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é’s Choice: In a Broken World”
“Enigma Korean Research Facility”
애니그마 한국 연구소
앙드레는 격리실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애니그마 연구소가 딸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그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격리된 유리막 너머로 누워 있는 제니를 보며, 그의 가슴은 무겁게 짓눌렸다.
딸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다시금 탄자니아의 그날을 떠올렸다. 고대의 비석과 그곳에서 깨어난 힘, 자신이 목격한 형언할 수 없는 괴물들. 그때 애니그마는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 존재의 힘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연구가 제니와 연결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애니그마 연구소는 과연 제니를 구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실험체로 삼으려는 것일까?’ 앙드레는 생각했다. 그는 딸을 위해 그들과 협력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을 결코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딸의 생명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반드시 파헤쳐야 했다.
앙드레는 투명한 비닐 막을 통해 곤히 잠들어 있는 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맹세했다.
“제니, 넌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아빠가 네 엄마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이번에는 그 누구도 널 해치지 못하게 할 거다.”
애니그마 한국 연구소
앙드레는 차에서 내리며 애니그마 한국 연구소를 올려다보았다. 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일반 의료기관과는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지하 통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지만, 일반 환자를 받지 않는 이곳은 외부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장소였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탄자니아에서 그를 구출한 바로 그 애니그마. 이곳의 목적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정문에 이르자 그는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신분 증명과 소견서 검토, 그리고 보안 절차가 이어졌다. 딸을 구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다. 앙드레는 딸을 위해 어떤 수모도 감내할 수 있었다.
연구소 내부로 들어서자, 차가운 알코올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다가와 인사했다. 그녀는 깔끔하고 차분한 외모였지만, 뭔가 냉정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앙드레 김 씨 맞으시죠?”
“그렇소.”
그녀는 그의 소견서를 훑어본 후, 빌란트 소장과의 면담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해외출장이 잦은 빌란트 소장이 지금 연구소에 있다는 건 행운이라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앙드레는 연구원의 뒤를 따라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전망이 훤히 보이는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바라본 바깥 풍경은 오히려 그의 마음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지금 딸 제니를 치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소장실에 도착했고, 연구원이 엄격한 보안 절차를 거친 후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소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앙드레는 숨이 멎는 듯했다.
방은 마치 왕궁처럼 거대했고, 초대형 멀티비전이 벽을 장악하고 있었다. 넓은 공간 속에서 유리탁자 하나만이 단출하게 놓여 있었고, 그 너머에 앉아 있는 사람은 50대의 반백 머리 사내, 빌란트 소장이었다. 그는 멀티비전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으나, 앙드레가 다가가자 천천히 의자를 돌리며 앙드레를 쳐다보았다.
“앉으시오.”
빌란트의 말은 짧고 냉정했다.
앙드레는 그의 초청을 받아들여 자리에 앉았다. 소장은 손끝으로 투명한 유리탁자를 두드리자, 바닥에서 의자가 조용히 솟아올랐다.
“앙드레 김이라고 합니다. 제 딸 제니가 녹사병에 걸렸다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난 빌란트 소장이오. 애니그마 연구소 한국 연구소의 책임자지.”
빌란트는 짧게 말했다가,
“서전 킴”
이라고 앙드레를 부르며 미소를 지었다.
앙드레는 순간 당황했다.
‘서전 킴?’ 자신을 용병 시절 계급으로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 용병 시절을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지요. 우리 회사의 동부아프리카 연구소에서 보낸 기록을 보았소.”
빌란트는 잠시 멈추더니, 앙드레의 지난 과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탄자니아에서의 사건. 당신은 그곳에서 부상당했고, 스스로 다리를 잘랐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코요테에게 물렸으니 그건 자해로 봐야겠군. 애니그마 연구소가 당신을 치료하고 외인부대 병원으로 후송한 것도 기억하겠지요.”
앙드레는 뒷머리를 움켜쥐며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코요테에게 물린 후 스스로 다리를 절단했던 그 끔찍한 순간, 그리고 자신을 구한 방독면을 쓴 남자들. 그는 분명히 그들을 기억했다. 애니그마 연구소. 그들은 당시에도 그곳에서 단순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지의 존재를 쫓고 있었던 그들의 목적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고, 앙드레는 그날 이후로 그 진상을 알지 못한 채 전역했다.
‘애니그마가 나를 구했었지… 그리고 지금 딸의 생명도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앙드레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 딸이 녹사병에 걸렸습니다. 애니그마 연구소에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고 들었기에 여기에 온 겁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앙드레는 절박한 마음으로 말했다.
빌란트는 유리탁자의 투명한 자판을 가볍게 두드렸다. 탁자 표면이 바뀌며 제니의 격리실 사진과 복잡한 분자 구조가 화면을 채웠다.
“중앙은성병원의 검사 기록을 보니, 녹사병이 확실합니다. 문제는 이미 세포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많이 떨어져 치료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오.”
앙드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발, 구해 주십시오! 치료비가 얼마가 들든 내가 마련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필사적인 애원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빌란트의 미소는 냉정했다.
“서전 킴, 돈이 문제가 아니오.”
“그럼 뭘 원하는 겁니까?”
빌란트는 조금 더 다가와 투명자판을 몇 번 더 두드렸다.
“우리 회사는 단순한 제약회사가 아닙니다. 당신은 탄자니아에서의 사건으로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요. 애니그마 연구소는 생명과 그 이상의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생명과 진화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딸, 제니는 그 연구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지요.”
앙드레는 소름이 돋았다.
“제니가 실험체가 된다는 말인가요?”
빌란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 아이는 실험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당신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내 협력?”
“우리는 당신이 좀 더 우리와 협력하길 원합니다. 당신이 탄자니아에서 겪었던 것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신체는 그날의 사건 이후로 우리에게 많은 흥미를 끌었고, 그 이유를 이제 밝혀내려 합니다. 당신의 신체를 통해 딸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앙드레는 몸을 떨었다. 그들이 단순히 그의 신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의 과거, 그리고 그가 겪었던 초자연적인 경험과 연결된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제니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대가가 필요한 겁니까?”
“당신의 신체를 연구에 사용하길 원합니다. 죽음 이후가 될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더 빨리 그 순간이 올 수도 있지요.”
빌란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가로 우리는 당신의 딸을 치료할 것입니다. 완치가 아닐지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고,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연구하게 될 겁니다.”
앙드레는 혼란스러웠다. ‘이건 단순한 거래가 아니야. 그들은 나와 제니를 이용하려 하고 있어.’ 그러나 그는 딸을 살릴 방법이 이것뿐이라면,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내 신체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제니는 반드시 구해주십시오.”
빌란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전 킴, 당신의 결단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더 큰 진실을 탐구하게 될 것입니다.”
앙드레는 연구소를 떠나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애니그마 연구소가 단순한 제약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토록 어둡고 위험한 비밀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는 딸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과 제니가 애니그마의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정말 내 신체뿐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걸까?’
앙드레는 차에 올라탔다. 아내의 유골을 수목장에 묻으면서도 다짐했던 복수의 결심이 아직 그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다. 이제 그는 딸을 구할 준비가 되었지만, 동시에 뺑소니 가해자를 반드시 찾아내어 처단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놈을 그냥 두지 않겠다.”
그는 핸들을 꽉 쥐며 말했다.
Written by : Michael
Subscribe To My Newsletter
BE NOTIFIED ABOUT BOOK SIGNING TOUR DATES
“Stay connected and be the first to know about my latest stories, updates, and exclusive content. Subscribe to my newsletter and never miss out on new adventures, writing tips, and behind-the-scenes ins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