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Last Three”
최후의 삼인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약간의 휴식이 필요했다. 10명의 특공대는 음료수를 마시고 초콜릿과 스위트콘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이글의 시신은 궤도차량에 실려 터널 밖으로 이송됐고 앙드레가 요구한 보급물자가 당도했다.
각자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앙드레는 요아, 마이클과 함께 테블릿PC의 도면을 보면서 작전을 구상했다.
마이클이 손끝으로 화면을 넘기며 설명해 주었다.
“환승역이기 때문에 좀비들이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스무 곳도 넘어. 역내로 진입해도 좀비들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데 아마 탄약이 부족할 거야.”
요아는 엘리시움에서 왜 그동안 메트로레인 통행을 위한 작전을 펼치지 못했는지 충분히 실감했기에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헬돔 전사들을 더 많이 데려올 걸 그랬어.”
“병력이 많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개인화기만을 사용해야 하니 전투력과 의지의 문제이지.”
앙드레는 화면을 살피면서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환승역 전체를 확보할 필요는 없어. 메트로레인이 통행할 수 있는 철로만 안전하면 되니까. 좀비들이 역내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만 봉쇄하자.”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면 굳이 환승역 전체를 점거하지 않아도 돼. 엘리시움도 이곳에 서브시티를 건설할 의향이 있다면 저들이 청소 작업을 하겠지. 일단 역과 연결된 통로만 봉쇄하면 메트로레인이 충분히 통행할 수 있을 거야.”
“좋아, 진입작전은 이렇게 한다.”
앙드레는 두 사람에게 세부적인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과거의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아도 특전사와 용병부대에서 숱한 작전에 참가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의 작전계획은 간단하면서도 치밀했다.
요아가 담배를 꼬나물고는 어깨를 두드렸다.
“잠깜 기다려.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싸우자.”
마이클이 회전식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며 말을 받았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왠지 거슬리는군.”
“난 매일을 마지막으로 생각해. 그래야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거든.”
“하하, 정말 긍정적인 사고야. 한데 말이야 사내와 하룻밤을 보낼 때도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즐겨?”
마이클의 짓궂은 농에 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궁금해?”
“그냥. 상상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마이클, 제발 좀비한테 한 번 물려라. 네 머리통에 총알을 마구 박을 수 있게 말이야!”
“하하. 분위기가 너무 침체된 거 같아서 웃자고 하는 소리였어.”
“한데 전혀 안 웃기잖아, 새끼야!”
요아가 눈을 부라리자 마이클은 양손을 쳐드는 항복 제스처를 취했다.
“쏘리. 내가 본래 개그에는 취약해.”
“큿, 혓바닥은 잘 놀린다니까.”
요아는 마이클에게 진한 담배연기를 뿜어주고는 꽁초를 발로 밟았다.
“난 준비됐어, 앙드레.”
“좋아, 전투 준비!”
앙드레는 9명의 특공대원들을 이끌고 8번 게이트 앞으로 다가섰다.
7번 구간에서 맛본 첫 승리의 쾌감은 진작 잊었다. 잠시 전 두 번째 전투에서 실감한 공포와 전율이 되살아나면서 모두가 긴장했다.
앙드레는 게이트 개폐 레버를 쥐고 있는 마이클에게 지시했다.
“게이트 열어!”
마이클은 레버를 수동으로 전환시켜 살짝 당겼다.
그그긍!
게이트가 70센티 정도만 상승했다.
“화염발사기 방사!”
화르륵!
2대의 화염방사기가 열린 게이트 아래쪽으로 향해 화염을 뿜었다. 게이트 밖에 몰려 있던 좀비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일부 좀비들이 불이 붙은 채 몸을 구부려 게이트로 기어들어왔다.
앙드레는 시그를 연사로 갈겨댔다.
“발칸 발사!”
투투투!
2대의 발칸 기관총이 기어드는 좀비들을 향해 수백 발의 총알을 쏟아냈다. 벌집이 된 좀비들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앙드레는 시그의 탄창을 갈아 끼우며 다시 외쳤다.
“크레모아 투입!”
대원들이 6개의 크레모아를 게이트 아래로 던져 넣었다. 1차 작전이 완료되자 마이클은 레버를 당겨 게이트를 하강시켰다.
콰직…….!
육중한 게이트가 좀비들의 사체를 으스러뜨리며 닫혔다.
앙드레는 요아에게 무선 발신기를 건넸다.
요아는 발신기를 손에 쥐고는 나직이 뇌까렸다.
“이글, 멋진 광경이 될 거야.”
요아가 무선 발신기를 작동시키자 게이트 너머에서 연이어 폭음이 울려 퍼졌다.
펑–퍼펑!
6개의 크레모아가 연속적으로 터진 것이다.
크레모아의 강력한 후폭풍에 게이트가 요동쳤고 쇠구슬이 박혔는지 날카로운 쇳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
앙드레는 크레모아가 모두 터진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진입 작전을 전개했다.
“게이트 열어!”
마이클이 레버를 힘껏 올리자 게이트가 터널 천장까지 급속도로 상승했다.
크레모아의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받아라, 좀비 새끼들아!”
하이치와 론도가 터널 입구를 향해 화염방사기를 마구 뿜어댔다. 터널 입구 일대가 삽시간에 불바다로 화했다.
“카우우우!”
바닥에 널브러져 화염에 휩싸인 좀비들의 비명소리가 처절했다.
좀비들 대부분은 크레모아에 적중돼 팔다리가 떨어져나갔거나 후폭풍을 맞아 몸이 절단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화염방사기의 불길이 방사된 것이다.
대원들은 꿈틀거리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향해 총을 발사하면서 역내로 들어섰다. 후끈한 열기를 피워내는 좀비들의 사체가 발에 밟혔다.
역내는 캄캄했다.
마이클의 요청으로 역내로 전기가 송전됐지만 조명시설이 파손됐는지 전등이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철로와 승강대를 사이를 막아놓은 스크린도어도 대부분 부서져 있었다.
대원들이 견착등을 밝히자 철로와 승강대 위에 몰려 있는 수많은 좀비들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보였다.
“진격!”
앙드레가 외치자 발칸총과 소총이 일제히 난사되었다.
화염탄창을 갈아 끼운 하이치가 철로 위를 달려가면서 화염방사기를 방사하자 토니가 뒤따르며 발칸 기관총을 갈겨댔다.
투투투!
철로를 점거하고 있던 좀비들이 족족 쓰러졌다.
“카아아!”
승강대 위의 좀비들이 하이치와 토니를 향해 달려들자 앙드레와 마이클이 엄호해 주었다. 두 사람은 침착하게 좀비들의 머리를 조준해 쏘았다. 빗나가는 총알이 없었기에 좀비들은 하이치와 토니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모두 널브러졌다.
승강대 위로 올라선 요아와 대원들이 연사로 갈겨댔다.
“죽어, 괴물 새끼들!”
“어서 와라! 모조리 박살내주겠다!”
격렬한 전투였다.
그래도 8번 게이트를 처음 열었을 때 폭풍처럼 몰아치던 전투용 좀비들이 몰살되어서인지 좀비들의 공세가 좀 전처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요아는 4명의 대원들을 대동해 좌측 승강대를 점거해가고 있었다. 좀비들은 무지막지한 화력에 적중돼 철로 변으로 추락하거나 통로 쪽으로 밀렸다.
하이치가 철로 변으로 추락한 좀비들을 확인 사살하는 동안 요아는 좀비들을 밀어내고 계단까지 확보했다.
요아는 계단의 철제 셔터를 내려 통로를 차단했다.
“일번 통로 봉쇄!”
우측 승강대에만 세 개의 통로가 더 있기에 마저 차단해야 했다.
앙드레 일행은 좀비들을 몰아내고 우측 승강대의 통로를 차례로 폐쇄했다.
탕, 탕, 탕!
마이클의 쌍권총은 연사 속도의 소총만큼이나 빨랐다. 게다가 빗나가는 적이 거의 없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이제는 좀비들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널브러진 좀비들의 사체를 밟고 진격하는 것이 더 힘겨울 정도였다.
마침내 우측 승강대의 좀비들을 모두 몰아내고 네 번째 통로를 셔터로 봉쇄했다.
철제 셔터가 견고하기는 해도 완벽하지는 않다. 좀비들은 대단한 완력을 지니고 있기에 수십 명이 지속적으로 잡고 흔들며 셔터가 뜯겨나갈 수도 있게 보강 시설이 필요했다.
이때 우측 승강대 쪽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
좀비의 비명이 아니었기에 앙드레는 대원들과 함께 철로를 가로질러 좌측 승강대로 올라섰다.
후퍼가 좀비 하나와 뒤엉킨 채 계단 위에 쓰러져 있었다. 놀랍게도 좀비가 쥐고 있는 대검이 후퍼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좀비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진화였다.
후퍼는 도주하는 좀비들을 쫓아 혼자 통로 계단까지 올라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뒤늦게 달려온 요아가 좀비를 걷어차 쓰러뜨리고는 소총으로 마구 갈겼다.
투투투!
“죽어, 괴물 새끼! 죽어!”
요아는 탄창 빌 때까지 쏘아댔다. 좀비의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졌다.
요아가 빈 탄창을 빼고 갈아 끼우려 하자 앙드레가 제지했다.
“그만해, 이만 박살났어.”
“니미,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요아는 소총을 내던지고는 후퍼를 부축해 안았다.
“후퍼, 후퍼! 눈을 떠, 이 자식아!”
후퍼의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대검이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자루만 보였다.
요아는 후퍼의 뺨을 때렸다.
“눈을 뜨라고, 후퍼!”
후퍼는 부들부들 떨다가 겨우 눈을 떴다.
“우욱, 대… 대장.”
“정신 차려! 눈 감으면 안 돼!”
후퍼의 입 꼬리를 통해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폐 손상의 여파였다.
“씨발… 이글 그 녀석이… 나를 먼저 부르네.”
“후퍼…….!”
후퍼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겼는데… 이겼는데…….”
후퍼의 머리가 축 늘어졌다.
앙드레의 후퍼의 경동맥을 짚어 보았다. 반응이 전혀 없었다.
두 번째 전사자.
이글은 좀비에게 물려 감염되는 바람에 사살됐지만 후퍼는 좀비의 공격에 의해 죽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요아는 담배를 꺼내 불을 댕기고는 후퍼의 입에 물려주었다. 이것이 죽은 동료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애도였다.
앙드레는 마이클과 함께 역과 연결된 여덟 곳의 통로를 모두 점검했다. 두 곳 통로에서 몇몇 좀비들이 셔터를 쥐고 흔들어대다가 앙드레와 마이클에 의해 모두 머리통이 뚫렸다.
앙드레는 요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이클, 상황 전달해.”
마이클은 무전기를 켜 교신했다.
“여기는 특공대. 8번 구간으로 진입해 역을 확보했다. 통로를 차단하고 역을 완전하게 장악했다.”
대다한 희소식이기에 무전기를 통해 보안실 요원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웃음이 담긴 보안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핫, 놀랍군. 솔직히 환승역 탈환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또 한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유감이군.”
“출입 계단을 차단한 셔터로는 좀비들의 진입을 감당하기 어렵다. 즉시 보강 작업을 실시해야 돼.”
“오케이. 즉시 방역팀과 기술팀을 파견하겠다.”
덜컹덜컹……!
흰 천으로 덮인 후퍼의 시신이 궤도차량에 실려 터널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앙드레 일행은 승강대에 서서 이를 바라보다가 궤도차량이 터널 속으로 사라지자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글에 이어 후퍼까지 연속 두 명의 동료들을 잃었기에 분위기가 침중했다.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하이치가 배를 쓸며 너스레를 떨었다.
“짜장면 시킨 지 오래전인데 왜 여태 배달 오지 않는 거야?”
토니가 실소를 흘리며 말을 받았다.
“내건 곱빼기로 시켰지?”
“그래, 이글과 후퍼 몫까지 열한 그릇 배달 올 테니 배터지게 처먹어라.”
방역팀이 역내 방역 절차를 마치자 기술팀이 역과 연결된 여덟 곳의 외부 연결통로에 철판을 덧대고 용접 작업을 벌였다.
전원이 연결되었는지 역내에 전등이 환하게 밝혀졌다.
역시 밝음은 좋았다. 밝은 불빛 때문인지 대원들의 그늘진 표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잠시 후 궤도차량을 통해 식사가 배달되었다.
하이치가 주문했다던 짜장면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푸짐한 식사였다. 여태 통조림과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웠던 헬돔 전사들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성찬이었다.
소스를 얹은 살코기와 신선한 채소, 그리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과 커피까지 갖춰져 있었다.
아홉 명의 대원들은 바닥에 둘러앉아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음식을 먹었다.
요아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마이클, 엘리시움에서 항상 이렇게 식사하는 것은 아니지?”
마이클이 능청스럽게 응수했다.
“물론 아니야. 내가 듣기로 사형수들에게 집행 직전 푸짐한 식사를 내준다고 하더군.”
“이그, 꼭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해요.”
“하하, 양재 환승역까지 확보했다는 보고에 엘리시움 사장이 감격한 것 같아. 메트로레인 통행이 가능하게 됐으니 이제 역사를 점거하면 또 하나의 서브시티를 세울 수 있으니 말이야.”
“그치들이 우리들의 공로를 기억해줄까?”
“절대 아니지. 서브시티가 완성되면 자신들의 땀과 열정이 서린 작품으로 홍보할 테니까.”
요아는 이미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내려놓았다.
“에이, 입맛 떨어져서 더는 못 먹겠네.”
데니시는 후식으로 나온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신선하기는 해도 향과 맛이 별반 느껴지지 않았다.
‘인공재배의 한계로군.’
이때 앙드레의 손목에서 스마트 워치가 반짝거렸다.
‘이곳까지 통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한쪽의 나무벤치에 걸터앉아 통신기를 귀에 꽂았다.
“테네시?”
“예, 앙드레. 환승역 확보를 축하드려요.”
“소식 한번 빠르군. 역내 시설이 오랫동안 폐쇄되었을 텐데 통화가 가능한 거야?.”
“잠시 전 중계기가 설치됐어요.”
“엘리시움이 애니그마 연구소에 대해서는 깍듯하군. 테네시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니 말이야.”
“두 명의 대원이 전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어요. 앙드레의 스마트 워치에 소정의 위로금을 추가 송금했어요. 유가족들에게 전해 주세요.”
“위로금을 받을 가족이라도 있나 모르겠어.”
앙드레는 담배를 한 개비 물고 라이터를 켰다.
“두 구간을 통과했으니 이제 세 구간만 남은 건가?”
“맞아요. 다음 구간은 폐쇄된 터널이라 좀비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십번 구간은 메트로레인이 교차하는 터널이라 조금 힘들 겁니다.”
“쉬운 구간은 없었어.”
“죄송해요. 너무 수고를 끼쳐서.”
“내 선택을 뿐이야. 제니를 만나야 하니까. 물론 테네시 너도 보고 싶어.”
킥 하는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실망하실 거예요.”
“오해 마. 네게 프로포즈하려는 건 아니니까.”
“농담도 다 하시고. 이제 거의 회복되신 것 같아요.”
“기억만 확실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오늘 중으로 만나기를 기대하겠어요.”
“그래, 테네시. 꼭 만나자.”
통화가 끝나자 앙드레는 통신기를 빼서 상의 포켓에 넣었다.
‘테니시… 내게 많은 도움을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왠지 석연치 않아.’
그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식물인간으로 지냈다가 얼마 전 깨어났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다.
애니그마 연구소는 계약에 의해 자신의 사후 신체를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녔다. 한데 왜 자신을 되살린 것일까.
‘내가 죽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테네시는 그것을 알고 있어.’
이때 마이클과 요아가 다가섰다. 마이클이 테블릿PC 화면의 도면을 보여 주었다.
“다음 구간은 어렵지 않겠어. 구번 게이트와 십번 게이트 사이는 폐쇄된 터널이야. 폐쇄된 날짜를 보니 삼 년도 넘었어. 그동안 모두 굶어서 뒈지지 않았을까?”
요아가 앙드레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좀비 새끼들은 그 정도에 죽지 않아. 바퀴벌레처럼 생명력이 끈질겨 가사상태로 지내다가 신선한 살과 피 냄새를 맡으면 벌떡 깨어나지. 굶주린 좀비들일수록 아주 사나워.”
앙드레는 이틀 전 철문에 갇혀 있던 좀비들을 뭣 모르고 구해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굶주린 좀비들의 공격은 무척이나 사나웠다. 당시 요아 일행의 도움이 없었다면 좀비들의 한 끼 식사가 됐을 것이다.
“이번 구간은 나 혼자 나설 테니 모두들 잠시 쉬고 있어.”
요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쳤어? 굶주린 좀비들이 바글거릴 텐데 혼자서 싸우겠다고?”
“좀비들 숫자가 많지 않을 테니 가능해.”
“훗, 혼자 영웅이 되시겠다?”
“그런 생각한 적 없어. 다음 구간에 대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거지.”
“앙드레는 뭐 철인이라도 되는 거야?”
“내 일이잖아? 이번 구간을 통과해도 두 개의 구간이 더 남아 있어.”
“좋아, 그럼 우리 둘이서만 나서자고.”
요아가 다정하게 말하자 마이클은 테블릿PC를 옆구리에 꼈다.
“이쯤에서 빠져주지 않으면 내가 눈치 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듣겠지?”
마이클이 대원들 쪽으로 향하자 요아가 은근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아까 누구와 통화한 거야?”
“테네시. 애니그마 연구소의 직원이야.”
“테네시라면… 여자야?”
“맞아.”
“예뻐?”
“얼굴을 본 적도 없어.”
요아의 눈매가 샐쭉해졌다.
“통화하는 모습이 제법 다정하게 보이던데?”
“오해 마. 아직 어린애일 뿐이니까.”
“어머나, 어린애라고? 취향이 독특하군. 혹시 변태야?”
앙드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자신을 잘 모르겠어. 네 말대로 변태일 수도 있겠지.”
요아가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농담이야, 앙드레. 화난 거 아니지?”
“물론.”
앙드레가 철로로 내려서자 헬돔 전사들이 달려왔다.
“뭐하려는 거야, 앙드레?”
“대장과 둘만 진입하겠다고?”
요아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니들은 푹 쉬고 있어. 이번 구간은 나와 앙드레 둘이서 처리할 테니까.”
하이치가 화염방사기를 둘러멨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
“인마, 안 죽어. 폐쇄 구간이라 좀비들 몇 되지 않을 테니 구경이나 하고 있어.”
마이클이 승강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좋아, 어디 두 사람 실력 좀 보자고. 내가 게이트를 열게.”
6명의 대원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터널 입구에 늘어섰다.
M11 – G9.
페인트가 대부분 벗겨져 있어 9번 게이트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마이클은 게이트 개폐 레버를 쥐었다.
“앙드레, 무리하지는 마. 힘겹다 싶으면 곧바로 물러서. 즉시 지원할 테니까.”
“알았어. 게이트 열어!”
앙드레와 요아는 각기 복선 철로 한쪽씩을 맡았다.
그그긍!
게이트가 올라가자 칙칙한 어둠 속에서 음습한 악취가 확 풍겼다. 오랜 세월 천장의 환기장치가 가동되지 않은 탓이다.
마이클이 터널 내부를 살피며 말했다.
“전원이 복구되기는 했군. 몇 개의 LED 전등이 켜졌으니 조금씩 밝아질 거야.”
터널 천장에 드문드문 전등이 밝혀져 있지만 터널 내부는 어둠이 짙었다.
앙드레와 요아는 견착등을 밝힌 채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견착등을 통해 바닥에 쪼그려 있는 좀비 몇 구가 보였다.
“크르르……!”
예미한 후각으로 살 냄새를 감지한 좀비들이 되살아난 시체처럼 벌떡벌떡 일어섰다.
“그냥 자빠져 있어!”
요아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겨냥해 소총을 휘둘렀다.
투투투!
3구의 좀비가 그대로 자빠졌다.
이어 터널 내부에서 좀비들의 괴성이 메아리쳐 울렸다.
요아는 소총을 거머쥔 채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후우, 이거 짜릿한데? 엑스터시가 느껴져.”
견착등을 통해 달려드는 좀비들이 보였다.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바싹 여윈 모습이 해골을 방불케 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달려드는 속도가 아주 빨랐다. 일부 좀비는 짐승처럼 두 손까지 이용해 네 발로 달려들었다.
“어서들 와!”
요아는 좀비들을 조준해 연사로 갈겨댔다.
투투투!
앙드레는 시그를 뒤로 돌리고 매그넘 권총과 정글 칼을 양손에 쥐었다. 근접전에서는 오히려 소총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2구의 좀비가 3미터도 넘게 점프해 공중에서 내리꽂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탕, 탕!
앙드레는 매그넘으로 공중에서 날아드는 좀비의 머리를 박살내고는 정글 칼을 휘둘렀다.
퍽, 퍽, 퍽!
좀비들의 대가리가 연이어 솟구쳐 올랐다.
요아도 소총을 뒤로 돌리고는 권총을 꺼내 응사했다.
“새끼들, 제법 빠른데?”
터널 밖에서 관전하고 있던 대원들은 좀비들의 빠른 몸놀림에 다소 놀랐다.
“저것들 보게? 오래 굶으면 저렇게 변하는 건가?”
“저 새끼는 아예 짐승으로 변했나 봐. 시종 네 발로 뛰잖아?”
“우와, 점프가 엄청 높아.”
하이치가 화염방사기의 노즐을 매만졌다.
“함께 나서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야. 저렇게 빠른 놈들한테 둘러싸이면 함부로 총질을 할 수도 없잖아?”
마이클이 가장 아쉬웠다.
“이건 내 게임이었어. 좀비 놈들의 움직임이 속사 표적과 다를 바 없다고.”
그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3구의 좀비가 네 발로 터널 벽을 타고 터널 밖으로 달려왔다. 요아가 이들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하나 밖에 맞추지 못했다.
2구의 좀비가 달려들자 마이클이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오 예! 나한테 맡겨!”
대원들 앞으로 나선 마이클은 총을 뽑지 않고 서부의 총잡이처럼 양손을 늘어뜨렸다.
“카우우!”
두 좀비가 힘차게 도약하며 동시에 마이클의 좌우를 노렸다. 마이클은 두 좀비가 1미터 앞으로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총을 뽑았다.
탕, 탕!
두 좀비는 정확히 미간에 구멍이 난 채 떨어졌다.
마이클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빙글 회전시키고는 권총을 총집에 넣었다. 대단한 속사며 묘기였다.
한편 앙드레와 요아는 터널 중간까지 진입했다.
탕, 탕, 탕!
요아가 총을 쏘는 사이 앙드레는 정글 칼을 휘둘러 바닥으로 낮게 달려드는 좀비들의 목을 날려버렸다.
좀비들의 숫자가 50구 정도였기에 전투는 길지 않았다. 두 사람은 터널 내의 좀비들을 모두 소탕하고는 10 번 게이트 앞에 이르렀다.
다섯 개 구간 중 세 구간을 통과한 것이다.
10번 게이트 앞.
앙드레가 다음 구간의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구간은 메트로레인의 교차 구간이라 다소 복잡하다. 세 개의 터널이 이어져 있기에 좀비들이 숨어 있다면 대응이 쉽지 않다. 내부 상황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으니 일단 진입한 후 수색을 전개한다.”
토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좀비들이 숨어 있어? 괴물들이 그런 지능까지 있단 말이야?”
“그 이상일 수 있어. 좀비들도 과거에는 인간이었어. 바이러스 때문에 좀비로 변했지만 인간의 지능이 남아 있다면 진화의 가능성은 충분해.”
“미치겠군. 이러다가 좀비들과 인사라도 나눠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하이치가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헤헤, 재미있겠는 걸? 여어, 비감염자. 안녕하슈. 당신의 신선한 살점을 한 입만 먹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소. 이제 당신도 좀비가 돼서 우리와 한 동료가 되는 거요.”
터무니없는 개그에 모두가 키득거렸다.
앙드레는 마이클에게 턱짓을 보냈다.
“게이트 열어!”
“오케이.”
마이클이 개폐 레버를 당기자 게이트가 올라갔다.
기분 나쁠 만큼 조용했다.
터널 상단의 벽을 따라 야광 표시등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어 방향을 알려 주었지만 터널 내부를 밝혀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이치와 오언이 나란히 화염방사기를 방사했다.
화르륵!
강렬한 화염에 터널 내부가 순간적으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좀비들이 모두 철수했는지 한 구도 보이지 않았다.
앙드레 일행은 조심스럽게 터널 내부로 진입했다. 무거운 정적이 좀비들의 공격보다 그들을 더욱 심적으로 압박했다.
비교적 활달한 성격의 하이치가 짜증을 부렸다.
“이 새끼들 모두 토낀 건가? 좀비의 악취가 갑자기 그리워지는군.”
앙드레가 전방을 주시하다가 마이클에게 물었다.
“좀비들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몇 개나 돼?”
“이곳이 아마 메트로 십팔 구역쯤 될 거야. 예전에 서브시티가 있던 곳인데 좀비들의 습격을 받아 폐쇄됐지. 더군다나 이곳은 노선이 교차되는 구간이라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가 스무 곳도 넘어.”
“그렇다면 좀비들이 지내기 적합한 장소로군. 좀비들 대부분은 태양을 싫어하니 낮에는 지하 공간이나 이런 터널을 찾아 머물 테니까.”
“그렇다면 좀비들이 우글거려야 하는데 왜 한 마리도 안 보일까?”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터널 멀리까지 도주했을 수도 있어.”
요아가 평소답지 않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후자였으면 좋겠어. 이제는 좀비 새끼들과의 싸움이 지긋지긋해.”
토니가 실소를 흘리며 이죽거렸다.
“크흣, 대장답지 않은 소리를 다 하는군. 하루라도 좀비를 죽이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면서?”
“인마, 오늘 작살낸 좀비가 몇 마리나 되는지 알아? 이 정도면 한 달 정도는 푹 쉬어도 돼.”
주변을 경계하는 더딘 진입이기에 20분이 지났는데도 고작 500m를 전진했을 뿐이다.
갑자기 시야가 확 틔었다.
단일 터널이 세 개의 터널로 갈라졌고 여러 가닥의 철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마이클이 테블릿PC의 도면과 비교하며 설명했다.
“여기가 교차구간이야. 메트로 13호선은 좌측 철로를 따라 이어져. 중앙 철로는 회선용이고 우측 철로는 십이호선으로 연결돼 있어.”
“세 곳 노선을 전부 수색할 수는 없어. 어차피 십이호선과 연결된 십팔구역은 폐쇄됐으니 차단해 버리자.”
마이클은 천장의 동력을 가리켰다.
“여기서 차단하면 주동력선이 끊겨 메트로레인이 운행할 수 없어. 한 삼백 미터쯤 가면 차단문이 있을 거야. 그곳을 봉쇄하면 외부와의 연결 통로 여덟 군데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좋아, 우리는 13호선의 통행만 확보하면 되니 그곳부터 봉쇄하자.”
앙드레가 결정을 내리자 특공대는 우측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
화르륵!
하이치와 오언이 번갈아 화염방사기를 방사해 전망의 적을 경계했다. 다행히 차단문이 있는 구간까지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0구간 내부로는 아직 전원이 연결돼 있지 않아 대원들은 수동 레버를 돌려 차단문을 내려야 했다. 이중 차단문이 내려지면서 우측 터널은 안전하게 봉쇄되었다.
앙드레 일행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본래의 교차 구간에 이르렀다.
좌측 철로가 13호선의 주노선이고 중앙 철로는 우회 노선이지만 결국은 애니그마 역과 만나게 된다.
앙드레는 테블릿PC에 띄어진 메트로레인 투시도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거리와 이동 시간을 계산했다.
“함께 이동하는 게 안전하지만 시간이 너무 소모되는군.”
요아가 화면을 노선을 보고는 제안했다.
“그럴 필요 뭐 있어? 상황을 보니 좀비 놈들이 다른 곳으로 철수한 것 같아. 하기는 환승역에서 수천 마리가 뒈졌으니 놈들도 바싹 쫄았겠지. 조를 나누자고. 어차피 십일번 게이트 앞에서 만나게 돼 있잖아?”
마이클이 흔쾌하게 동조했다.
“그게 낫겠어. 십일번 게이트에 이르면 마지막 구간만 남는 거지. 솔직히 어서 작전을 끝내고 싶어.”
앙드레는 주변을 찬찬히 쓸어보다가 신중하게 판다했다.
“모두가 지치고 힘들다는 건 이해해.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야.”
요아가 강하게 반박했다.
“함께 이동한다고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야. 지난 구간처럼 발빠른 좀비들이 대거 몰려들면 오히려 적은 인원으로 대처하기가 더 안전해. 게다가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면 배후의 기습은 어쩔 건데?”
예리한 지적이었다. 주노선과 우회노선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칫 전면과 배후에서 동시에 공격 받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대원들 대부분이 장시간의 전투에 피곤한 상태라 요아의 의견을 지지했다.
앙드레는 모두의 의견을 좇아 결단을 내렸다.
“좋아. 난 마이클, 오언, 토니와 함께 우회노선으로 가겠다. 요아는 하이치를 비롯해 셋을 대동해 주노선으로 가.”
“우회노선이 훨씬 멀어.”
“그래서 내가 가려는 거야. 요아 조는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 신중하게 이동해.”
“오케이.”
“모두들 무전기를 귀에 꽂아.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절대 이동하지 말고.”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요아는 대원 넷을 대동해 좌측 터널로 진입했다.
“가자, 신병들!”
하이치가 일부러 오른쪽 군홧발소리를 크게 냈다.
“발을 맞춰라, 신병들. 하나 둘, 하나 둘!”
요아 일행은 행군하는 병사들처럼 보조를 맞추면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마이클이 앙드레의 표정을 살피며 넌지시 말했다.
“그렇게 요아가 걱정되면 함께 가지 그랬어?”
“요아 때문만은 아니야. 더 이상 헬돔 전사들을 잃고 싶지 않아.”
“그건 그래. 헬돔 전사들과 만난 지 반나절 밖에 안 됐지만 나도 마치 십 년은 지낸 동료들 같아.”
토니가 마이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만난 시간이 뭐 중요하겠어? 함께 목숨 걸고 싸웠으면 그게 동료이지.”
“하하, 그거 명언이다. 맞아. 목숨 걸고 싸운 동료가 진짜 동료이지.”
앙드레가 오언과 함께 앞장섰다.
“우리도 가자.”
중앙 터널은 좌측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있었다.
화르륵!
오언은 10미터를 전진할 때마다 화염방사기를 방사해 행여 있을 매복에 대비했다. 화염이 뿜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짙은 어둠이 소멸되었다.
일순 앙드레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정지신호를 보냈다.
“멈춰! 물러서, 오원!”
철로 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좀비들이 화염방사기에 의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좀비들이 고통을 거의 느끼지는 못해도 불길이나 충격에는 반응하는데 이미 생명력이 끊겼는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앙드레는 매그넘 권총으로 좀비들의 머리를 겨누었다.
탕, 탕, 탕!
확인 사살이었다. 좀비들은 몸이 재로 변하기 전에 되살아날 수 있기에 확실히 제거해야 했다.
토니가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뒈진 놈들이잖아? 시간낭비야.”
“이글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잊었어? 한순간 방심했다가 토막 난 좀비한테 물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야.”
앙드레의 엄한 표정에 토니가 입을 비죽거렸다.
“아, 알았다고. 대장 뜻대로 해.”
앙드레의 리더쉽 때문인지 토니는 스스럼없이 대장으로 호출했다.
이때 뒤쪽에서 총성이 메아리쳐 들려왔다.
앙드레가 무전기로 교신했다.
“무슨 일이야, 요아?”
“좀비 새끼들 몇 놈이 자빠져 있어. 화염방사기로 지져도 꼼짝도 하지 않고 총알을 먹여 주어도 반응이 없네. 이미 뒈졌나 봐.”
“여기도 마찬가지야.”
“그래, 몸뚱이에 별다른 부상 흔적도 없는데 어떻게 죽었을까?”
“좀비들은 머리가 파괴되어야만 제거돼. 나도 이것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기는 해.”
“배고파 뒈진 것은 아닌 것 같고… 독가스라도 맡은 건가?”
“좀비들이 독가스에 죽는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군.”
앙드레는 불길한 예감에 한번 더 당부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쓰러진 놈들을 모두 확인 사살해. 그게 안전하니까.”
“앙드레, 걱정해 주는 건 좋은데 우리 조는 내가 지휘해. 너무 꾸물대다가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
“알았어. 조심해.”
앙드레는 교신을 끊었지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터널에 널브러져 있는 좀비 사체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좀비들을 어떻게 죽은 거지? 정말 영양부족으로 모두 아사한 건가?
앙드레의 엄한 지시에 따라 마이클과 토니는 쓰러져 있는 좀비들을 하나씩 쏴서 뒤탈에 대비했다. 토니는 발칸 기관총을 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따분해했다.
“니미, 어떤 녀석이 우리 사냥감들을 모조리 빼앗아 간 거야?”
이때 네 사람의 무전기를 통해 요아 일행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아, 이게 뭐야!”
“이 새끼들, 죽지 않았어!”
“니미, 말도 안 돼! 여태 죽은 체하고 있었단 말이야!”
“씨발, 앞뒤로 포위됐어!”
요아의 날카로운 음성이 앙드레의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앙드레, 지원 요청!”
앙드레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죽은 체? 좀비들이 위장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앙드레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갔다.
“내가 요아 일행을 지원하겠다! 너희들은 배후의 기습에 대비해!”
“같이 가!”
토니가 동행하려 하자 마이클이 만류했다.
“앙드레에게 맡겨! 좀비들의 습격을 저지하는 게 우리들의 임무야!”
이 순간 우회 노선 터널 저편에서 고약스런 괴성이 울려 퍼졌다.
“카우우우!”
그것이 신호였는지 여태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좀비들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믿을 수 없게도 좀비들의 죽은 체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앙드레 일행도 위장하고 있던 좀비들의 간과한 채 진입했었다면 앞뒤로 포위당하는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터널이 진동하면서 엄청난 수효의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토니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니미, 이게 말이 돼! 괴물 새끼들이 어떻게 죽음을 위장해 함정을 판 거야? 이건 인간들이나 할 수 있는 고도의 계책이라고!”
마이클은 토니, 오언을 대동해 뒤로 물러섰다.
“좀비들을 지휘하는 놈들이 있다는 얘기가 사실이야. 좀비장군이나 좀비왕 되는 놈이 위장공격을 지시한 게 분명해!”
오언이 발칸 기관총을 발사했다.
“어떤 새끼든 모조리 죽이면 돼!”
투투투!
기관총 적중된 좀비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토니가 화염방사기로 응사하고 마이클이 조준 사격으로 좀비들의 머리통을 관통시켰다.
세 사람은 좀비들의 공격이 주춤하는 사이에 물러서다가 좀비들이 바싹 다가서면 재차 공격을 펼쳤다. 그나마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앞뒤로 포위를 당했다면 그들의 화력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투투투, 화르륵!
요아 일행은 앞뒤로 등을 맞댄 채 좀비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대원 둘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좀비들에게 먹히고 있었다. 죽은 체 위장하고 있었던 좀비들을 확실하게 제거하지 않고 진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요아 일행은 철로 변에 즐비하게 쓰러져 있는 좀비들을 일일이 제거하는 것이 귀찮아 발칸 기관총으로 대충 갈기면서 지나쳤는데, 그 바람에 좀비들 절반은 죽지 않았다.
그러다 죽음을 위장한 좀비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깨어나 돌격해 오는 바람에 요아 일행은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하이치는 배후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마구 방사했다.
“와라, 괴물 새끼들아! 어서 오라고!”
좀비들은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하이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요아가 지원사격을 해주었지만 좀비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으아아악!”
하이치는 그만 좀비들과 함께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하이치!”
요아는 안타깝게 외치며 좀비들을 걷어차고 소총으로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하이치는 결국 좀비들에게 의해 뜯기고 말았다.
하이치는 가슴에 달고 있는 수류탄을 뽑아들었다.
“물러서, 요아! 이 새끼들과 함께 가겠다!”
“하이치, 안 돼!”
“어서 물러서라니까!”
하이치의 처절한 외침에 요아는 터널 벽에 바싹 몸을 붙였다.
하이치는 좀비들에게 무참하게 뜯기면서도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했다.
“대장, 안녕!”
하이치는 두 개의 수류탄을 좀비들의 입에 처넣었다.
“이거나 처먹어, 괴물들아!”
펑–펑–!
수류탄이 연이어 폭발하면서 하이의 몸에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있던 좀비들이 모조리 조각나 버렸다. 물론 하이치의 몸도 함께.
요아는 절친한 하이치가 분사했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발칸 기관총으로 좀비들의 공격을 막고 있던 나단마저 쓰러진 것이다.
요아는 나단을 물어뜯는 좀비들을 향해 미친 듯이 쏘아댔다.
“죽어, 괴물들아! 죽으라고!”
앞뒤로 포위당한 요아는 조준할 생각도 없이 마구 갈겨댔다. 몸뚱이가 관통된 좀비들은 주춤하다가 다시 다가섰다.
철컥철컥!
탄창이 비었다. 좀비들의 워낙 근접해 탄창을 갈아 끼우기도 워낙 촉박한 상황이었다.
요아는 기관총을 뒤로 돌리고 권총을 뽑아들었다.
탕, 탕, 탕!
이번에는 냉정하게 조준사격을 전개했지만 한 자루 권총으로 좀비들을 모두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카우우!”
요아를 포위한 좀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요아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좀비들에게 물어 뜯겨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다 자살을 생각했다. 언제고 자신도 죽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요아는 자신의 정수리에 권총을 갖다 댔다.
“앙드레…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이때 요아의 무전기를 통해 앙드레의 엄중한 음성이 들려왔다.
“기다려, 요아. 거의 다 왔어!”
투투투!
시그의 총소리와 함께 좀비들의 머리통이 연이어 터지며 썩은 짚단처럼 주저앉았다.
앙드레는 좀비들 배후로 달려들면서 왼발로 바닥을 찍었다. 의족의 효과 때문인지 그는 5미터도 넘게 점프하면서 좀비들의 머리 위를 건너뛸 수 있었다.
앙드레는 공중에 뜬 상태에서 시그를 발사해 요아를 보호했다.
자신의 앞으로 내려선 앙드레를 대한 요아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가슴 뭉클한 감격으로 인해 오래전 잊고 있었던 눈물이 되살아난 것이다.
앙드레는 한손으로 요아의 허리를 안았다.
“꽉 잡아!”
주변의 좀비들이 괴성과 함께 일제히 달려들자 앙드레는 왼발로 바닥을 힘껏 걷어찼다. 그는 무려 5미터 높이의 터널 천장까지 치솟아 올랐다.
앙드레는 천장을 따라 이어져 있는 동력선을 쥐었다.
요아는 발아래서 바글거리는 좀비들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앙드레, 너 슈퍼맨이야?”
“놈들부터 해치우자.”
“알았어.”
두 사람은 한손으로 동력선을 잡고 매달린 채 바닥의 좀비들을 향해 소총을 갈겼다.
투투투!
머리통이 관통된 좀비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공중에서 쏘아대는 총탄이기에 좀비들은 멍하니 선 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탄창을 계속 갈아 끼우면서 소나기처럼 총탄을 퍼부었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자 좀비들은 결국 터널 바깥쪽으로 도주했다.
좀비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앙드레는 요아를 안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요아는 앙드레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비통함에 젖었다.
“제기, 모두 나 때문이야! 앙드레 말대로… 쓰러진 새끼들을 모두 확인 사살했어야 했어.”
“어쩔 수 없었어. 너무 자책하지 마.”
“아니야. 내가 너무 경솔했어.”
앙드레는 요아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래도 모두 용감히 싸웠잖아? 헬돔의 전사들답게 죽은 거야.”
앙드레의 위로에 요아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 여전사답지 않았다.
요아는 앙드레의 목을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었다.
뜨겁고도 격렬한 입맞춤.
애정보다는 감격의 정감이 담긴 입맞춤이었다.
앙드레는 입술을 떼고는 요아의 볼을 어루만졌다.
“요아, 우린 아직 살아남았어. 그리고 계속 전진할 거야.”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헬돔 전사한테 포기는 없어.”
이때 마이클이 견착등을 밝힌 채 달려왔다.
앙드레가 마이클의 뒤쪽을 살피며 물었다.
“토니와 오언은?”
마이클이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오언은 화염 방사기 노즐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좀비들에게 먹혔어. 격분한 토니가 발칸 총으로 마구 쏘아댔지. 데려가려 했지만 너무 흥분해 말을 듣지 않았어. 결국 좀비들에 둘러싸이자 수류탄을 터뜨려 자결했어.”
요아는 아픔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토니……!”
특공대로 참전한 헬돔의 전사 9명 중 그녀가 유일한 생존자였다. 전사한 동료들 모두 무수한 전투 속에서 피를 나눈 전우였기에 그녀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세 사람은 좌측 터널을 따라 다시 전진했다.
이번 전투에 많은 동료들을 잃었기에 입담 좋은 마이클조차 입을 다물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그들은 터널과 이어져 있는 작은 통로 앞에 이르게 되었다.
통로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이어져 있었다.
마이클이 배낭에서 테블릿PC를 꺼내 메트로레인 투시도를 화면을 띄웠다.
“애니그마 역으로 이어지는 비상통로야. 기술자들만 이용하는 통로인데 좀비들이 용케 찾아냈군.”
“이곳을 차단하면 십 구간은 확보되는 건가?”
“그런 셈이지. 교차 구간의 좀비들도 모두 사라졌으니까.”
“C4를 터뜨려 봉쇄하겠다.”
마이클은 천장과 터널 벽의 배선 상태를 살폈다.
“비상통로이니 폐쇄해도 메트로레인 통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겠어.”
앙드레는 계단 위쪽에 C4폭약을 설치했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터널 전체가 요동쳤다.
와르르!
비상계단 통째로 내려앉았다. 좀비들이 유능한 인부처럼 잔해를 하나씩 들어내지 않는다면 당분간 침입 위험은 없었다.
세 사람은 터널 끝을 막아선 게이트 앞에 이르렀다.
M15 – G11.
마침내 4개 구간을 모두 확보하고 이제 마지막 구간만 남겨 놓게 된 것이다. 하지만 11명이 참전해서 이제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최후의 삼인.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도 다음 구간에서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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