈만 죽이면 좀비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모리는 M60의 총구를 어루만졌다.
“하하, 내 아랫도리가 이 녀석만큼이나 든든했으면 좋겠어.”
그러다 앙드레의 표정을 보고는 얼른 손을 저었다.
“아, 농담일세 농담.”
앙드레는 저층 빌딩숲 너머로 아련하게 들려오는 총성에 귀를 기울였다.
“제발 본부 대원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
2
투투투–탕탕–!
가미카제 본부는 총성과 화약 연기, 화염으로 가득했다.
수천 구의 좀비들이 본부의 방책선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외곽의 좀비들은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고 일천여 구의 좀비들만 방책을 무너뜨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유키나가는 옥상 위에서 대원들을 독력했다.
“본부장님과 좀비 슬레이어 일행이 곧 당도한다! 조금만 더 버텨!”
대원들은 방책 너머로 수류탄을 던지고는 소총을 난사하면서 방어선 사수에 전력을 다했다. 대원들 중에는 열두세 살에 불과한 아이와 나이 든 노인도 보였다.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그들이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총을 들고 맞섰다.
본부 건물과 500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윤서경 일행이 도열해 있었다.
윤서경 좌우로 미야모도와 쇼군 좀비가 섰고 주변으로는 경비대원들과 사무라이 좀비들이 경호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일천 구도 좀비들이 바깥에 포진돼 있어 접근이 불가할 정도였다.
윤서경은 느긋하게 담배파이프를 피우며 가미카제 본부 건물을 공격하는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훗, 놈들이 제법 버티는군.”
“지부장님, 제가 경비대를 이끌고 놈들의 본부를 점거하겠습니다.”
“좀비 따위한테 공을 뺏기는 것이 자존심 상하나 보군.”
“조금은 그렇습니다. 좀비들이 전투에 나서면 경비대원들은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미야모도 국장, 좀비들은 얼마든지 죽어도 되지만 경비대원들은 한 명이라도 소중해.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니 질투는 하지 말게나. 국장의 정예 부대는 좀비들이 감당하지 못할 적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니까.”
윤서경은 쇼군 좀비에게 정중히 지시했다.
“오다 쇼군, 공격에 박차를 가하게.
“크허어어!”
쇼군 좀비가 손을 치켜들자 사무라이 좀비들 일부와 수백 구의 좀비들이 더 투입되었다.
가미카제 본부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좀비들은 그 자체가 장벽이었다. 좀비들이 워낙 촘촘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방호차량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불가해 보였다.
방호차량은 본부 건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릉 위에 잠시 정차했다.
앙드레는 차량 지붕 위에서 쌍원경으로 전체 상황을 살폈다.
본부 상황은 아주 급박했다. 방책은 거의 무너져 가고 있었다. 건물 일층을 폐쇄하고 옥상에서 집중사격을 가하면 잠시 버틸 수 있겠지만 아주 견고한 건물이 아니기에 좀비들의 육탄돌격에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당장 좀비들의 포위망을 뚫고 본부 대원들과 합류해야 하지만 연대급 병력의 좀비들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큰일이군.’
앙드레는 쌍원경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사무라이 좀비들과 애니그마 경비대원들 사이로 언뜻언뜻 윤서경과 쇼군 좀비가 보였다. 하지만 사무라이 좀비들이 쉴 새 없디 주변을 배회하기에 정확한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앙드레가 쌍원경을 내리자 모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탱크가 있어도 돌파하기 어렵겠군. 좀비 새끼들이 이렇듯 많이 모여 있는 장면은 처음 보네.”
“본부 상황이 위태로우니 반드시 돌파해서 좀비들을 막아내야 하오. 내려가서 작전을 논의합시다.”
바닥으로 내려선 앙드레가 작전을 지시했다.
“왕첸, 책임지고 핸들을 잡아. 좀비들에게 둘러싸이면 끝이니 절대 멈춰서는 안 돼.”
“과연 엔진이 버텨줄까? 하여간 알겠어.”
“하메시는 방호차량으로 접근하는 좀비들을 차단해. 아주 위험한 임무이지만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예, 캡틴.”
“본부장은 화염방사기로 방호차량의 주변을 방어하시오.”
“그리 하겠네.”
“모리 상은 기관총으로 방호차량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만 길을 내시오. 모두 죽이려 할 필요는 없소.”
모리는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알겠네. 한데 캡틴과 요아는 함께 가지 않는 건가?”
“나와 요아는 윤서경을 공격하겠소?”
마츠이가 놀라 외쳤다.
“그건 자살행위네, 캡틴!”
“물론 지금 상황에서 놈을 죽일 수는 없소. 다만 놈의 관심을 우리 쪽으로 끌려는 거요.”
요아가 비로소 앙드레의 양동작전을 간파했다.
“알겠어. 윤서경 그 새끼가 서울에서부터 내 미모에 침을 흘렸지. 캡틴에 대해서는 원한이 엄청날 테고. 놈이 우리한테 관심을 쏟으면 본부를 향한 공격이 약해질 거야.”
마츠이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본부 대원들은 구하려는 캡틴의 깊은 배려는 고맙지만 난 찬성할 수 없네. 차라리 함께 포위망을 돌파한 후 대원들과 합류하세 맞서는 게 현실적이야.”
“본부장, 윤서경이 가미카제 본부를 공격하는 이유는 나와 요아를 불러들이기 위함이오. 놈의 의도대로 움직여야만 포위망을 약화시킬 수 있소.”
“그래도…….”
“시간이 없소. 어서 출발하시오.”
앙드레의 결연한 모습에 모리가 마츠이를 이끌었다.
“캡틴에게 맡깁시다, 본부장. 달래 좀비 슬레이어이겠소?”
왕첸은 앙드레와 손을 마주 쥐었다.
“조심해, 캡틴.”
“부탁한다, 왕첸.”
하메시는 요아를 가볍게 포옹했다.
“언니, 다시 만나야 돼. 알았지?”
“당근이지. 다치지 마, 알았지?”
간단히 인사를 나눈 앙드레와 요아는 각기 바이크를 타고 구릉 아래로 내려갔다.
왕첸이 서둘러 운전석으로 올랐다.
“자, 갑시다! 길이 험해 멀미약을 먹어야 할 겁니다!”
마츠이와 모리, 하메시는 방호차량의 지붕에 탑승했다.
부아아앙!
방호차량은 완만한 비탈을 타고 질주하면서 좀비들이 밀집해 있는 도로를 향해 달려갔다.
모리는 좀비들을 향해 M60을 발포했다.
투투투–!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나토 총탄이 긴 탄적을 그리며 정면으로 뻗어나갔다.
좀비들 사이에 부대장처럼 자리해 있던 사무라이 좀비들이 괴성을 토하며 반격을 지시했다.
“카우우우!”
비로소 돌아선 좀비들이 방호차량을 향해 몰려들었다. 특별한 무기는 없어도 그들의 몸뚱이 자체가 무기였다. 수십 구의 좀비가 M60기관총에 박살났지만 포위망은 더욱 촘촘하게 좁혔다.
부아아앙!
왕첸은 최대한 악셀을 깊이 밟으며 좀비들을 밀어붙였다.
“비켜, 괴물 새끼들아! 비키라고!”
좀비들이 방호차량에 달라붙으려 하자 하메시가 뛰어내리며 단월도를 휘둘렀다.
퍼퍼퍽!
예리한 단월도는 좀비들을 마치 짚단처럼 베어버렸다.
좀비들 뒤편에서 칼을 쥐고 지휘하는 사무라이 좀비 하나를 찾아낸 하메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메시는 빠르게 단월도를 휘두르면서 좀비들을 돌파했다. 좀비들은 칼이 스치는 족족 동강나고 쪼개졌다. 사무라이 좀비가 사정권에 들어오자 하메시가 힘껏 몸을 날렸다.
“차앗!”
하메시는 사무라이 좀비를 향해 단월도를 내리쳤다.
“카아아!”
사무라이 좀비가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러 이를 막았다.
챙강!
사무라이 좀비는 칼이 동강하면서 함께 쪼개졌다. 사무라이 좀비가 쓰러지자 그의 지휘를 받던 좀비들이 주춤하며 저돌적인 공격을 멈췄다.
이를 본 모리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해, 하메시! 넌 정말 최고의 여자 사무라이다!”
하메시가 사무라이 좀비를 제거하는 사이 마츠이가 화염방사기를 방사해 좀비들의 추격을 저지했다.
화르르륵–!
바닥이 불바다로 변하면서 수십 구의 좀비가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좀비들은 재로 변해 부서질 때까지 방호차량을 두들겼다.
투투투–!
고구마밭 너머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윤서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직 방호차량이 보이지 않았지만 치솟는 화염과 총성으로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윤서경은 자신의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지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훗훗, 놈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나 보군. 과연 어떻게 포위망을 돌파하는지 볼까?”
이때 배후 쪽에서도 총성이 들리며 좀비들의 사체가 튕겨져 올랐다.
“이건 뭐야?”
몸을 돌린 윤서경은 시선을 집중했지만 웃자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어 어찌 된 상황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윤서경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본사에 있는 나오미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오미, 드론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해.”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허공 높이 선회하고 있던 드론이 배후로 날아갔다. 이어 스마트워치의 액정화면에 드론이 정찰한 영상이 나타났다.
바이크에 탄 두 남녀가 좀비들의 배후로 파고들면서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참으로 무모한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을 확대해 봐!”
“예, 지부장님.”
액정화면에 사내의 모습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앙드레의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곧바로 요아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을 확인한 윤서경의 눈에서 원독 어린 적개심이 뿜어졌다.
“앙드레! 요아!”
바이크에서 솟구친 앙드레가 지상의 좀비들을 향해 시그를 난사하는 장면이 전송되었다.
윤서경은 양동작전이 전개되고 있음을 대번에 간파했다.
“훗, 가소로운 놈. 가미카제 본부를 구원하는 척하면서 내 배후를 노렸군.”
그는 쇼군 좀비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다 쇼군, 놈들의 본거지를 박살내게. 모조리 죽여!”
“크허어어!”
쇼군 좀비는 사무라이 좀비들을 대동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카우우우!”
입 가리개에 장착된 외부스피커를 통해 괴성이 울려 퍼지자 대기해 있던 좀비들까지 일제히 몰려들었다.
윤서경은 가미카제 본부는 쇼군 좀비에게 맡기고 미야모도와 함께 옥수수밭으로 향했다.
“국장, 애니그마 경비대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다고 했지?”
“예, 지부장님.”
“지금 바로 기회일세. 하지만 보통 놈들이 아니니 각별히 주의해야 하네.”
“맡겨 주십시오.”
미야모도는 경비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투 준비!”
경비대원들은 분대별로 나뉘어 옥수수밭을 헤치고 진입했다. 그들은 상대가 좀비라 아니라 인간이기에 모처럼 전투다운 전투를 상상하며 가벼운 흥분에 젖었다. 물론 그들은 아직 상대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윤서경은 무선 마이크로 사무라이 좀비들을 지휘했다.
“물러서라!”
투투투– 탕탕–!
바이크에서 내린 앙드레와 요아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 좀비들을 거꾸러뜨렸다.
단 둘이서 개떼처럼 몰려드는 좀비들과 상대하는 것은 분명 자살행위로 보일 만큼 무모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교란이 목적이었기에 깊이 파고들지 않고 포위망이 좁혀들기 전에 빠져나갔다.
한데 좀비들을 지휘하던 사무라이 좀비들이 움찔하더니 괴성을 질러댔다.
“카우우!”
“크허어어!”
그들의 지휘에 일반 좀비들이 썰물 빠지듯이 좌우로 갈라섰다. 전장을 피해 수백 미터 밖으로 물러선 것이다.
요아가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그 와중에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뭐요? 좀비 새끼들이 겁을 집어먹었나 왜 토껴?”
앙드레 역시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사무라이 좀비들도 물러섰군. 무슨 계략인지 모르겠군.”
이때 옥수수밭에서 애니그마 경비대원들이 나섰다.
거리는 삼백여 미터 정도로 유효 사거리 내에 해당되지만 서로 총격을 가하기에는 다소 멀었다. 경비대원들은 일제히 산개하면서 억새밭 속으로 몸을 숨겼다.
넓게 펼쳐져 있는 수풀과 억새는 허리 높이 자라 있기에 어느 정도는 은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요아가 물고 있던 담배를 내뱉었다.
“애니그마 조무래기들인가? 좀비들을 밀어내고 우리와 한판 벌이자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기는 해 ”
앙드레는 옥수수밭을 주시했다.
보이지는 않아도 그 곳 어딘가에 윤서경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음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탕– 타타탕–!
경비대원들이 교대로 총을 쏘면서 거리를 좁혀왔다.
앙드레와 요아는 자세를 낮추었다. 요아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훗, 좀비가 아니라 쪽발이들과의 전투라 그런지 피가 끓는군.”
“조심해. 총알에는 눈이 없으니까.”
“걱정 마. 나도 총 맞기는 싫어. 되게 아프거든.”
“좋아. 그럼 한판 벌이자.”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억새를 헤치면서 좌우로 흩어졌다.
윤서경은 웃자란 옥수수 사이를 통해 전장을 관전하고 있었다. 로마 검투사들의 대결이 아니기에 처절한 격투는 즐길 수 없지만 긴장감은 더 했다.
투투투–!
동료들의 엄호 사격을 받으며 경비대원들 일개 조가 진격했다. 한데 전면 좌우에서 뿜어지는 총탄에 대원 넷이 고꾸라졌다. 조준 사격에 당한 것이다.
윤서경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미야모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런 거리에서 조준 사격을?”
“조심해야 할 거네. 자칫 애써 훈련시킨 대원들이 몰살될 수도 있으니까.”
그 말이 오히려 미야모도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놈들의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삼십 대 이의 전투입니다. 우리로서는 절대 패할 수 없는 전투입니다.”
미야모도는 통신기를 통해 전투를 독려했다.
“두 놈뿐이다. 어서 제거해!”
경비대원들이 억새를 헤치며 일제히 진군했다.
투투투–!
전면 양쪽에서 뿜어지는 총탄에 대원 셋이 쓰러졌다.
“저기다, 쏴라!”
경비대원들은 총탄이 쏘아진 두 곳을 향해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투투투–타탕–!
무수한 총탄이 쏟아지면서 집중사격을 당한 구역이 맨땅을 드러냈다. 마땅한 엄폐물도 없는 곳이기에 그곳에 숨어 있었다면 벌집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한데 집중사격을 당한 구역과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다시 총탄을 뿜어졌다.
투투투–!
“으악!”
“억!”
순식간에 4명의 경비대원들이 널브러지자 나머지 대원들은 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몇 번의 교전으로 열 명 가까운 대원들이 전사하자 미야모도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절대적으로 우세한 전투에서 이렇듯 피해를 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윤서경은 부하들이 연신 사살됐지만 별반 애석해하지 않았다. 아니, 내심으로는 이런 상황을 반기고 있었다.
‘봤느냐? 내가 어떤 놈들과 싸우다 패하게 되었는지?’
이때 수풀 속에서 하나의 물체가 솟아올랐다.
“쏴라!”
경비대원들은 허공으로 치솟은 물체를 향해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한데 총탄에 구멍 난 것은 군용점퍼였다. 사격을 가하느라 위치가 발견된 경비대원들을 향해 두 곳에서 총탄이 뿜어졌다.
투투투–!
다섯 명의 경비대원들이 연이어 쓰러지자 다른 대원들은 억새밭 속으로 몸을 숨기며 몸을 굴렸다.
이 순간 앙드레가 허공 5미터 높이까지 점프해 올랐다. 무성한 억새가 아니다 보니 몸을 숨긴 경비대원들이 앙드레의 눈에 들어왔다.
투투투–!
앙드레는 하강하면서 탄창이 빌 때까지 시그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몇 명의 대원들이 전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포에 질린 미야모도가 덜덜 떨면서 뒤로 물러섰다.
“멈춰!”
윤서경이 차갑게 질책했다.
“그리고서 자네가 애니그마 연구소의 경비국장이란 말인가? 나를 지켜야 할 국장이 뒤로 도망쳐?”
“죄…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대원들 모두 죽여서라도 놈을 제거하게.”
“지부장님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좀비들을 동원하는 게…….”
“경비대의 자존심을 지켜달라고 요구한 사람이 자네 아닌가?”
“저… 저들을 너무 몰랐습니다.”
미야모도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윤서경은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서울에서 패배를 당해 도쿄로 건너온 그였기에 그동안 일본연구소 직원들에게 자격지심을 품고 있었다. 미야모도 역시 겉으로는 고분고분했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한데 단지 두 명에게 경비대원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으니 이제는 누구도 그를 업신여길 수 없게 되었다.
‘저들이 어떤 놈들인지 충분히 깨달았을 거다.’
윤서경은 무선 마이크를 통해 사무라이 좀비들을 지휘했다.
“공격!”
그러자 멀리서 물러나서 대기하고 있던 사무라이 좀비들이 칼을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카우우우!”
사무라이 좀비들의 외침에 일반 좀비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갑작스럽게 좀비들이 몰려들자 앙드레와 요아가 몸을 굴려 합류했다.
“애니그마 놈들을 상대하다 보니 너무 깊이 진입했다.”
“윤서경 저 개새끼한테 또 당했군. 어쩌지?”
앙드레는 주변을 새까맣게 뒤덮은 좀비들을 쓸어보고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은 쉽지 않겠어.”
부아아아앙!
왕첸이 운전하는 방호차량이 좀비들의 포위망을 뚫고 마침내 가미카제 본부 방책까지 접근했다.
이를 본 유키나가가 급히 외쳤다.
“본부장님이 오셨다! 어서 문을 열어!”
대원들은 빗장을 풀고는 견고한 방책문을 열었다. 방호차량이 마당으로 진입하자 대원들은 얼른 문을 닫아걸었다. 문으로 달려들던 좀비들은 초소에서 쏟아지는 집중사격에 나자빠졌다.
옥상에서 대원들을 지휘하던 유키나가가 난간을 밟고 뛰어내렸다.
“아버님! 아니… 본부장님!”
마츠이가 빠르게 방책을 쓸어보았다.
“용케 버텼구나.”
“좀비들이 양쪽으로 분리되면서 겨우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한데 캡틴과 요아 상은…….”
“본부를 지원하기 위해 둘이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예에? 주변이 온통 좀비 천지인데 둘이서 어떻게 감당한단 말입니까?”
“그들이 걱정이구나. 지원을 나서려고 해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때 초소 위의 대원이 외쳤다.
“좀비들이 대거 몰려옵니다!”
마츠이 일행은 발판에 올라 방책 밖을 살펴보았다.
“카우우우!”
“크어크어–!”
여태 대기하고 있던 좀비들까지 죄다 본부 건물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모리가 시가를 질끈 깨물었다.
“니미, 이제 나토 총탄도 바닥났는데.”
왕첸은 가릴SAS에 탄창을 장착했다.
“우리도 우리이지만 캡틴과 요아가 걱정이오.”
하메시는 좀비들 뒤편으로 보이는 쇼군 좀비를 직시했다. 결단을 내린 그녀가 마츠이에게 부탁했다.
“본부장님, 쇼군 좀비 앞쪽까지 모든 화력을 집중해 주세요.”
“어쩌려고?”
“제가 쇼군 좀비를 쓰러뜨리겠습니다. 그래야만 이 공격을 멈출 수 있습니다.”
모리가 정색하며 만류했다.
“미쳤어, 하메시? 놈의 갑옷과 헬멧은 총탄도 튕겨낸다고. 그런 놈을 무슨 수로 죽여?”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쇼군 좀비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부탁이에요, 아저씨. 아오조라가 우리를 지켜줄 겁니다.”
모리는 하메시가 등에 차고 있는 창천도를 보고는 마츠이에게 권했다.
“본부장, 하메시에게 기대를 걸어 봅시다.”
“대체 어쩌려고……?”
“바랄 것은 기적뿐이오.”
“알겠소.”
마츠이는 가미카제 전 대원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방책은 무시해라. 모든 화력을 전면으로 퍼부어라! 하메시가 쇼군 좀비를 죽일 수 있게 길을 열어!”
유키나가가 턱을 덜덜 떨었다.
“보… 본부장님……?”
“아무 소리 마라! 하메시를 지키고 싶으면 너도 총을 쏴!”
마츠이는 전면으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탕탕–!
엄청난 화력이 전면으로 집중되면서 좀비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삽시간에 좀비들의 사체가 2미터나 쌓였다.
“계속 쏴요!”
하메시가 방책 너머로 뛰어내렸다.
그녀는 좀비들의 사체를 밟으며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순식간에 200여 미터를 질주한 그녀는 사무라이 좀비들의 경호를 받고 있는 쇼군 좀비와 10미터 거리까지 근접했다.
“카우우우!”
쇼군 좀비가 칼을 치켜들자 사무라이 좀비들이 괴성을 토하며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아오조라!”
창천도를 뽑아든 하메시가 힘껏 내리쳤다.
퍼퍼퍽!
믿을 수 없게도 창천도에서 붉은 예기가 뿜어지면서 사무라이 좀비 20여 구를 한 칼에 동강냈다. 이제 쇼군 좀비를 가리는 장애물은 없었다.
이를 본 왕첸과 모리를 비롯한 가미카제 대원들은 두려움과 경이를 동시에 느꼈다.
“맙소사!”
“무슨 칼이 저렇게 강력해?”
힘껏 점프한 하메시가 쇼군 좀비를 향해 재차 창천도를 내리쳤다.
“죽어라, 좀비!”
촤아악!
붉은 예기가 지표면을 가르면서 쇼군 좀비를 향해 무섭게 뻗어나갔다.
쇼군 좀비도 위기를 감지했는지 손에 쥔 칼을 내리쳤다.
챙강!
칼이 동강나면서 쇼군 좀비의 팔이 잘렸다. 쇼군 좀비는 팔이 잘린 채로 7미터 뒤로 나가동그라졌다. 전설의 칼로 불린 창천도의 신비로운 위력이었다.
“크어어어!”
절규와도 같은 괴성이 외부 스피커를 통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순간 사무라이 좀비들은 물론이고 일반 좀비들이 거짓말처럼 공격을 중단했다. 좀비들은 마치 최면에서 벗어난 듯 서로 뒤엉킨 채 우왕좌왕했다.
왕첸이 양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만세! 하메시가 쇼군 좀비를 쓰러뜨렸다!”
앙드레와 요아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들던 좀비들도 동시에 행동을 멈추었다.
요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이 새끼들 갑자기 왜 이러지?”
앙드레는 아련하게 들려온 처절한 절규를 되새겼다.
“잘은 몰라도 쇼군 좀비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지휘체계가 붕괴된 거야.”
“그럼 우리가 산 거야?”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앙드레와 요아는 마지막 남은 탄창을 총에 장착했다.
윤서경과 미야모도가 옥수수밭을 통과해 쇼군 좀비 쪽으로 달려왔다. 사무라이 좀비들과 일반 좀비들이 쇼군 좀비를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길을 열어라!”
윤서경의 지시에 사무라이 좀비들이 길을 내주었다.
쇼군 좀비가 잘린 자신의 팔을 쥔 채 신음 같은 괴성을 흘리고 있었다.
“크어… 크우우……!”
이를 본 윤서경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총탄으로도 뚫지 못하는 티타늄 헬멧과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쇼군 좀비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윤서경은 쇼군 좀비가 타격을 받은 이상 더는 좀비들을 지휘하기가 어려운 상황임을 직감했다.
“전원 퇵각하라!”
그는 겨우 생존한 경비대원의 경호를 받으며 옥수수밭으로 뛰어들었고 사무라이 좀비들의 호위를 받은 쇼군 좀비가 뒤를 따랐다.
끔찍할 만큼 격렬했던 전투가 겨우 끝난 것이다.
Written by : Michael
Subscribe To My Newsletter
BE NOTIFIED ABOUT BOOK SIGNING TOUR DATES
“Stay connected and be the first to know about my latest stories, updates, and exclusive content. Subscribe to my newsletter and never miss out on new adventures, writing tips, and behind-the-scenes ins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