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남

앙드레는 캡슐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며 모든 것이 붕괴되는 동안에도, 그는 냉동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애니그마 연구소는 좀비 사태가 퍼지며 폐허가 되었고,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은 황급히 떠나거나 좀비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앙드레를 담고 있는 냉동 캡슐은 여전히 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신체는 차갑게 얼어 있었고,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했다.

몇 년이 흘렀다. 세상은 더 이상 인간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었다. 좀비가 거리를 배회하며, 파괴된 문명의 잔해 위로 어둠이 드리운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애니그마의 캡슐 시스템은 일정 주기를 따라 앙드레를 깨어나게 할 신호를 보냈다. 어느 순간, 기계의 신호음이 연구소 내에 울려 퍼졌다.

삐—삐—삐—.

처음엔 희미하게 울리던 경고음이 점차 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캡슐 내부의 온도가 서서히 오르며 앙드레의 차가운 몸이 천천히 해동되었다. 그가 깨어날 때가 다가온 것이다. 그의 세포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랜 침묵 속에 멈췄던 심장은 다시 한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앙드레의 눈꺼풀이 천천히 떨리며 열렸다. 깊은 어둠 속에서 그가 처음 본 것은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연구소의 고장 난 조명들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앙드레는 여전히 잠들기 전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 사이에 공백이 있음을 느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병원 수술대 위였다. 수술대에 누워 있던 기억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는 거대한 시간의 격차가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앙드레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무겁고 둔했다.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냉동 캡슐의 덮개를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폐허가 된 연구소의 풍경이었다. 깨진 유리, 파괴된 기계들, 그리고 어둡고 침침한 공간이 그를 맞이했다.

앙드레는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그는 더 이상 병원복이 아닌 특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특별히 자신을 위해 맞춤 제작된 듯, 그의 몸에 딱 맞는 복장이었다. 생소한 장비들이 그에게 달려 있었다. 손목에는 갤럭시 워치 울트라라는 최신형 스마트워치가 감겨 있었다. 낯설고 첨단 기술이 적용된 디바이스는 그가 한참 동안 수면 상태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뭐지? 왜 내 손목에 이런 게 있지?”

앙드레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손목을 만지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살폈다. 과거에 스스로 절단했던 다리, 그 부위에 이제는 정밀한 기술로 제작된 의족이 장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감각이 이상했다. 다리의 감각이 어색하게 전해졌고, 분명 자신의 다리가 아닌 그 무언가를 느끼는 기분이었다.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앙드레는 고통스러운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깨어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기억의 끈이 끊어진 듯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연구소는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파괴되어 있었고, 컴퓨터와 모니터들은 전원을 상실한 채 불빛 하나 없는 칠흑의 공간에 묻혀 있었다. 앙드레는 문득 자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애니그마 연구소… 그는 이곳에서 깨어난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던 순간,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갑자기 깜빡이며 신호음을 보냈다.

삐리릭—삐리릭—.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금 당장 메트로 7로 이동하라.’라는 짧은 문구가 떠 있었다. 앙드레는 손목의 디바이스를 응시하며 혼란에 빠졌다.

“메트로 7…? 대체 누가 이걸…”

메시지가 지시하는 대로 그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비록 상황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폐허 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나았다. 그는 눈앞의 문을 밀어 열고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폐허가 된 세상, 그리고 그곳에서 앙드레는 자신이 맞이하게 될 새로운 현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