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Vulcan”
불칸
고대 로마 신화에서 불과 대장간의 신을 의미하듯 검은연기가 고대의 대장간을 연상 한다..
합정동 한강 변에 자리한 당인리 발전소는 한때 서울시에 전기를 공급해 온 주력 발전소였다.
그러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폐쇄되었지만 비상사태에 대비해 정부는 LNG로 가동되는 가스터빈 발전기를 비밀리에 설치해 두었다. 또한 상암동에 대규모 유류 저장시설도 갖춰 놓았기에 최소 10년 이상은 저장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
오진명은 이 시설을 점거해 불칸에너지로 명명하고 전기와 에너지를 독점할 수 있었다.
불칸에너지는 사설 경비대가 지키고 있다.
그들의 전력이 헬돔이나 엘리시움에는 미치지 못해도 웬만한 좀비들의 공격은 충분히 퇴치할 전력을 지녔다. 한데 이번의 경우는 이전에 없던 좀비들의 대규모의 습격이었기에 경비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비대장 왕첸이 정문 경비초소 난간에서 외쳤다.
“놈들의 충차를 집중 사격해!”
경비들은 전봇대를 어깨에 메고 돌진해 오는 좀비들을 향해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투투투!
선두의 좀비들이 나자빠지자 주변의 좀비들이 달려들어 전봇대를 걸쳐 멨다.
왕첸이 연이어 수류탄을 던졌다.
“놈들을 막아!”
경비들까지 합세해 수류탄을 던지자 잇단 폭음과 함께 사지가 절단된 좀비들이 주저앉으면서 전봇대 충차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왕첸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진삥(지랄)! 이제 좀비 새끼들이 충차까지 이용한단 말인가?”
이때 불칸에너지의 사장 오진명이 나선형 계단을 밟고 경비초소로 올라섰다.
“어떻게 돼 가고 있는가, 왕 대장?”
“한국 좀비들은 지능까지 갖춘 것 같습니다. 충차 공격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으음. 좀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지능을 갖추는 것 같군. 이러다가는 진짜로 인류가 멸망하고 좀비세상이 되겠어.”
“사장님, 좀비들이 이차 공격을 펼쳐오면 불칸에너지의 경비 병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메트로서울에 지원을 요청하시는 게…….”
오진명이 단호하게 왕첸의 말을 잘랐다.
“지원을 요청해도 보내줄 놈들이 아니야. 어떻게든 우리의 힘으로 불칸에너지를 지켜야 하네.”
“그건 알지만……..”
이때 담장의 경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좀비들이 또 옵니다!”
모두가 바라보니 이번에는 3대의 충차가 정문과 좌우 담장을 노리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좀비들은 병사들처럼 발까지 맞추며 동시에 세 곳을 노리고 있었다.
오진명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모든 화력을 쏟아 부어서라도 좀비들을 저지하라!”
담장 위에 설치돼 있는 K12기관총들이 불을 뿜었고 화염방사기에서 화염이 방사되었다.
화르르륵!
하지만 불칸에너지의 화력으로 세 곳의 충차를 모두 제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좀비들은 화염에 휩싸인 상태로도 좌측 담장에 충차를 강타했다.
콰아앙!
전봇대 끝이 담장을 관통하면서 담장에 심한 균열이 생겼다. 한두 번의 충격만으로 담장이 허물어질 상황이었다.
“쏴라, 쏴!”
왕첸은 담장을 따라 달리면서 자동소총을 쏘아댔다.
좀비들은 빗발치는 총탄 세례 속에서도 담장에 박힌 충차를 뽑아 뒤로 물렸다. 연후 재차 담장을 향해 돌진했다.
이 순간 좀비들 뒤쪽으로 2대의 바이크가 달려들었다. 앙드레와 요아였다.
부다다당!
좀비들 뒤쪽으로 바싹 돌진한 앙드레가 바이크 위에서 그대로 점프했다. 쓰러진 바이크가 바닥을 타고 미끄러지면 좀비들 한 무리를 쓸어버렸다.
앙드레는 전봇대 위로 내려서며 왼발로 힘껏 찍었다. 그러자 좀비들의 어깨뼈가 으스러지면서 전봇대에 짓눌리고 말았다. 위협적인 충차 공격이 겨우 차단되었다.
앙드레와 요아는 주변의 좀비들 이십여 구를 쓰러뜨리고는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5미터 높이의 담장을 간단히 뛰어오는 그들의 능력에 불칸에너지의 경비들은 입을 딱 벌렸다.
경비초소로 내려선 요아가 오진명에게 간단히 경례를 붙였다.
“오 사장, 메트로서울의 김석현 시장이 파견한 특사 요아에요. 저쪽은 최강의 좀비 슬레이어 앙드레 김이죠.”
오진명이 무뚝뚝하게 말을 받았다.
“난 메트로서울에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네.”
“행여 불칸에너지가 무너지면 메트로서울도 존립할 수 없습니다. 특사로서 자발적으로 나선 거니 부담 갖지 마세요. 뭐, 에너지 공급 단가를 조금 낮춰주시면 고맙고요.”
“그 얘기는 좀비 새끼들을 물리친 후 나누자고.”
“물론이죠.”
요아가 경비들을 쓸어보며 물었다.
“누가 지휘관이야?”
왕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경비대장이오. 왕첸이라 하며…….”
“누가 통성명하쟀어? 불칸에너지 경비대원이 이게 전부야?”
“그렇소만… 왜 대뜸 반말이오?”
“그럼 너도 말 까!”
“아, 알겠어. 당신이 그 유명한 헬돔의 여전사 요아로군?”
“그럼 내 성질 알겠네? 당장 뚫린 담장부터 보수해. 발전소를 반드시 지켜야 하니 행여 달아난 생각은 마! 그런 놈은 내가 먼저 죽여 버릴 테니까!”
“젠장, 누구한테 명령이야?”
말은 그리했지만 왕첸은 곧바로 대원들에게 담장 보수를 지시했다.
“어서 담장을 보수해!”
경비대원들 일부가 뚫린 담장을 철판으로 막고 지지대를 세웠다.
앙드레는 쌍원경으로 좀비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후퇴한 좀비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다섯 개의 전봇대를 걸머멘 충차부대를 대동했다. 마치 명령을 받고 진군하는 병사들처럼 좀비들의 움직임은 일사분란했다.
좀비들의 대대적인 공격에 요아도 바싹 긴장했다.
“옴마, 큰일났네. 저 새끼들을 무슨 수로 막아내지?”
오진명이 권총을 뽑아들었다.
“최후까지 싸운다! 발전소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앙드레는 좀비들의 배후를 세심하게 살폈다. 문득 손에 권총을 쥐고 있는 군인 복장의 좀비가 보였다.
“……!”
흠칫 놀란 앙드레는 다시 쌍원경을 통해 군인 복장의 좀비를 주시했다.
도로 중앙에 널브러진 승용차 본넷을 밟고 선 좀비는 권총을 제대로 쥐고 있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기에 단순히 권총을 물건 삼아 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앙드레는 일전에 애니그마 연구소를 에워싸고 있는 좀비들 사이에서 본 적이 있었던 좀비장군을 떠올렸다. 당시 좀비장군은 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좀비들을 지휘하는 좀비장군이 있다는 얘기가 사실이로군. 좀비들의 충차 공격은 좀비장군이란 놈이 주도하고 있는 게 분명해,’
앙드레는 왕첸 옆으로 다가섰다.
“혹시 저격총이 있소?”
“K24 스나이퍼가 있기는 한데…….”
“당장 초소 난간에 설치해 주시오.”
“아, 알겠소.”
왕첸은 영문을 몰랐지만 앙드레가 요구한 대로 K14스나이퍼를 찾아 초소 난간에 설치했다.
요아가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누구를 저격하려는 거야?”
“좀비장군쯤 되는 놈이 있어. 놈을 쓰러뜨리면 좀비들을 퇴각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좀비장군이라고?”
요아가 쌍원경을 통해 좀비들의 배후를 살폈다.
“옴마, 저 새끼 보게? 권총을 제대로 쥐고 있어. 정말 좀비장군인가 봐.”
오진명 역시 쌍원경을 통해 좀비장군을 보고는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좀비들이 지휘 체계까지 갖췄단 말인가?”
요아가 신중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사실이에요. 좀비들은 집단행동뿐만 아니라 잠복과 위장까지 할 줄 알아요.”
“젠장, 좀비들의 지능까지 갖추면 인류의 미래는 없어.”
“아직 소수에 불과하니 그런 놈들부터 제거하면 돼요.”
요아는 쌍원경을 통해 좀비장군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너무 먼 거 아냐? 일 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은데?”
왕첸이 거리계측기를 사용해서 좀비장군과의 거리를 정확히 알려 주었다.
“정확히 구백이십칠 미터요.”
요아가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리라면 저격이 불가해. 케이십사 스나이퍼의 저격 한계는 팔백 미터야.”
앙드레는 스마트 워치를 통해 풍향과 온도, 습도를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 좀비들의 충차가 가까이 접근했지만 오진명은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어차피 불칸에너지의 경비들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앙드레의 저격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앙드레는 K14스나이퍼의 망원렌즈에 눈을 댄 채 숨을 멈추었다.
장거리 저격은 총기의 성능보다 저격수의 능력이 더 우선시된다. 발사 순간 1mm의 오차만으로 표적에 도달할 때는 수 미터를 벗어날 수 있기에 풍향을 계산해야 하며, 탄약의 타는 시간까지 감안할 경우 온도와 습도가 변수로 작용한다.
앙드레가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불과 수초였지만 모두에게는 한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앙드레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요아를 비롯해 왕첸과 오진명, 몇몇 경비대원들이 쌍원경을 눈에 갖다 댔다. 워낙 먼 거리이기에 표적이 적중되는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좀비장군의 머리를 맞았는지 푹 고꾸라졌다.
“카우우!”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좀비장군 주위고 소란스러워 졌다. 정확히 명중한 것이다. 근 일 킬로미터 밖의 표적을 정확히 적중시켰으니 실로 경이로운 저격이었다.
순간 전봇대를 충차 삼아 메고 돌진하던 좀비들이 거짓말처럼 정지되었다. 좀비들은 크게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전봇대를 내려놓았다.
이어 어기적거리면서 물러갔다. 쌍원경으로 살펴보니 좀비장군의 사체를 두 좀비가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좀비들이 퇴각한다!”
“만세, 살았다!”
“와아, 불칸에너지를 지켰다!”
경비들은 안도의 웃음을 띠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왕첸은 요아를 부둥켜안으며 감격을 외쳐댔다.
“이겼어! 우리가 좀비들을 물리쳤다고!”
요아는 그런 왕첸을 홱 밀쳤다.
“썅, 왕 서방 주제에 감히 누구를 끌어안아?”
왕첸이 머쓱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거 되게 비싸게 구네?”
오진명은 계단 쪽으로 돌아섰다.
“차나 한잔 하지.”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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