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Apt. 1704, Acroville”

아크로빌 1704호

1

건물 내부는 음습했다.
센서에 의해 작동되는 전등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역시 멈춰 있었다. 어둡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앙드레는 견착등을 어깨에 고정한 채 계단을 올랐다. 계단 난간에는 오래전부터 묻어 있던 피가 검붉은 얼룩으로 스며 있었고, 계단 곳곳엔 쓰레기와 부서진 잡동사니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7층에 도착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 한쪽으로 늘어선 현관문들은 대부분 활짝 열려 있었다. 약탈자들이 다녀간 흔적이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거실의 가구는 엉망이 되었고 주방은 아수라장이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의 흔적이리라.

앙드레는 긴장된 발걸음으로 1745호 앞에 섰다. 문에 적힌 숫자가 눈에 들어오자,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눈에 익은 숫자야.’

마치 잃어버린 기억의 실마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문 손잡이를 잡아 돌렸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번호 패드는 박살난 상태였고, 누군가 문을 열려고 시도한 흔적이 역력했다.

‘비밀번호를 기억한다고 해도, 이 상태론 소용없군.’
앙드레는 문을 부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안에는 자신의 과거,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단서들이 있을 터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스마트 워치를 번호 패드 쪽에 대보았다.

삐리릭!
전자키가 작동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잡이를 다시 잡아 돌리자, 이번에는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자동으로 닫히며 잠금장치가 걸렸다.

실내는 어두웠다.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 덕에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공기가 그를 덮쳤다. 앙드레는 견착등을 켜고 집안을 비추었다.
먼지가 쌓여 있긴 했지만, 내부는 약탈을 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전히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이 방 한쪽에 놓인 사진 액자들에 머물렀다. 앙드레는 조심스럽게 액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사진 속에는 다정하게 웃는 한 가족이 있었다. 한 남자가 대엿 살쯤 되어 보이는 딸아이를 안고 있었고, 옆에는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이 서 있었다.
이건… 나야.’
앙드레는 손에 든 사진 속 남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전기가 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강렬한 감각이 몰려왔다. 사진 속 남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사진이 찍힌 날짜는 2012년. 무려 10년이 넘은 사진이었지만, 그때와 비교해 앙드레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분명… 나야.”
앙드레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 속 여인을 응시했다. 그녀의 미소가 익숙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너무도 혼란스러워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으윽…!”
극도의 혼란 속에서 앙드레는 갑작스럽게 한 이름을 떠올렸다.
지나… 송지나!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내의 이름이 기억났다. 그는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너무도 절절한 아픔이 그의 가슴을 헤집었다.

앙드레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딸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활짝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맞아… 나에겐 딸도 있었어. 이름이…”
앙드레는 고통스러운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기억 속 이름을 더듬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름이 기억 속 저편에서 떠올랐다.

제니… 그래, 제니야!”

앙드레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에게 아내와 딸이라는 소중한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것처럼 그를 감격하게 만들었다.

“아, 그래! 테네시라면 지나와 제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의 아내와 딸이 죽었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그 자신이 살아 있듯이 가족 또한 당연히 살아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앙드레는 스마트 워치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테네시 연결!”

음성에 의해 자동으로 전화가 걸리면서 테네시의 부드러운 음성이 통신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앙드레, 집에는 무사히 도착하셨어요?”

“내 가족 어디에 있어? 지나와 제니! 그들이 어디 있는지 말해 줘!”

“진정하세요, 앙드레.”

“어서 말해!”

“정말 유감이에요, 앙드레. 아내 되시는 송지나 씨는 팔 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뭐, 뭐야?”

앙드레는 숨이 턱 막혔다.

“지나가… 내 아내가 죽었다고?”

“아내 분과 딸의 이름을 기억하시면서 관련된 일은 전혀 모르시나 보네요?”

“뭔가 떠오르는데 혼란스러워서 정리가 되지 않아.”

앙드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지나가 죽었다니……!”

사진 속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고통스런 아픔이 피어올랐다.

테네시의 차분한 음성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앙드레가 지나 씨의 임종을 지켰어요. 지나 씨는 좀비들이 출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런 끔찍한 세계를 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요.”

“내 딸… 설마 제니도 죽은 건 아니지?”

“물론이에요. 제니는 잘 있어요. 물론 아직 녹사병이 치료되지 않아 의료캡슐에서 지내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녹사병? 내 딸이 병에 걸려 있다고?”

“앙드레, 당신의 기억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래요. 당신은 프랑스 외인부대 용병으로 파리에서 지나 씨를 만나 결혼했어요. 그러다 참전 중에 부상을 당해 은퇴했고 서울로 이주해 살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 씨와 제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나 씨는 죽었지만 제니는 무사했죠. 한데 검사 결과 제니가 녹사병에 걸린 게 확인됐어요. 녹사병은 현재의 의학으로도 치료가 힘든 희귀질병이지요. 앙드레는 제니의 치료를 위해 애니그마 연구소를 찾아가서 치료비 대신 사후 신체 양도를 계약했어요.”

“애니그마… 신체 양도계약…….?”

하드디스크가 복구되듯이 그의 기억에서 지워졌던 섹테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래, 기억이 나는 것 같아.”

“기억이 회복되고 있다니 다행이에요. 앙드레는 며칠  후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의학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애니그마 연구소로 시신이 양도됐지요. 한데 앙드레는 완전히 사망한 것이 아니었어요. 놀랍게도 식물인간으로 살아 있었던 거죠. 애니그마 연구소는 앙드레를 부속 병원인 재활연구소로 후송했어요. 이후 앙드레는 팔 년여 세월을 식물인간으로 지냈다가 얼마 전 깨어났어요. 한데 안타깝게도 기억상실에 걸려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거예요.”

“그랬었군. 한데 내가 왜 거리로 나오게 된 거지?”

테네시는 애니그마 연구소에서 그를 인간병기로 만들고자 한 내용을 말해주진 않았다.

불사의 능력을 가진 앙드레를 액체 질소 캡슐에 담아 보존하다가 좀비들의 공격에 의해 질소 캡슐이 방출되면서 8년 간 긴 잠에 빠졌던 앙드레가 부활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사실 재활연구소는 보름 전 좀비들의 침입으로 폐쇄됐어요. 모든 시설이 파괴되고 치료 중인 환자들은 대부분 죽었지요. 한데 앙드레가 용케 살아 있었던 거예요. 저도 그 과정은 전혀 알지 못해요.”

앙드레는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 더 이상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제니… 제니를 만나고 싶어.”

“제니는 애니그마 한국지사 지하연구동에 있는 것으로 기록이 남겨져 있네요.”

“당장 가겠어!”

“앙드레, 제니를 위해서라도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앙드레는 깊이 숨을 들이키며 감정을 애써 자제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사실 애니그마의 한국연구소는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돼 있어요. 수만 구의 좀비들이 건물과 지상을 점령한 상태라 지상 도로는 물론이고 헬기로도 접근이 불가능해요.”

“제니가 있는 연구실은 무사한 거야?”

“예, 지하연구실은 삼중 차단 장치로 보호돼 있어 안전해요.”

앙드레는 액자에서 사진만 빼내 품속에 간직했다.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말해봐.”

“메트로레인 13호선이 유일한 연결 통로인데 여러 곳의 터널이 폐쇄돼 현재는 고립된 상태입니다. 13호선을 복구하려면 터널을 점거하고 있는 좀비들을 모두 쓸어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소파에서 일어선 앙드레는 턱을 감싸 쥔 채 실내를 왔다갔다 걸었다.

“테네시는 지금 어디에 있지?”

“애니그마 연구소의 지하통제실에 있어요.”

앙드레는 처음부터 품고 있는 의혹을 물었다.

“애니그마 연구소와 엘리시움은 어떤 관계야?”

“서로 기술과 정보를 제휴하는 사이입니다. 엘리시움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필요한데 제가 네트워크를 통해 애니그마 연구소의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엘리시움의 보안요원을 동원해 좀비들을 몰아내면 되잖아?”

“안타깝게도 엘리시움은 지금 자신들의 서브시티를 방어하는 데만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우리 애니그마 연구소를 위해 대규모 인원과 장비를 투입할 여력이 없지요.”

앙드레는 테네시의 음성에 귀 기울여며 소파에 몸을 깊이 기대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몇 시간만이라도 쉴 수 있길 바랐다.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고, 머릿속은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테네시의 목소리도 이제는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마침내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깊고 어두운 잠 속으로 빠져들자, 탄자니아에서의 기억이 마치 안개처럼 그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2

꿈 속인가?
쏟아지는 열대의 태양 아래, 숨 막히게 뜨겁고 습한 공기가 그를 짓눌렀다. 앙드레는 동료들과 함께 빽빽한 밀림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숲은 평소와는 달랐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열대의 숲 속에서, 느닷없이 찬 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그의 피부가 서늘해졌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등골을 타고 전해지는 싸늘한 느낌에 앙드레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도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밀림 속 생명들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새들의 지저귐도, 나뭇잎의 사각거림도 사라진 채, 숲 전체가 무언가에 잠식된 듯했다.

어디선가 무언가가 움직였다. 앙드레의 시선이 숲 깊은 곳으로 향했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그곳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형체, 그것은 마치 어둠 그 자체였다. 움직임이 없는 나무들이 오히려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앙드레의 가슴이 점점 조여왔다.

차가운 기운이 한 번 더 불어닥치자, 바람은 그의 목덜미를 스치며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숲 어딘가에서 들려온 낮고도 무거운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너희는 여기서 끝난다.”

그 목소리는 더없이 확실했다.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그의 머릿속 깊이에서 직접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앙드레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공포가 치밀어 올라왔다.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마치 뿌리가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무들이 일렁이며 마치 그를 잡아먹을 듯 쳐들어왔다. 발밑의 땅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몸을 돌려 동료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공포로 가득 찬 눈동자만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앙드레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은 점점 더 그들을 죄어왔고, 목소리는 다시 한번 귓속에서 울려 퍼졌다.

너는 도망칠 수 없다.”

앙드레는 갑작스러운 공포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머리는 공허하게 멍해졌다. 다시 나뭇잎들이 흔들리더니, 숲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존재는 그들 모두를 휩쓸어버릴 것처럼 다가왔다. 그 순간, 앙드레의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숨이 막혀왔다. 그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걸음 하나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사라졌다.

앙드레는 깜짝 놀라며 다시 눈을 떴다.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여전히 공포가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피곤에 지친 몸이 다시 소파에 가라앉으면서, 그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금 고대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선명하고도 명확했다.

앙드레…”

그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이 목소리는 그를 시험하는 무언가였다. 자연의 힘, 그가 탄자니아에서 마주했던 그 존재가 이제 다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는 선택의 순간에 있다.”

그 목소리는 그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앙드레는 몸을 움켜쥐었지만, 이번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목소리는 그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다.

너는 인간으로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구원자가 될 것인가?”

구원자? 앙드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도대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너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도 다른 인간들처럼 사라질 것이다.”

앙드레는 점점 더 그 목소리에 빨려들어갔다. 그가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 힘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 힘을 받아들인다면 그에게 어떤 책임이 따를지.

목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너는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이 힘을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네가 선택할 수 있다.”

앙드레는 점점 더 숨이 가빠졌다. 그는 이해하지 못한 채 그 힘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구원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인간들처럼 자연의 힘에 의해 사라질 것인가?”

목소리는 그의 심장을 죄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지막 말이 울려 퍼졌다.

이 선택은 너만이 할 수 있다.”

앙드레는 갑작스럽게 눈을 떴다. 거칠게 내쉬는 숨이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고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귀 속에 남아, 그를 놓아주지 않는 듯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꿈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너는 선택받았다.”

그 목소리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그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끝에 맺혔다. 그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아냈지만, 여전히 손바닥에는 땀으로 젖은 차가운 습기가 남아 있었다.

앙드레는 무겁게 일어나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의 시선은 어딘가 멍하니 떠돌았지만, 마음은 이미 단단히 굳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용병이 아니었다. 인류의 구원자가 될 가능성을 부여받은 자였다. 그가 가야 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딸 제니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류의 미래도 걸려 있었다.

몸은 여전히 떨렸지만, 마음만은 점점 차분해졌다.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그가 해야 할 일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피할 수 없는 사명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이제 그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그의 팔목에 찬 스마트워치에서 테네시의 음성이 들려왔다.

앙드레, 당신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떨리고 있습니다. 맥박도 고르지 못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테네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앙드레는 여전히 빠르게 뛰는 심장과 급하게 오르내리는 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 그는 단순히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탁이었다. 고대의 존재가 그의 운명을 시험한 것이 분명했다.

테네시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기상으로는 큰 문제가 감지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히 상승했어요.”

앙드레는 잠시 침묵했다가 결심을 굳힌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네시, 우린 시간이 없어. 제니를 구해야 해.”

테네시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답했다.
제니는 애니그마 한국 지사의 지하연구동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거예요. 수많은 좀비들이 연구소 주변을 점령하고 있어요. 접근할 방법이…”

앙드레는 테네시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방법을 내가 찾을 거야. 제니를 구하고, 그들과 싸울 동료들을 모아야 해.”

테네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료들이 있나요?”

앙드레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당장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결심을 했다.
“당장은 없지만, 만들어야겠지. 내가 동료들을 모으고, 메트로레인 13호선을 복구할 거야. 그걸로 제니에게 갈 수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는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이제 더 이상 혼자 싸우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제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함께 싸울 사람들을 모아 그 길을 열 것이다.

테네시는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앙드레의 결심이 확고함을 깨달았다.
혼자선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앙드레.”

앙드레는 웃으며 말했다.
“혼자선 힘들겠지. 하지만 동료가 생기면 달라질 거야.”

그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굳건해졌다. 이제 앙드레는 그의 운명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었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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