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Metro Zone 17”

메트로17구역.

앙드레 일행은 마이클을 따라 17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환영 인사가 살벌했다. 엘리시움의 보안요원들이 소총과 권총을 겨눈 채 그들을 맞이했다.

서브시티로 통하는 통로에는 검은 천이 둘러져 있었다. 서브시티 시민들에게 헬돔 무법자들의 진입을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검은 안경을 쓴 보안과장이 고압적인 눈빛으로 헬돔 전사들을 쓸어보았다.

“서브시티에 온 것을 환영하오. 하지만 온전하게 살아나갈지 모르겠군.”

앙드레가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

“우리는 엘리시움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오.”

“알고 있소. 그래서 이렇게 환대하는 것이 아니겠소?”

“한스 역장을 만나고 싶소.”

“역장님의 특별지시라 따르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영 좋지 않소.”

“나 역시 유쾌한 기분은 아니군.”

“역장님을 뵙고 나면 신속하게 서브시티에서 떠나주기를 정중하게 요청하는 바요.”

보안과장은 좁은 비상계단으로 앙드레 일행을 안내했다.

마이클은 계단 입구에서 앙드레와 작별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소. 신세를 갚아야 하니까.”

“개의치 마시오.”

“하하, 본래 도움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이 더 부담스런 법이오.”

마이클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취하고는 돌아섰다.

비상계단은 가파른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메트로레인으로 오가는 주출입구나 엘리베이터가 폐쇄됐을 비상사태 때 이용하는 통로로 보였다.

요아 일행은 나지막하게 투덜거렸지만 엘리시움 보안요원들을 자극할 의도는 없는지 비교적 조용하게 앙드레의 뒤를 따랐다.

비상계단의 출구는 자재창고로 연결돼 있었고, 한쪽 탁자에는 약간의 음료수와 간식이 준비돼 있었다.

“역장님은 앙드레 씨만 접견할 거요. 헬돔에서 오신 분들은 이곳에서 잠시 대기하시오.”

요아가 지니고 있던 총기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난 하대수 사령관의 대리인으로 온 사람이오. 앙드레와 함께 역장을 만나겠소.”

“그래, 요아도 함께 만나야지.”

앙드레가 동조하자 보안과장은 마지못한 듯 창고에 딸린 문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역장님께 무례하지 않기를 바라겠소.”

요아가 짜증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니미, 발에 밟히는 게 구역장인데 무슨 대단한 신분이라고 지랄이야!”

요아가 직속상관을 신랄하게 모욕하자 보안과장의 표정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대판 싸움이 벌어질 수 있기에 그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했다.

문이 열리자 비교적 밝은 사무실이 보였다.

임시로 꾸민 사무실인지 원탁과 의자 몇 개 외에는 사무가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쑥한 양복차림의 중년인이 메트로레인의 노선 도면을 보고 있다가 앙드레와 요아가 들어서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물질 하나 묻지 않은 안경알이 그의 깔끔한 성격을 대변해 주었다.

보안과장이 앙드레에게 중년인을 소개해 주었다.

“메트로 십칠구역을 담당하는 한상만 역장님이시오.”

한상만이 호의적인 미소를 띠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반갑소, 레벨 블랙 앙드레 씨. 엘리시움 내에서는 나와 같은 신분이니 편하게 대하시오.”

“앙드레라 하오. 이쪽은 헬돔의 제일 순찰대장인 요아.”

“아, 요아. 헬돔의 유명한 여전사이셨군. 소문보다 훨씬 매력적이오.”

요아가 건성으로 악수하며 툴툴거렸다.

“지금 나를 유혹하려는 건 아니죠?”

“하하! 자, 앉읍시다.”

자리에 앉은 한상만이 턱짓을 하자 보안과장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자재창고 문으로 물러갔다. 이어 다른 쪽 문이 열리며 세련된 옷차림의 여직원이 들어왔다.

여직원은 주스가 담긴 크리스탈 잔에 세 사람 앞에 내려놓고 공손하게 물러갔다.

요아는 잔에 담긴 쥬스의 향을 맡으며 물었다.

“흐음, 향이 정말 신선한데? 캔음료가 용케 잘 보관돼 있었나보군.”

한스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이건 천연 과일주스요.”

“뭐요? 정말 천연 과일주스란 말이에요?”

“그렇소. 드셔 보시오.”

요아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와아, 정말 진짜 천연 주스네? 이런 주스를 언제 마셔보았는지 기억도 안 나.”

그녀는 잔에 반쯤 남은 주스를 보며 물었다.

“서브시티에서 과수원도 조성했나 보죠?”

“소규모이지만 외부의 채광을 끌어들여 과일 재배에 성공했소.”

“훗, 하기는 명색이 엘리시움인데 과일 한 조각 없어서야 되겠어?”

요아가 주스를 말끔하게 비우자 앙드레는 자신의 잔을 요아에게 밀어주었다. 요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잔을 쥐었다.

“그래, 레벨 블랙 신분이라면 천연 과일주스는 언제든 마실 수 있을 테니까.”

앙드레는 곧바로 한상만장과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와 헬돔 전사들이 메트로레인 13호선을 막고 있는 좀비들을 소탕하겠소. 애니그마 연구소와의 통행 재개가 우리의 목표요. 앞서 통화한 대로 작전이 성공하면 헬돔 전사들의 메트로레인 통행권을 보장해 주시오.”

“통행권 보장은 어렵지 않소. 헬돔에서 벗어나 서브시티 시민이 된다면 메트로레인을 이용해 어디든 갈 수 있소. 헬돔 출신 전사들에게는 특별히 일 년 무료 탑승권을 제공하겠소.”

한상만의 표정은 온화했고 음성은 부드러웠다.

“난 헬돔 전사들이 이해가 되지 않소? 왜 무법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불편한 헬돔 생활을 고집하는지 정말 모르겠소.”

요아가 냉담한 어조로 반박했다.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엘리시움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의 목표는 좀비들 소통이에요. 향후 세상의 좀비들이 모두 사라지고 인류가 바깥에서 살게 되면 모두가 헬돔을 존경하게 될 겁니다.”

“하하, 좀비 소탕이라. 의기는 인정하지만 절대 불가한 일이오. 내 판단이 맞는다면 헬돔은 두 해를 못 버티고 와해될 것이오.”

“말 삼가요! 정작 무너질 곳은 헬돔이 아니라 서브시티라고요! 서브시티가 무너지면 엘리시움도 함께 끝나는 거란 말입니다!”

“요아,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 봅시다. 한때 헬돔에는 삼천 명도 넘는 전사들이 있었소. 한데 지금은 천 명도 채 남지 않은 거라 알고 있소.”

요아가 눈매가 사나워졌다.

“그 많은 전사들이 허무하게 죽은 것은 아니에요. 당시 도심에서 우글거리던 좀비들을 소탕하느라 장렬하게 전사한 겁니다. 그 점은 역장도 인정해야 합니다.”

“헬돔의 전사들이 다수의 좀비들을 소탕한 것은 인정하오. 하지만 헬돔의 세력이 위축된 것은 단지 좀비들과의 전쟁 때문만은 아니었소. 법과 규칙을 무시하는 전사들이 서로 권력투쟁을 벌이다 이 지경이 된 거 아니겠소?”

한상만의 지적은 정확했다.

헬돔의 세력이 위축된 것은 좀비들과의 전쟁보다 내분의 출혈이 더 컸다. 헬돔의 전사들이 무법자로 비난을 받게 된 것도 패거리를 만들어 서로가 사령관 자리에 오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구시가지의 시민들이 비천한 하리잔으로 불리면서도 헬돔에 가입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도 참담한 내분 탓이었다.

“니미, 지금 날 보고 헬돔에서 탈퇴하라는 거야?”

요아가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일어서자 앙드레가 만류했다.

“진정해, 요아. 아직 협상은 시작하지도 않았어. 협상이 결렬되면 언제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빨리 결정해. 난 이 능굴맞은 인간의 낯짝을 오래 보고 싶지 않으니까.”

요아는 시원한 주스로 끓는 속을 달래고는 아예 의자를 옆으로 돌려 앉았다.

앙드레는 한스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좋은 인상을 지녔지만 자신들만이 최고라는 오만에 젖어 있는 자로군. 기회가 된다면 엘리시움은 사장 되는 자를 한번 만나봐야겠어. 이자만큼 뺀질거리고 자만심에 가득한 인간일 테지만.’

그는 자신의 요구를 다시 확인했다.

“한 역장, 메트로레인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애니그마 연구소의 첨단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소. 서브시티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메트로레인 13호선은 정상 운행되어야 할 거요. 애니그마 연구소에서도 엘리시움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시스템 제공을 거부할 수 있소. 메트로레인이 정지되면 서브시티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고 엘리시움 역시 무너지지 않겠소? 따라서 헬돔의 전사들의 요구가 과하다고는 생각지 않소. 헬돔 전사들만을 위한 비상통로와 전용 객차를 배정하는 것으로 서브시티 시민들과의 충돌을 막을 수 있을 거요.”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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