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현우야, 여기!”
이은미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녀는 뭔가 달랐다. 평소보다 화장을 진하게 했고, 입고 있는 옷도 강현우가 사준 비싼 원피스였다. 그리고 명품 가방까지 들고 있었다.
[현우야, 이은미가 뭔가 작정하고 나온 것 같은데.]
“미안, 조금 늦었어.”
“괜찮아.” 이은미가 웃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앉아.”
강현우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은미가 직격탄을 날렸다.
“MT 재미있었지?”
“응… 괜찮았어.”
“어떤 여자애들이랑 갔는데?” 이은미의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스며있었다.
[이은미가 심문 모드로 전환됐어. 조심해.]
“그냥 경제학과 애들이랑…”
“이름은? 얼굴은 예뻐?”
이은미의 질문이 점점 구체적이고 집요해졌다.
“은미야, 왜 그런 걸 그렇게 자세히…”
“왜 그런 걸 묻냐고?” 이은미가 테이블을 탁 쳤다. “내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들이랑 1박 2일을 보냈는데!”
주변 사람들이 돌아봤다.
[이은미가 폭발 직전이야. 정말 위험해.]
“은미야, 목소리 좀 낮춰. 사람들이 봐.”
“사람들이 보면 어때?” 이은미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나보다 예쁜 여자애들이랑 놀다 온 거 맞지?”
강현우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냥… 과 모임이었어.”
“과 모임?” 이은미가 비웃었다. “과 모임에 왜 너 혼자 남자야?”
이은미가 뭔가 조사를 했다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 그걸…”
“나는 다 알고 있어.” 이은미가 차갑게 웃었다. “최윤아, 박지현, 신유리, 한수진, 장민정. 다 예쁜 애들이더라.”
[이은미가 강현우를 완전히 조사했어.]
강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너 혹시 스토킹한 거야?”
“스토킹?” 이은미가 크게 웃었다. “난 단지 내 남자친구가 뭘 하는지 확인한 거야.”
“확인?”
“응. 그리고 확인 결과가 정말 재미있더라.” 이은미가 핸드백에서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이거 봐.”
사진에는 강현우가 최윤아와 손을 잡고 걷는 모습, 신유리와 가까이 앉아서 대화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은미가 사립탐정을 고용했거나 직접 따라갔어. 정말 무서운 여자야.]
“은미야,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증거지.” 이은미가 사진을 테이블 위에 쫙 펼쳤다. “내 남자친구가 바람피우는 증거.”
“바람? 그냥 친구들이잖아.”
“친구?” 이은미가 히스테릭하게 웃었다. “친구가 이렇게 손을 잡아? 이렇게 가까이 앉아?”
이은미가 사진을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 최윤아라는 애, 너한테 완전히 빠져있던데? 표정 봐. 완전 사랑에 빠진 표정이야.”
“그건…”
“그리고 이 신유리라는 애는?” 이은미의 목소리가 독사처럼 차가워졌다. “너랑 팔짱 끼고 다니더라. 완전 연인 사이 같던데?”
강현우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박지현이라는 애는 또 어떻고? 너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라.”
[이은미가 정말 치밀하게 조사했어. 무서울 정도로.]
“은미야,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심하다고?” 이은미가 테이블을 다시 쳤다. “심한 건 너야! 나 두고 다른 여자들이랑 놀아나는 게!”
“나는 바람 피운 게 아니라…”
“바람 안 폈다고?” 이은미가 비웃었다. “그럼 뭐야? 그냥 여러 명을 동시에 좋아하는 거야?”
강현우가 대답하지 못하자 이은미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맞구나. 너 진짜 그런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은미야…”
“강현우!” 이은미가 소리를 질렀다. “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주변 사람들이 완전히 주목하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다가왔지만 이은미가 손짓으로 쫓아냈다.
“나는 네 여자들 중 하나가 아니야!”
“은미야, 일단 진정하고…”
“진정하라고?” 이은미가 가방에서 뭔가를 더 꺼냈다. “이것도 봐.”
은행 통장 사본이었다.
“이게 뭐야?”
“네 통장 내역.” 이은미가 차갑게 웃었다. “12억이더라. 대학생이 12억.”
[이은미가 강현우의 금융정보까지 알아냈어. 이건 정말 불법이야.]
“너 이걸 어떻게…”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어.” 이은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네가 어디에 투자했는지도 다 알고 있어.”
이은미가 투자내역서까지 꺼냈다.
“엔씨소프트, 중국펀드, 부동산… 정말 다양하게 투자했네.”
강현우는 이은미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은미야, 이건 사생활 침해야.”
“사생활 침해?” 이은미가 비웃었다. “내 남자친구 사생활을 확인하는 게 침해야?”
“우리가 언제 그렇게까지 깊은 사이였어?”
이은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깊은 사이 아니라고?”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뜻 아니긴!” 이은미가 화를 냈다. “나는 네게 몸까지 줬는데!”
[이은미가 점점 히스테릭해지고 있어. 본성이 드러나고 있어.]
“그건 네가 원해서…”
“내가 원해서?” 이은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정말 최악이야.”
그러더니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현우야, 우리 결혼하자.”
“뭐?”
“결혼하자고.” 이은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내가 네 돈을 관리해줄게.”
“돈을 관리?”
“응. 12억을 혼자 관리하기엔 너무 많잖아.” 이은미가 계산기를 꺼내며 말했다. “이걸 잘 굴리면 몇 년 안에 100억도 만들 수 있어.”
[이은미의 본성이 완전히 드러났어.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었군.]
“은미야, 너 지금 뭔 말을…”
“나는 경제학과잖아.” 이은미가 자신 있게 말했다. “투자나 자산관리는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그게 결혼 이유야?”
“그것도 있고…” 이은미가 강현우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가난하게 살기 싫거든.”
[이은미가 솔직하게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가난하게 살기 싫다고?”
“맞아.” 이은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왜 이런 애들이랑 경쟁해야 해?”
이은미가 사진 속 여학생들을 가리켰다.
“얘들은 다 집 잘살잖아. 최윤아는 아버지가 의사고, 신유리는 집안이 사업가, 박지현이는 판사 딸이야.”
[이은미가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정말 치밀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지!” 이은미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가난한 집 딸이야! 아버지는 회사원이고 어머니는 파트타이머라고!”
이은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런 애들이랑 경쟁할 수 없어. 걔네는 돈 걱정 없이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지만, 나는 아니야.”
강현우는 이은미의 콤플렉스를 이제야 이해했다.
“은미야…”
“그래서 네가 더 소중한 거야.” 이은미가 강현우의 손을 잡았다. “너는 가난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거든.”
[이은미가 완전히 솔직해졌어. 이게 진짜 모습이야.]
“그럼 나는… 돈 때문에 사랑받은 거야?”
“처음에는 아니었어.” 이은미가 진심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정말 좋아했어. 하지만 네가 돈을 보여준 순간부터…”
“순간부터?”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더 실감했어.” 이은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래서 절대로 너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지.”
강현우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은미를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실망도 컸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래서 네가 다른 여자들한테 관심 갖는 게 미치도록 싫어.” 이은미가 화를 냈다. “나는 12억을 포기할 수 없어!”
[이은미가 완전히 본심을 드러냈어.]
“은미야, 나는 사랑받고 싶었지 돈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어.”
“사랑?” 이은미가 비웃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있어? 집세는? 생활비는?”
“그렇게 현실적으로만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뭐가 나빠?” 이은미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 아버지 월급에 쪼들리며 살기 싫다고!”
이은미가 일어서서 강현우를 내려다봤다.
“현우야,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나랑 결혼할 거야? 말 거야?”
“은미야…”
“대답해!”
강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이은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랑은 원하지 않았다.
“미안해, 은미야.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
이은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말?”
“정말.”
이은미가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분노와 절망이 섞여 있었다.
“그래. 알겠어.”
이은미가 가방에서 사진과 서류들을 모두 집어넣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 너 없이?”
“은미야…”
“아니야.” 이은미가 손을 저었다. “이제 됐어.”
그러더니 갑자기 차갑게 변했다.
“강현우, 내가 왜 너를 포기해야 하는데?”
“뭐?”
“나는 너를 위해 3개월을 투자했어. 시간도, 감정도, 몸도.” 이은미가 계산하듯 말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포기하라고?”
[이은미가 위험해지고 있어. 정말 조심해.]
“은미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럼 어떻게 생각해?” 이은미가 냉소적으로 웃었다. “나는 투자한 만큼 회수해야 해.”
“회수?”
“그래. 내가 손해보고 끝낼 수는 없거든.”
이은미가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녹음기였다.
“이거 우리 대화 다 녹음됐어.”
[이은미가 계획적으로 준비했어.]
“뭐 하려는 거야?”
“별거 아니야.” 이은미가 차갑게 웃었다. “그냥… 보험이지.”
이은미가 일어서서 코트를 입었다.
“강현우, 나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은미야…”
“너는 나를 버렸지만,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이은미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거야.”
이은미가 계산을 하고 레스토랑을 떠나려고 했다.
“은미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이은미가 돌아봤다.
“뭐?”
“너도 언젠가는 진짜 사랑을 만나게 될 거야.”
이은미가 잠시 멈췄다가 비웃었다.
“진짜 사랑?” “그런 거 믿지 않아.”
“그럼 돈만 믿어?”
“그래.” 이은미가 당당하게 말했다. “돈만 믿어. 그게 현실이거든.”
이은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언젠가 너도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레스토랑을 떠났다.
— 레스토랑 밖 —
강현우는 찬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정리했다.
[현우야, 어때? 후회돼?]
‘아니. 오히려 시원해.’
[이은미의 진짜 모습을 본 기분이 어때?]
‘안타까워. 저렇게 돈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는 없지.]
‘맞아. 나는 진짜 사랑을 원하거든.’
강현우는 핸드폰을 꺼내 박지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현아, 내일 만나자. 모든 게 정리됐어.”
곧 답장이 왔다.
“다행이에요. 힘들었죠?”
“조금. 하지만 이제 진짜 새 시작이야.”
[현우야, 이제 정말 자유로워졌네.]
‘그래. 그리고 언젠가 이은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도 알 것 같아.’
[Shadow Alliance로 갈 확률이 높아 보여.]
강현우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이은미와의 결별은 아팠지만, 동시에 교훈도 주었다.
진정한 사랑과 계산적인 관계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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