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Michael”
마이클
1
덜컹덜컹……
메트로레인 6호선은 오래된 철로를 따라 달렸다. 진동은 거칠었고, 노후한 설비는 매끄럽지 않았다. 좀비들의 침입으로 3호선이 대부분 폐쇄된 이후, 6호선은 비교적 많은 승객이 탑승한 상태였다. 빈 좌석은 없었고, 승객들은 손잡이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졸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고단함과 피로가 가득했다.
앙드레는 그들 사이에서 서 있었다. 그가 중무장한 채로 탑승했을 때 승객들은 일제히 긴장했지만, 앙드레가 좌석을 양보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자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고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 정차역은 메트로 12구역입니다. 이곳은 헬돔 무법자들과 좀비들의 격돌이 잦은 구역이니 절대 서브시티 외부로 나가지 마십시오.”
‘헬돔……’
방송에서 헬돔이 언급되자, 앙드레는 요아를 떠올렸다.
‘가만, 요아… 헬돔의 수색대장이었지. 언제 한번 그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가 있겠지.’
이때, 객차 안에서 갑작스럽게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 좀비다!”
“감염자야! 물러서!”
“보안요원을 불러!”
승객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서로를 밀치며 객차 통로로 몰렸다. 바닥에 쓰러진 한 여인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사내가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앙드레는 천천히 매그넘 권총을 뽑아들었다. 여인을 물어뜯고 있던 사내가 앙드레를 노려보며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입가에는 여인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이미 좀비로 변한 상태였다.
“카우우!”
좀비는 아가리를 벌리고 앙드레에게 달려들었다.
타앙!
앙드레의 매그넘이 불을 뿜으며 좀비의 머리를 관통했다. 사내는 그대로 쓰러졌고, 머리가 박살난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앙드레는 아직 꿈틀대는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흐릿해진 눈빛으로 앙드레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속삭였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집에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말이 앙드레의 가슴을 찔렀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그의 기억 속에서 잠재된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좀비에게 물린 여인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앙드레는 잠시 망설였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순간, 두 발의 총성이 울리며 여인의 몸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녀의 이마와 심장이 관통당한 상태였다.
앙드레가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총을 쥐고 서 있었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백인이었다. 그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총잡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후 불고는 권총을 돌리며 허리춤에 꽂았다. 능숙한 솜씨였다.
그는 오만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 소문난 레벨 블랙의 좀비 슬레이어, 앙드레 김 맞지?”
앙드레는 그의 빠른 정보력에 내심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내가 누군지 알았지?’
총잡이는 앙드레에게 악수를 내밀며 말했다.
“난 엘리시움 특수요원 마이클이야.”
앙드레는 그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이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너무 경계할 것 없어. 좀비에게 물리지 않는 한 널 쏠 일은 없으니까.”
마이클은 방금 쏴죽인 여인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유약하군. 좀비에게 자비를 베풀다니 말이야.”
“아직 완전히 좀비로 변한 건 아니었어.”
앙드레가 말했다.
“어차피 곧 변했을 거야. 나는 그냥 기다리기 지루해서 미리 처리한 거고.” 마이클은 건들거리며 객차를 둘러봤다.
잠시 후,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이 들어와 좀비와 여인의 시신을 비닐백에 담아 밀봉했다. 연막을 터뜨리고 소독제를 뿌리며 객차를 정리했다.
앙드레는 물었다.
“좀비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다고 들었는데, 저렇게 소독하면 충분한 건가?”
마이클은 특유의 느긋한 태도로 대답했다.
“좀비 바이러스는 피를 통해서만 전염돼. 공기 중에선 산화되기 때문에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아. 피만 닦아내면 감염 위험은 없지.”
“그렇다면 서브시티의 보안 시스템이 이렇게 엄격한데 어떻게 감염자가 탑승할 수 있었지?”
앙드레가 의문을 제기했다.
“바이러스 발작은 일정치 않아. 경미하게 감염된 자들은 잠복기가 길기도 해. 이 자는 아마 이미 감염됐지만 한동안 잠복기를 거치다 끝내 좀비로 변한 거지.”
마이클의 설명에 앙드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이제 이해가 갔다.
“그러면 서브시티 내에도 많은 감염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맞아.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거야.”
마이클은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나 앙드레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난 엘리시움 소속 특수요원이 아니야.”
마이클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엘리시움 소속이 아니라고? 그런데 어떻게 레벨 블랙에 올랐지? 난 고작 레벨 블루인데.”
앙드레는 침묵으로 답했다.
마이클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앙드레를 직시했다.
“흥, 블랙이 뭐 대단하다고.”
곧 마이클은 방역 요원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앙드레는 홀로 남겨졌고, 객차는 비어버렸다. 덕분에 앙드레는 마치 전용 객차에 탄 것처럼 느껴졌다.
덜컹덜컹…
메트로레인은 점점 속도를 줄였고, 곧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메트로 13구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2
메트로 13구역 출입문 앞에서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안 됩니다! 아무리 레벨 블랙이라도 야간에 외부 순찰은 자살행위입니다!”
“밤에는 무법자들과 좀비들의 세상이에요!”
보안요원들은 출입문을 막아선 채 핏대를 세웠다. 앙드레는 가슴에 매달린 수류탄의 안전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파괴하겠소.”
앙드레의 차가운 목소리에 보안요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당황했다. 수류탄 하나로 출입문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폭발이 일어나면 자신들부터 무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앙드레의 단호한 기세는 더 이상 단순한 협박으로 넘길 수 없었다.
보안요원 중 한 명이 외부 상황을 확인하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좋소. 나가는 건 허락하겠지만, 내일 아침까지는 절대 돌아올 생각 말시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을 테니까.”
“그럴 일 없을 거요.”
앙드레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다시 꽂고 강화유리 출입문을 통과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의 뺨을 스쳤다.
기이잉…
문이 닫히고 나자 세상은 온통 암흑으로 변했다. 강남 한복판, 한때는 도시의 번화가였을 곳이 마치 죽음의 도시처럼 무거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앙드레는 배낭의 맬빵을 단단히 조였다. 그 속에는 메트로 13구역의 보관함에서 꺼낸 무기들과 비상식량이 들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앙드레는 어둠 속에서 헬돔 무법자들의 총성과 괴성을 멀리서 들을 수 있었다. 아직은 그다지 가까운 거리로 들리지 않았기에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테네시, 연결!”
앙드레는 손목의 스마트 워치에 대고 말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테네시의 익숙한 음성이 응답했다.
“예, 앙드레.”
“지금 메트로 13구역에 도착했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서브시티 외부라서 제가 앙드레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어요.”
“괜찮아. 표지판을 보니 효창공원 부근인 것 같아.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카메라 모드로 전환해 주변을 비춰보세요.”
“어두워서 촬영이 될까?”
“스마트 워치에는 적외선 감지 기능이 탑재돼 있어요. 야간 모드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앙드레는 손목에 있는 스마트워치를 야간촬영 모드로 전환하고, 주변의 낡은 표지판과 건물들을 비췄다. 곧바로 테네시가 지도를 확인하며 말했다.
“53미터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1357미터를 가면 됩니다. 아크로빌 1704호가 앙드레의 집이에요. 위치가 워치에 표시될꺼여요.”
“아크로빌 1704호… 알았어. 조심하라면서.”
“주변에 좀비들이 바글거릴 겁니다. 최대한 소리 내지 말고 조심해서 움직이세요.”
앙드레는 통화를 마치고 사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적막한 거리에 삐걱거리는 간판과 깡통이 바람에 굴러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폐허 속에 갇힌 듯한 무거운 고독감이 그를 감쌌다.
일순 강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인광이 나타났다.
“크르르…”
앙드레 앞에 감염된 개들이 나타났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몸에서 고름과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유전적 변이로 세 개의 머리를 지닌 괴수처럼 보였다. 도저히 개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크르르르!”
앙드레는 곧바로 정글 칼을 뽑아 들었다. 총소리를 내면 좀비들이 몰려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퍼억!
첫 번째 개의 목이 잘려나갔다. 칼이 개의 살을 가르자, 전투의 감각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이어지는 전투에서, 머리가 셋 달린 괴수가 앙드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괴수의 한 머리를 먼저 잘라냈다.
퍼억!
남은 머리도 차례로 처리한 뒤, 괴수는 두 동강 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앙드레는 정글 칼을 바닥에 털고 천천히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때, 멀리서 총성이 들려왔다.
투투투…
헬돔 무법자들이 좀비들과 싸우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앙드레는 그 싸움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인류의 적은 어차피 좀비였다.
앙드레는 계속해서 아크로빌 1704호로 향했다. 언덕 위에 버려진 주상복합 건물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출입문이 덜렁거리는 폐허의 모습이었다. 건물의 외벽은 수년간 방치된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앙드레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목표 건물을 찾았다.
“아크로빌 1704호… 여기군.”
이제 그는 자신의 기억의 조각을 되찾기 위한 여정의 끝자락에 다가서고 있었다.
Written by :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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