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The World of Outlaws, Helldome”
무법자들의 세상, 헬돔
1
달빛마저 없었다면 암흑 천지였을 것이다.
달빛이 미치지 못하는 빌딩 사이의 골목은 심연처럼 어두웠지만 달빛이 스며든 도로는 회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듯 선명했다.
주상복합 건물을 나와 도로로 내려선 앙드레는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단편적인 기억들을 하나하나 짜 맞춰 보았다.
지역은 분명치 않지만 아프리카 작전에 투입된 용병으로 활약한 것은 분명했다. 어떤 부락에서 한바탕을 전투를 치룬 기억은 분명한데 상대가 모호했다. 부대원들과 함께 싸운 상대가 괴물인지 야생동물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때 내가 다리를 다쳐 의족을 달고 있나 보군.’
서울에서 지낸 생활은 크게 기억나는 게 없었다.
아내 지나와 딸 제니.
사진을 통해 가족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아내와 딸의 영상이 한데 겹쳐졌다.
‘지나의 교통사고…….애니그마,,,,,,,제니………..’
기억은 아련했지만 가슴이 저렸다.
앙드레는 고개를 흔들어 혼란스런 기억을 떨쳐냈다.
‘제니를 만나야 돼. 제니를 만나면 보다 확실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그는 무작정 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메트로 13구역으로 향하는 길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테네시를 연결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냥 걷고 싶었다. 어차피 메트로 13구역으로 가봤자 야간에는 출입구가 폐쇄돼 있을 것이기에 서브시티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앙드레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달은 더없이 밝았고 총총한 별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지상에서 시야를 방해할 어떤 빛도 없는 탓이다.
이때 남녀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정적을 깨고 언덕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아악!”
앙드레는 반사적으로 시그556을 쥐었다.
언덕 너머를 통해 바이크의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곧바로 두 사람이 언덕을 넘어 뛰어왔고 뒤로 바이크의 전조등 불빛이 강하게 쏘아졌다.
“여보, 어서!”
아내의 손을 잡고 힘겹게 뛰고 있는 남편은 가슴에 세 살 남짓한 계집아이를 안고 있었다. 계집아이는 두려움에 잔뜩 질린 모습이지만 아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지 울지 않고 있었다.
부다다당!
요란한 바이크 소음 소리와 함께 4대의 바이크가 언덕 뒤에서 점프하듯 튀어 올랐다.
“끼요오오!”
“헷헷, 애 엄마는 내 차지다!”
“난 사내놈을 맡지!”
바이크에 탄 자들은 얼굴을 지저분하게 분장한 펑키 스타일이었다. 복장으로 미루어 헬돔의 무법자들이었다.
눈가를 시커멓게 칠한 무법자가 허리춤에서 기다란 정글 칼을 뽑아들었다.
속도를 높인 무법자는 아이 아빠의 등 뒤까지 바싹 따라붙었다.
“감히 도주를 해?”
무법자는 아이 아빠의 뒷덜미를 향해 정글 칼을 휘둘렀다. 이를 돌아본 아이 엄마가 날카롭게 외쳤다.
“위험해요!”
이 순간 총성과 함께 바이크의 앞바퀴가 펑크 나면서 정글 칼을 쥔 사내가 바이크와 함께 나뒹굴었다.
세 명의 헬돔 무법자들은 급히 방향을 틀면서 브레이크를 작동시켰다.
그그극!
바이크에서 내려선 무법자들은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사내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이 새끼는 뭐야?”
“좀비는 확실히 아니군!”
“엘리시움의 순찰대인가?”
앙드레가 시그556과 매그넘을 양 손에 쥔 채 다가섰다.
삼 대 일의 대치였지만 앙드레의 당당한 기세에 눌렸는지 무법자들은 선뜻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수적으로 그들이 유리했지만 상대 역시 무장하고 있기에 자신들이 먼저 죽일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앙드레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진 부부는 아이를 꼭 안은 채 앙드레 뒤로 피신했다.
세 명의 무법자 중에서 헬멧은 쓴 자가 앙드레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가만, 어제 메트로 7구역에서 만났던 놈이잖아?”
헬멧을 쓴 무법자는 요아가 이끄는 헬돔 순찰대 소속이었다. 앙드레가 시선을 돌리자 그는 겨누었던 총을 내렸다.
“이봐, 우리 덕분에 어제 좀비 밥을 면했는데 감히 우리와 싸우겠다는 거냐?”
“너희가 좀비를 사냥하는 중이었다면 끼어들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비감염자를 끌고 가는 것도 우리 임무 중 하나야!”
“내가 못 봤다면 모를까 내가 본 이상 그런 만행은 용인할 수 없다.”
앙드레의 단호한 모습에 헬멧을 쓴 자가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두 무법자는 요란하게 분장을 했지만 외양만큼의 강심장은 못 되는지 총을 어깨에 걸었다.
“제기, 돌아가자!”
“그래, 머피가 크게 다친 것 같으니 어서 데려가서 치료해줘야겠어.”
그들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바이크와 함께 나자빠진 동료에게 다가갔다.
앙드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를 향해 돌아섰다.
“가 보시오.”
부부는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이 은혜 잊지 않겠어요.”
아빠의 품에 안긴 계집아이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는지 해맑은 미소를 띠어 보였다.
‘제니……!’
문득 딸을 떠올린 앙드레는 손을 뻗어 계집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위험한 밤에 아이까지 데리고 왜 밖으로 나온 거요?”
아이 아빠가 침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멀리까지 헤매다가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도중에 좀비와 헬돔 무법자들을 만나 이리저리 피하다보니 이렇게 늦게 되었습니다.”
“왜 안전한 서브시티에서 지내지 않고?”
“한번 서브시티에 들어가면 노예처럼 살아야 합니다. 가족이 강제로 헤어질 지도 모르고…….”
아이 엄마가 아이를 등에 업었다.
“우리 가족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서로를 꼭 지킬 거예요.”
앙드레는 다친 동료를 치료해주고 있는 헬돔의 무법자들을 힐끗 보았다.
“사는 곳은 어디요?”
“멀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아이 아빠는 다소 경계하는 빛을 띠며 아내의 손을 이끌었다. 어서 헤어지고 싶은 눈치였다.
“잠시 기다리시오.”
앙드레는 짊어진 배낭을 내렸다.
그는 배낭에서 비상식량과 권총 한 자루를 꺼내 아이 아빠에게 건넸다.
“가져가시오.”
귀한 식량과 무기까지 얻게 된 부부는 감격에 젖었다.
“이렇게까지…….”
“조심히 가시오.”
앙드레는 계집아이의 머리를 한번 더 쓰다듬어 주고는 돌아섰다.
젊은 부부는 앙드레의 등을 향해 연신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는 골목길로 뛰어갔다.
바이크에서 나자빠진 머피는 머리가 깨져 동료의 두건을 붕대 대신 감았다. 그는 뇌진탕 증세 때문에 동료의 부축을 받아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이때 장발청년의 어깨 주머니에 꽂혀 있던 무전기에서 여인의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2
“토니, 니들 대체 어디 있는 거냐?”
토니로 불린 자가 무전기를 뽑아 교신했다.
“언덕 너머에 있소, 대장.”
“빨리 와, 새끼들아! 여기 공덕동 미래백화점 주차장인데 갇혔어! 좀비 새끼들이 떼거리로 몰려 왔다! 외부에서 길을 뚫어 봐!”
“알겠소, 대장.”
토니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대장이 위험해! 어서 돌아가자!”
앙드레가 토니를 가로막으려 물었다.
“니들 대장이 혹시 요아냐?”
무전기를 통해 들린 여인의 음성으로 짐작한 것이다.
토니가 고깝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그건 맞는데 왜?”
“내가 어제 신세를 진 게 있어서 갚고 싶다.”
“신세를 갚겠다고?”
그러자 헬멧을 쓴 자가 끼어들었다.
“대장이 위험하니 데려가자. 참, 당신 이름이 뭐였지?”
“앙드레.”
“좋아, 앙드레. 난 이글이라 한다. 네가 머피를 다치게 했으니 대신 싸워줘야겠어.”
“그러지.”
“어서 출발해, 후퍼가 머피를 업고 가.”
부다당!
4대의 바이크가 만리동 고개를 넘어 달려갔다. 토니와 이글이 앞섰고 머피를 뒤에 태운 후퍼가 뒤를 따랐다.
앙드레는 아직 바이크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조금 뒤쳐졌다. 하지만 중심을 잡게 되자 이내 일행의 뒤를 따를 수 있었다.
투투투–탕탕!
넓은 지하주차장에서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 펴지고 있었다.
주차장 절반은 차량으로 채워져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우글거렸다. 앞선 좀비들이 총탄과 쓰러지고 수류탄에 의해 찢겼지만 두려움 자체를 모르는 좀비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주차장 안쪽은 차량 문짝들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바리케이드 안쪽에서는 헬돔 순찰대원 7명이 번갈아가면서 총을 쏘아대고 수류탄을 던졌다.
요아가 탄창을 갈아 끼우며 외쳤다.
“본부 지원대는 언제 온대?”
얼굴에 표범 무늬 분장을 한 대원이 대답했다.
“출동했다지만 한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아.”
“한 시간? 니미, 그 전에 좀비들 뱃속에 들어가 소화가 다 되겠다!”
“토니 일행이 지원해 주면 시간을 조금 벌 수는 있겠지만 화력이 문제야. 이렇게 쏘아대다가는 십 분도 못돼 총알이 바닥나.”
“다른 탈출로는 없는 거야?”
“건물 내로 들어가는 통로는 모두 폐쇄됐어. 엘리베이터마저 봉쇄돼 진입할 방도가 없어.”
“씨발, 대체 어떤 새끼가 이리로 피신하자고 한 거야?”
요아는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는 바리게이트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마구 쏘아댔다.
끼이익!
4대의 바이크가 미래백화점 주차장 입구와 100미터쯤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주차장 입구까지 가득한 좀비들을 본 토니가 질린 표정으로 내뱉었다.
“좆도, 마포구의 좀비들이 죄다 몰려왔나 보군.”
워낙 엄청난 좀비들의 숫자에 토니 일행은 선뜻 지원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본부의 지원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어.”
후퍼가 돌격을 미루자 이글이 격하게 다그쳤다.
“인마, 그 전에 대장과 동료들이 먹히게 된다고!”
“우리가 뛰어들어도 마찬가지야. 대대 병력도 넘은 좀비들을 무슨 수로 뚫고 가?”
앙드레가 등에 멘 배낭을 벗었다.
“내가 들어가겠다. 너희들은 좀비들을 최대한 유인해.”
이글이 어처구니가 없는 듯 빈정거렸다.
“당신이 뭐 불사신이라 돼? 저 정도 숫자면 장갑차라도 돌파하지 못한다고!”
“그럼 니들 대장과 동료들이 좀비들의 밤참이 될 때까지 보고만 있겠다는 거냐?”
“그… 그건 아니지만…….”
이글이 말꼬리를 흐리자 앙드레는 배낭에서 M30A1 크레모아를 꺼내들었다.
“놈들 일부를 끌어내. 주차장 내부에 크레모아를 터뜨린 후 내가 진입하겠다.”
“크레모아? 으와. 그건 어디서 구했어?”
“니들 대장을 구할 생각은 있는 거냐?”
앙드레의 엄한 질책에 이글은 토니를 힐끗 보았다.
“알았어. 토니, 시작하자.”
“니미, 우리를 완존 졸따구 취급하는군.”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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