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Dark Metro Line”
암흑의 메트로레인
덜컹덜컹……!
한 량짜리 전용객차가 메트로4호선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오가는 메트로레인이 전혀 없기에 외로운 운행이었다.
유빈은 한쪽에서 수행전사들과 함께 무용담을 지어내기 위해 입을 맞추었다.
“한수 형, 우린 엘리시움에서 한바탕 전투를 벌인 거야. 엘리시움의 보안대원들이 도주하자 우리가 윤서경의 집무실을 점거한 거라고, 알겠지?”
정한수가 탄창을 꺼내 살피며 키득거렸다.
“그래, 알았어. 상급 전사들은 몰라도 훈련병 녀석들은 잠시 속일 수 있겠군.”
“헤, 잠깐만 놀려주면 돼.”
권호창이 껌을 질겅거리며 말을 받았다.
“솔직히 엘리시움 놈들한테 실망했다.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전송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역시 우리 헬돔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
“왜 아니겠어? 더군다나 사령관님이 직접 출동하셨는데 어떻게 도전하겠어?”
전사들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의자 중간에 앉아 있는 하대수는 시가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윤서경으로부터 메트로레인 통행권을 따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윤서경이 애니그마 연구소와의 결부를 완강하게 부인하자 그도 조금은 앙드레의 증언을 의심할 수밖에 앉았다.
하대수눈 옆에 앉은 김석현에게 나직이 물었다.
“김 교관, 자네가 보기에 윤서경 사장 놈이 정말 애니그마 연구소와 무관한 것 같은가?”
“내가 보기에는 앙드레의 말은 맞는 것 같소.”
“어째서?”
“백인호는 애니그마 연구소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생성됐다는 말에 크게 놀랐소. 당연히 생각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윤서경과 황해는 반응이 조금 달랐소. 마치 그런 비밀스런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이었소.”
“그래?”
하대수는 길게 연기를 뿜으며 이번에는 강철민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땠는가?”
“난 그런 눈치는 잘 모르겠소. 다만 놈들이 너무 얌전하게 굴어서 싱거울 뿐이오. 황해 그 새끼 마빡에 한 방 먹여주었어야 했었소.”
“오늘이 아니라고 싸울 날은 얼마든지 있어.”
하대수는 객차 앞쪽의 유리창에 나란히 서 있는 앙드레와 요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헬돔으로 귀환하면 특공대를 조직해 서울역을 기습해서 윤서경을 생포한다. 혹독한 고문을 가해서라도 진실을 확인하자. 만일 좀비 바이러스가 정말 애니그마에서 생성됐다면 놈을 산 채로 좀비들한테 던져 주겠다.”
그는 시가를 질끈 깨물었다.
“연후 애니그마 본사를 찾아가야지. 그 좀비 바이러스를 만든 미친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사령관, 런던까지 가겠단 말이오?”
“런던이 문제인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복수를 해야 돼.”
하대수의 눈이 복수심으로 번들거렸다.
덜컹덜컹……!
전용객차는 충무로 환승역을 지나고 있었다. 스크린도어로 차단된 승강장에는 여전히 탑승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요아가 앙드레의 눈치를 힐끗 살피며 입을 열었다.
“윤서경 그 새끼 정말 뻔뻔하더라고. 얼마나 낯짝이 두꺼운지 비밀이 탄로 났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
“당연한 반응이었어.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어떻게든 제거하려 할 거다.”
“그럴 생각이면 지금이 기회 아닌가? 한데 순순히 보내주고 있잖아?”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 곱게 보내줄 놈이 아닌데…….”
한데 이때였다.
전용객차 내의 전승이 일제히 꺼지면서 급제동되었다.
끼이이익!
바퀴가 제동장치에 걸린 채 철로 위를 미끄러지면서 무수한 불꽃을 피워냈다.
갑작스런 정차에 중심을 잃은 유빈과 전사들이 객차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이쿠!”
“뭐라고 잡아!”
전용객차가 이내 멈춰 섰다.
객차 안은 물론이고 터널에도 비상등 하나 밝혀져 있지 않아 온통 암흑이었다. 하대수의 입에 물려 있는 시가불이 붉은 반딧불처럼 보였다.
하대수는 차분하게 명령을 내렸다.
“당황하지 마라! 견착등을 밝히고 각자 무기를 점검해!”
전사들은 전투배낭에서 견착등을 찾아 어깨에 걸치고 스위치를 켰다. 여러 개의 견착등이 밝혀지면서 어둠이 가셨다.
“강철민, 애들 상태를 점검해.”
“알겠소, 사령관.”
강철민이 전사들을 하나씩 살피면서 물었다.
“다친 녀석은 없는 거냐? 확실하게 보고해.”
전사들이 차렷 자세로 보고를 올렸다.
“이상 없습니다!”
“타박상을 조금 입었지만 괜찮습니다!”
“이가 조금 깨졌을 뿐입니다!”
하대수는 김석현과 앙드레, 요아를 가까이 불러 상황을 숙의했다.
“윤서경 그 새끼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가 헬돔으로 귀환하기 전에 죽일 생각인 것 같다. 놈이 먼저 도발했으니 당연히 밟아줘야지. 당장 서울역 본사로 진격하겠다.”
김석현이 냉정하게 현실을 진단했다.
“사령관, 윤서경이 객차를 멈춘 데는 두 가지 의도가 있는 것 같소.”
“두 가지 의도라고?”
“첫 번째는 우리에게 아까운 전력을 낭비하면서까지 왕십리역까지 보내주지 않겠다는 거요. 알아서 헬돔까지 귀환하고 엘리시움을 넘보지 말라는 암묵적인 표시오.”
“개새끼! 감히 헬돔을 무시해?”
하대수가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내뱉었다.
“두 번째는 의도는 뭔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면 한번 해보라는 도발이오.”
“큿, 놈의 뜻이 그렇다면 소원대로 밟아줘야겠군.”
“하지만 현재 지닌 개인화기만으로는 엘리시움 본사를 점령하기가 쉽지 않소. 메트로레인은 엘리시움의 세상이니 보급이나 지원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오. 일단은 가까운 역사를 통해 외부로 탈출한 후 안전하게 복귀하는 게 수순이오. 엘리시움과의 전쟁은 그 다음이오.”
“젠장, 그런 치욕스런 퇴각은 절대 안 돼!”
하대수가 강하게 반발하자 요아가 싱긋 미소를 띠었다.
“당연하지. 이곳 누구라도 쪽팔리는 퇴각은 거부할 걸?”
“좋아, 역시 요아답구나.”
하대수는 앙드레에게 의견을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앙드레?”
“난 헬돔 소속이 아니지 판단은 사령관의 몫이오. 나는 어떤 경우라도 윤서경을 찾아갈 거요.”
“자네 혼자, 아니 요아와 단 둘이서 말인가?”
“내 목표는 윤서경이지 엘리시움 전체가 아니오.”
하대수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엘리시움을 무너뜨려 서울시민들을 좀비들한테 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결정을 내린 하대수가 전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이번 전투의 목표는 엘리시움 본사 점령이다. 후퇴는 없다. 무조건 진격한다, 알겠나?”
“예, 사령관님!”
하대수는 전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차례로 지시를 내렸다.
“정한수, 권호창. 너희 둘이 전방 척후를 맡아라.”
“알겠습니다!”
호명을 받은 전사 둘이 객차의 비상개폐기로 문을 열고 선로로 내려섰다.
“나단, 백세훈! 너희 둘은 후방 감시를 책임져라!”
“옛, 써!”
선로로 내려선 두 전사는 객차 뒤쪽으로 이동했다.
유빈의 경례를 받은 하대수가 쓴 입맛을 다셨다.
“유빈, 넌 중간에서 보급을 책임져라. 절대 다치지 마라. 이건 명령이야, 알겠나?”
“예, 사령관님.”
전사들에게 각자 임무를 부여한 하대수는 김석현과 강철민을 대동해 객차에서 내려섰다.
요아가 유빈을 가볍게 포옹했다.
“걱정 말고 내 옆에 붙어 있어. 우리 모두 무사하게 헬돔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엘리시움 본사를 점령하는 거 아니었어?”
“맞아. 이건 실전이니 너무 나대지 마.”
“누나, 나 두렵지 않아. 헬돔의 전사답게 싸울 거야.”
유빈은 앙드레에게 경례를 올렸다.
“아저씨, 누나를 꼭 지켜주세요.”
“그러마.”
“아저씨가 같이 있으니 든든해요.”
유빈은 전투배낭을 챙겨 메고는 객차에서 내려섰다.
요아가 못내 불안한 듯 한숨을 내쉬자 앙드레가 위로해 주었다.
“유빈이 미숙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야.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어.”
“알았어. 나보다는 유빈을 챙겨 줘.”
“유빈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군.”
“훗, 지금 질투하는 거야? 사실 유빈은 이 년 전 내가 구했어. 당시 유빈의 부모가 좀비들에게 몸을 던지면서까지 유빈을 지키려 했지. 너무도 참담한 상황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은 거야.”
“그렇다면 강한 운명을 지녔군.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니 안심해.”
앙드레는 요아와 함께 객차에서 내려섰다.
터널
터널은 지옥의 입구처럼 어둡고 음산했다.
열 명으로 구성된 앙드레와 헬돔의 전사들은 칠흑 같은 터널을 따라 서울역 방향으로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견착등을 끄면 눈앞에 손가락을 갖다 대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이기에 진군 속도는 다소 더뎠다.
저벅저벅……!
군홧발 소리만 터널 내에 부딪쳐 메아리로 들려올 뿐 사위는 지나칠 만큼 조용했다. 언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모두가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선두에서 척후를 맡고 있는 정한수와 권호창은 전신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워낙 어둠이 짙다보니 견착등의 불빛으로도 고작 5미터 전방을 살필 수 있을 뿐이었다.
앙드레는 갤럭시 텐을 통해 테네시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연결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터널 내의 전원이 모두 차단되면서 통신 중계기도 먹통이 되었나 보군.’
김석현은 견착등으로 메트로레인의 지도를 살피며 현 위치를 점검했다.
“전방에 충무로 환승역이 있소. 지금껏 지나친 경로를 감안하면 충무로역까지는 대략 오백 미터에서 칠백 미터 거리요.”
“환승역이라면 서브시티가 건설돼 있겠군. 일단 그곳을 점거해 무기와 실탄을 보급하자고.”
“아마 엘리시움 놈들도 그곳에 방어막을 펼쳐놓았을 거요.”
“너무 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다음 역은 어딘가?”
“충무로역을 통과하면 명동역과 회현역을 지나 서울역에 이를 수 있소. 대략 삼 킬로미터 이내의 거리요.”
“좋아, 그 정도 거리면 전투를 감안해도 두 시간 이내에 당도할 수 있어.”
하대수은 앞쪽에서 유빈과 나란히 이동하는 강철민에게 지시를 내렸다.
“척후조가 힘들겠다. 교대시켜 줘.”
“예, 사령관.”
강철민는 전방 30미터에서 척후를 맡고 있는 정한수와 권호창에게 무선 교신으로 지시했다.
“나단과 백세훈을 보내겠다. 이제 교대해.”
정한수가 완만하게 휘어지는 터널을 따라 이동하면서 응답했다.
“지금 곡선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시야가 확보되면 교대하겠습니다.”
“오케이. 나단과 백세훈을 대기시키겠다.”
강철민는 후방 감시를 담당하고 있는 나단과 백세훈을 호출했다.
“잠시 후 전방 척후와 교대해.”
정한수와 권호창은 완만한 곡선 구간을 지나 직선 구간으로 진입했다. 터널 멀리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것으로 미루어 충무로역인 듯싶었다.
“너무 조용하니 답답해 미치겠군.”
“힘들군. 이제 교대하자.”
두 전사는 겨우 긴장감을 해소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전망 이상 무. 척후 교대를 요청합니다.”
한데 이때였다.
툭……!
정한수의 군홧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철로를 가로지른 가는 구리선이기에 견착등에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전면에서 폭음이 터지며 어마어마한 쇠구슬이 뿜어졌다.
펑–퍼펑!
크레모어였다. 복선 철도 위에 매설돼 있던 크레모어가 구리선의 충격으로 폭발한 것이다.
“아아악!”
“크억!”
처절한 비명과 함께 정한수와 권호창이 무수한 쇠구슬에 관통돼 나가동그라졌다. 그들은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워낙 근거리에서 적중되는 바람에 방탄조끼마저 너덜너덜해졌다.
강철민이 유빈의 머리를 찍어 누르며 엎어졌다.
“엎드려–크레모어다!”
급박한 외침에 앙드레와 요아는 터널 벽에 몸을 바싹 붙였고, 하대수와 김석현을 비롯한 전사들은 철로 사이에 바싹 엎드렸다.
피피핑–!
수천 개의 쇠구슬이 그들의 머리 위를 스치며 고막을 자극했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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