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18억의 남자
“현우야! 일어나! 로또 발표 한다!”
김동현이 방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강현우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몇 시야?”
“저녁 8시! TV 켜!”
강현우는 여전히 어제 이은미와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25년 만에 다시 경험한 20살의 몸과 마음. 모든 것이 생생했다.
[현우야, 멍하니 있지 말고 로또 확인해.]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다, 로또.”
강현우는 급히 TV를 켰다. SBS 뉴스에서 로또 추첨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제48회 로또 당첨 번호를 발표합니다.”
“1번!”
강현우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7번! 13번! 19번! 25번!”
“그리고 마지막 번호… 31번!”
“보너스 번호는 37번입니다!”
[빙고! 완벽해!]
강현우는 지갑에서 로또를 꺼냈다. 1, 7, 13, 19, 25, 31. 모든 번호가 일치했다.
“1등 당첨자는 1명으로, 당첨금은 18억 2천만원입니다.”
“현우야, 뭐해? 표정이 이상한데?” 김동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강현우는 로또를 김동현에게 보여줬다.
“동현아, 이거 어떻게 보여?”
“어떻게 보이긴… 로또지. 왜? 설마…”
김동현이 TV 화면과 로또를 번갈아 보더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야… 야… 이거 진짜야?!”
“진짜.”
“미친! 18억?! 진짜 18억이야?!”
김동현이 방 안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 다른 애들이 들으면 어떡해.”
“아, 맞다.” 김동현이 목소리를 낮췄다. “현우야, 너 진짜 부자 됐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당첨금 받고 생각해보지.”
[현우야, 지금부터 조심해야 해. 갑자기 부자가 되면 주변 사람들이 달라질 거야.]
— 다음날 오후 —
농협 중앙회 본점. 로또 당첨금 수령을 위해 찾아왔다.
“신분증 확인해드릴게요.” 농협 직원이 친절하게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와, 정말 22살이세요? 젊으신데 대단하시네요.”
강현우는 각종 서류를 작성했다. 세무 관련 안내를 받고, 당첨 사실 공개 여부도 결정해야 했다.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세요.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은 12억 7천만원입니다.”
통장에 찍힌 12억 7천만원. 하지만 강현우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우야, 이제 진짜 게임 시작이야. 하지만 장기 투자는 너무 뻔해. 2004년이면 다른 기회들이 많아.]
“맞아. 지금은 IT 버블 터진 직후니까…”
강현우는 2004년의 시대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노무현 정부 출범, 부동산 가격 급등 시작, 그리고…
“바다이야기!”
[맞아! 2004년 하반기부터 바다이야기 광풍이 시작될 거야. 그리고 중국 경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강현우는 흥미진진해졌다. 25년의 미래 지식이 있으면 단기간에 자산을 몇 배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우야, 너무 눈에 띄면 안 돼. 점진적으로 해야 해.]
“알고 있어.”
— 강남 투자자문회사 —
“12억을 어떻게 운용하고 싶으세요?”
30대 중반의 펀드매니저가 물었다.
“공격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공격적이라고 하시면?”
“일단 중국 관련 펀드에 3억,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에 3억, 그리고…”
강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바다이야기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게임 관련 주식에 2억 투자하고 싶습니다.”
“게임 관련이요?”
“넥슨,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들.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될 것 같거든요.”
2004년의 펀드매니저는 강현우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게임은 너무 투기적이지 않나요?”
“전 확신이 있습니다.”
[현우야, 2004년에 넥슨은 아직 상장 전이야.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로 대박 터뜨린 직후지.]
“엔씨소프트만 2억 투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머지 4억 7천만원은?”
“현금으로 두겠습니다. 기회가 오면 바로 투자할 예정이거든요.”
펀드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고객의 요구대로 처리했다.
— 서울대 캠퍼스 —
투자를 마친 후 기분 좋게 학교로 돌아왔다.
“현우야!”
이은미가 뛰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평소보다 훨씬 예쁘게 차려입었다.
“어제 연락도 안 하고 어디 갔어? 걱정했잖아.”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무슨 일?”
강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완전히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좀 큰 돈이 생겼어.”
“큰 돈?” 이은미의 눈이 반짝였다. “얼마나?”
“비밀.” 강현우가 웃으며 말했다.
“에이, 궁금해.” 이은미가 강현우의 팔에 매달렸다. “아르바이트 했어?”
“그런 것 비슷해.”
사실 강현우는 이은미의 반응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돈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그럼 오늘 맛있는 거 사줄 수 있어?”
역시 돈 얘기가 나오자마자 기대감을 보였다.
“당연하지.”
“정말? 어디로 갈까?”
“네가 정해.”
“청담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어때? 거기 진짜 비싸긴 한데 맛있다고 유명해.”
이은미는 망설임 없이 가장 비싼 곳을 제안했다.
[현우야, 저 여자애 계산이 빨라. 돈 냄새를 맡았어.]
“좋아. 가자.”
하지만 강현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테스트일 뿐이었다.
그때 다른 여학생 세 명이 다가왔다.
“은미야! 여기 있었구나!”
경제학과 동기인 박지현, 최윤아, 그리고 선배인 한소영이었다.
“어? 현우 오빠도 있네.” 박지현이 강현우를 보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오빠, 오늘 뭔가 달라 보여요.” 최윤아가 강현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더 여유로워 보여요.”
한소영 선배가 끼어들었다.
“현우야, 혹시 좋은 일 있었어?”
25살의 한소영은 경제학과에서 가장 예쁘고 똑똑한 선배로 유명했다. 강현우도 예전에는 선배라고 부담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뭔데? 나도 궁금해.” 한소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투자에서 수익이 좀 났어요.”
“투자?” 모든 여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학생이 무슨 투자를?” 이은미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용돈 모아서 주식 조금 샀는데 운이 좋았어요.”
“와, 대박!” 최윤아가 감탄했다. “오빠, 완전 멋있어요!”
한소영 선배가 관심 있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현우야, 나도 투자에 관심 있는데 조언 좀 해줄 수 있어?”
이은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선배가 강현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우는 나랑 데이트 약속이 있어요.”
“아, 그래?” 한소영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음에 시간 될 때 얘기하자.”
“네, 언제든지요.”
강현우의 태도는 자연스럽고 여유로웠다. 47살의 경험과 12억의 자신감이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현우야, 너 정말 변했어. 좋은 방향으로.]
“그런가?”
[응. 예전에는 이은미만 쳐다봤는데, 지금은 시야가 넓어졌어.]
이은미와 함께 청담동으로 향하면서 강현우는 생각했다.
“은미야, 아까 한소영 선배 어떻게 생각해?”
“왜?”
“그냥 궁금해서.”
“예쁘긴 하지만…” 이은미가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왜? 관심 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강현우는 웃었다. 이은미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 청담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
“와, 여기 진짜 비싸네.”
메뉴를 보며 이은미가 감탄했다. 파스타 한 그릇이 5만원, 스테이크는 15만원이었다.
“괜찮아. 주문해.”
“정말? 비싸도 괜찮아?”
“응.”
이은미는 망설임 없이 가장 비싼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와인까지.
“현우야, 정말 돈 많이 벌었나 봐?”
“좀.”
“얼마나?”
강현우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비밀인가?”
“그냥…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을 거야.”
이은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혹시… 백만원? 아니면 천만원?”
“더.”
“더?” 이은미가 깜짝 놀랐다. “설마… 억?”
강현우는 그냥 웃었다.
“진짜 억이야?”
“먹자. 음식 나왔어.”
식사하면서 이은미는 계속 강현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갑자기 부자가 된 남자친구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현우야.”
“응?”
“나 오늘 집에 안 가도 될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집에 안 간다고?”
“응. 부모님한테는 친구 집에서 잔다고 할게.”
이은미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돈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현우야, 이거 완전히 돈 때문이야. 확실해.]
하지만 강현우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정말?” 이은미가 기뻐했다. “그럼 좋은 호텔 가자.”
“호텔?”
“응. 어제처럼 모텔 말고 진짜 좋은 데.”
이은미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강현우는 묘한 기분이었다. 이은미의 변화가 너무 노골적이었지만, 동시에 예상 범위 내의 일이기도 했다.
“그래, 좋은 데 가자.”
어차피 돈은 많았다. 그리고 이은미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현우야, 즐기라고. 하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빠지지는 마.]
“알고 있어.”
계산을 하면서 강현우는 생각했다.
12억 7천만원.
이제 정말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테스트는 이은미였다.
과연 그녀가 돈 때문에 접근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사랑하는 것인지.
오늘 밤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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