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Kumadani”

구마다니

소방서 감시탑 2층.

시노산을 내려온 앙드레 일행은 바이크를 구하기 위해 구마다니에 진입했다가 뜻밖의 상황을 보게 되었다.

앙드레가 쌍원경을 통해 창고 옥상 위에 있는 주민들의 동향을 살피며 물었다.

“저들은 누구야?”

“구마다니의 가미카제.”

하메시의 대답에 요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가미카제? 그건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자살 특공조종사들을 말하는 거잖아?”

“맞아. 저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지킬 신의 바람으로 자부하고 있어. 고향인 구마다니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조직된 집단이지. 다른 지방 도시에도 저런 좀비 토벌대가 있다고 들었어.”

“취지는 좋군. 하메시는 왜 가미카제에 가입하지 않았어?”

“가미카제는 여자한테 있어 좀비보다 더한 악당들이야.”

“왜……?”

하메시는 창고 옥상으로 올라서고 있는 가미카제 대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들은 여자들을 찾아내면 강제로 끌고 가서 겁탈해. 임신을 시켜야 한다는 구실로 윤간도 마다 않지.”

왕첸이 인상을 찌푸리며 넌지시 물었다.

“하메시, 설마 너도…….”

“아니야. 이 년 전 구마다니의 가미카제 대원들이 나를 끌고 가려고 했어. 그때 난 저들 대원 몇을 죽이고 달아났지.”

왕첸은 비로소 하메시의 외로운 산중 생활을 납득할 수 있었다.

“아, 그래서 하메시가 줄곧 산중에 머물러 있었던 거구나?”

요아가 잔뜩 분개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런 새끼들이면 모두 죽어도 싸네? 구해줄 필요 없어, 앙드레. 그냥 좀비들 식탁에 오르도록 내버려두자고.”

앙드레는 창고를 에워싼 좀비들을 살피고는 작전을 설명했다.

“측면에서 총격을 가해 좀비들을 이끌어 내. 그 사이 내가 가마카제와 접촉하겠다.”

요아가 발끈해 반발했다.

“무슨 소리야? 하메시를 겁탈하려고 했던 변태들이라고! 여자를 윤간하는 새끼들을 왜 구해줘?”

“저들의 방식이 분명 잘못됐어.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야 저들의 미래가 유지될 수 있으니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어.”

“정말 실망이야, 앙드레. 내가 저런 새끼들한테 윤간을 당해도 좋단 말이야?”

“그럴 네가 아니잖아? 그리고 모든 도시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 저들이 아무리 악당들이라 해도 좀비와는 다른 인간이야. 좀비들의 밥이 되게 할 수는 없어.”

왕첸이 고개를 끄덕이며 앙드레에게 동조했다.

“캡틴 말이 맞아. 우리는 놈들을 구해준 후 바이크를 얻어 타고 떠나면 돼. 이런 시골 도시의 상황까지 시시콜콜 간섭할 이유가 없지.”

요아가 왕첸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왕 서방, 너도 사내라고 저런 변태들 편을 드는 거냐?”

“것 참, 누가 편을 든다는 거야? 캡틴 말대로 우리의 적은 좀비야. 저 새끼들이 아무리 악당들이라도 인간이니까 일단 구해주자는 거야. 물론 요아와 하메시한테 군침을 흘리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몰라. 난 보고만 있을 테니 알아서들 해.”

요아가 팔짱을 끼며 몸을 돌렸다.

한데 하메시가 앙드레에게 동행을 자처했다.

“함께 가요, 캡틴.”

왕첸이 앙드레를 캡틴으로 불러서인지 하메시도 앙드레를 캡틴으로 호칭했다.

“하메시가 가미카제 대원을 죽였다면 저들이 하메시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나보다는 캡틴이 더 위험할 수 있어. 저들 대부분은 반한 감정이 깊어. 앙드레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 곱게 보내주지 않을 거야.”

그러자 요아가 더욱 극력 반대했다.

“니미, 한국인을 싫어하는 놈들이라니 그나마 있던 정나미가 떨어지는군. 제발 그만 둬, 앙드레. 가미카제라는 이름부터 기분 나빠. 놈들을 구해줘 봤자 오히려 앙드레를 해치려 들 거라고.”

앙드레는 요아의 만류를 무시했다.

“바이크를 구해올 테니 요아와 왕첸은 여기 있어.”

그는 하메시와 함께 2층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내려섰다.

“치미,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군.”

요아는 씩씩거리다가 회전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따라와.”

“보고만 있는다면서?”

“닥쳐! 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앙드레를 위해서야!”

두 사람은 소방서 감시탑 상층으로 들어섰다.

와장창!

유리창이 개머리판에 박살났다.

요아는 창고 쪽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마구 쏘아댔다.

“죽어, 괴물들아!”

투투투–!

창고로 향하던 좀비들이 감시탑에서 쏟아지는 총탄에 적중돼 널브러졌다. 그러자 창고를 공격하던 좀비들 상당수가 소방서 건물로 몰려들었다.

한편 창고 옥상에서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던 혼다는 갑작스런 총성에 멀리 소방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뭐야, 지원군인가?”

창고 주변으로 결집하던 좀비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혼다는 내심 희망을 품었다.

‘잘하면 탈출할 수 있겠어.’

그 사이 동네를 우회한 앙드레와 하메시가 건물 뒤편의 주차장으로 접근했다. 주차장에도 수백 구의 좀비들이 바글거렸지만 이미 고철이 된 차량들 덕분에 이동이 용이했다.

앙드레와 하메시는 자동차 지붕을 밟고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카우우!”

좀비들이 아우성을 치며 손을 뻗자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친 앙드레는 수류탄을 하나 까서 내던졌다.

퍼엉!

요란한 폭음과 함께 좀비들 십여 구가 산산조각으로 찢겨 널브러졌다.

“카우우!”

좀비들이 자동차 위로 불쑥불쑥 튀어 오르자 하메시가 일본도를 휘둘렀다. 그녀의 칼솜씨는 총알만큼 빠르고 정교해 좀비들의 대가리가 연이어 솟아올랐다.

건물 후방을 지키고 있던 가미카제 대원들은 앙드레와 하메시의 전투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저들은 뭐야?”

“좀비 놈들을 버러지처럼 다루고 있어.”

“휘유, 사내 놈이나 계집이나 정말 잘 싸우는군.”

두 사람은 좀비들을 헤치고 이내 창고 아래에 이르렀다.

“내 손 잡아!”

앙드레는 하메시의 손을 쥐고는 트럭 지붕을 걷어찼다. 그가 무려 10미터 거리를 날아서 단숨에 옥상으로 올라서자 혼다와 가미카제 대원들은 입을 딱 벌렸다.

“으아!”

“맙소사, 슈퍼맨이다!”

두 사람이 옥상으로 내려서자 가미카제 대원들은 놀라움과 경계의 눈빛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앙드레는 좀비들의 공격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건물 전방 쪽 난간으로 다가섰다. 좀비들이 창고의 철문에 육탄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상황으로 미루어 수 분 이내에 철문이 뜯겨나갈 것 같았다.

혼다가 앙드레 옆으로 다가서며 사례를 표했다.

“아리가또(고맙소.)!”

앙드레는 스마트 워치를 동시통역기로 전환시켰다.

“당신이 구마다니 가미카제의 대장인가?”

혼다는 앙드레의 발음을 듣고는 잔뜩 표정을 굳혔다.

“뭐야, 조센징이잖아?”

“말 삼가라. 내가 너를 쪽발이로 부르면 좋겠냐?”

“이익……!”

“네 부하들을 살리고 싶다면 내 지시에 따라. 부하들을 옥상 난간에 촘촘하게 배치해서 좀비들의 진입을 저지해라. 좀비 한 마리도 옥상으로 들여서는 안 돼.”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을 내려?”

“아니면 네 부하들과 함께 좀비들 밥이 되던가.”

앙드레의 단호한 어조에 혼다의 얼굴 근육이 연신 씰룩거렸다.

이때 옥상 위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가만, 저년은 하메시잖아?”

“맞아. 지난번 우리 동료들 넷을 죽이고 달아난 그 독한 계집이야!”

“이년 보게? 겁 대가리 없이 제 발로 찾아와?”

가미카제 대원들 몇이 하메시를 에워싸자 혼다가 달려왔다.

“그만 둬!”

오코노가 일본도를 뽑아들었다.

“대장, 내 친구를 해친 계집이야! 내가 죽이겠어!”

“그만 두라고 했지? 지금은 좀비들을 막아내는 게 급선무다. 모두들 난간으로 흩어져서 좀비들을 저지해!”

혼다의 지시에 대원들은 난간 주변에 둘러섰다.

권총을 소지한 대원들은 잡동사니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좀비들을 쏘아댔고, 칼만 쥔 대원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기물을 내던졌다.

혼다는 사나운 눈빛으로 하메시를 쏘아보았다.

“저 한국인은 누구냐?”

“너희들의 구원자.”

“구원자? 좋아, 무슨 재주로 우리를 구하는지 지켜보겠다.”

이 순간 난간 한쪽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모두가 돌아보니 어느 새 좀비로 변한 하라가 대원 하나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

놀란 대원들이 급히 물러섰다.

“하라가 좀비로 변했어!”

“니미, 어떻게 된 거야?”

공포에 질린 대원들은 하라가 대원을 마구 물어뜯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이때 혼다가 하라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씨발, 좀비로 변한 놈은 더는 가미카제가 아니다!”

그러자 오코노가 양팔을 벌리며 혼다를 막아섰다.

“안 돼, 내 동생이야!”

“비켜, 새끼야! 하라는 이미 죽었어!”

“내 동생을 죽이면 대장도 용서 못 해!”

오코노가 권총을 뽑아 혼다에게 들이댔다.

“죽여도 내가 죽인다고!”

이때 대원을 물어뜯은 하라가 오코노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우우!”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동생을 돌아본 오코노는 경악과 충격에 젖었다.

순간 매그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앙!

하라의 머리통이 대번에 박살났다. 앙드레가 매그넘으로 하라를 쏜 것이다.

오코노는 두개골이 박살난 동생의 사체를 내려다보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동생의 사체도 만지지 못한 채 오열했다.

“크으, 하라……!”

앙드레는 하라에게 물린 대원의 머리통도 박살냈다.

혼다는 앙드레의 신속하고 냉정한 처사에 기가 질렸다. 그가 아무리 좀비 토벌대를 이끄는 대장이었지만 좀비 슬레이어인 앙드레와는 비교될 수가 없었다.

혼다는 대원들을 향해 다시 지시를 내렸다.

“봤지? 너희도 좀비가 되고 싶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싸워! 좀비들을 저지하란 말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난간에 붙어서서 좀비들의 진입을 저지했다.

오코노는 동생의 사체 앞에서 눈물을 뿌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앙드레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조센징 새끼! 네가 뭔데 내 동생을 함부로 죽여!”

혼다가 엄한 표정으로 외쳤다.

“총 내려, 오코노!”

방이쇠에 걸린 오코노의 손가락이 달달 떨린다.

“하라를 죽였다고… 내 동생 하라를…….”

이 순간 하메시가 칼등으로 오코노의 손목을 내리쳤다.

“악!”

권총을 놓친 오코노가 손목을 감싸 쥐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메시는 오코노의 목을 향해 칼끝으로 겨누었다.

“또 한번 캡틴을 위협하면 네 목을 베겠다.”

“크으, 네년이 감히…..!”

“캡틴이 죽인 건 네 동생이 아니라 좀비였다. 네 목숨을 구해준 캡틴에게 감사해야 돼.”

“크으……!”

심한 갈등에 젖은 오코노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비분 어린 눈물을 뿌렸다.

투투투–!

왕첸과 요아가 소방서 쪽에서 지원 사격을 가했지만 좀비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 양곡저장소 건물의 포위망이 풀어지지 않았다. 급기야 좀비들에 의해 저장소 건물의 철문이 뜯겨나갔다.

와지끈!

철문이 쓰러지면서 좀비들 십여 구가 깔렸지만 뒤편이 좀비들이 이들을 밟고 그대로 건물 내로 진입했다.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은 좀비들은 건물 벽에 박혀 있는 쇠다리를 밟고 옥상으로 기어올랐다.

탕, 탕, 탕!

일부 대원들이 옥상으로 이어진 통로로 권총을 쏘아댔지만 추락하는 좀비보다 기어오르는 좀비가 더 많았다.

아래쪽과 사방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게 되자 가미카제 대원들은 아득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비로소 좀비들을 너무 경시했음을 자책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건물 주변의 좀비들은 여러 개의 계단을 만들어 난간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난간에 매달리는 좀비들의 손가락을 마구 잘라내면서 악을 쓰듯이 외쳤다.

“막아야 돼! 한 마리도 진입시켜서는 안 돼!”

상황이 급박해지자 혼다가 체면 불구하고 앙드레에게 매달렸다.

“캡틴, 이왕 구원을 왔으니 대원들을 구해 주시오. 이렇게 부탁드리겠소!”

앙드레는 쌍원경을 통해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다.

‘좀비들의 이런 집단행동은 누군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서울에서 좀비들이 불칸에너지를 공격할 때도 좀비장군을 저격한 적이 있었기에 그는 좀비들의 배후를 확신했다. 주변을 살피던 중 트럭의 본넷을 밟고 서 있는 특별한 좀비가 쌍원경에 잡혔다.

좀비는 전통 사무라이 복장 차림인데 손에 일본도를 쥐고 있었다. 사무라이 좀비는 일본도를 높이 쳐든 채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앙드레는 혼다에게 쌍원경을 건넸다.

“저기 사무라이 좀비를 아나?”

혼다는 쌍원경을 통해 사무라이 좀비를 확인하고는 숙연해졌다.

“후쿠이현의 대표적인 사무라이 가문인 사사키 상이오. 자위대에 입대했다가 수 년 전쯤 대령으로 전역했다고 알고 있소.”

“그럼 확실하군. 저 사무라이 좀비가 좀비들을 조종하는 지휘관이야. 저자만 죽이면 돼.”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지 않소? 오백 미터는 넘는 데다 저격총도 없는데…….”

혼다는 앙드레가 어깨에 메고 있는 시그556소총을 힐끗 보았다.

“그걸로 가능하겠소?”

앙드레는 시그556를 쥐고 사무라이 좀비를 겨누었다. 하지만 망원렌즈가 장착돼 있지 않아 사무라이 좀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앙드레는 하메시에게 쌍원경을 넘겼다.

“사무라이 좀비가 건물 사이로 보일 거야. 놈이 서 있는 높이를 추정해 봐.”

“그렇게 해서 맞출 수 있을까?”

“운명에 맡겨야지.”

앙드레는 갤럭시 텐을 통해 풍향과 온도, 습도에 대한 정보를 숙지했다.

하메시가 쌍원경으로 사무라이 좀비를 관찰하면서 표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지상에서 사 미터가 조금 안 되는 것 같아. 도로 양쪽 건물의 중간층과 같은 높이이고……”

앙드레는 하메시의 설명을 들으면서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표적을 임의로 그렸다. 이어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일발의 총성에 이어 곧바로 외마디 괴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카우우우!”

혼다는 급히 하메시의 손에서 쌍원경을 빼앗아 살펴보았다. 이마가 뚫린 사무라이 좀비가 트럭의 본넷에서 고꾸라지고 있었다. 아스팔트로 추락한 사무라이 좀비의 두개골이 대번에 으스러졌다.

“만세!”

쌍원경을 내린 혼다가 미칠 듯이 환호했다.

“죽였어! 사무라이 좀비를 정확히 명중시켰어!”

앙드레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사무라이 좀비가 쓰러지자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하던 좀비들이 갑자기 얌전해졌다. 좀비들은 잡동사니를 쌓아 올린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건물 내로 진입해 있던 좀비들도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갔다.

좀비들의 퇴각.

가미카제 대원들은 비로소 안도하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좀비들이 퇴각한다!”

“가미카제 만세!”

“일본 만세!”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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